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118)
제 119화
* * *
시간이 어떻게 흘러간 건지 모르겠다.
하루가 지난 건지.
이틀이 지난 건지.
시간 감각이 모호해지는 느낌.
그런데 묘하게도 새롭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나는 분명 이런 느낌을 한 번 겪어 봤다.
회귀를 하기 전, 최후의 싸움이 벌어지던 그 자리에서 통일 황제 이스칸다르의 시체를 의자 삼아 앉아 있던 그때.
분명 느껴 봤다.
죽음에 가까워지는 기분.
이대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죽게 될 거라는 하늘의 선고.
그리고 직감.
그때의 나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삶을 더 이상 이어 갈 생각이 없었으니까.
또, 의미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죽을 생각?
없다.
주먹을 강하게 쥐고, 부서지고, 박살나려는 영혼을 강제로 잡아챘다.
계속해서 터져 나가고, 아물기를 반복하는 온몸을 강제로 회복시켰다.
부서진 뼈는 다시 맞물리고 터져 나간 살들은 다시 붙어 간다.
심장은 거세게 뛰며 온몸으로 피를 내보냈다.
나는, 아직 죽을 생각이 없다.
그 생각은 다짐이 되어 죽음이라는 선고를 강제로 깨부쉈다.
슬며시 눈을 떴다.
스승님의 눈이 보인다.
그 눈에 비춰 보이는 내 모습은 14살.
혼의 힘으로 몸을 강제로 성장시킨 몸이 아닌 꼬마의 몸.
또한 만들어진 욕조에 잠겨져 있는 내 얼굴은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스승님이 걱정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안도의 한숨을 터트리는 걸 바라보았다.
스르륵하고 눈이 감긴다.
“이제 정말, 자겠습니다. 스승님.”
분명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잠이 들었다.
* * *
어둡다.
캄캄한 공간.
일단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데자뷔였다.
회귀를 한 이후, 아르벨로아 마을에서 잠을 잤을 때. 나는 꿈을 꿨었다.
스승님과 처음 인연을 맺었던 그때 그 순간.
그때 느꼈던 상황이라고 해야 할까.
잠을 자고 있는 건 확실하다.
정신은 지나치게 또렷했고, 꿈이라는 인식도 가능했다.
그런데, 그때의 꿈과 비슷하지만 다르다.
일단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거.
정말, 말 그대로 어두운 공간 속에서 나는 홀로 존재했다.
컴컴한 공간이 보이는 꿈이라…….
참 기묘하다.
내가 알기로 이런 느낌의 꿈은 과거에 벌어졌던 일을 복기하는 그런 형태가 분명하거든.
그건 확실하다.
사실, 전생에서의 내 인생은 그저 어두운 공간에서 살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가족도 없고, 지켜야 할 누나도 없고, 스승님도 죽고.
더 살아갈 이유를 찾고 싶은데, 찾을 수도 없는.
지키고 싶고, 같이 살아가고 싶은 사람.
아무도 없는 그런 인생.
분명 그건 어두운 공간에서 살아간다는 표현과 굉장히 어울렸다.
하지만 그건 은유적인 표현이지,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
뭘까.
이 컴컴한 공간은 대체 뭘 의미하는 걸까.
내가 이런 곳을 겪어 본 적이 있다고?
이게, 내 머릿속에 들어 있다고?
의문이 조금 깊어질 무렵.
갑자기, 어둡던 공간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눈을 어지럽힐 정도로 환한 빛.
잠시 눈을 감았고, 다시 눈을 떴다.
조금 놀랐다.
눈앞의 풍경이 달라졌으니까.
그런데, 이게 달라진 건 맞는데, 뭐라고 해야 하나.
이건 아니잖아.
헛웃음이 터져 나온다.
내 눈에 보이는 풍경은 간단했다.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거대한 광장에서 광기에 젖은 채 무언가를 맹렬하게 외치는 모습.
-악마가 죽었다!!
-드디어 그 개새끼가 죽었다고!!!
한둘이 아니었다.
최소 수십만.
그들의 목소리에 도시 전체가 진동을 일으킬 정도였다.
그들의 시선이 쏠려 있는 곳.
광장 한가운데.
그리고, 그곳 정중앙에 박혀 있는 긴 기둥.
길이만 약 20여 미터에 달하는 그 기둥의 끝에 한 남자의 목이 걸려 있었다.
