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324)
제 325화
대충 주변을 둘러보니까, 다 대충 비슷하게는 생각하고 있나 보다.
대륙으로 나가면 뭘 해야 할지에 대한 불확실성.
더 나아가 나를 따르고 안 따르고 그런 것들은 ‘준비’가 필요한 일이다.
생각하고 결정할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는 거지.
갑작스럽게 결정하라고 하면 혼란스러워하는 건 당연한 수순.
“누나.”
“응?”
“최근에 좀 휑해진 영지가 어디야?”
“휑해진 영지?”
“내가 정리한 귀족들이 관리하던 몇몇 영지 중에 땅은 큰데 사람은 없는 그런 곳. 없어?”
누나가 잠시 고민한다.
그건 잠시였다.
머리에 전구가 켜진 듯했다.
“맨티스 백작령. 거기가 괜찮을 것 같아.”
누나가 괜찮다고 한 거면 괜찮겠지.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맨티스 백작령에 거처 마련해 줘.”
“……전부?”
“어, 전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충 들었지? 전부 맨티스 백작령으로 가. 대륙이 어떤 곳인지. 어떤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지 천천히 느껴 보고 새롭게 살아 봐.”
그리고.
“외삼촌.”
“……응?”
“자리 하나 주면 잘 해줄 자신 있습니까?”
생각지도 못한 생각이었던 걸까.
외삼촌이 멍하니 눈을 껌뻑인다.
“……자리? 무슨 자리?”
“비어있는 영지가 꽤 됩니다. 일단은 맨티스 백작령에서 영주 대리 좀 하시다가 괜찮다 싶으면 더 큰 자리로 옮겨드릴게. 어떠십니까?”
우리 외삼촌, 생각해 보면 꽤 괜찮은 남자다.
이 도관이라는 단체를 관리해 오신 거잖아.
비록 도주 대행이긴 했지만, 도주였던 플랭크 그 새끼는 뒤에서 조작질하고 관망했던 게 전부다.
즉 실질적으로 섬을 관리했던 건 외삼촌이라는 거지.
그 정도면 능력 검증은 끝난 거다.
“몇 가지만 명심하세요.”
“……명심?”
외삼촌에게 다가가, 아무도 듣지 못할 목소리로 속삭였다.
“책임 질 자신이 있으면 욕심부리셔도 됩니다. 안주하고 싶으시면 안주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권력이라는 것에 취해 무리수를 두거나 헛짓거리만 하지 마십시오. 무슨 말인지, 아시죠?”
“……그래.”
눈치 빠르신 분이니까. 알아서 잘할 거다.
그렇게 나는 배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 잠깐만.
아까 손을 들어서 질문하려던 그 남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름이 뭐냐.”
“……작센. 작센 베이스입니다.”
경지는 중급 마스터.
처음 섬에 들어갔을 때 론이 자기 후배라고 했던 그 남자다.
“작센 베이스. 이름 좋네. 너 심심하지?”
“……어 ……예, 조금.”
재미있는 놈이네.
고개만 뒤쪽으로 까딱였다.
“저기서 멍 때리고 있는 마스터들 전부 데리고 안쪽으로 들어와.”
“안쪽으로, 말씀입니까?”
“어. 이름은 진실의 방, 대충 그렇게 전해.”
진실의 방은 조금 장난이고, 정확히는 조타실이었다.
나는 스승님과 함께, 론과 누나를 데리고 조타실로 향했다.
머지않아 10명의 마스터도 조타실로 들어왔다.
* * *
작센 베이스는 생각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 잭이라는 남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인 것 같다고.
그럴 만도 한 게.
웬만한 시동어도 없이 바다를, 지금도 눈에 보이는 저 지평선까지의 바다를 전부 얼려 버린다는 게 말이나 되나.
그리고 지속적으로 느껴졌던 그 기운.
엄청나다 못해, 뼈가 아릴 정도였다.
존재 자체만으로 세상에 군림하는 기운.
이게, 진짜 군나르지.
이게 진짜 왕이지.
잭의 말대로 도관 내부에서는 지속적으로 갈등이 생겨났었다.
밖으로 나가자는 이들과 섬 안에만 처박혀 있자는 이들.
엄밀히 말하면 작센은 후자의 사람이었다.
