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rd of another world is well fed RAW novel - Chapter 119
“과연 명안이십니다!”
뜻이 확고해보이는 백작의 말에 가신들이 얼른 맞장구를 쳤다.
얼핏 아부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단순히 백작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찬성을 하고 나선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피난민 구호라는 명목으로 나선다고 하더라도 대영주이신 주군께서 직접 나서는 건 지역 간 세력 싸움으로 비칠 것이다. 그러니 적당한 인물을 내세우는 것이 좋겠지.’
‘교역과 관광업으로 먹고 사는 에버그린이 주도하는 모양새가 좋긴 해. 전쟁으로 사회가 혼란해진다는 건 결국 에버그린에 피해가 간다는 것이니 명분도 훌륭하고.’
‘신임 준남작이 제국에 대한 충성심으로 불타올라 어떻게든 다른 영주를 돕기 위해 시작한 일로 소문을 낸다면 세간의 평가도 우호적일 것이다.’
결론은 하나였다.
도미닉을 하루빨리 준남작으로 추대하는 것!
경쟁의식?
질투와 시기?
이미 에버그린의 시장으로 올랐을 때부터 그를 귀족으로 맞이하는 것이야 정해진 일이나 마찬가지라고 여겼던 가신들이다.
시기의 문제였던 것뿐이니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주군.”
하지만 행정을 담당하는 가신 하나가 싱클레어 백작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에버그린의 시장을 봉하시려는 준남작은 명예직이 아닌 유급직이라고 사료되는데 맞습니까?”
“그러하다. 단순히 기분만 내려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것을 바라볼만한 인물이지 않은가.”
지방의 대영주가 준남작의 직책을 내리는 것은 두 가지 경우가 있었다.
첫째는 명예직으로 준남작이라는 최소한의 귀족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특권을 주며 대영주 자신의 권위와 영향력을 확대하는 케이스였다.
다만, 명예직으로 내린 준남작 지위를 받은 자는 대영주와의 충성 서약으로 얻은 자리가 아니기에 자신이 가진 땅에서 세금을 받거나 할 수 없었다.
두 번째는 유급직이었다.
자신의 장원이 생긴다면 그 곳의 평민들이나 소작농으로부터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이.
대부분의 기사들이나 젊은 가신들이 여기에 속했다.
이들은 충성 서약을 통해 대영주의 세력권 안에 포섭이 되었기 때문에 차후 큰 공을 세우면 대영주가 직접 황제에게 장계를 올리고 세습 귀족으로 갈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돕기도 했다.
“작은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유급직 준남작에 봉해지기 위해서는 충성 서약을 한 뒤, 삼 년 이상 대영주의 휘하에서 봉사를 해야 합니다.”
“음?”
“지키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만 앞으로 중앙 정계까지 염두에 두고 계신 것이라면 빌미를 줄 수야 없겠지요. 다른 것도 아니고 신분이 달라지는 최초의 지점이니 잡음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싱클레어 백작의 얼굴이 낭패감에 찌푸려졌다.
그동안 가신들이나 기사들을 유급직의 준남작으로 봉한적이 십 수 번이나 있었지만 한 번도 이와 같은 문제가 생긴 적은 없었다.
‘하긴. 기사들은 종자나 병사로 군적에 이름을 올리는 순간부터 충성 서약을 하니 문제 될 것이 없고, 가신들 역시 마찬가지였으니 삼 년이라는 기간이 문제가 될 수가 없었겠군.’
싱클레어 백작이 혀를 끌끌 차는 것을 본 재정관이 얼른 말을 꺼냈다.
“시장이 되기 전에 이미 에버그린의 촌장으로 있었으니 기간을 맞출 수 있지 않은가? 촌장들도 약식이긴 하나 영주님께 충성 서약을 하니 말이야.”
“그것도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미리 가져온 도미닉에 대한 서류를 뒤적거리며 행정관이 한숨을 푹 쉬었다.
