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300)
제 301화
결국.
그레이의 눈에서 눈물이 주륵 하고 흘러내린다.
“저는 결국, 어떤 식으로든 여기서 아버지를 죽여야 하는군요.”
메이슨은 절대 바보가 아니었다.
오히려 똑똑했다.
“네가 여기서 나를 막지 않는다면 아베이루는 죽는다. 하지만 네가 여기서 나를 막는다면, 네 녀석은 아베이루라는 남자에게 빚을 짐과 동시에 잭, 그 남자에게도 거대한 신뢰를 얻게 되겠지.”
메이슨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휴가를 왔다고? 내가 모를 거라 생각했느냐.”
“…….”
“말이 휴가지 너는 벌을 받은 것이다. 그가 토벌대를 전멸시킨 일을 사실 그대로 발표하지 않고 여론을 조작해 새로운 적을 만들자……? 멍청한 놈.”
그레이는 분명 실수했다.
휴가를 오게 된 배경은 잭에게 ‘실언’을 한 이후였고, 팩트만 보면 사실 그게 전부였다.
일종의 벌.
문책을 당했다는 상황으로 보는 게 확실히 타당하고 자연스러웠다.
“이대로면 네가 설 자리는 사라진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네가 나를 죽인다면 달라지겠지.”
계속해서 이어지는 메이슨의 말을 데스 나이트들은 듣지 못했다.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으니까.
“고작 늙은이 하나 죽이는 것이다. 그러면 너는 그의 신뢰를 다시 회복할 수 있어. 그래, 고작 늙은이 한 명이다. 늙은이 하나를 죽이는 것만으로 얻게 되는 보상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구나. 다시 물으마. 결정했느냐?”
이해를 할 수 없는, 그런 수준은 아니었다.
메이슨은 정말 ‘그저 그런 귀족’이었을까.
내부의 적 같은 그런 귀족이 맞는 걸까.
아버지는 정말 그런 귀족인 걸까.
그레이의 현재 처지와 입지가 위태로워 보여서, 이런 일을 꾸미려는 걸까.
이건 흡사 자살이나 다름이 없었다.
선택지는 두 개.
설득하거나, 죽이거나.
“설득은 무의미하다. 나는 이미 일을 진행했으니까.”
“…….”
“이 못난 놈. 왜 망설이느냐. 그 남자의 측근이 되어 승승장구해야 네가 추구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레이는 질끈 눈을 감았다.
정해 놓았고 스스로 개척했고, 스스로가 다짐한 그런 신념이다.
그런 길에.
스스로 예외를 두고 뷔페에 온 것처럼 고르고 고른다면 그건 신념이 아니다.
그저 변덕일 뿐.
천천히, 그레이는 검을 들었다.
“제가 얻을 수 있는 이득, 조작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이득이라면 저는 포기할 겁니다.”
“…….”
“공자님께 이 모든 일을 말씀드릴 거고, 아베이루 님에게는 사죄할 겁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이 자리에서 죽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결정은 진작에 했다.
“……죄송합니다.”
“……그것도 너의 선택이겠지.”
메이슨이 끌어 모은 고서클 마나 유저 부대는 마치 구경하는 것처럼. 혹은 어떤 명령을 받은 것처럼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이유는 뻔하지.
메이슨은 스스로 악의 한 축이 되어 아들인 그레이의 길에 카펫을 깔아 주려고 한 거니까.
이후의 모든 일은 그레이에 의해 쓰일 역사다.
그게 그레이 스스로 모든 것을 내려놓는 선택이라 해도 결과란 그런 거다.
그레이의 검이 허공을 찢고, 메이슨의 심장을 향해 뻗어진다.
실로 섬광과도 같은 일검.
하지만.
터억-
검이 멈췄다.
동시에 모두의 고개가 돌아갔다.
언제 온 거지.
어떻게 갑자기 저렇게 등장할 수 있는 거지?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어깨에는 항상 그러했듯 인형을 앉혀 놓은 채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그 남자.