사람들은 그 목을 보며 환호하고 있었다.
그 목이 누구의 목인지 나는 알기에 헛웃음을 터트린 거다.
항상 뒤로 묶고 다니던 머리였지만 저렇게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는 걸 보니 또 기분이 묘하네.
감겨져 있는 눈.
이어서 깔끔하게 잘려져 있는 목.
몸통은 대체 어디로 간 건데?
기둥 끝에 걸려 있는 건 전생에서의 나.
그러니까, 내 목이었다.
34살, 정확히는 33살하고도 6개월 정도지만, 그게 뭐가 중요하랴.
저건 분명 미래, 아니지.
전생에서의 내 얼굴이 확실하다.
이제 보니 주변 풍경도 뭔가 익숙하다.
툴칸 제국의 수도인 마르테가의 광장.
그 광장의 모습은 꽤나 묘했다.
40대에서 50대 이상의 사람들은 광기에 젖어 잘 죽었다며 외치고 있었고, 그 뒤쪽 골목 구석에서는 10살 남짓한 꼬마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나를 애도하는 건지, 아니면 미친 것 같은 광장의 사람들의 모습이 슬픈 건지 구분이 안 되네.
분명 나는 이 모든 걸 인식하고, 느끼고 있었다.
슬슬 궁금해지는데.
이게 뭔 개꿈이야?
그렇게 생각한 순간, 시야가 변했다.
이번에는 바다였다.
하늘에는 갈매기가 날아다니고, 어부로 보이는 이들은 낚시를 하며 옆에 있는 이들과 대화를 나눈다.
그들의 대화도 들려온다.
-악마가 죽었다던데, 넌 왜 그렇게 울상이냐?
-그냥, 느낌이 좋지가 않네. 어차피 시작은 툴칸 새끼들이 한 거고, 그 악마…… 이름이 잭이었나?
-그래 잭, 그 개X끼.
-나는 모르겠다. 그 양반이 악마라 불릴 정도로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던 거 같은데.
-이건 뭔 개소리야? 그 새끼가 죽인 인간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고 하는 소리냐?
-알지, 모를 리가 있나. 중요한 건 그 남자는 소년병으로 끌려간 내 아들을 죽이지 않았어. 그는 악마라 불렸을지언정 적어도 나한테는 은인이지.
-하, 개소리.
그 대화를 들으며 생각했다.
이건 꾸며진 환상도 아니고, 만들어진 장면도 아니다.
분명 언젠가 벌어진 일.
그리고 벌어질 일.
버릇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나는 어떤 일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그 원인을 파악하고 현상을 파악한다.
지금 눈앞에서 보이는 이 장면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지나치게 무리한 건 맞다.
두 번 언급할 필요도 없이 나는 무리했다.
현생이 아닌 전생의 몸을 강제로 재구축하는 것.
이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내가 그 일을 성공시켰다는 거다.
비록 일시적이긴 하나, 분명 과거의 내 몸을 재구축했다.
그 부작용일까.
현생에서 전생을 관통하는 현상.
나는 죽었지만 내가 죽은 이후 전생에서 벌어진 일을 보게 되는 거.
거기다 이거, 굉장히 사실적이다.
3대 드래곤 로드가 어떤 식으로 미래를 본 건지, 대충 짐작이 간다고 해야 할까.
약간 방향은 달랐어도 이건 ‘예지력’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거 생각지도 못한 수확을 얻은 느낌이다.
전생의 몸을 되찾으려는 시도를 했다가 전생에서 벌어진 일을 알게 된다?
이런 식이라면 내가 ‘회귀’를 한 이유도 알 수 있게 될 확률이 높다.
그거, 그냥 지금 말 나온 김에 알려 줬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한 번 더 시야가 변했다.
언급은 안 했지만, 툴칸 제국의 수도인 마르테가는 농담이 아니고 굉장히 거대한 도시다.
땅의 크기는 거의 테슬란 왕국의 수도와 어센블 영지, 그리고 말론 공작의 영지를 전부 합친 것보다 더 크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수는 수십만이 훌쩍 넘어간다.
그런 도시가.
방금 전까지 내 잘려진 목을 바라보며 환호하던 인파가 몰려 있던 그 도시가, 폐허가 되어 있었다.
무너진 건물.
애초에 내가 지워버린 황성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냥 모든 건물이 무너져있었다.
