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54)
제 55화
베커만이 노인을 물끄러미 응시하며 말한다.
“별거 아니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보다 이제는 본론으로 들어갔으면 하는데, 대체 ‘인체실험’은 언제부터 시작할 생각이지?”
“일단 이론은 완벽합니다. 가축들로 실험해 본 결과 대성공이었지요. 하지만 인간과 가축은 분명 다릅니다. 수명의 단축이 가장 큰 불안요소인데 이건 세포의 활성화를 약간 손보는 쪽으로 해서 실험을 하면…….”
베커만이 손을 들며 노인의 말을 끊는다.
“그래서.”
잠시 말을 멈추고는, 술잔을 탁자에 내려놓는다.
베커만이 노인의 눈을 응시한다.
“언제 시작할 거냐고, 물었는데.”
마나를 끌어 올리지 않았음에도 베커만은 위압감이 넘쳐흘렀다.
자그마치 인간족 최강의 남자가 아닌가.
맞은편에 있던 노인이 조용히 턱수염을 쓰다듬는다.
“음…… 황태자님께서 이 연구에 매우 큰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제 보니 베커만 님도 마찬가지 셨군요. 간단합니다. 피험자가 구해지는 그 즉시 실험을 시작하려 합니다. 하지만 베커만 님도 아시다시피 온건파의 견제가 꽤 심하지 않습니까? 그들 때문에 ‘재료’를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졌습니다. 재료만 있다면 참, 많은 게 달라질 텐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피험자를 구해 달라?”
노인이 희미하게 웃는다.
“예. 가능하면 마나에 재능이 뛰어난 그런 이들이었으면 좋겠군요.”
청년, 하인케스 베커만의 웃음이 짙어진다.
“좋군. 내일 중으로 피험자를 이곳으로 보내겠네.”
그 말을 끝으로 베커만은 코앞에 놓인 위스키를 깔끔하게 원샷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뒤쪽에 있던 한 청년.
거의 베커만과 동일한 나이로 보이는 남자가 다가오더니 손에 들고 있던 까마귀 망토를 베커만에게 건네준다.
“아. 그걸 물어보지 못했군.”
“어떤?”
까마귀 망토를 어깨에 걸친 베커만이 슬며시 고개를 돌린다.
“인간과 드래곤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인간. 그들을 뭐라고 정의하면 되겠나?”
노인이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는다.
마치 이미 생각하고 있는 단어라도 있는 듯이.
“저는 ‘그것’을 하프 블러드라고 부릅니다.”
“하프 블러드라…… 마음에 드는군.”
베커만이 몸을 돌리려던 그 순간.
찌이잉-!!
베커만과 그 앞에 있던 청년의 눈매가 찌푸려진다.
마나의 파동.
“박사, 혹시 이곳으로 누군가 오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나?”
노인이 고개를 젓는다.
“그럼 이 마나의 파동은 무엇이지? 분명 마스터의 기운인데.”
그때였다.
후웅-!!
작은 바람이 불어온다.
살벌하고도, 매서운.
교향곡이 시작되기 전 마에스트로의 움직임처럼 웅장한 그런 바람.
베커만은 경험상, 그리고 느낌상 이 순간 해야 할 행동을 알 수 있었다.
베커만뿐만이 아니라 그 옆에 있는 청년도 마찬가지.
쿠웅-!
두 사람의 몸을, 거대한 마나가 실드의 형체로 감싼다.
그러다 베커만은 고개를 홱 돌렸고, 노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거대한 마나가 노인의 몸을 덮고,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은 노인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무언가 말을 하려던 그때.
콰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거대한 화염이 주변을 휩쓴다.
두 청년은 그 자리에 박힌 듯 가만히 서 있었지만 노인은 아니었다.
쿠웅-!
노인이 실드에 휩싸인 채로 벽에 처박힌다.
그리고,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순식간에 주변에 있는 모든 벽과 파편들이 녹아내렸다.
용암. 그 이상의 극렬한 화기火氣.
노인이 겁먹은 표정을 짓는다.
덜덜덜 떨리는 그의 턱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베커만과 청년은 최대한, 스스로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한도로 몸을 보호했다.
그리고.
콰아아아앙-!!
한 번 더 폭음이 터진다.
이번 폭발은 달랐다.
그 자리에서 막아 낼 거라 생각했던 베커만과 청년은, 실드를 온몸에 두른 채 멀리 날아갔으니까.
