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26)
제 27화
* * *
샬롯은 상점 안으로 들어서기 전, 잠시 고개를 돌렸다.
170cm 정도의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자랑하는 또래의 남자아이가 어깨에 앉아 있는 인형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말하고 보니 조금 웃기기까지 하다.
‘어떻게 인형이랑 대화를 해?’
손에 들린 1실링을 만지작거리며 샬롯은 작게 웃었다.
‘동료…… 나보고 동료가 되어 달래.’
솔직히 말하면 놀랐다.
놀랬을 뿐만이 아니라 기분도 좋았다.
이 거대한 영지에서 자신에게 먼저 저렇게 말을 걸어 준 사람은 농담이 아니라 저 ‘아이’가 처음이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난 인간이 아니야.’
그 사실을 저 아이가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다른 또래의 아이들처럼 자신을 배척하고, 꺼지라고,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
그렇게 샬롯은 잠시 그 남자를 바라보다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어머니의 생일.
매우 중요한 날이다.
“저기…… 아저씨.”
테이블에 앉아 있던 거대한 덩치의 남자가 고개만 까딱이며 샬롯을 바라보았다.
얼굴에 가득한 수염과 험상궂은 얼굴.
그 모습에 압도된 것도 잠시, 샬롯은 손안에 쥐고 있던 1실링을 손에 꼭 쥐며 두려움을 달랬다.
어머니의 생일 선물을 사야 한다.
그러려고 아침부터 뒷산에 가서 장미를 따 오지 않았는가.
샬롯은 착한 아이였다.
“저 혹시, 트롤…… 아니다. 오크의 피…… 있나요?”
“뭔 피?”
샬롯은 다시 한번 말했고 점장은 피식 웃었다.
“그건 가져다가 어디다 쓰게? 혹시 아카데미에서 심부름이라도 온 거냐?”
샬롯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피가 필요한 이유.
길게 말하고 싶지도 않았고, 길게 말해서도 안 된다.
뱀파이어라는 종족은 인간들에게 있어서 그저 몬스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그런 샬롯을 점장이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본다.
비루한 행색.
적어도 아카데미에 다니는 학생이라면, 저런 행색은 말이 되지 않는다.
점장은 눈앞의 꼬마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얼마가 필요한데?”
“……1실링에 맞춰서요.”
샬롯을 잠시 바라보던 점장은 생각했다.
오크의 피.
어디다가 쓰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알 필요가 있을까?
어디 보자.
보통 오크의 피는 0.4리터당 1실링에 거래된다.
무슨 오크의 피가 거래 금지 품목도 아니고, 팔지 못할 것도 없다.
1실링에 맞춰서 달라고 했으니. 가져다줘야지.
점장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뒤 창고로 걸음을 옮긴다.
잠시의 시간이 흐르고, 샬롯의 앞에 서 있던 점장은 손에 들려 있는 물병을 샬롯에게 건넸다.
0.4리터가 아닌, 무려 1리터.
1실링이 아닌 2실링은 되어야 하는 가격이지만.
“1실링.”
점장의 말에 울먹거리던 샬롯의 표정이 환해진다.
다행스럽게도, 점장은 얼굴만 산적처럼 생겼지 마음은 따뜻했나 보다.
그렇게 상점을 나선 샬롯의 입가에는 환한 웃음이 가득했다.
곧 오크의 피를 마실 어머니를 생각하자, 그 웃음은 더욱 더 환해져만 간다.
그렇게 상점가를 벗어났고 언덕을 올랐다.
‘삼촌도 오늘 오시려나.’
샬롯은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매우 병약했고 거동조차 힘들었기에 무언가를 먹는 것도 힘들다.
그런 어머니와 자신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찾아왔던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자신을 ‘삼촌’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후원자라고 해야 할까.
자기 말로는 무슨 졸부라고 하던데. 자세하게는 모른다.
확실한 건 돈이 많다는 거.
