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274)
제 275화
“어젯밤에.”
싸늘한 그 목소리에, 모든 귀족이 얼어붙었다.
새삼스럽지만 그들의 앞에 앉아 있는 거구의 남자는 적색 마나의 소유자.
대륙 최강의 전사라 불리는 템-사미트 이스마엘이다.
그가 가라앉은 눈으로 파나메로를 응시한다.
“왕비가 그러더군. 이스마엘 왕국을 이스마엘 제국으로 만드는 건 어떻겠냐고.”
“…….”
“그래서 내가 어찌했을까. 이보게, 재상. 한번 맞혀 보시게.”
“……잘 모르겠습니다, 폐하.”
이게 뭐 어려운 질문이냐는 듯 사미트가 말했다.
“처음으로 침실에서 왕비를 쫓아냈어. 내 알기로 그대의 집에서 잠을 잔 것으로 아는데, 그럼 이 이야기는 혹시 아시는가?”
“어떤, 이야기 말씀이신지요.”
“빈 옆자리가 허전해서 첩들을 불러들였는데, 앵무새 새끼도 아니고 셋 다 똑같은 소리를 하더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 사미트가 계단을 내려갔다.
한 계단, 두 계단.
양손으로 파나메로의 양어깨를 툭, 짚은 사미트가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그 셋, 어떻게 되었는지 아시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파나메로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죽였을까.
죽인 걸까.
그렇다면 어떻게 죽인 걸까.
파나메로의 생각을 짐작하는 것처럼 사미트는 한숨을 터트렸다.
꽤 오래 알고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파나메로는 자기가 모시고 있는 왕이 어떤 놈인지 자세히 알고 있지 않는 듯했다.
사람을 잘못 본 걸까.
그래도 이야기해 줘야겠지.
“그냥 똑같이 밖으로 내보냈어. 이 이야기의 요지는 말이야.”
주물럭- 주물럭.
마사지하듯 파나메로의 어깨를 주물러 주던 사미트는 이번에도 어느 순간 모든 동작을 멈췄다.
단순한 행동이지만 이건 생각보다 효과가 크다.
분위기를 단숨에 휘어잡을 수 있으니까.
“왜 우리 재상님이 갑자기 안 하던 행동을 할까. 하늘산맥까지 넘어가서 은퇴한 늙은이들한테 헛바람은 왜 넣고 있는 걸까. 왜.”
꽈아악-!!
우두둑-!
“끄읍-!”
두꺼운 손아귀는 마치 수수깡을 부수는 것처럼 파나메로의 어깨를 순식간에 부쉈다.
그래도 나름 재상이라고, 최대한 고통을 참는 그 모습에 모든 귀족들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뭐라고 할 수 없는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니까.
“자기가 모시고 있는 왕을 도구 다루듯이 이용해 먹으려는 걸까. 표정이 왜 그러나, 많이 아프신가?”
모르고 물어본 건 아니었다.
알고도 물어본 거다.
왜냐면 그 정도로 사미트는 화가 났으니까.
“잭 발란티에를 처형하자? 하,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오는군. 아니, 대체 그를 어떻게 잡아올 생각이지?”
“…….”
“최근에 그의 몸이 변한 것은 보았나? 무려 8서클이야. 신체 나이가 고작 14살에서 15살로 가는 그사이에 8서클을 만들었다고. 여기서 더 재미있는 게 무엇인지 아시는가?”
작게 모르겠지, 알 턱이 없지, 그렇게 중얼거린 사미트가 말을 이었다.
“잭 발란티에, 그가 고작 5서클일 때 그는 베커만을 너무나도 손쉽게 제압했다네. 얼마 전에는 나도 그에게 제압당했지. 전력을 다했고 피를 뿌리는 등의 수작질까지 했는데 제압당했다고.”
한숨을 터트린 사미트는 천천히 손에 힘을 풀었다.
그러자 털썩하고 파나메로가 쓰러진다.
지금 파나메로는 몰랐겠지만 그가 귀족들을 모아 놓고 펼치려던 계획은 국가를 멸망의 길로 이끄는 자멸의 한 수였다.
사미트는 지금 참고 있는 거다.
