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ntel life of the returning champion RAW novel - Chapter 183
귀환 용사의 인방 생활 182화
본격적인 쇼핑에 앞서, 디지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을 세웠다.
태평양이라는 지구 최대의 대양을 넘어 행하는 침공.
분명 미국 서부 근해부터 전쟁의 무대가 될 터였다.
[유닛: 대물 구축함(monster destroyer)]그런 의미에서 크립티드의 해양 괴수 전용으로 제작된 군함은 좋은 선택지 중 하나였다.
‘하지만 한계가 많아.’
소모 공헌도가 꽤 크다. 바다에서 충분한 공헌도를 쌓지 못하면, 다른 병력들이 육지를 점령하는 동안 후방을 맡아야 한다는 뜻.
그러므로 탈락.
‘역시 만만한 건 기동 전차인데.’
일전에도 운용한 바 있는 병기. 전지적 1인칭 지휘가 있으니 레일건 폭우 등 자신만이 가능한 필살기를 선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휴먼 영역에서야 충분히 기동 작전이 가능했지만, 크립티드의 본토에서는 얘기가 다를 거야.’
범용성의 휴먼, 수성전의 사이커, 그리고 인해전술의 크립티드.
기동 전차가 아무리 빠르다 한들, 크립티드가 말 그대로 괴물의 장벽을 만들어버린다면?
육상 병기로는 한계가 있다. 그것이 디지의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역시 크립티드 상대로는 공중전이 잘 먹히겠죠.”
휴먼이 크립티드를 상대로 상성상 우위를 차지하는 이유.
포격 능력, 비행 유닛 부분에서 상대적 약세인 크립티드를 상대로 거리의 전술을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닛: 컴뱃 플레인(combat plane)]그를 가능케 하는 게 바로 이 유닛.
일전에 촉수를 이용해 핵폭발 현장을 빠져나갔을 때 매달렸던 것과 같은 전투기였다.
“현명한 선택입니다. 전투기는 전략적 다양성이 가장 넓은 유닛이니 디지 소장의 장점을 십분 발휘할 수 있을 겁니다.”
맞는 말이다. 컴뱃 플레인은 공중 기체임과 동시에 휴먼 진영에서 가장 이동 속도가 빠른 유닛이기도 했으니.
‘재밌겠다. 자동차에 거대 로봇 운전해 봤으면 이제 전투기도 몰아봐야지.’
전략적으로 가장 옳은 선택임과 동시에, 재미도 잡고, 방송적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을 터이니 일석삼조다.
“다나까 상. 소장 진급이라고 했죠. 그럼 휘하 병력은 얼마쯤 될까요?”
“얼마나 원하십니까?”
“음.”
보통 일개 사단의 규모는 약 3만 명.
‘병력 규모가 너무 크면 어쩔 수 없이 움직임이 둔해질 수밖에 없어.’
그와 휘하 병력들은 침공의 선두다.
끊임없이 이동하고 전투를 벌이며 활로를 뚫어야 한다는 뜻.
한국식 군대로 비유하자면 수색대, 해병대의 역할인 셈이다.
“1만 명.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전보다 두 배가량 늘긴 했지만. 여전히 여단 규모를 유지할 생각입니까”
“네. 제 능력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라도 그 정도가 좋을 것 같네요.”
사실 1만 명도 지나치게 많다. 야전 지휘관의 한계는 보통 대대장, 커봐야 연대장급이니까.
‘수가 너무 작아도 한계가 있으니 1만 명 정도가 딱이야.’
하여튼, 규모가 정해졌으니 쇼핑을 시작할 때였다.
[유닛: 배틀 캐리어(battle carrier)]컴뱃 플레인 함재 및 임시 보급 기능을 갖춘 공중 전함을 구매했다.
이걸 이동용 지휘통제실로 삼으면 될 것 같고.
남은 공헌도는 몽땅 컴뱃 플래인과 병기 추가로 소모…….
[공헌도가 부족합니다.]“아?”
배틀 캐리어 탑승 인원이 3천 명이길래 컴뱃 플래인을 천 기 정도는 운용하고 싶었는데, 공헌도가 턱없이 부족했다.
“다나까 상…….”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다나까가 피식 웃었다.
“하여간 이럴 때는 초짜인 티를 풍깁니다. 애초에 본인 공헌도로 휘하 병력을 몽땅 무장시키는 지휘관은 없습니다.”
다나까가 허공에서 무언가를 조작했다.
[디지 여단장 휘하에 공중전투대대 5부대가 배속됩니다.]캬, 이래서 사람은 권력을 가져야 하는 거구나.
군단장쯤 되니까 조작 몇 번으로 문제를 해결해 버리네.
그렇게, 디지 휘하에 배틀 캐리어 1기와 컴뱃 플래인 1,000기의 편제가 완료되었다.
* * *
깊고 깊은 심연. 칠흑과도 같은 어둠 속.
