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rd of another world is well fed RAW novel - Chapter 84
아주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백화점이나 쇼핑몰의 매출에서 맛집 한 두개가 차지하는 부분은 그리 크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핑몰과 맛집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맛있는 음식은 사람을 끌어모으곤 하니까.’
당장 사치품은 사지 않아도 아무 문제 없지만 어쨌든 때에 맞춰 식사는 해야 하는 법!
맛있는 음식과 분위기 있는 식당은 사람들을 쇼핑몰로 불러 모으고, 배를 채워야 한다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사람들은 진열된 물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법이다.
‘뭘 베껴 먹어야 잘 베껴 먹었다고 소문이 나려나?’
백화점 지하의 푸드코트?
‘아냐. 애초에 시청 건물을 개조한 거잖아. 작은 공간에 많은 점포를 입점시켜야만 하는 백화점 푸드코트 방식을 따를 필요가 없지. 그리고 조금 더 고급스러워도 괜찮아. 우리 고객들은 돈 쓸 준비가 되어 있는 관광객들이니까.’
그러면 5성급 호텔에 입점한 고급 레스토랑과 바?
‘그것도 아닌데… 그건 리조트 쪽에 생기고 있는 가게들이랑 컨셉이 겹쳐. 괜히 파이를 나눠먹는 꼴이 될 지도 몰라. 그건 절대 안 돼.’
도미닉의 소유인 에버그린 리조트를 필두로 근처 빈 땅에는 여러 형태의 여관과 리조트들이 지금도 열심히 생기고 있었다.
에버그린 리조트 하나로는 밀려드는 여행객들을 감당하기 어렵기도 했고, 원래 호텔들은 몰려 있을수록 서로에게 이득이라는 도미닉의 계산 아래 적극 장려한 것이다.
물론 아무에게나 건설 허가권을 준 것은 아니었다.
‘남 좋은 일 시킬 수야 있나.’
안톤의 옆구리를 푹푹 찔러서 투자를 종용하며 리조트 부지를 하나 챙겨주고, 원주민의 경제 협력체라고 볼 수 있는 어촌계 협동조합이 자금을 댄 넉넉한 평민과 상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비즈니스 호텔 급의 대형 여관도 지난 달부터 손님을 받고 있었다.
싱클레어 백작에게도 풍광 좋은 해변가의 리조트 부지를 내어주고 매년 토지 임대료 형식의 도시발전금을 받기로 했다.
그 뿐인가.
아카데미의 기금을 활용한다는 명목으로 거북섬에는 온천 료칸을 흉내 낸 프라이빗 온천 리조트도 개발중이었고, 도자기 공방의 수익금의 일부를 떼서는 100실이 넘는 규모의 대형 고급 여관도 짓고 있는 도미닉!
리조트와 여관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인근의 작은 크기 빈 땅에는 식당이나 잡화 건물을 올렸고, 그 중 상당수가 도미닉의 소유라는 것은 아는 사람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21세기 대한민국으로 따졌을 때,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나 고급 정식당 같은 것은 모조리 이쪽에다 개발하기로 결심한 만큼 지금 만들려고 하는 쇼핑몰 안의 식당들을 같은 컨셉으로 둘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호텔 레스토랑도 패스고… 으흠, 뭐가 좋으려나.’
그러다 문득 한 가지 괜찮은 모델이 떠올랐다.
‘라멘 스타디움…? 이거 컨셉을 좀 활용하면 될 것도 같은데.’
일본의 어느 쇼핑몰.
그곳에는 특이한 컨셉을 가진 푸드코트가 있었다.
전역에서 가장 인기가 많고 유명한 라멘 맛집들을 모아다가 한 곳에다 몰아넣고 ‘얘는 전국 라멘 경연대회에서 1등을 한 집입니다!’, ‘얘가 어느 지방 매출 1이랍니다!’ 하는 홍보문구와 함께 일종의 경쟁을 붙인 것이다.
‘이게 참 고자극이란 말이지.’
대한민국으로 바꾸면 부산이나 제주도 쯤에 생긴 대형 쇼핑몰에서 ‘국밥의 1인자는 누구인가?’라는 타이틀을 걸고 전국의 국밥 맛집들을 끌어 모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쩐지 운수가 좋더라니, 서울식 설렁탕의 최강자 OO식당
3년 묵은 숙취도 해장되는 경기도 OO해장국
니들 어탕 모르냐? 충청도식 100년 전통 OO정
국밥 근본은 전라도 OO콩나물 국밥집인 거 모르는 사람도 있음?