“서류를 보니 원래 에버그린의 촌장은 칼론이라는 자였습니다. 개척마을을 일군 자이군요.”
“그래, 그 자가 도미닉 님에게 촌장 자리를 넘겼으니 충성 서약을…”
“촌장 자리를 넘긴 게 아닙니다.”
“뭐?”
테이블 위로 얼른 서류 하나를 올리며 한 쪽을 가리켰다.
“촌장이 바뀌려면 행정 절차를 여럿 밟아야 하지요. 하나 이 부분이 작은 마을 촌장들에게는 꽤나 번거로웠을 겁니다. 사실 몰랐을 수도 있고요. 인구가 천 명이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의 촌장이라면 법이나 행정에는 무지했을 테니.”
“그, 그래서?”
“대다수의 작은 마을 촌장들은 여러 이유로 촌장을 바꿀 때, 공식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그저 대리 신청을 하는 것으로 끝을 냅니다. 이건 그냥 촌장 회의에 통보만 하면 되거든요.”
“어허! 그런 일이!”
“이후 기존의 촌장이 죽거나 병들게 되어 직무를 처리할 수 없게 되면 촌장 대리가 다른 과정 없이도 촌장이 되니 모두 이렇게 하는 것이지요.”
“그럼 도미닉 님은 공식적으로 촌장이 아니었단 말인가?”
“예. 당연히 충성 서약도 하지 않았고요.”
회의실에 침묵이 흘렀다.
“법전을 가져오도록.”
백작도 직접 법전을 들추기 시작했다.
중앙 귀족의 서부 영지를 약탈할 해양 왕국.
그들의 마수에서 제국민을 구한다는 명목으로 불같이 일어나 수천에 달하는 인구를 빼오고, 이를 통해 남부의 저력을 과시하여 집단 이주 광풍을 만들려는 계획!
성공만 한다면 인구 수에서 밀려 언제나 정치적으로 소외당하던 남부가 부상할 수 있는 발판이 될 텐데 겨우 이따위 법 조항 때문에 이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방법이 없나?’
하지만 아무리 준남작 봉작과 관련된 내용을 뒤져봐도 다른 방법이 보이질 않았다.
아니, 병사들만 하더라도 충성 서약을 한 것으로 보면서 촌장 대리가 그러지 말라는 건 또 무슨 경우인가 싶어 짜증이 슬슬 올라오는 싱클레어 백작.
‘음? 잠깐.’
그러다 무엇인가를 생각한 것인지 봉작 관련 페이지에서 벗어나 귀족의 군사 훈련과 관련된 법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되겠는가?”
마침내 백작이 만면에 웃음을 띄고 한 가지 조항을 손으로 가리켰다.
모두가 그의 손 끝에 시선을 두더니 ‘과연!’ 하는 감탄사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
“뭐지? 왜 또 기다리라는 걸까?”
“회의가 길어진다는 말, 듣지 않았는가.”
“그러니까요. 그 회의가 왜 길어지냐는 거죠, 제 말은.”
백작성에 이미 도착한 도미닉과 이안은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설마 피난민 구호에 앞장서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시려는 건 아니겠죠?”
“…백작님을 뵈러 온 것이 그 부탁을 하려던 것이었구나.”
“제가 나설 수야 없잖아요. 내가 뭐라고. 대영주께서 나서주셔야 되는 사이즈이기도 하고, 정치적으로 부담이 된다면 휘하의 다른 귀족들을 내세워도 되는 거니까.”
“그럼 그대는 무엇을 하고?”
“저야 백작님께서 피난민들을 잔뜩 데리고 오면 그 중에 쓸만한 장인들과 농민들을 좀 빼오려고요. 벌써 마을 두 어개 새로 만들 준비도 싹 다 마쳤다고요. 아카데미 앞 쪽도 슬슬 개발해야 하니까.”
“그대가 직접 나설 마음은 없고?”
“제가요? 우하하하! 제가 그걸 어떻게 해요.”
이안의 말에 도미닉이 무슨 그런 웃기는 소리를 하냐는 듯, 크게 웃었다.