어머니랑 자기에게 집을 주고, 모습은 거의 드러내지 않는 그런 삼촌.
샬롯은 그런 사람을 가리키는 말을 안다.
키다리 아저씨.
그 삼촌은 어머니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었으며 거의 삼 일에 한 번씩 소의 피와 돼지 피를 가져다주었다.
그게 전부였지만 샬롯은 그것만으로도 매우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용돈 한 푼 주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그건 배부른 투정일 뿐이었으니까.
이미 삼촌에게 많은 걸 받지 않았는가.
물론 뱀파이어임에도 빵이나 고기 같은 음식을 먹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음식들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뱀파이어는 오직 피를 마셔야만 힘을 낼 수 있는 그런 종족이었으니까.
거동이 불편하신 어머니는 항상 말씀하셨다.
절대로 인간의 피는 먹지 말라고.
아니, 정확히는 삼촌이 주는 피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피도 마시지 말라고 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절대로 먹지 말라고 계속 강조하는 어머니의 말을 샬롯은 귀담아들었다.
그렇기에 샬롯은 현재 11살이 될 때까지 소의 피와 돼지 피를 제외한 그 어떤 피도 마시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안 먹었다.
먹으면 어머니가 슬퍼할 것 같았으니까.
샬롯은 어린 나이에 나름의 철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다 다시 한번 떠올랐다.
‘동료가 되라니…….’
솔직히 너무 고마웠다.
자기 같은 외톨이에게 그런 말을 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참 신기한 기분이었다.
아마 또래의 아이들처럼 전쟁놀이나 숨바꼭질 같은 것을 같이하자는 그런 의도였겠지.
잠깐이라도 같이 놀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건강이 매우 심각하게 안 좋아진 상황에서 혼자 즐거워할 수는 없었다.
샬롯은 작은 한숨을 터트리고는 고개를 들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입가에 웃음을 띠며 작은 벽돌집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계실 방문을 열고, 손에 들린 오크의 피를 자랑하려던 그때.
“……손님이 왔구나. 샬롯.”
“네?”
침상에 누워 있던 어머니의 말에, 샬롯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어서 뒤쪽으로 고개를 돌린 샬롯은 볼 수 있었다.
아까 자신에게 동료가 되라던 그 꼬마가, 팔짱을 낀 채로 자신의 바로 뒤쪽에 서 있었던 것을.
몰랐다.
정말, 몰랐다.
털썩-
그 자리에서 뒤로 주저앉은 샬롯은 너무 놀라 심장이 벌렁거리는 것도 의식하지 못했다.
이어서 어머니가 침상에서 힘겹게 상체만을 일으켰다.
한때 찰랑이며 빛을 머금었던 금발은 푸석했고, 피부는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금 가 있는 그 모습에 샬롯은 절로 마음이 아파 왔다.
그때였다.
[비비엔느 드 로얄. 뱀파이어 종족의 고결한 진조真祖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이냐?]인형이, 말을 했다.
* * *
“아는 분이십니까?”
내 질문에 스승님은 답하지 않았다.
그때 침대에 앉아 있던 여성이 스승님을 바라보며 묻는다.
“……당신, 누구시죠? 혹시 헌터신가요?”
스승님이 고개를 젓는다.
[어렸을 때 보아 기억이 나지 않나 보구나. 나는 발렌타인 밀로스. 너희 뱀파이어 종족을 마수의 숲으로 몰아넣은…… 그래, 나는 너희의 철천지원수다.]스승님의 말에 꼬맹이는 눈을 크게 뜨고, 비비엔느라 불린 뱀파이어도 눈을 크게 뜬다.
하지만 뱀파이어 꼬맹이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에 보인 행동이었지만 비비엔느는 달랐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뜬 그 모습은 마치 비현실적인 존재를 보았을 때 사람이 보였을 법한 그런 모습이었다.
“당신이 발렌타인? 아직도…… 살아 계셨던 건가요?”
쩌적 하는 소리에 이어 후두둑 하는 소리가 울린다.