돼지국밥 빼고 무슨 국밥을 논하냐! 부산대표 OO돼지국밥
그 외에도 순대국밥이니, 장터국밥이니…
“아, 국밥에 밥 한 그릇 말아먹고 싶네.”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괜히 군침이 돌아서 배가 고파진 도미닉이었다.
어쨌든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어 일으키는 통일 된 한 가지 컨셉로 구성된 푸드코트를 메인으로 한다면?
기존의 상권과 겹치지 않으면서 관광객들은 물론 홍보효과도 함께 누릴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
“…그런 고로 지혜를 좀 나눠주셨으면 좋겠어요.”
도미닉의 조리실이 오랜만에 북적였다.
부탁을 받고 온 구 어촌계 아저씨들과 이안, 노영주님, 페롯과 카림, 엘프에 드워프까지 한 자리에 모였다.
입맛은 물론이고 신분도 고향도 심지어 종족도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있으니 그야말로 국제도시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니까 에버그린과 관계가 있으면서도 사람들이 좋아하고 관심이 생길만한 한가지 종류를 골라야 한다?”
“예, 노영주님. 고기 요리면 고기 요리, 생선 요리면 생선 요리같이 재료 중심의 테마를 정하던지, 아니면 스튜면 스튜, 파스타면 파스타. 이렇게 아예 음식 종류를 정해도 됩니다. 중요한 건 공통점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야 흥미가 더 커질 테니까요.”
“굳이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어? 다양한 음식이 있다면 더 좋은 거 아닌가?”
“화제성 때문이에요. 다양한 종류의 상품을 취급하는 소매점포의 집합시설이 생소한 사람들에게 쇼핑몰을 알려야 하잖아요. 일단 손님들이 스스로 소문을 퍼뜨릴만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야 하는 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도미닉의 대답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 역시 처음 ‘쇼핑몰’에 대해 들었을 때는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그 가게로 가면 되지 왜 복잡한 곳에 가야 되는지 의문을 가졌었기 때문이었다.
“저기, 그러면 그 테마로 결정된 것과 어울리지 않는 음식들은 쇼핑몰에 입점이 안 되는 거냐, 도미닉?”
“아 그렇지는 않아요. 테마에 포함되지 않는 다른 음식들은 쇼핑몰의 다른 구역에 따로 넣을 거라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 말에 칼론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음식점 사장이 다 된 칼론.
‘도미닉이 이렇게 신경을 쓰는 걸 보면 무조건 돈벌이가 된다는 건데, 그런 곳에 우리 남부용병식당이 빠질 수야 없지!’
도미닉에게 배운 한국식 중화요리는 물론 중국 사천지방과 광둥 지방의 음식들도 몇 가지 팔고 있는 칼론은 쇼핑몰이 생기면 무조건 2호점을 입점시키려는 계획을 세워둔 참이었다.
“다행이에요. 저희 엘프들이 좋아할 만 한 음식점도 한 군데 쯤은 생길 수도 있겠군요!”
걱정을 한 것은 칼론 뿐만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음식에 제약이 많은 엘프들은 채식이 테마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 진작 포기한 상태였기에 다른 주제의 식당도 생길 수 있다는 여지가 다행스럽기 그지없었다.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을만한 것이 테마가 되어야 한다면 역시 고기요리지 않을까?”
“하지만 에버그린은 해안가이니 고기보단 생선이 어울릴 것 같은데 말이야.”
“귀족들의 식생활과 평민들의 식탁이 생각보다 꽤 다르다는 것도 생각해야 할 것이네만.”
“술! 술이 빠지면 안 되지, 뭐가 됐든 술과 어울리는 것이 었으면 좋겠다!”
각자 의견을 내기 시작하면서 조리실 안이 순식간에 왁자지껄해졌다.
모두의 의견이 나름대로 일리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토론을 지켜보던 도미닉의 표정이 조금씩 조금씩 심각해졌다.
여전히 토론이 한창인 사람들을 두고 밖으로 나와 머리를 식히고자 했다.