한 줄기 빛도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다.
말하자면, 지하. 혹은, 만약 가능하다면.
무언가의, 아주 거대한 생물체의 내부.
그 순간이었다.
심해아귀의 초롱불처럼 순간적으로 퍼져 나가는 섬뜩한 빛.
그 바람에 어둠이 밝혀졌다.
츠즈즈즈즈즈-
공포증(phobia)이란 단어가 있다.
특정한 대상에 강박적인 두려움을 품는 정신적 병증을 일컫는 용어.
어둠의 내부는 그러한 병증을 가진 이들의 공포를 자극하는 구석이 있었다.
일정 간격으로 반복되며 무수히, 정말 무수히 솟아나 있는 징그러운 돌기들.
그 아래를 가득 채운 채 바다처럼 파도치는 촉수의 물결.
‘언제 봐도 없던 환 공포증이랑 촉수 공포증이 생길 것 같은 풍경이란 말이지.’
그래서 좋은 거지만.
전 세계 코즈믹 호러 마니아들의 압도적 1픽인 크툴루 신화.
H.P.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한, 우주적인 존재에 대한 초자연적인 공포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관.
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품을 것이다.
크립티드는, 세 종족 중 가장 매력적인 종족이라고.
그런 생각을 하며 촉수를 내뻗는다.
200여 미터가 넘고 그에 걸맞는 굵기의 촉수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럽게 움직이곤 어둠의 중심에 닿는다.
다시 한번 점멸하는 섬뜩한 빛. 이후의 암전.
그리고, 연결되었다.
그 아 아 아 아 아 아 – !
오직 크립티드만이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거대한, 초월적일 정도로 거대한 의지.
어둠뿐인 눈앞에 하나의 심상이 형태를 갖춘다.
인간 따위는 개미로 보일 정도로 거대한 괴물.
그 꼭대기에 솟아난,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인간의 여인.
그는 황홀감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퀸. 인간의 영웅이었으나 종의 한계를 초월하여 모든 생명의 주인이 된 자.
그가 모든 노력을 쏟아부어 창조해 낸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존재.
“나의 여왕, 모든 크립티드의 어머니시여. 하찮은 벌레들이 당신의 둥지를 더럽히려 드노니. 당신의 가장 아들이 인간을 요리하여 진미를 진상하겠나이다.”
번역기를 켜면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이커와 달리, 크립티드의 의사 소통은 언어의 형태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남자가 내뱉은 미사여구 가득한 말은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었지만.
담긴 뜻만은 호르몬과 생체 신호의 형태로 변형되어 퀸에게 전해졌다.
그 아 아 아 아 아 아 – !
퀸의 머리칼, 수없이 얇은 촉수 중 하나가 길게 뻗어지더니 남자에게 닿았다.
짜릿한 흥분감과 함께 여왕의 의지가 전해진다.
“그리하겠나이다. 모든 인간을, 당신이 낳을 아이들의 영양분으로.”
촉수의 연결이 끊긴다. 그 사실에 아쉬움을 느끼며, 남자는 몸을 움직였다.
정말 거대한 무언가의 창자, 혹은 알을 낳는 곤충의 총배설강처럼 보이는 통로.
그곳에 머리를 들이밀자 구태여 움직이지 않아도 통로가 꿈틀꿈틀 수축과 확장을 반복하며 그의 몸을 외부로 밀어낸다.
기분 좋은 쾌감이 전신에서 느껴지길 10여 분.
마침내 끈적한 점액질에 감싸인 몸이 여왕의 꾸물텅거리며 외부로 배출되었다.
몸을 말릴 겸 체면적을 늘리기 위해 팔다리 대신 거대한 촉수 다발을 쭈욱 뻗어 기지개를 켜면서, 그는 생각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산란당하는 기분이란 말이지. 나의 여왕으로부터.’
현실 세계에선 느낄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흥분을 느낄 수 있는 세계.
그렇기에 남자는 어스워즈가, 그리고 크립티드가 진심으로 좋았다.
‘이 즐거움을 오래오래 누리려면, 크립티드를 전쟁의 최종 승자로 만들어야겠지.’
어스워즈는 최종 승리한 종족이 주인공이 되어 대우주로 진출하는 내용의 후속 버전 발매가 예정된 게임이다.
일반인은 알 수 없는 대외비 정보였지만 남자에겐 그 사실을 알아낼 수 있는 돈과 권력이 있었다.
“다들 들었지? 어떻게 휴먼을 요리할지 아이디어 있으면 말해보라고.”
남자의 말이 떨어지자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시청자들이 일제히 채팅창을 도배했다.
-lol! 인간 따위 물량으로 밀어붙이면 그만 아니겠어?
-ZL 당신이 나선다면 휴먼 따위 크립티드의 영양분 덩어리지!
-그나저나 여왕은 언제 봐도 이쁘네.
