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fe of an actor of a former idol RAW novel - chapter 12
연진의 답변에 이세진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또 물었다.
“수영 실력이 어떻게 되시죠? 혹시, 수중 장면 촬영을 해야 한다면 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네, 안전한 촬영이라면 괜찮습니다.”
선아와 정민도 세진과 같은 생각을 했는지 더 이상의 질문은 없이 그저 웃음만을 보였다.
“촬영은 6월 마지막 주로 예정되어 있는데… 그땐 시간이 괜찮으실까요?”
“아, 그땐 방학 전일 거 같은데…. 주말에는 괜찮고, 평일에도 촬영해야 할 것이 있으면 조퇴할 수 있습니다.”
연진은 기말고사 기간이 언제인지 정확하게는 몰랐지만, 평일엔 조퇴할 수 있을 거 같아 대답했다.
“네, 그럼 상의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오디션 지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세진이 웃으며 긍정의 사인을 보냈다.
“네, 고맙습니다.”
정연진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후 세미나실을 나가고 문이 닫히자, 선아가 세진의 팔을 툭 치며 말했다.
“대박. 지금 내가 한 생각 너도 한 거지?”
이세진은 빙긋이 웃으며 모호하게 대답했다.
“김선아, 네 생각은 뭔데?”
질문은 김선아에게 했지만, 대답한 건 박정민이었다.
“뭘 또 선문답하고 앉았냐. 그냥 쟤, 주인공 세현이 시키고 싶다고 생각한 거지? 니네도?”
역시나 셋 모두 정연진의 연기를 보면서 같은 생각을 했다.
“캐릭터 해석도 좋았고, 딕션도 좋았어.”
선아의 말에 이세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현했다.
“그러게. 대본에 많은 내용을 넣지 않았는데 잘하더라.”
“연기한 지 두 달 되었다는 건 거짓말이겠지? 너무 잘하던데.”
“글쎄. 뭐, 연기도 재능이니까. 타고났나 보지.”
세진은 자신이 말하고도 피식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 얼굴에 그 재능이라, 그것참 부러운 놈일세.
“잘생겨서 대충 찍어도 그림 되겠더라. 아까 걔가 주인공 하면 내가 진짜 기깔나게 찍어 준다.”
의욕이 넘치는 정민의 말에 정연진이 연기할 세현을 그려 봤다. 무비캐스팅 사이트에 올렸던 간단 시놉시스는 휴먼 드라마인 것처럼 쓰여 있었지만, 이세진의 시나리오는 반전을 담은 스릴러물이었다.
그들 셋은 정연진의 반듯한 얼굴로 살인을 저지르고 대범하게 행동하는 주인공 세현을 본 것이었다.
소름 끼치게 잘 어울렸다.
세현 역은 캐스팅 중인 같은 과 후배가 있었지만, 답을 주지 않아 다시 한번 제안할 예정이었는데 그러지 않아도 될 듯싶었다. 그들은 즐거운 상상을 하며 다음 오디션 지원자를 기다렸다.
* * *
오디션을 본 세미나실을 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아귀처럼 덤비겠다는 생각만을 하며 연기를 하긴 했는데, 생각보다 긴장을 많이 했던 것 같았다. 찬물을 틀어 세수하고 거울을 바라봤다.
잘했다, 정연진.
긴장은 했지만 보여 줄 수 있는 건 다 보여 줬다. 그럼 된 거지, 뭐. 선생님 말씀을 기억하며 아귀처럼 잘 덤벼들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이게 내 인생 첫 오디션이었다. 과거에는 오디션을 볼 일이 없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준비된 길로 따라가기만 했었으니…. 연기가 하고 싶어서 내가 직접 지원하고 처음으로 본 오디션.
벅찬 기분이 들었다. 아직도 심장이 조금 두근거리는 듯도 하고. 심사위원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고, 아니 그 반응은 솔직하게 말해서 좋았던 거지.
이후 일정에 대해서 상세하게 물었던 것도 그렇지만 수영을 할 줄 아느냐고 물었던 건 매우 긍정적인 신호다였다. 나는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다. 연예계에서 10년을 굴렀는데 이 정도를 모르면 안 되지.
어쩌면 배역이 바뀔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듯싶었다.