거기다 주변 곳곳에 보이는 얼룩진 핏물.
구더기가 들끓었고, 인간의 시체로 추정되는 잔해가 한 가득이다.
뭐야 이거.
의심의 여지는 없다.
분명 내 눈앞에 보이는 폐허는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하던 마르테가가 확실하다.
고개를 들었다.
풍경 자체가 묘하다 싶었는데, 하늘을 보자마자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었다.
세상이 온통 어두웠다.
빛 한 점 없는 세상.
밤이었다면 달빛이라도 비쳤어야 하고, 낮이었다면 햇빛이라도 보였어야 했는데.
그런 게 전혀 없다.
그러고 보니 방금 도시를 둘러보았을 때, 나는 ‘눈’으로 본 게 아니었다.
그저 ‘실체’를 느꼈을 뿐.
이게 경지에 이르고 감각이 초월급에 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얻게 된 기술인데, 나도 모르게 이 기술을 펼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왜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떠드냐면, 이게 무슨 현상인지 알아챘기 때문이다.
‘……하늘을 덮었다?’
감각을 끌어올렸다.
하늘을 덮고 있는 거대한 검은 기운.
내가 사용하던 혼기와 흡사하다.
그 기운이 하늘 전체를 덮고 있었다.
농담이 아니고, 정말…… 끝을 모를 정도로 그 범위가 거대하다.
순간, 단어 하나가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멸망.
면상도 모르는 3대 드래곤 로드가 보았다는 미래.
여태껏 관심도 없었다.
그딴 예언에 내 인생이 휘둘릴 일도 없고, 사실 휘둘린다는 것도 이상하잖아.
난 운명이라는 게 정해져 있다고 보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런데 이거, 이렇게 직접 보니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하늘을 덮은 혼의 기운.
이거 내가 사용하는 거랑 조금 비슷한 거 같은데 뭔가 다르다.
너무.
이질적이라고 해야 할까.
샬롯이 아무리 성장하고, 셀이 아무리 성장해도 ‘이런 느낌’의 혼기를 쓰지는 않을 거다.
정확히는, 못 쓸 거다.
이건.
아무리 봐도.
사자使者의 기운이거든.
순간 피어오르는 의문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이 미래는, 전생에서 내가 죽고 난 뒤 벌어진 일일까.
아니면 지금 현생에서 미래에 벌어질 일인가.
내가 이래서 떡밥 같은 걸 별로 안 좋아한다.
생각할 게 많아지잖아
짜증나게.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을 터트리고 있을 때, 눈앞의 모든 게 무너졌다.
눈이 떠졌다.
웃는다는 생각과 함께 꿈에서 깼나 보다.
우선 천장이 보인다.
무슨 이상한 무늬 같은 게 있는 천장.
이거, 별장의 내 방 천장인 것 같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스승님이 아담한 몸으로 양반다리를 한 채 앉아 있었다.
그런데, 치마를 입고 계신데, 그렇게 앉아 계시면…….
음……
[왜, 웃고 있느냐?]뭐라고 답해야 할까.
잠시 생각했다.
스승님은 현생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지나친 신경을 쓰실 필요가 없다.
이미 스승님은 이 세상의 생명체들을 위해 많은 일을 했으니까.
스승님이 더 희생하는 모습을 나는 보지 못한다.
볼 생각도 없고.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재미있는 꿈을 꾼 것 같습니다.”
[꿈?]“예.”
스승님이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긴가민가한 표정이라고 해야 할까.
[한데, 왜 화가 나 있는 것이냐?]스승님의 눈을 속일 수는 없나 보다.
그냥, 말없이 웃었다.
이걸 말해 줘야 할까.
다른 걸 다 떠나서.
꿈이 너무 모호하다.
시점은 언제인지.
미래인지, 전생인지.
그런 불확실한 걸 스승님한테 말씀드릴 필요는 없겠지.
우리 스승님.
웃으면서 지내셔야 하거든.
그냥 거기까지만 생각했다.
슬쩍 고개를 돌려 우리 스승님의 눈을 바라보았다.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해 주고 싶었던 말.
“좋은 아침입니다. 스승님.”
묘한 분위기가 흐르고, 잠시 말을 멈춘 스승님이 희미하게 웃는다.
그리고.
언젠가 그러했던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한마디 내뱉으셨다.
[지금은 점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