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rd want to play RAW novel - Chapter 180
180화
필리프의 허락을 받은 리베르타는 호위병들을 데리고 곧장 출타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마린이 따라붙었다.
“마린도 리베르타 님을 돕고 싶다고 하더군요.”
“나를 돕겠다고?”
헨슨의 설명에 리베르타는 마차의 맞은편 좌석에 앉은 마린을 심드렁하게 바라보았다.
아무리 살펴봐도 그녀에게선 호의나 선의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마린은 선의에서 돕겠다고 나선 게 아니었다.
‘씁, 이게 어딜 감히 내 구역에서 신자들을 빼내 가려고!’
폼페이아에는 물의 교단 신자보다 바다 교단이나 상업의 신 루폴레의 신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당연히 마린이 보기에 병자들을 구호하겠다는 리베르타의 행동은 이 기회에 영역을 침범하려는 행동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속 좁은 생각만 하는구나.”
“뭐가 어째? 도와준다는데도 시비 거냐?”
“그래, 딱히 도움을 거절할 필요는 없겠지.”
리베르타가 의미 모를 미소를 지을 때 마차 밖을 살피던 헨슨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지금 빈민가 쪽으로 가는 게 맞습니까? 이쪽은 폼페이아 교외로 나가는 길로 압니다만?”
“도시 밖에 볼일이 있다. 마부에게도 그쪽으로 가라고 일러두었지.”
‘빈민가가 아니라 교외의 마을에서 구호 활동을 하시려는 건가?’
어디든 아픈 사람들이 있기 마련.
헨슨은 그리 이해했지만, 잠시 후 도착한 장소를 보고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여긴 폐허가 아닙니까?”
폼페이아 서쪽의 버려진 신전.
무슨 이유로 버려졌는지 몰라도 한낮에도 으스스하기 짝이 없는 이곳에 대체 왜 왔는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마린은 뭔가 눈치챈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 설마 여기에 온 게……?”
“그래, 이곳을 정리하러 온 것이다.”
“뭐야? 환자 치료하러 간다고 하지 않았어?”
“내 손길이 필요한 곳이 있다고만 했지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리베르타의 두 눈은 평소보다 훨씬 더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심상찮은 마기가 느껴진다 했더니, 이런 곳에 마신의 종자들이 숨어 있을 줄이야!’
그녀가 이곳을 발견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마린이 중앙광장에서 시위에 나선 신도들을 해산시키고 있을 때, 리베르타는 빈민가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마기의 흔적을 발견했다.
이 마기는 단순히 마족의 기척이 아니라, 흉악한 악의가 진득하게 묻어 있었다.
이후 리베르타는 마기에 오염된 음침한 인상의 인간이 우물에 돌림병 환자가 쓰던 식기를 던져 넣는 광경을 보았다.
우물을 정화하고 놈을 몰래 추격한 그녀는 마신의 추종자들이 숨어 있는 이 장소를 찾아낸 것이다.
“떠나기 전에 쓸어버려야 이 도시의 인간들에게 유익하지 않겠느냐.”
“하긴 해충은 제거해야 하니까.”
몬스터를 대하는 것도 그렇지만, 리베르타나 마린은 마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적대하지는 않았다.
그녀들만 별난 게 아니라 대다수 신들이 그랬다.
마족이나 그 혼혈 중에는 지상 세계에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부류도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는 부패한 신관들보다 더 나아 보이기도 했다.
‘허나 마신의 추종자들은 다르지.’
놈들은 마신 아즈라를 강림시킬 음차원의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세상에 혼란을 조장하고,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려고 끊임없이 날뛰고 있었다.
마린의 말대로 라테란을 좀 먹는 해충 같은 존재인 것이다.
당연히 눈에 띄면 즉각 제거해야 마땅했다.
“이런 일이었으면 진작 말하지! 그럼 제대로 준비해서 왔을 텐데.”
“지금 우리가 지닌 영능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래도, 그 테리라는 녀석이 가진 성검 레이안트를 빌려왔으면 더 나았을 거 아냐.”
곁에서 리베르타와 마린의 대화를 들은 헨슨과 호위로 따라온 병사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영애,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여길 정리한다니 대체……?”
그들의 질문에 리베르타는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다.
“지금부터 이곳을 정화할 것이다. 그대들은 방해되니 물러나 쉬고 있거라.”
헨슨은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리베르타는 물론, 마린도 뭔가 크게 사고를 저지를 기세였으니까.
그래서 자세히 물어보고 싶었지만, 갑자기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 이유는…….
‘어, 엄청난 위압감이다!’
지난번에 헨슨은 마린이 20만의 군중들을 압도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날과 같은, 아니, 그 이상의 위압이 마린뿐만 아니라 리베르타에게도 느껴지고 있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강렬한 기세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다 주저앉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호위병들은 이미 바닥에 나동그라져 정신을 잃은 상태.
‘도대체 무엇을…….’