아이스 마법이 걸린 한정판 텀블러에 담아 차가워진 커피를 마시자 조금은 진정이 된 것 같았다.
“뭐가 걸리는 모양이로군.”
“…예. 그건 그렇고 나와계셨네요?”
“나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
조리실 마당의 테이블에는 이미 먼저 온 손님이 있었다.
이안이었다.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니요?”
“…나는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이 없거든.”
“네? 커피 들어간 걸 못드시는 것 뿐이지 편식 같은 건 안하시잖아요?”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과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는 건 다른 문제가 아닌가?”
“으흠. 그것도 그렇네요.”
그동안 봐 온 이안은 어떤 음식이든 크게 가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맛있는 건 좋아하며 많이 먹고, 맛이 없는 건 조금 덜 먹는.
‘어쩌면 가장 평범한 입맛의 사람일지도 모르지.’
왜 그런 사람 있지 않나.
먹는 걸 싫어한다거나 소식을 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 죽기 전 마지막 한 끼를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면 뭘 먹을 거예요?
라는 질문에는 대답을 바로 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
이안이 딱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도 좋아하는 음식의 종류를 말해주면 도움이 될 텐데요.”
“좋아하는 걸 딱 한가지만 골라야 한다는 건 나에겐 불가능에 가깝더군. 나는 고기도, 생선도, 채소도, 귀족들의 연회음식도 평민들의 소박한 저녁식사도 용병들의 야영 음식도 모두 좋아하니까 말이야. 아, 그래도 피하는 건 있겠군. 사막의 향신료는 영 적응이 안 되서 말이야.”
“크크, 고생 많이 하셨죠, 그 때.”
“그래. 그러니 나는… 음, 굳이 꼽자면 남부식 음식이라면 무엇이든 좋겠어.”
“남부식 좋죠. 적당히 자극적이고 재료를 아낌없이 넣는데다가… 어?”
도미닉의 머릿속에 한 줄기 섬광이 스치고 지나갔다.
“왜 그생각을 못했지?”
“음?”
“기사님.”
“그래.”
“방법을 찾은 것 같은데요?”
“…?”
도미닉이 ‘우하하하! 나는 천재야, 천재라고!’ 따위의 소리를 하며 마당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고함소리에 한창 토론을 하고 있던 이들도 조리실 바깥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며, ‘쟤가 또 왜 저러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
“하하하! 이것, 보았는가들?”
“예, 주군!”
싱클레어 백작성, 가신들이 모두 모인 회의에서는 요즘 번번히 에버그린의 소식들이 화제가 되곤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또 재밌는 일을 벌일 모양이로군.”
“이런 것이 정말 효과가 있을까요?”
영주의 손에 들린 것은 다름 아닌 요리 대회 안내문이었다.
[남부 최고의 손맛은 누구?]안내문 가장 상단에 적힌 선전문구가 꽤나 도발적인 요리 대회.
“입상을 하면 에버그린 내에서 만들고 있는 대형 상점 시설에 매장을 내어주고 홍보도 대신 해 준다고?”
“예. 상금도 제법 크답니다.”
“무엇보다 남부 요리 제일고수라는 호칭이 생기는 것이니 요리인들이 너나할 것 없이 흥분하고 있다고 하던데요.”
“하하! 그것 참. 아버님께서 대회의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라고?”
“노영주님이야 워낙 미식가로 유명하지 않으십니까. 참여자들에게도 큰 영광이 될 겁니다.”
“이거, 이래서야 내가 가만히 있을 수야 있나.”
싱클레어 백작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남부의 음식 수준을 알릴 수 있는 기회이니, 어디 보자. 그래! 1등을 한 이에겐 준남작의 지위를 내려주지.”
“주군!”
“결정한 일이니 토 달지 말게. 계승이 되지 않는 단일 명예직일 뿐이야. 남부 요리 문화를 세상에 빛낼 요리인이 아닌가. 훌륭한 솜씨를 가진 장인들에게 준남작 지위를 내리는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문제 될 것 없어.”
싱클레어 백작이 본격적으로 판을 키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대로 날뛸 수 있게 방어막이 되어주지. 결국 남부의 영향력이 커지는 일이니.’
도미닉, 이 기특한 놈을 제대로 지원해 줄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