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244)
제 245화
* * *
템-사미트면…….
“국왕이셨구만.”
“그래, 내가 국왕이지.”
이스마엘 국왕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재미있는 건 그 뒤쪽에 있는 네 명의 전사들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는 것 말고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거.
그런데 사실, 저게 당연하긴 하다.
적색 마나의 소유자.
베커만이랑 흡사한 힘을 가지고 있는데, 밑에 있는 애들을 휘어잡지 못했다?
그건 문제 있는 거다.
다행스럽게도 눈앞에 저 남자는 밑의 애들을 확실히 휘어잡은 것 같았다.
그가 말했다.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대단해. 그래도 확인차 물어보겠네. 잭 발란티에, 맞는가?”
이스마엘 국왕의 말에는 장난기가 서려 있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속으로는 확신하고 있는 듯한 느낌.
슬쩍 웃으며 말했다.
“이웃 나라까지 유명해질 줄은 몰랐는데. 왜? 손이라도 잡아 줄까?”
밑도 끝도 없는 내 자신감에 템-사미트는 탄복한 듯했다.
왜냐면.
“프하하하하하-!!”
이렇게 폭소를 터트리기 시작했거든.
그리고 자연스럽게.
“어…… 어어??”
“어어어???”
저렇게 폭소를 터트리는데 계속 기척을 숨긴다? 말도 안 되지.
주변에 있던 이들이 이스마엘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마치 짜 맞춘 듯, 이스마엘의 뒤에 있던 한 남자가 큰 목소리로 외친다.
“폐하를 영접하라!!”
광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그 목소리에 모두가, 무릎을 꿇었다.
“폐하를 뵙습니다!!”
그건 이 대륙에 존재하는 단 세 명의 적색 마나의 소유자 중 한 명이자, 일국의 왕에게 보내는 최상의 예의였다.
사방에 있던 수천 명이 넘는 이들이 무릎을 꿇은 그 모습은 생각 외로 장관이었다.
이 드넓은 광장.
이곳에 허리를 펴고 서 있는 것은 템-사미트 이스마엘, 그리고 나.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세 명의 꼬맹이 말고는 없었다.
그렇다고 우리 꼬맹이들이 아무런 예의도 취하지 않았느냐.
그건 또 아니다.
세 꼬맹이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이스마엘 국왕에게 고개를 숙였으니까.
그냥 묵례.
존중한다는 의미의 그런 묵례가 전부였다.
왜냐면.
내가 전에 그랬거든.
나 말고 그 누구에게도 무릎 꿇지 말라고.
이건 예의가 없는 게 아니다.
나라는 존재가 뒤를 봐주고, 나를 믿고 내가 믿는 애들이면, 나를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
그건 상대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나에 대한 무시니까.
물론, 정작 이스마엘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뒤에 있던 네 명의 마스터는 눈깔을 부라리고 있었지만 그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면, 이스마엘이 천천히 내게 다가왔거든.
그러고는 내 귓가에 이렇게 속삭인다.
“그대가 맞았군.”
“뭐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아주 가까운 거리.
고작 5cm 거리에서, 큼지막한 템-사미트의 얼굴이 히죽 웃고 있다.
“새끼 드래곤은 어찌했는가?”
이것 봐라.
“소문에 의하면 죽였다고는 하는데…… 자체적으로 파견한 조사단에 의하면 드래곤으로 추정되는 사체는 없었어. 죽였을 리는 없고.”
민머리에 구릿빛 피부의 근육 괴물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은 내 뒤쪽에 있던 은발 머리의 꼬맹이, 셀을 향해 있었다.
“몸 전체에서 마나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꽤 이질적이야. 서클은 4서클 정도인데 몸에 두르고 있는 서클의 양은 대충 7서클…… 폴리모프인 것 같은데, 설마, 저 아이가?”
굳이 답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거면 대답으로도 충분했다.
침묵은 긍정이라는 뜻이니까.
“맙소사, 그대는 대체 누구지? 드래곤인가? 인간이 맞긴 한 건가?”
작은 목소리였고, 저 말을 들은 이는 나와 내 어깨에 앉은 스승님 말고는 없을 거다.
“용건은?”
“용건이라…….”
템-사미트가 잠시 말을 멈추더니, 한 번 더 내 귓가에 속삭인다.
“저녁에 시간 되는가?”
저녁?
“왕궁으로, 정식으로 초대하지.”
템-사미트가 손을 들어 내 어깨를 툭- 쳤다.
“그대와, 나, 단둘만.”
침묵으로 가득한 광장에서, 나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
살다 살다, 이제는 남자한테 데이트 신청까지 받아 보는구나.
