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303)
제 304화
슬쩍 론을 떼어 놓자마자, 론이 다시 한번 묻는다.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지.
내가 안 괜찮을 리 없잖아.
세상에 나 혼자 남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었어.
론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랑 계속 있었다는 게, 되게 기분이 참…… 뭐라고 해야 하나.
묘하다고 해야 할까.
여하튼.
“도관, 에서 온 거지?”
우리 누나와 아베이루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표정이었지만 론은 아니었다.
론의 얼굴이 그대로 굳어졌거든.
“알고 계셨습니까?”
고개를 저었다.
알고 있었던 건 아니다.
얼마 전에 알았을 뿐.
“오면서 계속 생각했거든. 과거 군나르 제국에 존재하던 황실 비밀 조직. 오직 군나르의 핏줄에만 충성하고, 군나르라는 이름을 지키는 그 집행자들을 사람들은 ‘도관’이라 불렀지. 론은 도관 출신이고…… 그러니까.”
무거워져 가는 분위기 속에서 아베이루는 침묵했고, 우리 누나도 침묵했다.
왜냐면, 지금부터 내 입에서 나오는 이 말은 그 정도의 무게가 있었거든.
“우리 어머니의 이름은 노아가 아니라, 노아 군나르. 우리 누나의 이름은 엘리자베스 발란티에가 아니라 엘리자베스 군나르. 나는.”
전에도 말했지만 나, 발란티에라는 이름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다.
우리 누나가 여전히 그 이름을 쓰긴 하지만 그거랑은 별개다.
그러니까.
“나는, 잭 군나르.”
수백 년 전 존재했던 유일한 인간들만의 국가.
피라미드 최하층에 있던 인간들을 힘으로, 그리고 인망으로 끌어모았고, 그들에게 나름의 인간적인 삶을 살게 해 줄 수 있었던 군나르 제국.
그들이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제국의 왕이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환경이 좋지 않았음에도 최소 마스터 이상은 꾸준히 배출했던 당시의 국가.
어떨 때는 초월자가 나오기도 했었던 그 국가의 정당한 후계.
그게 내 핏줄이었다.
그리고.
“스승님은 언제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영광의 시대를 끝낸 인물은 총 두 명만 알려져 있습니다. 율리우스 테슬란, 그리고 스승님. 하지만 저는 한 명을 더 압니다.”
뭐라고 해야 하나.
그냥 기분이 좀, 싱숭생숭하다.
정말 처음.
아주 처음 이 영광의 시대를 언급했을 때, 이름을 숨긴 조력자가 한 명 더 있었다고 언급했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까지 쭉 그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던 이유는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스스로 이름을 감추기를 원했고,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원했던 세 번째 영웅. 당시 군나르 제국의 젊은 황제였던 아서 군나르.”
자연스럽게 웃고 말았다.
“저와 스승님의 인연은 사실 400년 전부터 이어졌던 건가 봅니다.”
[우연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느냐.]육성으로 웃고 말았다.
알 만하신 분이.
“필연이겠지요.”
스승님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우리를 바라보던 론이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맞습니다. 도련님의 성은 발란티에가 아닌 군나르입니다. 왕족, 정확히는 고대 황족의 핏줄인 거죠.”
400년밖에 안 돼서 고대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그래도 고대는 고대다.
그리고 론의 어조에서 느낄 수 있었다.
론은 내게 묻고 있었다.
더 궁금한 건 없냐고.
없을 수가 없지.
“그런 조직에서 우리 어머니랑 론은 왜 거기서 나온 건지. 나왔는데도 왜 그들은 론과 어머니를 추적하지 않았던 건지. 대충은 알고 있는데, 론의 입으로 한 번 더 듣고 싶어. 해 줄래?”
론이 고개를 끄덕인다.
“일단 자리부터 옮기시지요.”
* * *
도관道觀.
실질적으로 기간만 따진다면 현재까지 이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조직이다.
근본도 넘쳐흘렀다.
수백 년 전.
영광의 시대 그 이전.
이종족들이 미쳐 날뛰며 세상을 호령하고 다닐 때 한 남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시모네 군나르.
그는 강했다.
인간이라는 종족에서 탄생한 ‘최초의 마스터’였으며, 인망도 넓었고 단호했으며 어떤 일을 행할 때 망설임이 없었다.
