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456)
제 457화
순간 멍했다.
이건 정말 생각도 하지 못했으니까.
서쪽의 황제라는 그 미친놈이 정천맹으로 왔다 했을 때 웃음을 터트렸다. 무릎을 꿇고 바닥을 기라고 할 때도 웃었다.
그건 강자로서의 자신감이었다. 또한 궁금하기도 했다.
대체 태극검제를 어떻게 죽인 걸까.
그의 힘은 어느 정도일까. 아무리 강해도 자기 자신보다는 약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랬으니 장기말로 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그런데 이건…… 아니다.
정천맹에서 정예라 부를 수 있는 무인은 총 4,500명이다.
당연히 전부 정천맹에서 거주한다.
그중 2,500명이 절정의 고수고 1,500명이 초절정이며 500명이 화경의 고수다. 이 정도는 돼야 정예라 부를 수 있다.
그 밑의 일류나 이류를 넣으면 그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겠지만 그건 정예가 아니다. 일반 병사일 뿐.
태극검제가 보낸 서신에 의하면 서쪽 대륙의 체계를 따랐을 때 2,500명의 9서클 마나 유저가 있는 거고 1,500명의 초급 마스터가 있는 거고 500명의 중급 마스터가 있는 거다.
그리고 지금 염존은 느꼈다. 그중 절반 이상이.
아니지 절반은 너무 적었다. 최소 3분의 2 이상이 죽었다.
그래서 멍했다.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맙소사.’
무슨 짓을 한 걸까.
천마신교를 치려면 정천맹의 전력은 보존되어야 한다. 은거해 있는 전대 군왕 제갈선과 전대 권제 장무기, 그리고 전대 도제 팽철영, 전대 창제 유성학. 그들이 온다고 해도 밑에서 싸워 줄 이들이 있어야 한다. 이건 아니다.
염존은 멍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서 정천맹의 무인들이 죽어 나가는 모습을 직접 보고 있으면서도 멍했다. 그게 당연했다.
왜냐면 지금 이 순간 천마신교를 치려던 그 계획 자체가 무너졌으니까.
아래에서부터 제대로 무너졌으니까.
멍했던 정신이 천천히 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이었다.
몸이 떨린다. 팔도 떨린다. 이도 떨렸고 주먹이 쥐어진다.
분노.
염존은 분노했다.
“이…… 새끼가…….”
이 개 버러지 같은 새끼가.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개새끼가.
정천맹의 무인 피로 얼룩진 그 길을 걸어오는 20대 초반의 남자.
놈의 눈과 마주쳤다. 공포? 그딴 건 없었다. 지금 이 순간 드는 생각은 딱 하나였다. 쳐 죽이자.
어떻게 해서든 쳐 죽이겠다는 집념.
염존炎尊의 몸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이건 내공이 아니었다. 생사경의 고수는 기존의 내공을 뛰어넘어 다른 기운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을 염존을 비롯한 고수들은 이렇게 부른다.
선기仙氣라고.
그리고 염존은 생사경을 뛰어넘은 신화경, 그리고 그 끝자락에 서 있는 고수였다. 어쩌면 자연경에 이르렀을 수도 있고.
몸이 붉게 물든다. 팔이 물들고 눈이 물들었다.
염존炎尊.
그가 존의 자리에 앉기 전 제의 자리에 있었을 때 그를 부르는 별호는 적룡염제赤龍炎帝였다.
염존이 자리를 박찬다. 그의 뒤를 불꽃이 장식한다. 코앞에 있는 황제를 향해 붉게 물든 주먹을 휘둘렀다. 놈이 검을 휘두른다. 그 검과 충돌했다.
콰아아아아앙-!!
사방으로 터져 나가는 소름 끼치는 파공음에 살아남은 이들이 귀를 틀어막는다. 멀쩡했던 건물은 무너졌고 전각은 불타올랐다.
염존은 고개를 숙였다.
머리 위로 검이 스쳐 지나간다. 오른발을 축으로 삼아 몸을 앞으로 밀었다. 왼쪽 어깨가 놈의 명치에 닿는다.
그 짧은 거리에서 쥐어진 주먹을 그대로 내밀었다.
적룡식赤龍式 제1장 염권炎拳.
붉은 주먹이 황제의 복부에 닿는다. 그 복부가 불타오르는 것과 동시에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머리를 숙이고 주먹을 내렸고 무릎을 굽혔다. 하지만 느낌이 좋지가 않았다. 즉시 왼팔을 굽히며 머리를 보호했다.
