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205)
제 206화
* * *
시체의 산.
공동묘지의 싸늘함은 진작에 뛰어넘은 싸늘한 그런 분위기 속에서 셀은 서 있었다.
“괜찮니?”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셀이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피로 물든 얼굴.
그 사이에 또렷하게 빛나는 두 눈동자가 한 여인을 발견했다.
엘리자베스 발란티에.
생명의 은인이자 평생을 곁에서 함께하고 싶은 보스인 잭의 누이인 그녀가 걱정 어린 눈을 하고 있었다.
저런 표정이 어찌 보면 당연했을 거다.
무려 서른이 넘는 이를 죽였다.
하나하나가 한 가문을 이끌고 있었고 수백에서 수천이 넘는 이들을 부릴 수 있는 수장이었다.
셀은 그들을 그냥 죽인 게 아니고 제압을 한 뒤 서서히 고통을 느끼게 만들었고, 압도적인 공포를 심어 준 채 죽였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죽일 만한 인간들이었어요. 적어도 저한테는.
엘리자베스가 고개를 젓는다.
“그런 걸 말한 게 아니야, 나는 그냥 네가 괜찮냐고 묻고 있는 거야.”
그러고는 주변 참상을 슥 둘러본다.
“네가 어떤 취급을 당했는지, 실험실이라는 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후작가에서 이야기 나눴잖아.”
-그랬죠.
“너의 복수고 네가 행한 일이야. 나는 그걸 존중해.”
엘리자베스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팔을 뻗었다.
잡으려는 것 같은 모양새였기에 셀은 슬쩍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엘리자베스를 경계했다거나 그런 게 아니다.
그저 몸에 피가 묻었고 이 몸에 누군가 손을 댄다면 그 피가 옮겨붙을 게 확실했기에 그냥 물러선 거다.
하지만.
꽈악-
엘리자베스의 손을 피하지는 못했다.
안 그래도 6서클 마나 유저였고, 최근 7서클 마나 유저로 급성장한 엘리자베스다.
그 정도는 가능했다.
“셀.”
이름을 부른 뒤 엘리자베스는 셀을 아주, 강하게 끌어안았다.
언젠가 잭을 안아 주었을 때처럼.
십수 년 전 이를 악물고 이빨이 부서져라 눈물을 참던 잭을 안아 주었던 그때처럼.
그저 안아 주었을 뿐이다.
“고생했어.”
그 둘을 바라보던 아베이루와 론은 놀랍게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엘리자베스가 어떤 인물인지는 안다.
알아서 저런 반응을 보이고 셀도 조금 당황한 것 같긴 하지만 곧바로 적응하고 엘리자베스에게 안기는 것.
모두 예상했던 일이다.
지금 문제는.
정말 가장 큰 문제이자 가장 신경 써야 할 일은 셀과 엘리자베스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실질적으로 테슬란 왕국이 거의 멸망한 상황이다.
아직 아카데미 안에서만 벌어진 일이기에 소문이 통제되고 있겠지만 이거.
빠르게 조치하지 않으면 왕국 연합이고 나발이고 그냥 내전, 그 이상이 벌어지는 거다.
이 일을 수습할 수 있는 사람?
론에게는 자식 같은 존재이자, 아베이루에게는 주군인 잭 발란티에.
이 모든 일을 꾸민 잭.
그밖에 없다.
그래서 둘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잭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 * *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지네.
“마법 병단 걔네들은 뭐 한답니까? 수장인 영감님이 여기 감옥에서 3일이나 갇혀 있었는데 코빼기 하나 보이지 않네요.”
“…….”
“설마, 그냥 오지 말라고 하신 겁니까?”
“그래.”
슬쩍 웃었다.
“확실히 자식이 얽힌 일이라 그런가. 두 아들이 영감님을 살려 둘 거라고 생각하셨나 본데, 조금 안일하셨네요. 영감님이 죽으면 걔네들 공중분해 될 텐데요.”
“…….”
“사실 관심이 없어서 한 번도 물어보지도, 알아보지도 않았던 건데 그냥 갑자기 관심이 생깁니다. 그 마법 병단 정확히 전력이 어떻게 됩니까?”
영감님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일단 5서클 미만의 마나 유저는 없네. 최소 5서클 마나 유저부터 마법 병단에 소속되고 5서클 마나 유저는 현재 50명, 6서클 마나 유저 110명, 7서클 마나 유저 45명, 8서클 마나 유저 50명, 9서클 마나 유저 5명. 그렇게 총 260명이네. 육체파가 아닌 오직 마법사로만 이루어진 마법 병단, 이것이 ‘발렌시아’의 총전력이네.”
듣자마자 조금 놀랐다고 해야 하나.