돌겠네 진짜.
* * *
일종의 해프닝이었다.
템-사미트는 아카데미 학생들을 격려하고, 잘해 보라는 나름의 덕담을 건네준 채 왕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날 저녁.
이스마엘 왕국의 상징인 붉은색의 사자가 새겨진 한 장의 서신이 아카데미 기숙사로 전달되었다.
펼쳐 보자마자, 피식 웃고 말았다.
(잭 발란티에, 저녁이나 같이하지.)
농담이 아니고 이 한 문장이 끝이었다.
대충 보니까, 이 필체가 템-사미트 국왕의 필체인 것 같은데.
이건 호탕하다기보다는 그냥, 단순명료한 걸 좋아하는 것 같다.
[갈 것이냐?]“조금 신기해서요.”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실 말은 안 했지만 조금 놀라긴 했다.
“전생에서 저는 거의 외톨이였거든요.”
[…….]“친구를 사귈 생각도 없었고, 제 사람을 만들 생각도 없었고, 관계를 맺을 생각도 없었습니다. 복수에 눈이 멀었다기보다는 그냥 자제한 거죠. 저랑 관계되면 끝이 좋을 리가 없었으니까. 그랬던 저한테 다가왔던 남자가 한 명 있습니다. 저랑 유일하게 뜻이 통했고 말이 통했고, 친구로 삼아도 괜찮다고 생각한 남자.”
[그게 이스마엘이다?]고개를 저었다.
“저는 이스마엘을 이번 생에서 처음 봅니다. 전생에서 쟤는 이미 죽었었거든요. 베커만한테 죽었었나, 아니면 그 옆에 있던 메렝게스한테 죽었었나. 이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누구를 말하는 것이냐?]몇 번 언급했고, 몇 번 보여 주었듯.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오크족의 족장, 톤 그륜힐, 오크들 중에 유일하게 검은 피부를 지니고 있어서 그륜힐이라는 이름보다는 블랙맨으로 불리는 그가 저랑 많이 통했습니다.”
[…….]손에 쥐고 있던 편지를 슬쩍 흔들었다.
“확실하지는 않은데 그륜힐의 느낌을 주는 남자가 있었네요. 한번 만나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스승님이 희미하게 웃는다.
[인성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구나.]뭘 새삼스럽게.
“저, 착한 놈입니다. 아마도.”
스승님이 실소를 터트리더니, 내 머리를 툭 친다.
스승님도 조금은 관심이 가셨나 보다.
이성적인 관심이 아니라 내가 묘한 호감을 느낀 그런 남자에 대한 궁금증.
확실히 만나 볼 이유는 충분했다.
그런데, 살다 살다 내가 남자랑 데이트도 해 보네.
역시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야.
chapter 9
템-사미트 이스마엘은 생각보다 더 단순한 남자였다.
“어떠신가. 음식은 입에 맞으신가?”
생각보다 더 큰 진수성찬이었다.
다만 채소는 없고 전부 고기였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괜찮네. 생각보다 더.”
이스마엘은 내게 말했던 대로 정말, 혼자서 나를 맞이했다.
음식을 가져다준 요리사 몇 명과 시녀들도 음식만 나른 뒤 곧바로 자리를 비웠다.
슬쩍 주변을 훑어보니 정말로 주변에 아무도 없다.
독대.
눈앞에서 고기를 게걸스럽게 뜯어먹고 있는 이스마엘에게서 묘한 자신감이 엿보인다.
술잔을 들이켜고, 고기를 뜯던 그가, 깜빡했다는 듯 내게 물었다.
“그런데, 이제는 말해 줄 때도 되지 않았나 싶은데, 대체 그대는 드래곤인가 아니면 인간인가?”
“인간이지, 보면 알잖아?”
이스마엘이 눈을 게슴츠레 뜨며 나를 바라본다.
“나이가 14살이라지? 이제 곧 15살이 되는?”
“신체적인 나이라면 맞지.”
“그런데 5서클의 마나 유저이기도 하고?”
“그것도 맞고.”
“거기다 베커만과 그의 제자인 메렝게스를 침상에 눕힌?”
나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았다.
“정확히는 팔만 자른 건데.”
“팔이라……. 그대가 직접?”
“예스.”
“허허허.”
사미트가 웃음을 터트린다.
그런데.
“나도 몰랐거든. 이 시점의 베커만이 그 정도로 약해 빠진 놈일지는.”
“약하다?”
“어, 고작 팔 하나 날아갔다고 며칠을 드러눕는다는 게 난 지금도 이해가 안 가. 내 기억 속의 베커만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강했거든. 대륙 최강의 검사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릴 정도로.”