아니나 다를까.
콰아아앙-!!
옆으로 주르륵 밀려난다. 왼쪽 팔꿈치가 욱신거렸다. 부러진 건 아니었다. 금이 갔을 뿐.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황제의 손에 들려 있던 검, 정확히는 검의 밑등이 방금 전까지 염존의 머리가 있던 곳을 타격한 채 멈춰 있었다.
저거구나. 그 짧은 시간에 검을 저렇게 휘두른 거구나.
그의 복부에 붙은 불꽃이 사그라든다.
빌어먹을 새끼.
놈이 말했다.
“염존 화천대사. 대사大士라는 이름을 쓰면서도 이름답지 않게 예의가 없더구나.”
염존은 답하지 않았다. 팔에서 흐르는 피를 털어 내며 내공으로 치료할 뿐.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황제라는 새끼의 주둥이에서 이어져 나오는 말 때문에.
“한데, 왜 화를 내는 것이냐? 오히려 짐이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이 아니더냐.”
이 빌어먹을 새끼가 왜 화를 내냐고 묻는다.
“네놈 때문에 내가 꾸던 꿈이 무너졌다. 네놈 때문이다.”
황제가 고개를 젓는다.
“짐은 분명 말했다. 나와서 무릎을 꿇라고, 그런데 네놈은 무엇을 했지?”
“…….”
“네놈의 꿈은 내가 무너뜨린 게 아니다. 네놈 스스로가 무너뜨린 거지.”
황제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참으로 우습구나. 가만히 있는 짐을 건드린 것은 네놈이 아니더냐. 그런데 이제 와서 오히려 화를 낸다……? 노망이 든 것이냐?”
염존은 가슴 깊은 속에서 화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지금까지 사용하던 그런 기운과는 달랐다. 그냥 달랐다.
분노가, 심장이, 내공이, 머리가, 신체와 정신이 하나로 뭉친다.
분노. 그건 정말 분노라고밖에 설명이 되지 않았다.
일체가 된다. 그동안 단 한 순간도 정기신이 일치했던 적이 없었다.
그 순간이었다.
염존의 눈이 흐릿해진다. 앞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염존의 눈이 탁해진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염존은 보고 있었다. 기이한 벽을.
깨달음의 순간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또한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 과정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지금은 그저 그 상황이 찾아왔을 뿐이다.
염존의 몸이 움직인다. 손을 내밀었다. 벽을 짚었다.
그 순간, 개안開眼했다.
* * *
쿠궁.
땅이 진동했다. 자리를 박차려다 멈칫했다.
이것 봐라.
솔직히 말하면 염존 화천대사. 그는 강했다. 강했지만 경계할 정도는 아니었다.
증거를 하나 제시하자면 그의 주먹에 붙었던 화염이 내 몸에 붙었는데 그게 금방 소멸했다. 이건 격차였다. 그 정도가 나와 화천대사간의 차이.
그런데 이건 좀 흥미로웠다.
지금 화천대사의 상태가 아무리 봐도 내가 스승님의 경지까지 올라갔던 딱 그때의 그 순간처럼 보였거든.
깨달음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계속 싸웠고 죽이고, 또 죽이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벽을 마주했고 그 벽을 그냥 깨부쉈다.
스승님의 경지까지 그렇게 올라갔다. 이 대륙은 어찌 보면 서대륙에서 내가 활동할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었다.
지천에 널린 게 마스터다. 심지어 초월자가 된 이들도 더러 있다고 한다.
여기서 문제는 나처럼 전부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한 게 아니라 어느 순간 일정 경지에 이르면 그 이후부터는 싸우는 것보다 정치를 하는 것에 관심을 두기 때문일 거다.
염존 화천대사는 아슬아슬했다.
이스칸다르보다 약간 강한, 딱 그런 수준이었는데 거기서 내가 자극제가 된 건지 한 단계 더 올라섰다.
나와 스승님이 있는 이 경지.
동대륙에서는 그 경지를 대충 자연경이라 칭하는 거 같은데.
웃음이 나온다.
그 순간.
화천대사의 몸에서 거대한 불꽃이 터져 나갔다. 팔을 들어 그 불꽃을 막았다.
뜨겁다.
팔 너머에 있는 화천대사의 몸은 불타고 있었다.
초월자로서 그 격을 뛰어넘고 또 뛰어넘은 경지.
자연경.
그 초입에 화천대사는 들어섰다.
천천히 천마신검을 고쳐 쥐었다. 이제야 좀 제대로 싸워 볼 만하네.
