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RAW novel - chapter 276
“짐에게 그대는 언제나 여린 꽃처럼 소중한 것을 어찌하겠나.”
“정말이지··· 여전하시네요.”
두 사람은 낙원의 귀퉁이에서 그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이미 전해 들었겠지만, 카리나를 만났소. 그 아이, 다른 세계에서 고생이 많았어.”
“강하게 자란 아이예요. 어디에서든 잘 해냈으리라 믿어요.”
레온은 한동안 카리나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놨다. 그녀가 이계에서 제국을 건설한 이야기. 구혼결투가 벌어진 이야기. 끝내 용왕과 협상해 만신전에 합류한 이야기.
그것을 카스티야는 조용히 들어주었고 웃으면서 낭군의 목소리를 즐겼다.
“많은 일이 있었소. 내 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저도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금기를 저지르며 이뤄낸 사랑이었고, 여신의 분노를 감내해가며 지켜낸 사랑이었다.
이것은 분명 흔한 러브스토리일 지도 모르지만, 레온은 이 사랑이 너무나 소중하고 귀하여, 언젠가 이곳으로 올 날만을 기다렸다.
자신의 마땅한 의무를 수행하고, 신들과 만찬을 즐기며, 사랑하는 이와 영원토록 함께하는 날을.
남편의 오랜 염원을 아내도 알았다.
“아직이에요, 레온.”
“······.”
“아직 이리 오시면 안 돼요.”
“카스티야······.”
레온은 카스티야의 손을 붙잡으며 물었다.
“내가 보고 싶지 않은가? 나를 원망하오?”
그럴 리가 없다. 카스티야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 마음이 곧 당신의 마음이에요. 하지만··· 당신은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은걸요.”
그녀는 레온의 아내이기 이전에 왕국의 왕비다. 신들을 모시는 신관이었으며 악종들에게 영민을 잃은 귀족이었다.
그녀는 이승에서 레온만이 해낼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알았고, 그렇기에 이기적으로 굴어선 안 된다고 여겼다. 무엇보다······.
“저는 무척이나 행복했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을 기억하며 웃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당신은 아니잖아요.”
그의 삶은 언제나 싸움의 연속이었다.
젊어서는 오크와 싸우며 보냈고, 왕이 되서는 방자한 제국의 타락자들과, 왕국이 멸망할 때까지 악마들과 싸웠으며 멸망한 이후에도 홀로 싸웠다.
낙원에 있는 모든 이들이 사자심왕의 외로운 싸움을 지켜봤다.
그가 메마른 흙바닥에서 숙영하는 것을 보았고, 그가 악마들의 피로 젖은 채 포효하는 것을 보았다.
죽은 친구들의, 충성스러운 병사들의 갑주를 수습하며 감정을 삼키는 왕을 보았다.
끝내 멸망한 고향에서 울부짖을 때는 신들조차 위로의 말 말고는 전할 수 없음을 통탄해했다.
“아직 오지 마시어요. 좀 더 산 자들의 세상에서 행복을 누리다 오시어요.”
“내 행복은 그대에게 있네!”
카스티야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백 년을 기다렸어요. 그러니 좀 더 기다릴 수 있어요.”
“이백 년이나 기다렸네. 그러니 더 기다릴 수가 없어.”
“후후, 때론 당신이 불카누스 경처럼 뻔뻔해졌으면 해요.”
평생 이승의 삶을 즐길 것이라며 뻔뻔하게 나오는 불카누스처럼, 레온도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제 삶을 즐겼으면 좋을 텐데.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이승에도 있다는 걸 기억하세요.”
그 말에 레온은 할 말을 잃었다. 카스티야가 하는 말의 저의를 그도 알고 있기에.
“괜찮은 거요?”
“간혹 당신은 우리와 다른 관념을 가진 것처럼 구시네요. 백 년으로도 이십 년의 삶을 잊기에는 부족하신가요?”
그것은 지구인의 관념일 뿐이라며 카스티야는 그가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다는 걸 아는 유일한 사람으로서 키득거렸다.
“신들께서도 권하시는 이들을 마냥 거부하진 마세요. 그분들께서도 결국 폐하를 사랑하기에 권하시는 것이니까요.”
“내가 신들께서 밀어 넣으신 여인들을 모두 안았더라면 부인이 백 명쯤은 되었을 거요.”