“대륙 최강의 검사라…… 흐흐.”
작게 고개를 끄덕인 이스마엘은,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식사에 열중했고, 배를 채웠으며 나는 우유를, 국왕은 술을 마셨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식사가 끝났다.
정말 식사만 하려고 부른 걸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사미트가 말했다.
“밥을 먹었으니 식후 운동 어떤가?”
“식후 운동?”
사미트가 처음 보았던 그때처럼 히죽 웃는다.
“그래, 식후 운동.”
* * *
왕이 거주하는 곳을 보통 왕성이라고 한다.
그런 왕성은 보통 어떤 곳일까.
신하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 대전이 있고, 왕이 잠을 자는 침실이 있고, 자식이 머무는 곳이 따로 있으며 호화롭게 꾸며진 수많은 장식들이 곳곳에 비치된.
왕성을 떠올리는 사람들은 그런 것을 떠올린다.
하지만.
템-사미트 이스마엘이 거주하는 왕성은 일반적인 왕성과 매우 달랐다.
벽면에 그림 따위는 없었으며 오직 무기.
검, 창, 활, 도끼, 할버드.
지금은 거의 쓰지도 않는 그런 무기들이 사방에 즐비했다.
어찌 보면 후줄근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글쎄.
나는 오히려 이런 심플한 게 마음에 든다.
왕이 어떤 녀석인지 확실히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물론 이스마엘의 왕성은 또 다른 특이점도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수련장이었다.
굉장히 넓은 수련장.
농담이 아니고, 수련장의 크기가 대충 1만 제곱미터가 넘었다.
거의 3천 평에 달한다는 건데.
나는 지금 그곳에 서 있었다.
템-사미트와 함께.
“나는 말이네, 어렸을 때 신기한 능력을 하나 깨우쳤어.”
“능력?”
그가 작게 웃는다.
“사람의 말투나 느낌, 첫인상만 보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쓰레기인지 스스로에게 당당한 인물인지 그런 걸 ‘확실하게’ 캐치해 낼 수 있는 능력이었지. 재능이라고 해도 좋고.”
오호.
“좋은 재능이네.”
“좋다 뿐일까. 나는 그 재능으로 이 자리까지 올라왔어. 좋다는 말은 조금 부적절해. 아주, 살이 떨릴 정도의 재능이지.”
흐흐흐 웃어대던 그가 천천히 들고 있던 검을 늘어트린다.
아마 저게 검술 부문 상금으로 내걸었던 거검 엑스텔리아일 거다.
이름의 어원은 모른다.
관심도 없어서.
하지만 앞에 거검巨劍이라는 말이 붙은 게 이상하다 싶었는데 직접 보니까 확실히 붙을 만도 했다.
일단 손잡이 부분은 일반 롱소드의 서너 배 정도로 두꺼웠으며 그 위로, 거의 통나무가 박혀 있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길이는 약 2m.
내가 쓰던 장검인 실라리온과 흡사한 길이에 둘레는 그보다 열 배 정도는 더 두꺼운.
무게는 대충 200kg에서 300kg. 그쯤 되는 것 같다.
무게 균형도 제대로 잡혀 있고, 그 무게를 버틸 만큼 손잡이도 제대로 마감 처리가 된 것 같은데.
확실히 명검이라고 칭할 만했다.
저 정도의 검, 흔치 않거든.
만드는 것도 쉽지 않고.
저거 재질이 오리하르콘인가? 반짝반짝 광이 나는걸 보니 오리하르콘이 맞는 것 같다.
현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광석 중 가장 우수한 광석.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템-사미트가 말했다.
“그런데, 오늘은 참 묘하더군.”
어디까지 대화했더라.
아, 사미트가 자기는 다른 이들이 거짓을 말하는지 아닌지 본능적으로 눈치챌 수 있다고…… 거기까지 했었지.
일단 말없이 사미트를 바라보았다.
“분명 그대는 내게 말할 때 단 하나의 거짓도 보태지 않았어. 베커만의 팔을 자른 것도, 실험실을 폭파시킨 것도, 왕국 연합이 만들어진 배경을 만든 것도 전부 그대가 했다는 이야긴데…… 그러니 신기할 수밖에.”
어깨를 으쓱했다.
“충분히 이해는 해.”
피식-
“이해라…… 나는 그대가 어떤 조직에 속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야. 그대는 배후가 없어. 오직 홀로 존재하지.”
그냥저냥 듣고 있었는데, 듣다 보니 꽤 묘한 부분이 있다.
“홀로 존재한다고?”
“그래. 그리고 꽤나 외로워 보이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