이거 직접 들어 보니까 괜찮은 수준이 아니다.
아주 뛰어난 수준이다.
마스터는 없지만 7서클과 8서클의 마나 유저 숫자가 상당히 많다는 건, 허리 부분이 튼실하다는 거거든.
자고로 허리가 튼실하고 그 아래를 받쳐 주는 허벅지가 튼실하면 밤일을 잘하는 게 당연한데, 영감님이 창설한 비밀 마법 부대인 발렌시아는 그게 다 포함되어 있었다.
“발렌시아라…… 거, 제가 아는 누가 그러기를 용감한 정신을 뜻하는 단어라는데, 신기하네.”
심지어 전부가 마법사랜다.
이러니까 수도를 전부 터트리거나 하는 전략을 쓸 수 있었던 거구나.
엄밀히 말하면 영감님이 말한 그 전력은 테슬란 왕국보다 조금 강하다 평가되는 가나안 왕국의 병력과 흡사하다.
당연히 마스터들의 숫자는 뺀 거다.
그거 넣으면 계산이 조금 복잡해지거든.
그런데.
“그런 전력을 지금껏 쭉 숨기고만 계셨던 겁니까?”
곧바로 대답하신다.
“쓸 일이 없었지.”
“그래요?”
“그래.”
그렇게 말하시니, 뭐라 할 말이 없네.
자, 그러면 이제 슬슬 머리로는 정리되셨을 테니까 다시 물어보자.
“제가 아까 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요?”
“……이거 하나만 약속해 주게.”
“뭔데요?”
영감님이 진지한 눈으로 나를 응시한다.
“자네가 하려는 일, 그게 뭐가 되었든 간에 돕겠네. 하지만.”
말없이 영감님을 바라보았다.
꽤, 심란해 보였거든.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말 끝맺음에 나온 하지만이라는 단어.
이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무엇일까.
정말 궁금했다.
영감님이 내게 다가온다.
“자네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했네. 자네는 ‘모든 백성의 안전’을 추구한다고, 자네가 벌이는 대부분의 일은 결국 궁극적으로 모든 백성들의 안전과 귀결된다고. 내 생각이 맞는가?”
신념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이건 확실하다.
“모든 백성의 안전이라…… 조금 다릅니다.”
“다르다?”
“예. 저는 모든 백성의 안전이 아니라, 죄 없고 잘못 없는 이들의 안전을 추구하니까요. 어릴 때 워낙 맞으면서 자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런 걸 보면 좀 혐오감이 들더라고요.”
내 진심 어린 말을 영감님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똑같이 진지하게 받아들였을까.
표정 보니까 받아들인 것 같다.
“자네가 벌이는 그 모든 일의 결과가, 궁극적으로 자네가 말한 ‘죄 없고 잘못 없는 이들의 안전’이 되지 않는다면.”
“않는다면?”
“나는 자네와 다른 길을 갈 것이네.”
평소라면 웃었을 텐데 그냥 웃지 않았다.
“양아치, 위선자, 쓰레기, 개새끼여도 결과가 좋다면, 정말 말도 안 되는 결과를 보여 줄 수만 있다면 그의 과거는 재평가가 될 수 있어.”
우리 영감님 갑자기 힘이 넘쳐 나시는 것 같다.
이래서 사람이라는 동물이 참 신기한 거다.
기력이 꽤 상했을 텐데도 이렇게 신념이라는 게 걸리니까 기운이 넘쳐 나는 거 봐.
진짜 신기하다니까.
“나는 양아치와 손을 잡고 싶진 않아. 자네 입으로 말해 보게. 자네는 양아치이자 위선자로 끝까지 남을 건가?”
피식, 웃고 말았다.
아, 안 웃으려고 했는데 웃어 버렸네.
영감님한테 계속 들었던 정 같은 게 왜 생겼나 했는데 이제 보니 나랑 닮은 구석이 꽤 있어서 생겼나 보다.
“영감님, 하나만 확실히 합시다.”
“무엇을?”
“손잡자고 누가 그럽니까?”
여전히 팔짱을 낀 채로, 몸은 벽에 기댄 채로 내 두 눈은 영감님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앞서서 함께하자고 했지만 그거랑 손잡는 건 다르다.
조금 착각하시는 거 같은데.
“우리가 공평한 관계입니까?”
“…….”
“손을 잡는다는 건 공평한 관계, 주고받을 게 확실한 경우에만 성립되는 관계입니다. 저는 영감님에게 수없이 많은 기회를 주었고 영감님은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영감님이 제게 뭘 줬습니까?”