비비엔느의 실금이 간 얼굴 피부가 살짝 무너져 내린 것.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확신했다.
저 비비엔느라는 여자.
곧 죽는다고.
자연사라는 단어를 써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 그보다, 이게 뱀파이어라고?
피부는 가뭄으로 메마른 대지처럼 갈라져 있었고, 방금 전처럼 얼굴을 비롯해 온몸에는 당장이라도 부서져 내릴 조각상처럼 온갖 실금이 가 있었다.
조각상, 그 비유는 생각보다 매우 적절했다.
한 종족이, 아니 한 생명체가 이 정도로 망가질 수 있다고?
뿐이랴, 입술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으며 눈동자에는 힘이 없었다.
머리는 길었지만 풍성하지 못했으며 또한 푸석했고 새끼손가락으로 살짝 힘을 주어 누른다면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 아슬아슬했다.
너무, 매치가 되지 않는다.
분위기로만 보면 무언가 고귀한, 저물어 가는 석양이 눈에 보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드는데, 모습을 보면 당장이라도 죽을 듯한 노파처럼 보인다.
나는 고민했다.
이 자리를 피해 주어야 할지, 아니면 자리를 지킬지.
내 생각을 읽은 걸까.
스승님이 나를 바라본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스승님은 눈으로 내게 말하고 있었다.
일단 자리를 비켜 달라고.
슬쩍 그 옆을 바라보자 비비엔느라는 뱀파이어도 샬롯에게 같은 의미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꼬맹이를 데리고 방 밖으로 나갔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던 꼬맹이, 그러니까 샬롯을 내려다보며, 속으로 한 번 더 놀라고 말았다.
재능이, 정말로 범상치가 않다.
스승님은 분명 침상 위의 여자에게 진조라고 불렀다.
그럼 눈앞의 이 꼬마도 진조라는 뜻이다.
그 이상 생각을 이어 가고 싶었지만, 그냥 하지 않았다.
나는 문밖에 선 채로 방 안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혹시 모를 비상사태를 대비해야 했으니까.
솔직히, 스승님을 어떻게 포장을 하건 결국 다른 이종족들에게는 원수일 수밖에 없다.
거기다 지금의 스승님은 마법도 쓰지 못한다.
나는 감각을 방 안쪽으로 집중시킨 채로 기다렸다.
* * *
“인형이 되셨군요.”
비비엔느의 말은 조금 뜬금없었다.
질문도 아니고, 혼잣말도 아닌.
하지만 분명 저 말은 질문의 의도가 담겨 있었다.
무슨 욕을 하건 다 받아 줄 자신이 있었던 발렌타인은 조금 당황했지만, 곧바로 대답했다.
[저주다. 한 달에 한 번 보름달이 뜨는 날,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그렇군요. 그것도 혼의 힘이라는 걸 사용한 건가요?”
[그래.]그 말을 끝으로 비비엔느는 침묵했다.
할 말이 없어 보이는 게 아니라, 할 말을 아끼는 듯한 모습이다.
[내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왜 진조가 마수의 숲도 아닌 이곳에서 이러고 있는 것이냐? 모습을 보니 오랫동안 제대로 된 피를 마시지 못한 것 같은데, 대체 왜 그런 것이냐?]뱀파이어는 오래 사는 종족이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야 100년에 불과할 때, 일반 뱀파이어는 무려 150여 년을 살고, 진조는 무려 500년에서 길면 600년까지도 살아간다.
현재 비비엔느의 나이는 500살이 채 되지 않는다.
인간의 나이로 치면 노년에 접어든 시기라고 볼 수 있으나, 뱀파이어는 인간이 아니다.
그것도 일반 뱀파이어가 아닌 진조다.
진조는 천수를 누리고 죽는 그 순간까지도 몸을 젊은 상태로 유지할 수가 있다.
그런데, 눈앞의 모습은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모습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피.
제대로 된 피를 마시지 못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