“그 정도까진 하지 마시구요. 나중에 낙원에서 서열정리하기가 힘들어져요. 열 명까지는 괜찮을 거 같네요. 카리나의 형제자매들을 많이 만들어주고 오세요. 늙으면 손자 보는 재미로 산답니다?”
“하아······.”
한숨을 쉬는 레온에게 카스티야는 레온의 목덜미를 끌어안으며 웃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정해둘게요.”
“그것이 무엇──”
일종의 기습이었다. 벌겋게 달아오른 뺨의 열기가 따스했고, 근접한 살내음이 은은한 단내를 풍겼다.
부드럽게 베어 물 수 있는 과육처럼 달고 폭신한 입술이 포개어진다.
촉촉하게 젖어가는 입술. 살짝 떼어지는가 싶더니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과즙. 얽히고설키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충분히 음미하다 아쉬운 듯 떨어져 나간다.
배시시 웃고 있는 카스티야는 보자기에 납치되었을 때처럼 사랑에 빠진 소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제가 첫 번째라는 것. 그것만큼은 잊으시면 안 돼요.”
그 말에 레온은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자신을 이승으로 밀어내는 아내가 원망스러울지언정, 이토록 사랑스러운 여인을 어찌 거부할까.
“사랑해. 언제까지나.”
“사랑해요. 살아서도 죽어서도.”
산 자가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끝나간다.
레온은 언젠가··· 낙원으로 향할 날을 떠올리며 살아있는 자들의 세계로 귀환했다.
그가 있어야만 하고, 그를 기다리는 이들의 세계로.
레온 드라고니아라이온하트(2) 完
평양에서 남포로 향하는 길을 쭉 내려가다 보면 태정호라는 호수가 있다.
통일 전에는 북한의 고위간부들이 이용하기 위한 골프장이 지어져 있고 인민들의 접근을 엄격히 금지하여 자연경관을 유지한 이곳은 통일 이후에는 남포에 자리잡은 끼끼룩족들의 제2서식지로 발전했다.
그리고 지금, 종전식이니 연방협의니 하는 일들을 마친 만신전의 간부들은 때아닌 뱃놀이를 즐기고 있다.
-끼룩끼룩!
(끼끼룩호 출발합니다!)
-끼끼룩!
(불카누스 경, 갑옷 벗고 올라타세요!)
“어허! 갑주는 기사의 생명과도 같은 것! 어찌 생명을 내려놓으라 말하는 겐가!”
“전시도 아닌데 좀 벗으십쇼.”
“라이하르 경! 자네마저!”
꽃놀이와 뱃놀이는 귀족들의 소양이라던가. 지구의 화려한 문명을 누리고 있지만, 때아닌 왕국 시절의 문화를 추억하는 그들은 저마다 서로를 밀어댔다.
“근데 수호야, 여왕님은 어디 계시냐?”
“글쎄. 누나하고 소연이가 배 타고 나간 건 봤는데, 아마 그 앞에 타지 않으셨을까?”
“폐하는 언제쯤 오시려나.”
재혁은 지금도 레온이 흑룡과 함께 평양시에 있다는 걸 떠올렸다.
라이온하트 연방 관련 일로 여러가지 조율할 문제들이 많아 연방 소속국 관료들이 평양에 죄 몰려있다나.
“그나저나 뱃놀이는 하리 선배가 있어야 제맛인데. 파도치기로 좀 다이나믹하게 놀 수 있을 듯.”
“성법을 그렇게 사욕으로 쓰면 되냐······.”
돈복사 해보겠다고 배터리에 울티마의 천둥을 내리쳤다가 크게 혼났으면서 또 이런다.
한 편. 태정호의 중심에는 몇 척의 배가 띄워져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호화로운 배가 한 척.
왕족을 모시는 배에 장식과 화려함이 부족해서야 안 되는 법이다.
나무 판자 위에 비단을 깔아 부드럽게 만들고, 바람 따라 배를 움직이는 돛에는 화려한 라이온하트 연방의 사자국기가 걸려있다.
반짝반짝거리는 조명들은 자세히 살펴보면 보석을 깎아 안에 조명을 넣은 터무니없는 사치품.
그곳에서 시설을 관리하는 잿빛머리의 미소녀가 레몬에이드를 쪽쪽 빨며 끼끼룩족들에게 지시한다.