수영은 과거에 꽤 오래 했었던 운동이었다. 아이돌 시절 무릎 연골이 상하고 나서 러닝 같은 유산소 운동을 하기가 힘이 들어 선택한 운동이 수영이었다.
과거의 나는 열여덟이던 지금 수영을 할 줄 몰랐지만, 조금 연습하면 감을 잡을 수 있을 듯싶었다. 자전거 타기나 수영, 운전 같은 건 한 번 배워 두면 오랜만에 하더라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것들이니까.
내일은 수영을 해 봐야겠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며 무비캐스팅 사이트에 들어가 오늘 오디션을 봤던 기적의 모집공고를 다시 살폈다. 아까 보았던 감독의 얼굴이 익숙한 듯싶은 게 걸렸기 때문이다.
무비캐스팅에서 고등학생 배우 모집 공고에는 거의 지원했던 터라 스태프들까지 보진 않았다. 경험을 쌓기 위해서 지원을 한 것이기도 했고, 고등학생 배우를 찾은 공고는 많지 않은 편이었기도 했다.
회귀 전에도 단편 영화를 본 적도 출연한 적도 없어서 감독이나 스태프들까지 살펴보진 않았는데….
감독 : 이세진
아, 이세진 감독이었구나. 공포 영화로 상업 장편 영화 데뷔해서 흥행에 성공했고, 이후엔 스릴러물로는 드물게 500만 관객을 찍었던 영화의 감독이었다.
OTT가 시장을 주도하게 되면서 팝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의 연출도 했었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 드라마가 흥하던 시절, 장르물이었던 이 감독의 드라마도 꽤나 잘나갔었다.
공포물과 장르물임에도 스타일리쉬한 연출을 하는 감독이었고, 세 작품 모두 재미있게 봤었다. 뜻하지 않았는데 미래에 잘나가는 감독의 졸업 작품에 출연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런 걸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아니, 어쩌면 그저 운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당장은 이세진 감독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움직인 결과 예기치 않은 운이 따라온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맞을 듯싶었다.
과거로 돌아온 직후에는 모든 걸 가볍게 생각했었다. 앞으로 잘될 음악이나 영화, 드라마를 알고 있으니 그걸 이용해서 돈도 벌고 이용할 수 있겠다고.
아직 이 지식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에 대해서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투자를 할 방법이 있다면 솔직히 하고 싶었다. 고등학생이라는 내 신분과 아버지가 어찌 생각하실지 몰라 망설이고 있을 뿐.
그러나 지금 내가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해서, 성공할 드라마나 영화만을 따라가며 남의 기회를 가로채는 건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나는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은 거지, 성공한 연예인이 되고 싶은 건 아니니까. 그렇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피하진 않을 생각이다.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한다. 그리고 기회가 온다면 잡는다. 그것이 지금 내가 세울 수 있는 기준선이다.
이것이 어쩌면 내 마음 편하여지자는 자기 합리화일 수도 있다. 다시 한번 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건 일종의 치트 키니까.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을 테고, 어쩌면 반대로 마음에 걸려 어떠한 것도 할 수 없어질 때도 있겠지.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는 선을 긋고, 마음을 단단히 해야 할 것 같다.
생각이 많아질 필요는 없다. 단순한 명제를 따를 것이다. 행복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한다. 목표를 세웠으니 지금은 그저 열심히 하는 것이다.
버스는 어느새 집 근처에 와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며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저 지금 버스에서 내렸어요. 단지 앞이요.”
[그래, 오디션은 잘 봤고?]“잘 모르겠어요. 결과 나와 봐야 알죠.”
[그래, 열심히 했니?]“네. 최선을 다했어요.”
[잘했다. 그럼 됐어.]“아버지, 저녁 밖에서 먹을까요?”
[뭐 먹고 싶은데?]“고기요.”
“네. 조심히 오세요.”
불안한 마음이 들 때나 생각이 부정적으로 흐를 때, 아버지를 찾게 되었다. 전화 통화를 한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고기. 오늘 저녁은 소고기를 사 달라고 해 볼까. 맛있는 걸 먹으면 아마 지금보다 기분이 더 좋아질 것이다.
고기는 고기니까.
고기는 소중하니까.
고기는 사랑이니까.
