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419)
제 420화
엘리자베스가 고개를 갸웃한다. 그게 뭔데요.
“이것도 도련님이 말씀해 주신 건데, 현재 엘프들의 왕인 바르바라 귀도는 전생에서 암살당했답니다. 퀸투스라는 부하한테. 힘으로 밀렸던 게 아니라 귀도가 만들어 놓았던 이 이무기의 독을 퀸투스가 알아챘고 이걸로 바르바라 귀도를 죽였다고 하더군요. 효과는 간단합니다. 이걸 마신 이가 마나 유저라면 마신 뒤 5초가 지나고 그대로 몸이 터진답니다.”
애석하고, 서글플 수밖에 없었지만 이게 세상이다.
이스칸다르가 엘리자베스를 납치하거나 그렇게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주 치욕적인 일이 벌어질 거다.
잭이 이성을 놓고 진짜 미쳐 버릴 수도 있다.
주변에 있는 이들은 전부 시간벌이용에 불과하다. 스크롤도 시간벌이였고 원통형의 폭발하는 장치도 시간벌이였다.
이 이무기의 독을 엘리자베스가 먹을 때까지 필요한 그 시간을 버는 용도.
“최악의 최악을 가정한다…… 잔인하지만 이해는 가요. 저는 지금 약하니까.”
론은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설령 아가씨가 죽는다면 저도 같이 죽을 거니까.”
둘은 웃었다.
엘리자베스는 편하게 의자에 몸을 기댔다.
“황태자, 그 남자는 지금 뭐 하고 있을까요?”
론은 대답하지 못했다. 알 턱이 없었으니까.
분명 잭은 말했다. 이스칸다르는 천재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인들과는 전혀 다르다고.
분명 무언가 액션이 있어야 하는데 기이하게도 아무런 액션이 없다.
폭풍 전의 고요함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화이트 게이트가 무너졌다.
* * *
화이트가 무너졌다. 이제 남은 것은 골드 게이트와 툴칸의 수도. 즉 블랙 게이트.
딱 두 개다.
폐허가 되어 버린 곳, 시체가 들끓는 곳.
그곳을 걸었다.
솔직히 말할까.
내색은 안 하려고 노력은 하는데 나 지금 지쳤다. 되게 지쳤다.
내가 아무리 괴물 소리를 들어도 진짜 괴물일 리는 없잖아. 난 사람이다.
지금 4일? 5일? 그 정도 기간 동안 안 잔 것 같고, 매 순간마다 검을 휘둘렀다.
쉴 시간도 없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참 익숙한 상황이라고.
마치 회귀를 하기 전 그때를 다시 겪는 기분이다. 그리고 그건 아마 착각이 아닐 거다. 전생에서 툴칸 제국이 나를 처음 상대했을 때는 이러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렇게 계속해서 광전사를 보내고 계속 보내는 지금 이 방식은, 나에 대한 조사가 확실하게 끝났고 내가 어떤 놈인지 나한테 그나마 있는 약점이 뭔지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는 놈의 방식. 즉, 이스칸다르의 방식이다.
걸음을 옮겼다.
앞서 말했듯 나는 분명 지쳐 있었다. 그래서 반응이 조금 늦었다.
땅이 살짝 진동하고, 머지않아.
콰아아아아아아앙-!!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오며 땅이, 그러니까 화이트 게이트가 있던 대영지가 폭발했다.
엄청난 반경이었다.
길이만 최소 수십 킬로가 넘을 텐데, 그 모든 게 지금 폭발한 거다. 말도 안 되는 일.
나는 멀리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광전사를 죽이고 계속 죽이긴 했어도 나는 민간인은 건들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런 게 의미 없어진 상황이다.
왜냐면 저 대영지가 폭발하면서 다 죽었을 테니까. 그 숫자가 최소 수십만은 넘을 거다. 이 화이트 게이트는 하나의 영지가 아니라 말 그대로 대영지, 하나의 공작 가문과 두 개의 후작 가문, 그리고 세 개의 백작 가문을 합친 대영지였으니까.
그 안에 있는 이들이 지금 전부 죽었다.
수십만? 우습지.
대충 수 킬로미터 정도는 날아온 것 같다.
시야가 계속 변하고 몸은 계속 땅을 굴렀다.
그렇게 두어 바퀴 더 구른 뒤 양손으로 땅을 짚었다.
주르륵, 밀려 나가며 숨을 몰아쉬었다. 고개를 들었다. 이상하게 입이 말려 올라간 느낌이다.
분명 이건 웃음이었다. 정말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전에 정말 가볍게 언급했었는데.