“저기, 17번 조명 각도 세우셈. 꽃장식은 지정해둔 플래너를 따라야 함.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겠음.”
-끼룩!
(알겠슴다!)
끼끼룩족들을 손짓으로 부리는 이 철과 대장장이의 성배기사는 제 미니멀한 사이즈의 별철동체를 끌어안고 흔들의자에 몸을 뉘였다.
“열등한 유기체의 유희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 같음.”
야피는 가끔은 불량식품도 먹어줘야 한다는 인터넷 속의 근거 없는 말들에 동의했다. 아무런 지식적, 논리적 근거도 없는 말이지만 제 꼴리는 대로니까 상관 없다.
[아이고, 우리 야피는··· 언제 후손을 보여줄꼬.]철과 대장장이 신 헤토의 말에 야피는 고개를 기웃거렸다.
“본기는 유기체의 열등한 번식수단에 의존할 필요가 없음. 본기는 무한히 증식할 수 있음.”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아.]헤토는 이 자칭 완전무결한 무기물의 이마를 콩 쥐여주고 싶었지만, 결국 시간문제라고 여겼다.
[세상을 더 많이 겪거라.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먹어보기도 하고 그러면 너도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니.]“???”
야피는 아직 헤토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양념치킨을 추가로 주문하는 걸 잊지 않았다.
“어머, 맛있어요?”
그때, 선미로 나오는 드레스 차리의 베아트리체. 그녀는 양념치킨을 먹는 야피를 보며 말을 걸었다.
“꿀맛임. 여왕전하 드실?”
“식사는 아까 해서 사양해둘게요.”
베아트리체는 야피의 머리를 다소곳이 쓰다듬곤 선미에 준비된 푹신한 소파 위에 앉았다.
야피가 차후 끼끼룩족의 경제자립을 위해 호화 관광 서비스의 일종으로 만들었다는 유람선은 왕족인 그녀가 즐기기에도 충분했다.
“후~”
“왜 그러심?”
“이렇게 좋은 곳에서 공기를 쐬면 뭐하나요~ 같이 즐길 사람이 없는데.”
거대한 전쟁이 끝났다. 오크 대륙연방을 흡수하고 짐승신들의 권속들을 소탕했고 게이트는 이제 나타나질 않았다.
전쟁의 시대는 이제 끝난 것이다. 물론 레온에게는 아직 무언가 생각할 거리가 있는 듯했지만 말이다.
‘중요한 건 이제 다 끝냈으니··· 슬슬 저를 좀 챙겨줬으면 하는데요.’
최측근으로서 보좌해야 할 야피와 자신까지 이렇게 휴가를 보내놓고 정작 자신은 평양에서 일을 보는 중이다.
베아트리체로선 이번이 레온과 함께할 귀중한 기회라고 여겼건만, 정작 그는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저런. 본녀의 신관장이 단단히 삐진 모양이구나.]그런 베아트리체의 속상함을 플르는 귀엽다는 듯 웃어 보였다.
“놀리지 마세요, 플르님. 저는 꽤 심각하답니다.”
[그럼 네가 좀 더 적극적으로 구애해봄은 어떠하냐?]“안 돼요.”
단호한 거부였다.
“구애는 신사분이 먼저 하시는 거랍니다. 어찌 여인이 먼저 구애를 할 수 있죠? 상스러운 일이에요.”
[저런··· 본녀의 신관장은 고루하여 언제 연애를 해볼꼬~]하지만 뭐,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본디 구애라는 것은 사내가 먼저 청해야 하는 법. 그것이 낡은 관념이라 할지라도 어쨌든 두 사람은 낡은 관념 속에서 살아온 이들이니 문제될 건 없다.
[몸가짐이나 바로 하거라. 온다.]“예?”
펄럭, 하고 힘찬 날갯짓과 함께 하얀 백마가 선상에 착륙한다. 빛의 여신께서 제 기사를 아껴 직접 내렸다는 빛의 신수.
“워워~ 비행하느라 수고했다. 저쪽에서 식사라도 하거라.”
-히힝!
그 위에서 내린 사내는 하얀 신수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폐하, 오셨군요!”
바삐 몸가짐을 바로하는 베아트리체. 그녀의 환대에 레온이 웃으며 대답했다.
“기다렸소?”
“그럼요.”
레온은 베아트리체의 손등에 입을 맞추곤 선미로 향했다.