그때, 베커만은 날아가는 와중에도 이를 악물었다.
그는, 보았으니까.
연구의 책임자.
노인의 몸을 뒤덮은 실드가 녹아내리고, 이어서 노인의 몸이 잿가루가 되는 것을.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 것이야!’
* * *
초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마법인 텔레포트는 기본적으로 10서클 마법이다.
10서클 마법임에도 해당 위치의 좌표를 머릿속에 입력해 놔야 하고, 마나를 배열하고 마법을 사용할 때 그 좌표를 마나와 호환하는 작업도 완벽해야 한다.
10서클 마법 중에서도 가장 난이도가 높은 마법.
마법사들의 꽃이자, 전쟁이 벌어졌을 시 가장 빛을 보는 마법이며, 공격 마법이 아님에도 가장 위협적인 마법 제1순위에 링크되어 있는 마법이기도 하다.
순식간에 바뀐 주변 풍경.
슬며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축축한 벽과, 코를 훅 하고 찔러 들어오는 역한 피비린내.
그리고 온갖 서류들과 긴 수정관에 담겨져 있는 수많은 종족들의 신체 부위.
이어서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언젠가 동굴에서 스승님을 보았을 때, 스승님을 묶고 있던 쇠사슬은 드래곤의 뼈로 만든 쇠사슬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 그때 보았던 쇠사슬이 또다시 등장했다.
알록달록한 몸.
덩치는 약 3미터에서 4미터 정도에 달하는 생명체가 쇠사슬에 묶인 채 벽에 매달려 있었다.
그뿐이랴. 팔 한쪽은 완전히 잘려 나가 그 아래로 피가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으며, 나머지 앞발과 두 개의 뒷다리, 그리고 심장 부근에 긴 쇠막대 같은 게 박혀 있었다.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냥, 매우 처참한 모습이다.
녀석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거대한 살의.
누군가를 특정한 살의가 아니라, 종족.
아니다.
자신을 제외한 그 모든 존재를 죽이고 싶어 하는 무한한 살의.
그 살의에 주변 마나도 반응한다.
실로 어마어마한 모습.
이렇게 감정에 반응해 마나가 움직이는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내게 스승님이 묻는다.
[어떻게 할 것이냐?]“음. 일단 제가 맡겠습니다.”
그 말이 끝이었다.
스승님은 고개를 돌렸고, 정면을 향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허공의 마나.
드래곤의 살의에 따라 반응하던 마나가 스승님의 손안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어서.
스승님이 주문을 외운다.
스승님의 손을 중심으로 거대한 열기가 사방으로 터져 나간다.
10서클 마법인 헬 파이어는, 공격 마법 중 최상위 마법을 손에 꼽으라고 할 때 무조건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마법이다.
스승님의 손을 중심으로 뻗어 나가는 마나의 향연.
그것들은 마치 거대한 화염구처럼 보이기도 했고, 거대한 불의 벽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불길에 닿는 그 모든 것들이 불타고, 재가 되고, 재가 되었던 것들은 이어서 소멸했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음이 이어지고, 손을 뻗고 있던 스승님이 다시 한번 주문을 외운다.
[헬 파이어.]콰아아아앙-!!
거참, 화끈하게도 지르시네.
손을 툭툭 털어 낸 스승님이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고는 천천히 하늘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나도, 스승님을 따라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분명 지하실이었다.
위로는 수백 년 전 국가의 유적이 남아 있었을 테지만 지금 나와 스승님의 눈에 보이는 풍경은.
그냥 달빛 말고는 없었다.
말 그대로 이 주변의 모든 것을 불태우고 녹여 버린 것.
지하실이 더 이상 지하실이 아니게 되었다.
내가 알기로 이 지하실은 굉장히 넓다.
넓이만 해도 약 3천 제곱미터.
심지어 지하 1층부터 지하 3층까지 있다.
하지만 지금 그 3층까지의 실험실이 순식간에 녹아 버렸다.
무슨 일이 이렇게 쉽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지만 직접 일을 처리한 게 나나 스승님이라면 이 정도는 당연한 거다.
스승님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주변에 있던 모든 것을 지웠느니라. 여기 말고는 없느냐?]“예. 여기가 끝입니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스승님이 슬며시 팔짱을 낀다.
[이제 네 할 일을 하거라.]고개를 끄덕이고는 고개를 돌렸다.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드래곤.
나도 녀석을 바라본다.