머리가 복잡한 지금 상황에서 진짜 분노를 터트린다면, 스스로가 제어가 되지 않을 것 같았기에.
사미트는 숨을 헉헉 몰아쉬는 파나메로의 머리에 포션 한 병을 뿌려 주었다.
이 말과 함께.
“파나메로 공작, 그대는 정치를 잘해. 정말 잘하지. 하지만 유일한 단점이 하나 있어. 바로 터무니없는 욕심을 가질 때 그대는 판단력이 급격하게 저하되곤 하지. 이 사실을 알고는 계셨는가?”
파나메로는 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미트는 그 모습으로 대충 직감할 수 있었다.
모르고, 있었구나.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제라도 알았다는 거.
“이스마엘의 왕으로서 이 자리에 있는 귀족들에게 명령하겠네.”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대답을 하라고 사미트가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그의 기세가 대전 전체를 찍어 누르고 있는데, 그 누가 입을 열 수 있을까.
이건 사미트의 의지였다.
그냥, 입 닥치고 들으라는 그런 의지.
“그대들 중 툴칸의 황태자가 만든 위원회라는 조직에 속해 있던 이들이 있을 것이야.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말게.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그냥 넘어갔어. 누가 누구인지 확실한 명단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냥 넘어갔지. 왜인 것 같나?”
“…….”
“간단하다네,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지. 실제로 그대들은 툴칸의 명령에 따라 국가에 내란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그러지를 않았어. 그저 툴칸에 ‘사비’를 지원했을 뿐이지.”
다른 왕국의 위원회가 각 국가에서 내전을 일으키고 분란을 조장한 것과는 다르게 이스마엘 위원회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일종의 중립이라고 할 수도 있었는데, 그들이 한 일은 단순히 불로불사에 돈을 지원하는, 딱 그 정도의 일만 협조한 이들이었고 그래서 사미트는 그들은 그대로 두었다.
선을, 넘지는 않았으니까.
사미트는 다시 몸을 돌려 왕좌에 걸터앉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최근에 한 남자를 보고 깨달았어. 방관을 하는 건 지나치게 무책임한 거고 인과의 흐름 따위는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거라고.”
사미트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이스마엘 왕국은 노예제를 폐할 것이야. 그러니 전국 각지에 존재하는 모든 노예 시장을 전부 폐쇄하시게. 이게 그대들이 해야 할 첫 번째 행동이고.”
“폐하, 그건-!”
“거기다.”
사미트의 눈은 여전히 가라앉아 있었다.
사실 사미트는 바보가 아니고 이 자리에 있는 이들도 바보는 아니다.
파나메로 재상은 국가의 2인자, 그리고 귀족들의 수장이다.
그가 모은 이들은 과연 어떤 이들일까.
애초에 위원회 소속이었던 파나메로를 따르는 이들이라면.
매우 합리적으로 생각해 볼 때 그들 모두가 위원회 소속이라는 가능성이 생긴다.
심지어 사미트의 정보력도 꽤나 뛰어난 수준이다.
“쥐새끼는 파나메로 재상, 그대를 비롯해 약 열네 명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그 열네 명이 지금 이 자리에 자리해 있군.”
사미트의 진지한 그 표정과 분위기.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전부 깨달았으니까.
재상이니 뭐니 정치적인 권력이니 뭐니 다 부질없다.
이스마엘 왕국은 적색 마스터인 템-사미트에 의해 버티는 국가다.
그의 의지는 곧 국가의 의지.
사미트는 결론 내렸다.
“그대들이 해야 할 두 번째 행동을 알려 주겠네.”
“……폐하?”
“자결하시게.”
모든 귀족들이 입을 떡- 벌렸다.
“자결하면 자식에게 작위 정도는 승계하게 해 줄 테니 조용히 가시게.”
“폐하……!”
반발하려는 건지, 핑계를 대려는 건지, 귀족들이 일시에 입을 열려던 그때.
사미트는 가볍게 발을 굴렸다.
콰아아앙-!!
모든 귀족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구족을 멸해 줄까?”
“…….”
“핏줄이라도 남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을 영광스럽게 여기게. 그리고 파나메로.”
