The indolent genius decided to become a tycoon RAW novel - Chapter 179
179화. 개화 (5)
강기찬과 고주아가 촬영장에 도착했을 땐 ‘바람 난 와이프’는 이미 한창 촬영 진행 중이었다.
스탭 또는 구경꾼들로 현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 대충 훑어도 사람만 100명은 넘어 보였고, 그중 구경꾼들이 반 이상. 그런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고주아는 눈에 띄는 스탭들에게 거의 속삭이듯 인사를 해댔다.
“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고주아 왔습니다아. 안녕하세요. ”
연신 허리를 숙여 가며. 물론, 한창 촬영 중이기에 부산 떨며 인사한 건 아니었고, 몇몇 눈치챈 스탭들만 조용조용 그녀의 인사를 받았다.
와중 고주아의 뒤에 선 강기찬은.
“ ······흠. ”
인사보단 생기 빠진 동태눈을 굴려 현장부터 파악했다. 어차피 스탭들 대부분이 현장 중앙의 촬영존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모두의 시선이 박힌 촬영존에는 장소연이 열연 중이었다. 한눈에 봐도 명품 협찬이다 싶은 검은색 트렌치코트 입은 그녀의 단독샷. 중형 지미집을 포함해 장소연을 찍는 카메라만 5대가 넘었다. 거기에 깔린 레일, 위로 우뚝 솟은 붐 마이크, 세워진 조명과 반사판, 각종 촬영 기기들이 즐비한 현장. 그렇게 잠시간 주변을 훑던 강기찬이 밋밋한 미소를 머금었다.
‘ 간만이네, 이 공기. ’
최은지의 팀에서 빠진 후 몇 달 만에 오는 촬영현장이었으니까. 이쯤 강기찬의 기분이 묘해졌다. 이상했다. 분명, 퍽 질리도록 보던 현장 광경이었음에도, 고작 몇 달 아이돌을 맡다 돌아오니 처음 본 곳 마냥 새로웠달까? 과거와 달리 발전해버린 고향에 온 기분 정도.
‘ 뭐 딱히 크게 변한 것도 없다만. ’
굳이 달라진 점을 꼽자면 사람들의 머리통 위였다. 과거와는 달리 현재 기찬에겐 괴랄한 시스템이 씐 상태라, 사람들 머리 위엔 ‘?’나 이름표들만 100개였다. 장관이라면 장관,
‘ 정신없네. ’
어쨌든 감회가 새로운 느낌에 작게 웃던 강기찬이 여전히 스탭들에게 조용히 인사해대는, 쉴 새 없이 허리 숙이는 고주아의 어깨를 톡톡 두드린 뒤 귓가에 속삭였다.
“ 인사는 나중에 해요, 지금은 어- 일단 현장을 봐요. 적응부터 해야지. ”
그러자 눈물점 찍힌 고주아가.
“ 아, 네네네. ”
군기 바짝 든 신병처럼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그리곤 촬영존에서 열연 중인 장소연에 시선을 던졌고, 강기찬은 수십 스탭들 사이 감독 자리에 힘 풀린 눈을 맞췄다. 촬영 모니터 4대가 놓인 자리에 모자 쓴 박류곤 PD가 보였다. 목을 쭉 빼고 모니터에 빨려 들어갈 듯한 자세.
그가 보는 모니터들이 출력하는 컷은 다 달랐다.
배경과 인물 전체를 담는 풀샷, 미디엄, 바스트, 클로스업까지. 그런 모니터를 입맛 다시며 집중하는 박류곤 PD 옆에는, 첫 촬영 날이라 참석한 듯 보이는 송희 작가도 앉아 있다. 그녀 역시 뿔테 안경을 추켜 올려대며 모니터에 집중 중. 그녀의 뒤엔 의상으로 고급진 정장을 차려입은 남주 류민기도 보였다. 선 채로 모니터를 응시 중.
여전히 날카로운 인상.
다만, 표정 자체는 근심걱정 없이 편해 보였다. 최근 터진 이적 건이 HYN 엔터 덕에. 아니, 정확히는 임한길 대표덕에 잘 해결됐기 때문.
이때.
-스윽.
모니터 보던 류민기가 인기척 때문인지 고개를 비스듬하게 돌렸고, 고주아의 뒤 얼빠진 얼굴의 강기찬을 발견했다. 곧, 옅게 웃으며 가볍게 목례하는 류민기.