밖의 세상? 솔직히 궁금하긴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미 군나르의 핏줄에 충성을 맹세했고, 그들의 피를 수호하기로 다짐했다.
그 일념으로 마스터가 되었고 등급마저 중급까지 올릴 수 있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사실, 섬 내부에 뭐 부족한 게 있었던 것도 아니고, 결정적으로 도관의 주인이 섬 안에만 있자고 하는데 그럼 있어야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저 잭이라는 남자는 자유를 주었다.
자유.
작센에게 있어서 고민은 무의미했다.
자유란 충성이고, 충성할 군나르가 지금 눈앞에 있는데 그거면 충분하지.
거기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잭이 죽였던 도관의 대전사들은 섬 내에서 지속적으로 밖으로 나가자며 갈등을 부추겼던 이들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도원들은, 대부분 군나르의 핏줄과 일생을 함께하겠다며 맹세한 이들이라는 뜻이다.
작센은 웃으며 조타실로 들어갔다.
왠지, 앞으로 삶이 더 재미있어질 거 같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으니까.
* * *
음.
“조금 신경 쓰이긴 했어. 대륙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쪽이랑 그냥 섬에 있자는 쪽이 갈등을 야기했다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걸 일반 마나 유저들이 주동했을 리는 없거든.”
손가락으로 마스터들을 가리켰다.
“대전사라고 불리며 마스터의 자리에 올라온 너희가 그 파벌을 이룬 거잖아. 아니야?”
“……맞습니다.”
자고로 마나 유저를 성장시키려면 경쟁 심리를 잘 이용해야 한다.
도관도 그 부분에서는 대륙의 마나 유저들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아서는 일부러 파벌을 나눴고 방치했다.
그 결과로 이렇게 수많은 마스터들과 마나 유저들이 생겨난 건데, 이 수완에 대해서는 사심 없이 감탄했다.
400년 동안 그렇게 헛짓거리만 한 건 아니었네.
“참, 열심히도 했네.”
“……죄송합니다.”
웃음을 터트렸다.
“혼잣말한 건데 뭐가 죄송해.”
아무 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얘들 왜 이렇게 긴장해 있어.
“긴장 풀어. 죽이거나 그런 이상한 짓을 하려는 게 아니라, 너희는 조금 일찍 결정해야 할 거 같아서 부른 거야.”
“결정……이요?”
“일단 전제를 하나 깔고 가자. 나는 너희가 필요해.”
“…….”
“군나르의 핏줄이니, 예비 군나르 핏줄의 배우자니 이딴 걸 말하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황, 그러니까 마나 유저로서 대성한 마스터가 필요해.”
“아, 그렇습니까?”
긴말할 거 있나.
마스터 정도면 인재 중의 인재다.
“내가 아카데미 하나를 관리하고 있거든.”
“…….”
“너희 정도면 거기 교관으로 제격일 거 같은데. 혹시 관심 있는 사람?”
작센은 기다렸다는 듯 손을 들어 올렸다.
“오케이. 일단 한 명, 다른 사람은?”
조용했다.
아무래도 아카데미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나 보다.
“한 명이라…… 조금 아쉽긴 한데 오케이. 혹시 미리 생각하고 있거나 그런 거 있는 사람?”
이쯤 됐으니 사람들이 눈치챌 만도 한데.
내가 왜 지금 이 자리에서 마스터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짝짜꿍하고 있냐면.
단순히 마스터라는 인재가 필요해서라는 이유도 맞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파악, 해 둬야 했으니까.
마스터라는 존재가 지금 10명이나 있고, 이 10명 중에 상급이 한 명, 중급이 네 명, 초급이 다섯 명인데.
이 정도의 전력이 갑자기 대륙에 짠 하고 나타나면 상황은 분명 굉장히 혼란스러워질 거다.
그래서 파악해 둔다는 단어를 쓴 거다.
얘네, 전부 내가 품거나 품지 못해도 어디서 뭐 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거 같거든.
이어서 따로 생각하고 있는 게 있는 사람이 있냐는 질문에 7명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중 한 명을 가리켰다.
적색 마스터.
나이가 지긋한 남자였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작센처럼 갑작스럽습니다. 군나르의 핏줄을 수호하는 것만 보고 살아왔고, 그렇게 수련을 했는데 갑자기 그러지 않아도 된다니요.”
잠자코 들었다.
“저는 ‘도주님’을 따라가고 싶습니다.”