인기척도 없이 등장한 그 남자를 모두가 멍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레이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가 말했다.
“……공자님?”
“아까 깜빡하고 말을 못 해줬는데, 그거 좋은 경험은 아니야.”
뜬금없는 잭의 말이었지만 그레이는 되묻지 않았다.
어떤 주제로 이야기하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거, 나처럼 어둡게 살아온 게 아니라면 가능하면 추천하고 싶지는 않아. 분명 좋은 경험은 아닐 테니까.”
잭의 두 눈이 그레이를 넘어 메이슨에게 옮겨진다.
그러고는 눈을 반짝였다.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레이는 물론 눈썰미 좋은 데스 나이트들과 저쪽에서 대기하는 수십 명의 고서클 마나 유저들도 모르고 있었나 보다.
[분홍기가 감도는 눈…… 하나가 떠오르는구나.]“언제 나타나나 싶었는데, 이미 나타나 있었나 봅니다.”
잭과 발렌타인의 대화를 바로 옆에서 들은 그레이는 결국 물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요.”
잭이 말했다.
정말 대수롭지 않게.
“흑마법에 당했네.”
라고.
* * *
그레이의 말을 듣자마자 아베이루한테 연락했다.
무슨 일 없냐고.
없단다.
새삼스럽지만 각 왕국에는 수도 없이 많은 이들이 존재한다.
위원회니 하는 이런 건 그저 부각된 조직일 뿐이고 소규모 조직들은 수도 없이 많다.
고리대금업자부터, 용병 길드처럼 소규모 단체를 꾸리고 있는 이들, 그리고 국가 내외적으로 움직이는 자경단 같은 이들까지.
정말 많다.
그들 중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접근해서 줄을 대려는 이들이 과연 없을까.
없을 수가 없다.
뇌물을 주고, 돈을 주고, 나도 모르는 귀족들의 또 다른 니즈를 충족시켜 주며 이권을 얻어 가는 이들.
그런 이들이 없다고 단언하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은 장담하는데 이상주의자를 넘어 쓰레기 중 가장 큰 쓰레기일 확률이 높다.
눈에 뻔히 보이고, 있는 게 뻔한 데 없다고 구라 치는 거면 말 다 한 거지.
애들 말로 그런 걸 악의 축이라고 하더라.
아베이루가 내게 말했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이스마엘 왕국은 정리되었고, 템-사미트 님과 한배를 타게 되었고…… 아, 혹시 여러 가지 파생된 문제들 말씀이십니까?}
“파생?”
{예를 들면, 살아남은 귀족들의 자제가 누구를 만나거나…… 애들 장난 같은 모략을 꾸민다거나 하는 그런 것들이요.}
고개를 저었다.
이건 앞서 말한 것의 연장선이다.
“그딴 거 말고. 시어런 후작령에서 어떤 움직임 같은 거 없었냐고.”
아베이루가 잠시 말을 멈춘다.
{그러고 보니…….}
“그러고 보니?”
{저번 주였나? 메이슨 시어런 님께서 잠시 저를 좀 뵙자고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
{예. 오라고 하기엔 그래서 제가 내일 양탄자를 타고 직접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렸죠.}
이후 말을 안 하자 아베이루가 다시 말을 잇는다.
{그랬더니 직접 오시겠답니다. 어쩌면 못 올 수도 있고.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주군 표정을 보니까…… 뭔가 터졌군요.}
이게 참 뭐라고 해야 하나.
나만의 특이한 버릇이라고 해야 할까.
꽤 좋지 않은 삶을 살아와서인지 몰라도 어떤 단서 같은 게 주어지면 그걸 최대한 안 좋게 생각하는 그런 버릇이 나한테 있는데.
지금 그 버릇이 도졌다.
메이슨 시어런은 아베이루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직접 올라오겠다고, 그러면서 못 올 수도 있겠다는 단서를 붙였는데.