방송국 놈들이나 영화하는 놈들이나
오디션장에서 반응이 좋았기에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 빠르게 연락이 왔다. 아버지와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왔는데 일요일에 만날 수 있겠냐고 해서 바로 약속을 잡았다. 대충 통화 내용을 들으신 아버지가 물으셨다.
“붙었어? 그런 거야?”
어쩐지 표정이 나보다 더 기쁘신 듯싶었다. 지금 내 표정도 아마 아버지랑 똑 닮아 있을 테지. 이제야 제대로 보였다. 많은 면에서 나는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는 것이. 우리 아버지가 이렇게 표정이 풍부한 분이시라는 걸 왜 진즉에 몰랐을까.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했다.
“네. 그런 거 같아요. 내일 만나자고 하는데 이야기를 들어 봐야 알 거 같아요.”
“잘했다. 우리 아들. 연진아, 잘했어.”
어깨를 도닥이시며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손길이 다정했다. 크고 따뜻한 아버지의 손. 이 다정한 손이 내 곁에 있음에 울컥하게 된다.
이제 겨우 시작인 내 걸음을 나보다 더 절실하게 응원하는 아버지가 지금 여기에 함께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크게 느껴졌다. 회귀 전, 무수히 많았던 크고 작은 성공에 나는 이렇게까지 행복해했었나? 아니, 아마도 아니었을 거다.
멤버들이며 매니저, 스태프들에 둘러싸여 축하하고 받았어도 이렇게 온전하게 기뻐하진 못했던 것 같다.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 남의 자리를 차지하고 얻은 것 같은 성공들. 그때의 나는 늘 그런 부채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때의 모든 것들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지금은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하지만, 그래도 내겐 일어났던 모든 일들. 그런 과거가 존재했기에 나는 지금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고 내가 지켜야 할 것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것들이 얼마나 큰 가치를 가지는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내 기억에만 있는 그들 모두가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들 역시도 과거 그랬던 것처럼 성공하고 축하를 나누며 행복하기를.
만나기로 약속한 시각보다 조금 일찍 카페에 도착했는데 이세진 감독과 어제 오디션장에서 만난 심사위원 중 한 명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자, 자신을 김선아라고 소개한 조감독이 말했다.
“어제 연기 보고 깜짝 놀랐어요. 필모가 전혀 없으셔서 그렇게 잘하실 줄 몰랐거든요.”
분위기를 풀어 주는 가벼운 칭찬에 웃음으로 답했다.
“고맙습니다.”
분위기를 풀기 위한 소소한 대화가 이어지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이세진 감독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희는 정연진 배우님을 주인공인 세현 역으로 캐스팅하고 싶습니다.”
“아, 네….”
“음… 그런데 세현 캐릭터 자체가 좀… 무겁습니다. 뭐, 시나리오 보실 테니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작품은 반전 스릴러고, 세현이는 범인… 그러니까 살인자입니다.”
“네?”
아니요, 감독 양반. 휴먼 드라마처럼 써 놨으면서!
와, 제일 못 믿을 게 방송국 놈들이고 영화하는 놈들이라지만 이런 급발진이라니. 분칠한 것들 믿지 말라고 하면서 사실 제일 못 믿을 건 이렇게 만드는 것들인 거지. 그래, 그런 장르물을 만들어 냈던 이세진 감독 졸업 작품이 휴먼 드라마라니… 심하게 안 어울리긴 했지.
“하하… 그래도 직접적으로 살인을 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아요. 분위기도 그렇게 무거운 건 아니고요.”
내 표정에서 매우 놀란 것을 눈치챈 김선아 조감독이 말을 보탠다.
“아무래도 미성년자시고 해서 이런 캐릭터를 연기하시는 데 부담을 가지실 것 같아서 먼저 말씀드리는 거고요. 시나리오 가지고 가셔서 읽어 보시고 부모님과도 상의해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아, 네… 그렇겠죠.”
정리하자면, 휴먼 드라마처럼 소개된 영화는 주인공이 살인을 저지른 반전이 있고, 주인공 캐릭터가 쉽지 않으리라는 것. 그렇다면, 내가 해석했던 주인공의 친구인 소년과의 대화는 뭐였을까?
“아… 그럼 혹시 제가 오디션을 봤던 소년은 주인공의 살인을 감추는 장치가 되는 장면인가요?”
내 질문이 의외였을까 이세진 감독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