딴지를 걸 새도 없었다.
손을 들어 올린 나머지도 전부 그렇게 하고 싶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으니까.
아카데미 교관으로 가겠다던 작센만 우스워진 꼴이 되었는데.
그 전에.
“내가 왜 도주냐?”
“……죄송합니다. 마땅한 호칭이 떠오르지가 않아서.”
사실 이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건데.
자그마치 적색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이들 중에서도 얌전한 성격을 지닌 이들이 간혹 있을 수가 있는데, 눈앞의 적색 마스터가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이건 그냥 개성 문제이긴 한데.
보통 이런 사람이 빡 돌면 광전사가 되고 그러더라.
“이름은?”
“안토니오, 안토니오 세나입니다.”
“두 가지를 우선 알려 줄게.”
“경청하겠습니다.”
“우선 첫째. 앞으로 나를 부를 때는 ‘보스’, 혹은 ‘도련님’, 혹은 ‘공자님’이라고 부르고.”
안토니오의 눈이 크게 떠진다.
“그리고 둘째, 앞으로 잘해 보자. 너뿐만이 아니라 나머지 애들도 전부.”
마스터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일단 그들을 제지하고는, 나머지 손을 안 든 두 녀석에게 물었다.
“너희는 뭐 하려고?”
“……세상을 여행해 보고 싶습니다.”
나머지 한 녀석도 비슷한 대답을 했는데, 그걸로 확신했다.
얘네 두 명은 도관 내부에서 밖으로 나가자고 갈등을 부추긴 놈들 쪽에 서있던 애들이구나.
신경 쓰지 않았다.
대충 타노스에게 손짓했다.
“저기 가서 종이 하나만 가져와 봐.”
“예, 주군.”
머지않아 녀석이 종이 한 장을 가져왔고, 나는 그걸 두 개로 찢은 뒤, 근처에 있던 펜 하나를 집어 무언가를 써 재끼고는 두 녀석에게 한 장씩 건네주었다.
이게 뭡니까.
그렇게 눈으로 묻는 두 녀석에게 말해 주었다.
“대륙에서 쓰는 돈이랑 너네가 섬에서 쓰던 돈이랑은 달라. 골드를 쓰고 실링…… 뭐 그렇게 대충 나눠져 있는데, 대륙 어느 곳이건 ‘대륙전장’이라는 곳이 있어. 거기 가서 그 종이 보여 주면 50만 골드씩 줄 텐데. 그걸로 하고 싶은 거 해라.”
두 녀석이 말문을 잃은 듯 눈을 껌뻑인다.
왜 이렇게 신경 써 주냐는 그런 눈빛인데, 얘들이 잘 모르네.
이런 걸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하잖아.
여하튼.
“아까 말했던 거, 그거만 잊지 마라.”
툴칸이랑은 절대 엮이지 말라는 그 말, 그걸 한 번 더 강조하고는 두 녀석을 보내 버렸다.
후우.
이제 진짜 본론으로 들어가야지.
“내가 지금부터 기절할 거거든. 그러니까 자기소개 같은 건 그다음에 하자.”
“……예?”
“전부 나가서 주변 좀 호위해. 명령은 우리 누나 명령 듣고. 오케이?”
나는 그렇게 어리둥절해하는 마스터들과 누나, 그리고 론을 밖으로 보냈다.
그러고는 조타실 아래에 있는 갑판선실, 그 아래의 하부 포갑판 쪽으로 내려갔다.
그곳에 또 다른 작은 공간을 하나 만들었고, 그 안에 욕조를 만들었다.
이어서 배에 비축해 둔 포션을 가득 채웠고 그 안에 들어갔다.
당연히 옷도 훌러덩 벗어젖혔다.
얼마 만에 느껴 보는 해방감인지.
아까부터 계속해서 느껴지는 두통 때문에 머리가 찢어질 것 같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뭔가 데자뷔 같은 게 느껴지네요.”
[……그러게 말이다.]아마 전과는 조금 다를 거다.
전체적인 신체의 그릇이 커진 상태이기에 과거의 힘을 불러올 때 생기는 리스크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수순.
그래도 아픈 건 마찬가지일 듯.
“좀 쉬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눈을 감았다.
이번엔 며칠 걸리려나.
설마 눈을 떴는데 보름달이 떠 있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