-【탑배우 류민기(NPC)】
그런 그를 멍하니 보던 기찬 역시 비슷한 리액션을 취했다.
‘ 이젠 같은 회사 식군가? 저 양반도 정신없겠어. 그보다 박정순 선생님은. ’
이어 류민기에서 시선 돌린 기찬이 현장 속 여기저기 분포된 배우들을 훑었다. 그러다.
‘ 저깄네. ’
메인 카메라 왼쪽쯤에 앉은, 진주 주얼리를 주렁주렁 맨 원로배우 박정순을 발견했다. 재밌는 것은 그녀 역시 강기찬을 보고 있다는 것. 처음부터 보고 있었나? 속으로 작게 읊조린 기찬이 작게 인사를 던졌고, 앉은 원로배우 박정순이 주름진 미소로 화답했다.
그리고.
-슥.
강기찬의 시들한 시선이 살짝 움직였다. 박정순의 바로 옆으로. 눈에 띄는 정체불명의 남자가 보였으니까. 모자와 마스크를 낀 약간 뚱뚱한 남자. 기찬은 바로 직감했다. 저 남자가 박정순이 통화로 말했던, 곁다리로 고주아를 보러 온다는 누군가라는 것을. 정확진 않았지만 남자는 고주아를 봤다가 박정순에게 귓속말을 해대는 듯 보였다.
문제는.
‘ 저렇게 꽁꽁 싸매서야 누군지 알아볼 수가 있나. ’
마스크와 모자를 쓴 탓에 남자의 정체가 바로 확인이 어렵다는 점. 그렇다고 하여 굳이 다가가 물어볼 강기찬도 아니었다. 성가셨으니까.
‘ 뭐, 적당히 있다 보면 알아서 뭔가 액션이 있겠지. ’
나태방만인 기찬답게 빠른 포기를 선언했을 때였다.
“ 컷!!! ”
모니터 앞에 앉았던 박류곤 PD가 자리서 훅 일어나며 촬영존의 장소연에게 외쳤다.
“ OK!! 아 소연씨! 연기 뭐야? 물올랐는데요??! 하하하! 전 컷이나 이번 컷 둘 다 좋았습니다! 이거 그림을 뭘 써야 되나? ”
기분 좋게 OK 사인을 던지는 그였고, 당연하다는 듯 장소연이 싱긋 웃었다. 그 틈에 메이크업 팀이 장소연에게 달려들어 화장을 고쳐댔고.
“ 고주아씨. ”
작게 박수치던 고주아에게 사인 던진 기찬이 박류곤 PD 쪽으로 느릿하게 걸었다. 그리곤 장소연에게 엄지를 세우고 있는 그를 불렀다.
“ PD님, 고주아씨 왔습니다. ”
덕분에 고개를 휙 돌린 박류곤 PD의 얼굴에 금세 흥분이 번졌고.
“ 어? 아아아! 아이고 우리 라이징스타님 오셨네! 언제 오셨어? ”
“ 방금요. 촬영 중이라 어- 인사가 늦었습니다. ”
“ 하하하! 괜찮아요, 괜찮아. 주아씨 어서 와요! ”
박류곤 PD가 기분 좋게 웃으며 수줍어하는 고주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어색하게 잡는 고주아가 당차게 인사했다.
“ 안녕하세요, PD님!! ”
단박에 퍽 부산스런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에 주변 수십 스탭들부터 배우들의 시선이 고주아에게 집중됐고, 고주아의 손을 놓은 박류곤 PD가 주변을 둘러보며 뜬금 목소리를 키웠다.
“ 다들 알지? 버추걸! 밤비디! 지금 인터넷에서 난린 거?! 덕분에 우리 드라마 홍보도 두 배 잘 팔린다고! 일단 우리 주아씨한테 박수! ”
-짝짝짝짝!
마치 아끼는 손녀 보듯, 박류곤 PD가 고주아에게 애정 어린 박수를 쳤다. 물론, 총괄 PD의 박수는 수십 스탭들에게 빠르게 전염됐고.
-짝짝짝짝!
-짝짝짝짝짝!
수십 스탭들도 감사하다며 허리를 꾸벅꾸벅 숙여대는 고주아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오늘 고주아를 처음 보는 스탭들도 많았기에 현장은 금방 달아올랐다.