-Tentacle Hair… spank! spank! lololol!
남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Fuck off! 내가 말했을 텐데? 나의 걸작품에 그딴 욕망을 품지 말라고.”
진심 어린 짜증이 묻어 나오는 날카로운 말투.
스트리머 중에 빠따질을 하는 쎈 캐로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이들이 꽤 있는 건 사실이었으나, 남자의 어조는 시청자를 고객으로 삼는 스트리머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그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대신 그에게 짜증을 선사한 시청자를 질타했다.
-매니저! 딱 봐도 방송 안 보던 신입인 것 같은데 관리 좀 해!
-우리 ZL 님이 화나셨잖아!
-하여간 눈치 없는 너드 새끼들은 어딜 가나 있다니까.
-ZL, 기분 풀어요…….
다른 스트리머들과는 달리, 시청자가 철저히 을인 방송.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짜증 나니까 기분 전환 한 번 한다. 매니저들, 방금 헛소리한 놈 채팅 밴 때려.”
그렇게 말한 남자가 시스템 창을 조작했다.
[시청자 이벤트가 시작됩니다.] [채팅으로 For Queen을 입력한 선착순 3명을 선발합니다.]시청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채팅을 치기 시작하고, 순식간에 채팅창이 솟구쳤다.
-For Queen
-For Queen
-For Queen
-For Queen
-For Queen
-For Queen…… shit, 바로 쳤는데 6번째야.
-다들 매크로 돌리는 게 아닐까 의심돼.
-Fuck! 다들 손가락 속도가 말도 안 되게 빠르군 TT
“뽑힌 놈들, 개인 메시지로 계좌 보내.”
곧바로 도착한 세 통의 개인 메시지. 손가락을 몇 번 놀린 남자가 말을 이었다.
“다들 알지? 인증 바로 박도록.”
[TentaPlay 님이 1달러를 후원합니다.] [해당 후원은 이미지 후원입니다.] [TentabladeDoubleXX 님이 1달러를 후원합니다.] [해당 후원은 이미지 후원입니다.] [MONSTEROVE 님이 1달러를 후원합니다.] [해당 후원은 이미지 후원입니다.]방송 화면에 떠오르는 세 개의 이미지.
전부 10만 불이 입금된 계좌 내역이었다.
-TTTTTT 조금만 빨랐으면 내 돈이었는데.
-차를 튜닝할 기회를 놓쳐 버렸어.
-한 번 더 부탁해, MONEYZL!
-원 모어 찬스 플리즈, Bro! lololololol
고작 선착순 시청자 이벤트로 즉석에서 3만 불, 한화 3천만 원이 넘는 거액을 뿌려버린 남자, 머니ZL이 코웃음을 쳤다.
“행운은 쉽게 오지 않는 법이라고, 친구들. 원한다면 날 즐겁게 해봐.”
말을 하는 사이, 시청자 이벤트를 했단 소문이 퍼졌는지 시청자 수가 폭증하고 있었다.
[MONEYZL님의 방송(224,589명)]머니ZL. 미국계 스트리머 겸 인플루언서.
가장 큰 특징.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고 태어난 재벌 3세.
시청자가 을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머니ZL은 수익 창출 목적으로 스트리밍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심심하면 시청자 이벤트로 돈을 뿌려댈 정도로 쾌락적 재미를 추구하는 스트리머였으니까.
-lol ZL은 취향이 까다로워서 즐겁게 만들기가 어려운데.
-에브리원, 머리를 짜내봐!
-휴먼을 단번에 이길 방법을 알려주면 좋아해 주시지 않을까?
-BUT 요새 휴먼이 워낙 기세가 좋아서.
-이건 어떨까, ZL? 요새 휴먼에서 제일 잘 나가는 스트리머가 있어. DG라고 하던데.
“DG?”
-Yeah 그는 보면 감탄이 나오는 재능의 소유자야.
-ZL도 보면 좋아할 거라고 믿어.
-오랜만에 머니의 힘을 보여줄 대상으로, 한번 살펴보는 거 어때?
시청자들이 전해준 DG의 정보를 모두 읽은 머니ZL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런 유저가 휴먼에 있었나. 마침 지금 방송 중이라고? Okay. 한번 볼까.”
흥미가 돋았다. 머니ZL은 곧바로 디지의 방송에 들어갔다.
그리곤, 당황에 빠지고 말았다.
“소장님! 정말 안 됩니다!”
“아, 왜!”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사단장이시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어허. 군인은 상명하복이다. 몰라?”
디지로 추측되는 스트리머에게 매달린 장교 NPC가 울부짖었다.
“아무리 그래도 사단의 최고위 지휘관께서 일개 전투기 파일럿을 하시겠다뇨오오오오!”
어이없단 표정을 지은 머니ZL의 입에서 한마디가 툭 튀어나왔다.
“저 친구, 혹시 얼간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