느낌상, 그 말이 되게 거슬린다.
못 올 수도 있다…….
오지 않는 게 아니라 못 온다는 건 어떤 이유가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어쩌면 협박이라거나 그런 거.
그런데 아베이루를 보니 그런 쪽은 아닌 것 같다.
천천히, 다시 생각했다.
메이슨은 아베이루를 만나고자 했고, 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고 한다.
지금 시어런 후작령에는 메이슨만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그레이가 내게 말했다.
아버지를 죽일 때 어떠셨냐고.
대충 뭔가 감이 잡혀서 미간을 찌푸렸다.
“일단.”
{예. 말씀하십시오, 주군.}
“통신소 애들 전부 퇴근시키고 데스 나이트 시켜서 주변 경계만 강화시켜 놔. 이후 집무실로 다시 돌아가서 텔레포트 스크롤 찢어.”
{……어디로 가는 걸 찢을까요.}
“발란티에 후작가. 그쪽에 가 있어 봐.”
아베이루는 굳이 되묻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통신을 끊었고 나는 시동어를 외쳤다.
“[텔레포트.]”
* * *
잭이 사라지기 전.
“이보게…… 음, 늦었군.”
사미트가 머쓱한 표정으로 들어 올린 손을 천천히 내렸다.
무슨 바쁜 일이 있기에 인사도 없이 저리 사라지는 걸까.
덩치에 걸맞지 않게 섭섭하다고 느낀 사미트였다.
“워낙 바쁘신 분이니까요.”
들려오는 목소리에 사미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다가온 한 남자.
짧은 머리에 자기 키만 한 장궁을 등에 걸치고 있는 남자.
대륙 유일의 보우 마스터.
베네딕트가 사미트와 마찬가지로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표정을 보니 자네도 몰랐나 보군.”
“음…… 그렇게 됐습니다.”
분명 베네딕트면 측근 중 하나일 텐데 말도 하지 않고 떠났다…….
확실히 어떤 일이 터진 게 맞는 것 같았다.
“그래도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응?”
“공자님이 어떤 분인지 아니까요.”
사미트는 순간 깨달았다.
아,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
“공자님은 한번 믿음을 주면 끝까지 주시는 분입니다. 애들을 통솔하고 테슬란으로 복귀하는 일 정도는 따로 언질 같은 걸 안 줘도 알아서 잘 할 거라고 믿고 계신 거죠.”
여러 번 보여주었듯 사미트는 뇌까지 근육으로 차 있는 그런 바보는 아니었다.
잭과 마찬가지로 정보라는 것을 중요시하는 사미트였기에, 그는 베네딕트라는 남자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대륙전장 소속.
장주인 롤랜드 린치와 연을 맺은 것은 18년 전.
어릴 적 부모가 대륙전장에 빚을 졌었고 파산했었는데 그 빚을 탕감해주었던 롤랜드 린치에게 은혜를 갚았고 이제는 잭의 사람이 된 남자.
앞서 말했듯 사미트는 분명 깨달았다.
‘그 남자를 오히려 내가 과소평가하고 있었군.’
스스로 모시겠다고 했지만 ‘포용력’이 이 정도였을 줄이야.
베네딕트의 두 눈은 잭을 향한 무한한 신뢰로 가득 차 있었다.
‘앞으로 재미있어지겠군.’
사미트는 그런 베네딕트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먼 곳, 밀로스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모여 있는 그곳에서는.
“주군께서는 먼저 가신 것 같아.”
“별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없겠죠?”
“글쎄, 없을 것 같지는 않은데.”
타노스와 샬롯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그 옆에 있는 셀은 무언가 깊은 고민에 빠진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사미트와 베네딕트는 잠시 동안 이야기를 나눴고 머지않아 베네딕트와 밀로스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이스마엘을 떠났다.
여전히 생각이 깊어 보이는 셀을 제외하면 모두가 웃을 수 있는. 그런 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