‘난 그냥 콩고물이나 받아 먹을 거야. 괜히 남의 떡에 눈독 들여봐야 체하기나 하지.’
이미 다 계획을 자 둔 도미닉.
백작이 피난민들을 구해오면 자신이 조금 떼 먹고, 남은 건 최대한 자신과 친한 촌장들에게로 분산할 생각이었다.
‘그럼 결국 대부분을 에버그린의 영향력 아래 둘 수 있지.’
일부러 백작성까지 오는 길에 여러 마을을 지나치며 인구를 받아들일 여유가 있는지 없는지 체크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
하지만 사람 일이 어디 그렇게 뜻대로 풀린단 말인가.
“가신단 회의가 끝이 났습니다. 백작님께서 부르시니 얼른 채비하고 가시지요.”
시종의 안내를 받으며 익숙한 회의실에 들어섰다.
가장 먼저 도미닉의 눈에 들어오는 건 부담스러울 정도로 자신을 흐뭇하게, 또 기특하게 바라보는 가신들이었다.
‘다들 이번 계획이 마음에 들었나 보네.’
도미닉이 태도를 바로했다.
“에버그린의 시장, 도미닉이 영주님을 뵙습니다.”
“인사는 생략하지. 해야 할 말이 많으니.”
“예.”
백작의 손짓에 얼른 자리에 앉자, 기다렸다는 듯 사람들의 입이 열렸다.
“어떻게 이런 일을 미리 짐작하고 발견했단 말인가! 행운의 여신도, 지략의 신도 모두 그대를 어여쁘게 보는 것이 아니겠나.”
“과찬이십니다, 재정관님.”
재정관을 시작으로 도미닉의 노고를 치하하는 가신들의 인사가 끝도 없이 이어지자 결국 백작이 제지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만들 하게. 정작 가장 중요한 말을 계속 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내 나중에 성대한 파티를 열테니 모두 그 곳에서 마저 이야기들 나누는 게 좋겠어.”
“예, 주군!”
“저, 백작님. 그래서 말인데 이번 계획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상황이 조금 진정되자 얼른 도미닉이 치고 들어갔다.
“저희 시의 행정관들과 여러 방면으로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은 역시 피난민 구출의 선봉으로는 백작님께서…”
“아, 그렇지 않아도 내 그 이야길 하려고 했지.”
하지만 도미닉의 말을 중간에서 잘라버리는 싱클레어 백작.
“그대가 다 차려놓은 밥상을 홀랑 빼앗아 엄한 놈에게 줄 수야 있나. 네가 마무리 하게.”
“…네?”
“현 시간부로 에버그린의 시장, 도미닉을 제국의 준남작으로 봉할 것이다. 이는 명예직이 아닌 유급직으로 도미닉, 그대는 제국의 귀족으로서 권리를 얻게 될 것이며 동시에 의무를 지니게 될 것이니 북쪽으로 세 번 절을 하는 것으로 황제 폐하에게 인사를 드리라!”
갑작스러운 선언에 도미닉의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뭔 소리야, 이게? 준남작? 귀족?’
머리속에 경고음이 윙윙 울리는 듯 했다.
까딱 잘못하다간 싹 다 덤탱이 쓸 것 같은 쎄 한 기분에 뒷통수가 섬찟했다.
‘떠넘기려고 왔다가 이게 무슨 봉변이야!’
막아야했다.
그 때, 카림이 했던 말이 기억났다.
카림은 그 때 분명 자신이 귀족이 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가 틀릴 거라곤 생각지 않았다.
“영주님!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저는 아직 이토록 명예로운 자리에 오르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자입니다!”
“그렇지 않다.”
“저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해주시는 건 언제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갚아야 할 지 그 은혜가 참으로 커서 매일 밤잠을 설칠 정도이지요.”
오랜만에 도미닉의 혀에 기름칠이 잔뜩 칠해졌다.