“…….”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감님이 저랑 함께하는 거? 저는 귀찮은 일을 덜게 돼서 좋은 것뿐이지 그 외에 별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손을 잡자? 영감님. 감옥에 며칠 계시더니 사고가 조금 흐려지신 거 같은데 며칠 뒤에 다시 이야기 나눌까요? 그때는 지금처럼 좋은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지는 않을 텐데요. 그렇게 할까요?”
우리 영감님의 표정이 굳어진다.
“그럼 나와 뭘 하자는 건가?”
표정 보니까 모르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그냥 말해 줘야 하나 보다.
“저와 함께 가자고 한 건 제 밑으로 들어오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주군으로 영감님은 제 수하로.”
“…….”
“왜요? 마자르한테는 잘 숙여지던 머리가 저한테는 안 숙여지십니까?”
슬쩍 웃었다.
평소처럼 웃었을 뿐이지만 아마 받아들이는 영감님은 조금 다르게 느끼셨나 보다.
“숙여야 할 이에게는 숙이지 않고, 숙이지 말아야 할 이에게 숙인 내 지난 세월을 반성하라는 뜻인 것이냐?”
이거 봐.
난 그냥 웃었을 뿐인데, 막 의미 부여하고 그러잖아.
그렇다고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하기엔 그래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영감님이 천천히, 숨을 토해 낸다.
지난날의 삶.
마자르 테슬란과의 엮여 있던 고리를 진작에 끊지 못했던 후회.
하지만 새롭게 열린 길.
영감님이 굳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는 말이 있지. 자네 말대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아. 나도 내가 변할 것 같지는 않네. 그저 한 번 실수했고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뿐이지.”
작은 미소가 지어지기 무섭게.
“말투는 지금 이 말투 그대로 사용하겠네. 괜찮겠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털썩- 하고 영감님이 무릎을 꿇는다.
“후우, 오랜만에 하려니 적응이 안 되는군.”
나름 정자세를 잡은 영감님이 진지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그러고는 천천히 말했다.
“나 롬멜 에인하르트 어센블은 전 공작으로서, 공작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최고 책임자로서 잭 발란티에에게 청하겠네. 어센블 공작가 전체를 ‘자네’의 가신家臣으로 받아 줄 수 있겠는가.”
영감님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전생에서 내 학창 시절은 약 3년간 이어졌다.
그 3년, 롬멜 총장이 없었더라면 아마 더 힘들었을 거다.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때의 나는 타노스랑 마찬가지로 엑스트라 학생 1이나 학생 2에 불과했으니까.
솔직히 말할까.
나는 가능하면 영감님이 천수를 누렸으면 한다.
아무 후회 없이 나는 잘 살았구나, 이 정도면 괜찮은 인생이었구나, 하며 넋두리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선물해 주고 싶다.
과거에 도움을 받았으니까.
전에도 말했듯 이게 정이라고 해야 하나.
나를 가지고 꿍꿍이를 꾸미고 있었다고 해도 가능하면 그냥 넘어갔다.
앞서 말했듯 받은 게 있으니까.
지금도 마찬가지다.
영감님이 내 사람이 되면 나는 영감님을 지켜 줄 거거든.
그러니까 영감님, 우리 오래갑시다.
손을 뻗어 영감님을 일으켜 세워 주었다.
“말을 조금 공격적으로 해서 죄송합니다. 기분 상하신 건 아니죠?”
“허 참, 어느 게 자네의 본모습인지 이제는 도저히 감도 잡히질 않는군.”
묻는 말에 이상하게 딴소리를 하시는 걸 보니까, 역시 정치를 하신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거 정치하는 사람들 주특기 아니야?
손을 내밀었다.
“잘해 봅시다. 앞으로 쭉.”
영감님은 망설이지 않았다.
손을 뻗어 내 손을 붙잡는데.
그 손에서 힘이 느껴질 정도다.
그런 영감님이 내게 묻는다.
“미래에서 왔다면 내 최후가 어땠는지 알 것 같은데, 한번 말해 주겠나?”
고개를 갸웃했다.
이 영감님이 눈치가 빠른 거야 없는 거야?
전에 블루투스 잡아 준 건 머릿속에서 잊으신 건가.
“영감님, 모르십니까?”
“무엇을?”
거참.
아무래도 감옥에서 며칠 지내시더니 충격을 조금 받으셨나 보다.
그래서 그냥 말해 주었다.
“영감님, 미래에 뒤통수 맞아서 죽습니다.”
“…….”
“조금 자세히 말씀드리면 블루투스한테 뒤통수 따이고 하늘나라 가십니다.”
“아…… 그런가?”
픽 웃고 말았다.
그대로 손을 풀고는.
짝-
박수를 쳤다.
“자, 그러면.”
“그러면?”
싱긋 웃었다.
“일하러 갑시다. 새로 소개시켜 줄 사람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