“어찌 이리 늦으셨나요?”
“옛 인연들을 만나고··· 또 허락을 좀 맡고 오느라 늦었소.”
“허락이요?”
일이 바빴다더니 그런 게 아니었나? 의아해하는 베아트리체에게 레온이 진지한 시선으로 물었다.
“큰 전쟁이 끝났소. 한동안은 싸움에 나설 일은 없겠지.”
“그렇지요.”
할 일이 없다는 건 아니다. 신생국가나 다름없는 라이온하트 연방을 기초부터 바로 세워야 하며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세계를 재건해야 한다.
아직 야생에서 떠도는 몬스터들을 토벌하고 백성의 안녕을 도모해야 하며 또한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것은 왕족의 의무이니.
지금까지 단순히 전쟁만 해야 했더라면 이젠 통치와 안정의 시대다. 해야 할 일은 더욱 늘어나리라.
“허나, 짐은 전쟁이 진정으로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소. 언젠가는 그곳으로 향해야겠지.”
“······네.”
레온이 말하는 바를 베아트리체는 충분히 알았다.
마계.
악마들의 서식지이며 악이 창궐한 세계.
그곳은 수많은 차원과 차원으로 이루어진 복합적인 세계이며 악마들은 세상의 악과 그 추종자들을 끌어모아 세력을 늘리고 있다.
비록 지금은 악마들이 군주를 잃어 쇠락했다지만, 언젠가는 다시 세를 늘려 돌아올 것이다.
그것이 당대의 사자심왕이 승천한 뒤일지도 모르지. 악마들은 레온을 두려워하니까.
레온은 그를 두고 볼 생각이 없다.
“비체. 나는 언젠가 마계로 향할 것이오. 또다시 싸우겠지. 그것은 고단하고 험난한 길이네.”
그런 자신을 끝까지 따라줄 수 있겠소?
레온의 물음에 비체는 조금의 고민도,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폐하께서 가시는 길이라면 언제까지라도.”
레온은 이 사랑스러운 여왕의 헌신에 감사했다. 결심을 마친 그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폐하?”
갸웃거리는 그녀에게 레온은 품에서 꺼낸 작은 상자를 건넸다. 그 안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짐은··· 아니, 나는 훌륭한 왕이었고 명예로운 기사였음은 자신할 수 있네. 허나, 좋은 연인은 못 되었지. 실패한 아버지이고 아내를 구하지 못한 남편일세.”
레온의 삶은 싸움의 연속이었다.
영광스러운 드라고니아 대공의 적자로 태어나 마땅한 의무를 위해 여정을 떠났다.
여신의 퀘스트를 받아 수행해냈고, 워나이트가, 성배기사가, 성배의 수호자가 되어 훌륭히 나라를 통치했지만, 그 과정에서 소중한 것들을 잃었다.
그럼에도 그는 불굴로 살아왔고 끝내 악을 멸했으니 그의 삶은 그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영광스럽고 명예로웠으리라.
그러나.
그는 결코 좋은 남편이 아니었다.
훌륭한 아버지가 되지 못해 딸을 오랫동안 잃어왔고 사랑하는 아내를 되살리고 싶어도 섭리를 거슬러선 안 된다고 말하는 벽창호다.
그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실패한 아버지의, 아내를 저버리는 대의를.
그는 포기하지 못할 것이다.
그에게 있어 마땅한 의무를 끝내 지켜내야 하기에.
“그대 앞에 있는 것은 비루한 사내이고 빈말로라도 아내를 우선할 수 없다 말하는 벽창호요. 그럼에도··· 그럼에도 비체··· 베아트리체 알리기에리 스페로.”
상자를 열어 내용물을 공개한다. 그 안에 있는 건 보석에 대한 심미안이 누구보다도 뛰어난 용이 고심하며 함께 골라준 아름다운 반지였다.
“이런 모자라고 한심한 사내와··· 함께해주겠습니까?”
“······.”
베아트리체는 레온을 조용히 응시했다.
그토록 대단한 사내가, 기사들의 왕이자 만신의 대리인인 사자심왕이 전에 없이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서.
혹여나 자신이 거부할까 걱정하는 것이 얼굴에 드러나는 것이······.
몹시 기쁘고 사랑스럽다.
“폐하······.”
그는 많은 것을 잃어온 사내다.
그녀는 많은 것을 잃어온 여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