“그러나 존경하는 영주님! 영주님의 귀한 뜻을 받기에 저는 제국법이 정해놓은 기준에 그 함량이 미달되니 혹여라도 싱클레어의 이름에 먹칠을 하게 될까 두렵고, 또 두렵습니다. 이를 감안해주소서!”
“어허. 함량이 미달이라니?”
도미닉은 이때다 싶어 자신이 공식적으로 촌장을 위임받았던 것은 아니며, 어디까지나 촌장 대리였기에 유급직 준남작의 지위에 오르는 것이 불가하다 설명했다.
“…그런 고로 쓸쓸한 마음을 간신히 감추며 영주님의 뜻을 받을 수가 없음을 알립니다!”
아주 연기에 물이 올랐다.
도미닉은 감정 처리가 참 섬세해졌다며 속으로 자화자찬을 하고 있었다.
‘아, 법이 안 된다고 못 박았으니까 별 수 없다고요. 푸흐흐.’
귀족은 무슨 얼어죽을 귀족이야?
괜히 그거 귀찮기나 하지.
돈 많이 벌어서 아무 걱정 없이 돈이나 쓰다 이번 생을 마감하기로 애초에 결정을 끝낸 도미닉이 한시름 덜었다고 생각할 때,
“정말 그리 생각하는가?”
백작이 다시 물었다.
“예, 겨우 몇 줄의 글에 불과하나 제국의 지고한 법률이 아니옵니까. 저 역시 영주님의 은혜를 받고 남부와 더 나아가 제국에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으나 방법이 없으니 이것이 한스러울 뿐이지요.”
“그대의 마음이 참으로 올곧구나. 그렇다면 되었다.”
“…네?”
도미닉은 순간 백작의 얼굴에 ‘이 놈, 더는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하는 말이 스쳐지나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에이, 설마…’
불안한 마음에 들어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정정하지. 에버그린의 시장, 도미닉을 명예직 준남작으로 봉한다.”
“예!”
가신들이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명예직이면 뭐 괜찮지. 실권은 없으니까, 내가 나설 일은 없어. 휴우-. 다행이다.’
하지만 백작의 말은 계속 이어졌고, 그 때마다 도미닉의 얼굴은 파랗게, 노랗게, 하얗게 가지각색으로 변해갔다.
“동시에 귀족의 위에 오른 도미닉을 병과에 속하게 하고 군 간부로 입대하게 하라!”
“예!”
“네?”
입대라니?
“명예직 준남작이 군에 간부로 입대하여 복무 선서를 하고 대영주가 승인하면 다른 조건에 미달된다고 하더라도 곧장 유급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지 뭔가.”
“…에?”
“사생아나 양자를 가문에 정식으로 입적하거나 놓칠 수 없는 인재를 영입하려는 귀족들이 이 정도의 꼼수는 마련해두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바로 발견했지 뭔가. 하하!”
“이로서 모두 말끔히 해결이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군!”
“그렇지. 시장도 우리 남부와 제국에 봉사하려는 마음이 가득하니 시간 끌 것이 뭐가 있단 말인가. 자, 자. 기사단장!”
“예, 주군!”
백작의 재촉에 기사단장이 도미닉 앞에 서서 검을 꺼내 멍하게 앉아있는 도미닉의 어깨를 두번 두드렸다.
“이로서 우리 군에 입대하게 되었네. 형식은 간단한 것이 좋으니 이것으로 마치지. 허허! 내, 그대를 훌륭한 무인으로 만들어줄 것이야.”
“좋군. 행정관!”
“예, 주군. 여기에 서명을 하시면 됩니다. 그럼 도미닉 님의 명예직 지위가 바로 유급직으로 전환될 겁니다.”
슥슥-.
순식간에 유려한 필체로 서명까지 모두 마친 백작.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이안은 날치기도 이런 날치기가 없다고 생각했다.
‘군대… 군대… 군대를 또 가? 내가 왜? 어째서?’
도미닉은 여전히 현실을 부정하며 넋이 빠져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