“예…… 예, 폐하.”
“자네에게는 한 가지 더 명령해야겠어. 하늘산맥의 늙은이들에게 전해. 은퇴를 했으면 조용히 처박혀 있으라고. 끼니 챙겨 주고 시간 때울 수 있게 노리개도 올려 주는데 뒤늦게 명예욕이 생긴다? 하늘산맥을 지워 버리기 전에 입 닥치고 찌그러져 있으라고 전해. 이게 내가 그대한테 내리는 마지막 명령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폐하…….”
사미트는 물끄러미 파나메로를 바라보았다.
생각을 안 하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와 인연을 맺은 지 벌써 18년이나 됐다.
18년.
짧은 시간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선을 넘었다.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며 국가 권력의 중추로 올려 주었던 사미트의 단호함이 반대로 작용하면 이렇게 된다.
사미트는 그들이 대전을 나서기 전 딱 한마디를 덧붙였다.
“잊지 마시게. 조용히 가라고 한 짐의 말을.”
그 말에는 아주 많은 뜻이 함축되어 있었다.
발악하지 말라고.
기어오르지 말라고.
국가를 팔아먹으려던 쥐새끼에게 이 정도면 충분히 명예로운 죽음이니 거부하지 말라고.
거부를 하게 되면 이스마엘의 법도에 따라 연좌제를 적용시킬 것이며 피가 통한 모든 가족이 고문받아 죽는 그 모든 순간을 지켜보게 하고 마지막으로 죽게 될 거라고.
이 모든 뜻이 저 마지막 말에 전부 들어 있었다.
귀족 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고 체념한 이들도 있었다.
그중에는 파나메로 재상도 예외가 아니었다.
생일 선물을 받아 기분이 좋아진 게 엊그제였는데, 알고 보니 그 선물은 죽음이었다.
그렇게 허무하게도.
매우 허무하게 이스마엘 왕국을 제국으로 만들려는 야심찬 계획은 그대로 어그러졌다.
왕좌에 앉아 있던 이스마엘이 천천히 손을 들었다.
“둔-시엘.”
대전 곳곳에 박혀 있던 거대한 기둥 뒤에 시립하고 있던 제1친위대 대장이 앞으로 나선다.
“예, 폐하.”
“근위기사단 전부를 동원하고 감시하게, 그 이후에는 자의적으로 판단해서 움직이도록.”
“추웅-!!”
* * *
회의가 끝났다.
정확히는 회의를 가장한 통보가 끝났고 사미트는 걸음을 옮겼다.
그의 목적지는 한 곳, 바로 식당이었다.
그곳으로 이동하는 사미트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아무리 냉정함을 유지하고 단호함을 보여 주었다고 해도 무려 십여 년을 함께했던 사람이다.
사미트가 버릇처럼 주변 사람을 챙겼던 이유는 그가 정에 약하기 때문이었다.
전사 혹은 왕.
사미트는 그 중간에 서 있었고 그런 포지션에 위치한 사미트는 매우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스스로를 미친놈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아니었던 거지.
식당에 도착한 사미트는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눈앞에 보이는 모습에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식당 테라스.
그 넓은 곳에서 잭 발란티에와 그 옆에 있는 발렌타인 밀로스라는 존재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둘의 모습을 하늘에서는 굉장히 큰 보름달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종합적인 모습.
‘허어…….’
미술이나 예술적인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미트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감탄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웠으니까.
식사를 마친 식당에는 여전히 고소한 냄새가 맴돌며 이곳은 인간의 세상이라고, 그렇게 외치는 듯해 보였고 테라스에서 달빛을 맞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그 인간 세상을 만드는 신神처럼,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해 보였으며 그 둘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아름다운 명화를 보는 듯했다.
“…….”
순간 사미트는 가슴속에서 무언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사미트는 최대한 왕의 역할을 다하려 했다. 하지만 지금.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전사가 되고 싶었다.
왕의 책임은 내려 두고 누군가에게 속하는 그런 전사.
명화의 주인공인 두 사람이 천천히 사미트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중 남자.
잭 발란티에.
그가 환하게 빛나는 웃음을 지으며 묻는다.
“잘 갔다 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