-크르릉…….
녀석이 낮게 으르렁댔다.
그 눈에 담긴 거대한 증오는 꽤나 인상적이다.
방금 일어난 이 참사에 살짝 당황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아직은 당황보다는 증오가 더 크다.
이놈 이거, 꽤 재미있는 녀석이었네.
내 머릿속에 전생의 한 기억이 떠오른다.
-나를, 제발, 죽여 줘.
드래곤의 성체는 보통 15m에서 20m까지 자란다.
먼 기억 속의 녀석은 지금과 거의 비슷한 3~4m 정도의 덩치였고, 생김새도 비슷했다.
한 가지 다른 건, 눈빛. 그리고 의사 표현이다.
-제발, 죽여 줘.
녀석은 그 말을 계속해서 반복했었다.
참고로 나는 녀석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그런 행동은 일절 하지 않았다.
그저 이곳의 위치를 알았고 이곳으로 왔으며 눈에 보이는 모든 실험체들과 연금술사들, 그리고 박사들을 모조리 죽였다.
그렇게 도착한 지하실이었다.
-제발, 잘못했어요. 저를 죽여 주세요. 제발.
완전히 넋이 나가, 본연의 정신 상태조차 유지하지 못하던 과거의 녀석.
-이젠 입도 열지 않을게요. 밥도 안 먹을게요. 제발 죽여 주세요. 제발. 제발.
일단 그 기억을 머릿속에서 털어 냈다.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녀석과 다시 눈을 맞췄다.
감각을 끌어 올리고, 집중했다.
그 이글거리는 눈 안에 약간의 절망과, 체념이 조금씩 피어오르고 있는 게, 내 눈에는 보인다.
그 감정을 나는 느꼈고 내 옆에 있는 스승님도 느꼈을 거다.
“색다르긴 한데, 그래도 해야 할 건 해야겠지?”
나는 천천히 등에 매고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기운을 담았다.
마나가 아닌 혼기.
혼의 기운이 미약하게 반응하고 그 기운이 장검을 뒤덮는다.
나와 검을 바라보던 녀석이 천천히 눈을 감는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들어 올린 검을 그대로 휘둘렀다.
서걱-!
이어서 촤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잘려 나간 쇠사슬이 바닥에 떨어진다.
시간 차를 두고.
털썩-
드래곤도 바닥에 쓰러졌다.
감았던 녀석의 눈이 떠진다.
그 눈에 약간의 안도감 같은 게 보였다.
아, 내가 죽지 않았구나 하는 그런 안도감.
땅바닥에 머리를 박은 녀석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본다.
증오의 뒤에 숨어 있던 두려움과 체념이, 모습을 드러낸 녀석의 모습은 확실히 전생에서 보았던 녀석과 달랐다.
짜식.
“어찌 보면 지금 온 게 꽤 다행일 수도 있겠네.”
-……뭐?
“18년 후의 너는 뭐라고 해야 하나. 되게 지쳐 보였거든.”
드래곤이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제발 죽여 달라고 애걸복걸하던 녀석이 원래 이런 녀석이었구나. 너, 살고 싶지?”
-…….
드래곤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저 맑은 눈물을 흘리며 나를 바라볼 뿐.
“부모한테 버림받고, 실험체가 되어 살이 갈리고 피가 빨리는, 심지어 가죽도 벗겨지는 그런 처지를 뭐라고 하는지 알아? 짐승보다 못한 처지라고 해. 그냥 개새끼 수준도 안 된다는 거지.”
눈물이 진해진다.
그에 반해 내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묘하게 대비되는 모습.
“놈들은 네 몸에서 벗겨 낸 가죽으로 갑옷을 만들고, 네 몸에서 뽑아낸 피와 잘라 낸 뼈로 이종결합을 시도할 거다. 실패하면 성공할 때까지 계속. 당연히 그 실험에 네 의사 따위는 없어. 놈들이 산 채로 너를 해부하고, 강제로 재생시키고 다시 해부하는 그 과정을 너는 전부 느끼게 될 테고 결국 정신이 나가겠지. 그 끝에 있는 거? 간단해. 너는 이지마저 잃어버리고 누군가에게 원한을 품지도 못한 채 불특정 다수에게 제발 죽여 달라고 애원하는 그런 삶, 그게 널 기다리고 있겠지. 그걸 원해? 그렇게 실험당하다 죽고 싶어?”
-흐윽……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