“ 와 직접 보니까 생각보다 나이가 어려 보이는데요? 몇 살이래요? ”
“ 19살이라더라. ”
“ 헐! ”
“ 근데 애가 뭐 저렇게 생겼냐? 진짜 오지게 예쁘네. 걸그룹 말 안 하면 딱 배우상이구만? ”
“ 어허 침 닦아, 침. 애한테 무슨. ”
“ 아니! 그냥 감탄이죠! ”
“ 옆에 희멀건 사람이 매니저? ”
“ 조명 감독님 저분 처음 봐요? 실장이에요, 실장. ”
“ 허이고. 캐릭터 특이하시네? 둘 다 뭔가 범상친 않어. ”
어느새 강기찬과 고주아가 현장의 주인공으로 떠올랐고, 가뜩이나 고주아를 궁금해하던 조연 배우들도 속속 반열에 동참했다. 그러나 촬영존에 선 장소연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팔짱 끼며 작게 콧방귀 낄 뿐.
“ 흥, 호들갑들은. ”
이쯤 들썩거리는 현장 분위기가 주변에 몰린 구경꾼들에게도 번졌다.
“ 어?? 저 단발 애 그 ‘버추걸’! 그그 ‘밤비디’ 걔 아냐?! ”
“ 어디? 아! 맞네! 이름 뭐였지? 고보아? 주아? 잠깐만! 검색! ”
현재 각종 매체를 ‘버추걸’ 또는 ‘밤비디’가 쓸어 먹고 있기에.
“ 맞다! 고주아고주아! ”
“ 실물 존예네?? 단발 찰떡이다 진짜. ”
“ 쟤가 ‘밤비디’서 비주얼센턴가?? ”
“ 와- 나 아까 쟤 뭔 드라마 캐스팅됐다는 거 기사 봤는데, 이게 그 드라만가 봐! ”
꽤 많은 구경꾼들이 고주아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다시 HYN 엔터 대표실.
담배 연기를 은은히 내뿜는 임한길 대표에게 박환수 본부장이 약간 놀란 듯 되물었다.
“ 대, 대표님. FU 엔터를 먹는다는 게 무슨······ ”
이유야 간단했다. 썩어도 준치. 이제 나락으로 빠질 게 빤한 FU 엔터는, HYN 엔터와 버금가는 국내 대형 엔터였으니까. 아무리 진창이라도 손쉽게 꿀떡 먹을 수 있는 FU 엔터가 아니었다.
따라서 박환수 본부장이 약간 당황해하는 것.
반면.
“ ······ ”
말없이 피우던 담배를 유리 재떨이에 구긴 임한길 대표는 차분했다. 심지어 그를 둘러싼 공기마저 싸늘한 느낌. 잔잔한 기백이었다.
“ 말 그대로야. FU 엔터를 내가 먹겠다고. ”
“ 진심이십니까? ”
“ 말장난 같나. ”
“ 아, 아닙니다. 그저 조금 놀라서. ”
“ 그래. 급작스럽긴 하겠지. ”
읊조리며 은은히 다리 꼰 임한길 대표가 주제를 바꿨다.
“ 박본. 정이사가 신사업 브랜디드 프로젝트를 뱉은 회의서 한 말 기억하나? ”
“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지. ”
“ 내 회사가 고착됐다는 거. ”
“ 아. ”
“ 영 틀린 소린 아니었어. 겉보기엔 뭐가 많아 보이는데 자리는 그대로야. ”
“ 음······ ”
“ 자네도 느끼고 있었잖아. ”
자신을 지긋이 바라보는 수장에게 박환수 본부장이 최대한 말을 골랐다.
“ 한계가···도래했다고 때때로 생각하긴 했습니다. ”
“ 냉정히 보자면 진작에 그랬지. 반대로 장소연을 시작으로 류민기, ‘엑스샤이’ 등 여러 소속 아티스트들 성장하고 있어. 물론, ‘밤비디’도. ”
“ 예. ”
“ 여러 프로젝트도 한창 속도를 내고 있고. 그렇게 모두 나아가려는데 회사가 제자리걸음이면 밑 빠진 독이지. 회사가 최소 두 배는 빨리 성장해야 되지 않겠어? 물이 질질 새면 쓰나. ”
맞는 소리였다. 분명 HYN 엔터는 거대했지만, 담길 내용물들이 덩치를 키우면 거대한들 넘칠 뿐. 즉, 회사도 그릇의 크기를 넓혀야 했다. 어쨌든 여기서 박환수 본부장이 다른 문제점을 꼬집었다.