전생에서 우리 아카데미 총장인 롬멜 영감님은 굉장한 전략을 하나 선보였던 적이 있었다.
툴칸의 2만 병사와 수백의 마나 유저, 그리고 수십의 고서클 마나 유저와 마스터 몇 명을 한 번에 묻어 버렸던 그때의 전략.
수도 전체를 터트려 버리는 것.
그건 패배를 직감한 이들이 그나마 마지막 수로 생각했을 법한 전략이었는데, 사실 결과가 좋았잖아.
괜히 영감님에게 테슬란 왕국의 수호자라는 말이 붙었던 게 아니다.
분명 그건 전생에서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이다.
영감님만 시도했던 일이고 영감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즉, 지금 이 상황은 영감님의 전략을 벤치마킹했다는 뜻이다.
이건 전생을 기억하는 이, 그러니까 이스칸다르가 계획을 세웠다는 뜻인데, 이 새끼 이거 잠잠하다 싶었는데 이런 거 하고 있었나.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공간이 열리고 있었다.
저건 마법이었다.
서클로 따지면 10서클 마법. 텔레포트 마법을 계속 지속시킬 수는 없을까. 좌표를 아는데 그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포털을 만드는 건 불가능할까.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포털 마법.
텔레포트 마법을 지속시키는 그 마법이 지금 무려 다섯 개가 시전되었다.
막을 생각은 없었다. 뭐 하러 막아.
죽을 자리 알아서 찾아와 준 건데.
우후죽순, 그곳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이건 또 다른 광전사들이었다.
처음 자리에 착지한 이들은 하나하나가 전부 고서클 마나 유저. 그리고 뒤이어 착지하는 것은 마스터들이었다.
블루 게이트에서 삼 황자를 죽이기 전까지 마스터들은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었는데 지금 등장했다.
약 10명.
면상들을 보니까 꽤 익숙하다.
그리고 뒤이어서 일반인들을 비롯한 일반 마나 유저들이 떨어져 내린다.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자리에서 일어선 뒤 천마신검을 고쳐 쥐었다.
암살에 능했던 버몬드 테이커. 하프 블러드가 되고 암왕이라 불렸던 그 남자가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베커만만큼 검을 쓰지는 못하지만 대륙 최강의 검사에 가까운 남자가 몇 명 있었다. 현 시점이면 베커만의 제자인 메렝게스가 대표적이었지만 후에는 조금 달라진다.
그 메렝게스를 이긴 남자가 하나 있었거든.
툴칸 제국 크루이트 백작가의 가주인 아칸지 크루이트.
그가 후에 향후 대륙 최강의 검사가 될 인재라 불린다.
등급은 중급, 그냥 중급이 아니라 상급에 가까운 중급이다. 전생에서 하프 블러드가 되었던 놈이기도 하고.
그 외 등등.
기억 속에 있는 그들이 그 자리에서 자리를 박찼다.
암왕 버몬드 테이커처럼 모습을 감추는 이들도 있었지만 달려드는 광전사들과 함께 달려드는 이들이 더 많았다. 포털에서 떨어져 내린 최소 4만의 병사.
그들과 맞서기 전,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정확히는 숨을 고르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감각을 넓혔다.
사라졌던 암왕 버몬드 테이커.
놈의 움직임을 잡아내기 위해 감각을 더 넓혔다.
터억- 턱.
매우 은밀하게 땅을 밟는 소리. 시시각각 변하는 움직임.
허공의 마나가, 그리고 허공의 공기가 내게 알려 준다. 이 새끼 여기 있다고.
고개를 돌렸다.
은밀하게 여기저기 오가는 놈의 모습이 보인다.
자리를 박찼다.
움직이던 버몬드가 고개를 든다.
자리를 박찬 나를 발견한 그의 두 눈과 내 눈이 마주친다.
크게 떠지는 녀석의 눈.
어떻게 잡아낸 거지? 대체 어떻게?
“자…… 잠깐…….”
그게 끝이었다.
천마신검의 검 끝이 버몬드의 머리를 푹. 찍었으니까.
쿠웅-
바닥에 처박힌 버몬드 테이커의 두 눈은 뜨여져 있었다. 그 눈에 담긴 것은 의문, 내가 죽었나 하는 그런 의문이 분명했다.
보통, 머리에 칼이 박히면 죽는다. 이건 아서 같은 괴물이 아니면 절대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얜 아서 군나르가 아니잖아. 그럼 뒤진 거지.