그야말로 군주의 자질.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그는 인간들의 구원자였고 구심점이었다.
국가가 세워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세워진 군나르 제국은 서대륙에서 수백 년을 군림했다.
그렇게 영광의 시대가 도래했고, 이종족들은 대륙전쟁을 시작했다.
그 시절, 안타깝게도 군나르 제국의 빛은 많이 바래 있었다.
피라미드 최하층에 있는 인간들만의 국가가 각 종족마다 한둘씩 있는 초월자들 사이에 껴서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는 그런 상황에서 제국이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있던 것도 어찌 보면 기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기적은 더 큰 기적을 낳았다.
스승님이라는 세기의 재능이 탄생했을 때. 군나르 제국의 황족 중에서도 비슷한 재능이 탄생했으니까.
아서 군나르.
그는 스승님의 동료였고, 스승님과 함께 영광의 시대를 끝낸 영웅이었다.
어찌 보면 숨겨진 진짜 영웅.
그리고 도관 출신이자, 아서를 보필하던 율리우스 테슬란.
이렇게 세 명은 한 팀이었고 말도 안 되는 업적을 이뤘다.
전생에서 스승님은 내게 많은 것을 알려 주었지만 딱 여기까지였다.
400년간 동굴에서 생활하시던 스승님은 딱 여기까지의 역사만 알고 계셨다.
아서 군나르와 율리우스 테슬란의 관계.
그리고 스승님까지 끼어서 더 복잡해진 관계.
그리고 이 이후, 스승님도 모르는 이야기를 론이 들려주기 시작했다.
“아서 군나르는 도관의 남은 이들과 함께 세상에서 사라졌습니다.”
“흑해 인근에 ‘라고메라’라는 섬이 있습니다. 그 섬에 본거지를 둔 도관에는 한 가지 철칙이 있는데, 바로 세상사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수백 년 동안 그 전통은 유지되었고, 도관은 도관만의 생활 방식을 만들었으며 그 섬에서 나름 평화롭게 지냈습니다.”
론의 조용한 말이 식당 안에 울렸고, 나와 스승님, 그리고 누나와 아베이루는 론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도관에는 유능한 이들이 많습니다. 마스터의 숫자는 이스마엘 왕국의 모든 마스터를 월등히 뛰어넘으며 툴칸의 마스터들과도 흡사한 숫자를 자랑합니다. 제가 있을 때까지만 해도 그 숫자는 15명. 아마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도관은 역사가 있는 단체입니다. 군나르라는 핏줄을 수호하는 단체죠. 하지만 수백 년입니다. 수백 년 동안 재능을 썩히고 섬에만 틀어박혀 있었는데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했을 겁니다.”
“여담인데, 앞서 말씀드린 대로 도관이라는 단체에는 역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군나르의 핏줄에는 그보다 더 큰 역사가 있죠. 노아 님이 어떤 생활을 했을지 짐작이 가십니까?”
답하지 않았다.
몰랐으니까.
“크고 작은 갈등이 섬 곳곳에서 터졌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외딴 섬에서 살아야 하는가. 이 힘을 밭 가는 데에만 쓰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언제까지 지속해야 하는가. 여전히 도관의 정신을 추구하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이 섬 안팎에서 싸움을 벌였고 그 충돌로 많은 이들이 죽을 뻔했죠.”
“그때, 노아 님이 제게 말씀하시더군요.”
“도망치자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세상을 구경하며 그렇게 살고 싶다고.”
“어떻게 도망칠 거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할아버지’와 이미 이야기가 끝났다고.”
“당시 ‘도관의 주인’을 교체하는 시기였고, 섬의 갈등이 잠시 동안은 가라앉아 있었지만 일시적이었죠. 섬을 완전하게 안정시키려면 그만한 충격이 있어야 했고 그 충격은 간단했습니다.”
“군나르 핏줄의 죽음.”
“노아 님은 죽음을 위장하기로 했고 저는 노아 님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렇게 이곳 대륙에 도착했고 둘이서 세상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렇게 2년 정도를 돌아다녔을 때 노아 님이 말씀하시더군요.”
“이렇게 큰 세상을 모르고 그 섬에서만 산다는 건 저주나 다름이 없다고.”
“도관의 눈을 속이고 조용히 살고 싶다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낳게 될 자식들은 이 큰 세상에서 살아가게 하고 싶다고.”