“ 그래도 대표님. 빅블루 엔터를 흡수한 게 얼마 안 됐습니다. ”
“ 무리한다는 거지. ”
“ 조금은. ”
과거 스폰 건을 처리하며 빅블루 엔터를 먹은 게 몇 달 안 됐다. 물론, FU 엔터와 비교하면 빅블루 엔터는 작았으나, 박환수 본부장의 걱정은 자연스러운 것. 다만, 은은히 꼰 다리 방향을 바꾼 임한길 대표의 생각은 달라 보였다.
“ 불편해야 성장하는 거고 땅을 따먹으려면 전쟁을 펼쳐야 돼. 무리는 감수해야지. ”
“ ······ ”
“ 권민국이 날아가는 지금이 FU 엔터를 먹을 적기. 이정도면 인생 배팅 한 번 걸어볼 만해. FU 엔터를 흡수하고 제일 위로 올라가는 거야. ”
낮고 잔잔했지만, 임한길 대표가 뱉는 낮은 목소리에는 무언의 독기가 느껴졌다. 이에 박환수 본부장의 표정 역시 단단해졌고.
“ 최대주주를 노리시는 겁니까? ”
임한길 대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최대한 빨리 작업에 들어가야겠지. FU 엔터 쪽 주주들 명단 뽑아 봐. 내가 한 번 쭉 만나 봐야겠어. ”
“ 알겠습니다, 대표님. 근데 아시다시피 그쪽엔 강성파나 권민국 라인이 좀 있는 거로 압니다. ”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임한길 대표가 작게 웃었다.
“ 알아. 그러나 털면 먼지들이야 날리겠지. ”
“ 무슨 방법이 있으십니까? ”
되물음에 박환수 본부장을 가만히 바라보던 임한길 대표가 뜬금, 정장 재킷 속주머니 지갑을 꺼냈다. 그 지갑에서 나오는 검은색 명함 한 장.
“ 박본. ‘판타스마’라고 들어봤나? ”
“ 예? 아···호민에게 언뜻 들은 것 같기도 합니다. 무슨 정보단체인지 뭔지라고. ”
“ 그래. ”
이어 꺼낸 검은색 명함을 탁자에 올린 임한길 대표가 은은히 읊조렸다.
“ ‘판타스마’를 적극 이용해볼 참이야. ”
몇십 분 뒤, HYN 엔터의 한 미팅룸.
중형 미팅룸에 브랜디드 웹드라마 공모전 팀이 모였다. 인원은 대략 열댓 명 정도. 아마 이제 정한 당선작에 관한 얘기 중인지, ㄷ자형 책상에는 대본을 출력한 종이뭉치들이 즐비했다.
물론, 책상 상석엔 공모전을 핸들링하는 정주미 이사도 보였다.
그런데 손에 들린 태블릿을 내려보는 그녀의 표정이 영 심상치 않았다. 단발보다 조금 긴 머리를 묶은 그녀의 두 눈은 커진 상태에, 뭔가에 놀란 듯 입을 작게 벌리고 있다.
방금 직원에게 무슨 보고를 들은 모양.
그런 그녀가 보는 태블릿 화면엔 이번 웹드라마 공모전 당선작 중 하나가 출력되고 있었다. 작가는 도은봉 작가. 이어 잠시간 태블릿을 내려보던 정주미 이사가 천천히 고개를 올렸고.
“ 그러니까. ”
옆쪽에 앉은, 자신에게 보고를 올린 남자 직원에게 놀란 눈을 맞추며 되물었다.
“ 도은봉 이 작가가 넷플렉스 단편 공모전에서 대상을 탔다고요? ”
그러자 컨텐츠팀 남자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 네, 확실합니다. 이미 넷플렉스 쪽에 확인도 끝났습니다. ”
“ ······어쩐지 혼자만 10부 완결 대본을 낸 것부터 예사롭진 않았어. 무조건 기성이다 싶었지. 그래서 그 넷플렉스 작품 제목은요? ”
여기서 남자 직원의 표정이 짐짓 진지해졌다.
“ 이건 저도 놀랐습니다만. 작품 제목이 ‘도시살인’이었습니다. ”
순간.
“ 어? ”
확장된 두 눈을 끔뻑이던 정주미 이사의 뇌리에 무언가가 빠르게 스쳤다.
“ ‘도시살인’? 잠깐만. 그거 이번에 장소연이 들어간 단편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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