그렇게 미래에 암왕이라 불릴 버몬드 테이커라는 걸출한 인재는 자신의 죽음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세상을 하직하셨다.
후련한 기분이 든다.
내가 전생에서 이 새끼한테 시달린 거만 생각하면 지금도 이가 갈리거든.
내가 잠을 제대로 못 자는 이유 중 약 30프로 정도의 지분은 이 새끼가 차지하고 있다.
검을 뽑아내고는 그대로 놈의 머리통을 걷어찼다.
나를 향해 달려오던 광전사들, 그중 앞서 말한 향후 대륙 최강의 검사 후보 중 하나로 불릴 아칸지 크루이트가 들고 있던 검으로 테이커의 머리를 양단했다.
그래, 새삼스럽지만 이게 전쟁이다.
인간성 따위는 개나 줘버리는 것, 이게 전쟁이다. 검에 묻은 피를 잠시 바라보던 크루이트가 내게 말했다.
“버러지 같은 새끼.”
허허, 그때나 지금이나 주둥이 험한 건 여전하네.
뒤처졌던 아칸지가 다시 자리를 박찼다. 콰앙-!
멈추지 않고 달려오던 광전사들과 놈이 동시에 내 앞에 다다른다.
황금색으로 물든 놈의 검이 하늘을 찢는다.
천마신검을 꽈악, 쥔 뒤 휘둘렀다.
서걱-!
콰아아아앙-!!
앞에 있던 수십 명 정도의 광전사는 그대로 몸이 찢겨나가 세상을 하직했고 아칸지의 검이 내 검을 막았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제법이야.”
아칸지는 아까처럼 주둥이를 털지 않았다. 왜냐면 지금 놈은 확실하게 느꼈으니까.
한 수.
단 한 수.
이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 나와의 격차가 어느 정도인지 놈은 알아챘다.
검을 그대로 튕기자 아칸지는 곧바로 뒤로 물러섰다. 나는 반대쪽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적색의 마나가 참격이 되어 뻗어나갔고 수백이 넘는 툴칸의 광전사가 또 다시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고개를 돌리고, 아칸지와 눈을 맞췄다.
“안 오고 뭐하냐.”
놈의 이빨이 으득, 맞물린다.
“어린놈의 새끼가,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감히.”
허어.
“쌈질을 나이로 하냐? 그건 또 처음 알았네.”
더 대화하기 싫다는 듯 놈이 자리를 박찬다. 나도 자리를 박찼다.
놈과 나는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분명 동시에 휘둘렀지만 검로를 파악하는 눈과 속도에서 차이가 났다.
아까 아칸지가 놀랐던 게 이거 때문이다.
놈은 안다. 자기가 내 검을 막은 게 아니라 내가 그렇게 의도했다는 것을. 놈이 검을 휘두를 때 보았던 수백이 넘는 검로.
그 중 확실한 빈틈이라 보이던 딱 한곳. 그곳으로 검을 휘둘렀지만 상대의 노림수였다는 걸 놈은 안 거다.
검로를 보는 눈에서부터 차이가 나고 그걸 이용하는 수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그게 격차다.
대륙 최강의 검사를 가르는 기준은 그거다.
상대보다 검의 길을 얼마나 더 볼 수 있는가. 그리고 그걸 얼마나 뜻대로 이용 할 수 있는가.
아칸지는 알아챘고 공포를 느꼈다. 여담인데 드래곤 실험실에서 베커만을 처음 만났을 때, 그때도 비슷하다.
베커만이 휘둘렀던 검, 나는 그걸 완전히 파악했고 그 이상의 새로운 검로를 만들어 그곳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래서 베커만이 폐인이 된 거다. 대륙 최강의 검사는 따로 있다는 것을 그는 알게 되었으니까.
그것도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을 깨고 그 위에서 군림하는 진짜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정줄을 놓은 거다.
음.
지금 내가 말이 좀 많아졌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이미 아칸지 크루이트 님은 목과 몸이 분리된 채로 멀리 날아가고 계셨거든.
바닥으로 내리고 있던 천마신검을 어깨에 걸쳤다. 스륵하고 핏물이 허공을 가른다.
기억하는 이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분명 처음 회귀를 했을 때 다짐했다. 군림하겠다고.
위에 있는 머저리들이 일으키는 전쟁 같은 거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그 말은 지금 이 상황을 뜻했다.
전쟁을 일으켜도 내가 일으킨다. 죽여도 내가 죽인다. 내게 있어서 누군가에게 휘둘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휘둘러도 내가 휘두른다.
그게 진짜 군림이다.
나는 계속 나아갔다.
골드 게이트를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