“노아 님은 똑똑했습니다. 당연히 마법적인 재능도 뛰어났죠. 자그마치 군나르의 핏줄이니까.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당시 8서클 마나 유저였던 노아 님이 심장에 새겨진 서클을 전부 부쉈더군요.”
“평민처럼 살아야 한다고, 도관의 눈을 피해야 한다고, 그런 노아 님에게 발란티에 후작은 꽤 흥미로운 남자였습니다.”
“욕심은 많지만 멍청했고, 옆에서 보듬어 주는 사람이 없다면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그런 남자, 그러면서도 주변 환경은 뛰어났으며 가지고 있는 것을 활용하지 못하는. 그런 발란티에 후작이라는 존재는 노아 님이 상상하지도 못할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안 좋은 쪽으로요. 그래서 더 괜찮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최약소국의 변방 영지, 그 정도면 도관의 눈을 피할 수 있었으니까.”
무거운 이야기인데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노아 님은 당시 무능하던 클라크 발란티에를 도왔습니다. 주변에서 계속 압박하던 클라크의 잔가지들을 쳐 냈고, 클라크를 후작으로 만들어 주었죠. 이후 엘리자베스 님을 낳았고, 도련님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도관의 눈을 피하기 위해 부쉈던 서클 때문에 몸이 약하신 상태였고 결국 도련님을 낳으시면서 돌아가셨습니다.”
“제게 이런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둘을 부탁한다고. 이 넓은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도관의 눈에 절대 띄지 않게, 잡혀가지 않게 도와 달라고. 그때 처음으로 노아 님에게 오빠 소리를 들었는데, 왜 웃으십니까.”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나 보다.
손을 뻗어 론의 어깨를 쓸어내려 주었다.
“고마워.”
“……갑자기요?”
“갑자기가 아니야. 정말 고마워.”
그게 끝이었다.
도관이라는 조직은 그런 조직이었고 내 핏줄에는 그런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그때 론이 황급히 말을 덧붙인다.
“아, 그리고 이 말을 깜빡했는데.”
“뭔데?”
“도련님의 할아버지. 그러니까 현재 도관의 명령권을 가지고 있는 ‘도주道主’님께서는…… 도련님과 같은 ‘초월자’입니다.”
어깨를 으쓱했다.
아주 초창기.
벌써 3달 전의 일인데.
내가 발란티에 후작가를 떠나 아카데미로 향했을 때, 후작가의 몇몇 기사들이 내 서클을 부수고 나를 후드려 패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그놈들을 싸그리 몰살시키던 그 장면을 론이 지켜봤었고 론이 이렇게 말했지.
마치 마나 운용술의 결정체 같다고.
그 태도를 보면서 론이 뭔가 알고 있는 건가 싶었는데, 지금 보니 확실히 론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도련님이 사용하시는 그 영혼의 힘. 그때 느꼈던 그 거대한 위화감. 도주의 그것과는 성질이 조금 다른 것 같지만 비슷한 종류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말씀 안 드리려고 했는데, 말 나온 김에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도련님의 ‘외삼촌’이 노아 님을 아주 많이 괴롭히셨습니다. 제가 기회만 되면 찢어 죽이고 싶을 정도로 그 개새끼는 못된…….”
론이 천천히 말을 멈춘다.
솔직히 나도 놀랐다.
내가 론을 많이 봐 오긴 했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거든.
화가 너무 난다는, 정말 짜증이 솟구쳐 오른다는 론의 표정.
“크흠. 어찌하실 겁니까?”
“뭘?”
“도련님의 핏줄입니다. 더 나아가 도련님의 수하로 들어올 수도 있는 이들인 거죠.”
론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래서 나도 진지하게 답했다.
“이제 3일 남았어.”
론이 그대로 입을 다문다.
“내 수하로 들어올지 말지. 난 관심 없어. 중요한 건 그놈들이 ‘내 사람’을 건드렸다는 거.”
론과 누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작은 목소리로 론이 중얼거린다.
“피바람이, 불겠군요.”
스승님이랑 똑같은 소리를 하네.
됐고.
“밥이나 먹자. 오랜만에 론이 해 주는 스테이크 먹고 싶은데 가능하지?”
론이 씩 웃는다.
“뭔가 묵직한 게 쫙 내려간 느낌입니다. 스테이크,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잠시 동안 그렇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