그렇게 생각한 순간.
“푸…… 하하하하하하하하-!!”
화천대사의 입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고개를 하늘로 향한 채 폭소를 터트리는 화천대사는 의식하지 못한 건지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녹이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나온 불꽃은 그 정도였다. 일반적인 불꽃이 아닌 수천 도는 훌쩍 넘어 버릴 말도 안 되는 불꽃.
그의 웃음이 뚝, 그친다.
고개를 아래로 내린다. 그 시선이 나를 바라본다. 아니, 노려본다.
그가 말했다.
“정천맹…… 이제는 필요 없다.”
화천대사가 양손을 펼쳐 든다.
“병력도 필요 없다. 조력자도 필요 없다. 독도 필요 없다.”
그 양손 너머로 기운이 몰려들었다. 순식간이었다. 두 개의 작은 태양이 만들어진 것은.
“본좌는 지금 이 순간 천하제일인이 되었다.”
실소가 터져 나온다.
이게, 나도 말투를 좀 황제답게 바꿔 보려고 하는데 익숙하지가 않다. 면상에 철판 깔고 오글거리게 좀 해야 하는데 내색은 안 했지만 말을 할 때마다 손발이 오글거린다.
왜 이런 생각을 하냐면 저 치매 걸린 노인을 보고 있으니까 아까까지의 내 모습이 투영돼서 그렇다.
그래서 그냥, 지금은 평소 말투대로 하련다.
“보기 추잡해. 다 늙어서 염병 떨면.”
화천대사는 말로 답하지 않았다. 그냥 양팔을 움직였다. 동시에 두 개의 작은 태양이 내게 날아온다. 거의 빛살과도 같은 속도였다.
검에 기운을 담았다. 검이 내가 되고 내가 검이 된다. 천마신검은 곧 내가 되었다.
좌로 베었다. 하나의 태양이 갈려 나간다. 그대로 몸을 돌려 남은 태양을 사선으로 베었다.
그건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콰아아앙-!! 콰아아아앙-!!
태양의 파편이 가는 곳마다 전부 녹았다. 나무, 땅, 그리고 호수까지.
전부 사라졌다. 네 개의 직선 방향으로 거리는 약 40km?
모르겠다, 그쯤 되는 거 같다.
론은…… 무사하겠지. 바보가 아니니까.
“무슨 잡생각을 그리 하느냐.”
어깨에 무언가 닿는다. 반응이 조금 늦었다.
퍼석, 오른팔이 끊긴다. 끊기기 전 천마신검을 놓았다. 왼팔을 뻗어 그대로 잡아챘다. 동시에 몸을 회전시키며 베었다.
화천대사가 붉게 물든 팔을 내민다. 서걱-!
미간을 구기고 말았다. 반대로 화천대사의 표정은 밝아진다.
왜냐면 천마신검은 ‘고작’, 화천대사의 팔을 절반 정도만 베는 것에서 그쳤으니까.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사실이지만 방금 오른팔이 떨어져 나가면서 몸의 균형을 잃었다. 온전한 힘으로 벨 수가 없었다.
“고작 그 정도인 것이냐.”
미간에 힘줄이 새겨진다.
잠깐 뽕에 좀 취해 있는 것 같은데, 자신감이 좀 지나친 것 같다. 왼팔에 힘을 주었다.
쩌저적,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천마신검이 놈의 팔을 더욱더 파고든다. 화천대사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놈의 몸에서 아까처럼 태양 같은 게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적룡식赤龍式의 극의極意, 염양炎樣이라 한다.”
하나, 둘, 셋, 넷. 그렇게 다섯.
총 다섯 개의 붉은 태양이 주변을 밝힌다.
이어서 놈이 왼손을 들었다. 그 손으로 천마신검을 붙잡았다.
의도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화천대사는 후광이 비치고 있었다. 태양 그 자체가 되어 버린 것 같은 그런 후광.
웃고 말았다.
“진정 미친놈이구나. 이 상황에서 웃어?”
웃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진짜 후광이라는 건 저렇게 ‘의도’한다고 생겨나는 게 아니거든.
“이미 승부는 났는데 무슨 자신감인 것이냐.”
잠시 말을 멈춘 화천대사의 입가에는 아주 환한, 찢어질 듯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 다섯 개의 염양을 네놈에게 던지면 네놈은 죽는다. 내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네놈은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는 뜻이다. 지금 모르겠느냐? 나는 네놈에게 아주 좋은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