하지만 헨슨은 더 이상 생각하지 못하고 그대로 깊은 잠에 빠졌다.
“제법 버틸 줄 아는구나.”
“헨슨은 보통 인간들이랑 다르다고.”
“하긴 그렇지.”
리베르타와 마린은 누군가 이들을 해칠 수 없도록 결계를 쳤다.
그리곤 폐허 중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마린은 품에 지니고 있던 성수를 땅에 쏟아부었다.
작은 병에서 흘러내리는 것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성수가 콸콸 쏟아져 내렸다.
순식간에 신전 폐허 가운데 작은 웅덩이가 만들어진다 싶더니, 이내 폐허 전체를 통째로 삼키기 시작했다.
***
우르릉! 콰쾅! 쿠쿠쿠쿵!
갑자기 지진이라도 난 듯 천장이 흔들리더니 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거센 물살에 벽에 금이 가고 검은 안개 조직에서 운영하고 있던 지하 시설의 일부가 무너지거나 수몰되었다.
키메라 연구실이 있던 지하 1층은 이미 수몰되었고, 숙소와 노예들이 있던 2층과 3층도 물이 차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물난리에 엘프 노예에게서 음차원 마나를 추출하고 있던 상급 마족 리켈메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태풍이 불거나 홍수가 난 것도 아닌데, 왜……?”
그런데 그의 당황은 갑자기 달려온 부하의 말에 더 커졌다.
“크, 큰일이 났습니다, 리켈메 님! 아지트에 침입자가 나타났습니다!”
“뭐?”
‘말도 안 돼. 7서클 마법으로도 신전에 구축된 주군의 결계를 파괴할 수 없거늘!’
믿어지지 않았지만, 이미 이변이 일어난 상황에서 멍하니 있을 수는 없었다.
주군인 그뤼메가 자리를 비운 지금은 자신이 이곳의 책임자니까.
“보통 놈들이 아니다. 남아 있는 조직원들을 모두 소집해라.”
“예!”
금세 30여 명가량의 암살자들이 모였다.
원래는 이곳에는 훨씬 많은 마족과 암살자들, 그리고 노예나 도시에서 납치해 온 인간들로 만든 키메라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뤼메가 엘디르의 사도를 척살한다고 데리고 나가 남은 놈들은 이게 전부였다.
부하들을 슥 한 번 둘러본 리켈메는 이곳을 빠져나가기로 결정했다.
‘정체는 몰라도 주군의 결계를 파괴한 놈들이다. 쉽게 맞서 싸울 상대가 아니야.’
그러니 전력을 최대한 보존해서 탈출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침입자들은 그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강했다.
“어딜 그리 급히 가는 것이냐?”
퍼엉!
갑자기 벽이 터지면서 그들의 앞에 침입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쌀쌀맞은 인상의 파란 머리 소녀와 당돌한 인상의 꼬마 계집애였다.
‘침입자가 이 녀석들이라고?’
이 정도면 해치워 버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던 리켈메는 깜짝 놀랐다.
그뤼메의 측근일 만큼 스펙터 중에서도 뛰어난 안목과 눈치를 가진 그는 이 둘이 보통 인간이 아님을, 자신들과 비교도 안 되는 거대한 존재가 빙의해 있음을 눈치챘던 것이다.
‘허어억! 이런 말도 안 되는……! 이건 너무 부당하잖아!’
2,000년 전 마신 아즈라의 침공 이후 신들은 강림을 최소한으로 자제하고 있었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강림할 시 적지 않은 손해를 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에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신이 있다니!
상상을 초월하는 침입자의 정체에 리켈메가 절망감을 느끼고 있을 때, 몇몇 부하들이 리베르타와 마린을 향해 달려들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여기 온 걸 후회…… 크억!”
“아아악!”
둘에게 접근하기도 전에 그들은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리베르타가 뿌린 성수의 물방울이 마치 총알처럼 빠르게 날아가 그들의 급소를 꿰뚫어버린 것이다.
그 일격은 암살자들의 육체만 절명시켰을 뿐만 아니라, 빙의하고 있던 스펙터 본체마저도 소멸시켰다.
이를 본 마린은 가늘게 웃음 지었다.
“냅다 물벼락으로 후려갈길 줄 알았는데 새로운 기술을 익혔네.”
“필리프가 쓰는 소총을 참고했다.”
납탄을 화약으로 빠르게 날려 갑옷을 꿰뚫는 것을 보고, 물방울도 고속으로 날리면 타격을 줄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실전에서 처음 사용해 봤는데, 적은 영능으로도 꽤 효과가 좋았다.
리베르타는 몰랐지만, 방금 그녀가 사용한 수법은 지구에서 워터젯이라는 고압의 물로 철이나 돌을 절단하는 기계와 원리가 같았다.
“그랬군. 역시 남친 것을 흉내 낸 거였구나.”
“필리프와 나는 그런 사이가 아니다.”
“그럼 애인인가?”
“……함부로 입을 놀리면 혼줄이 나게 될 게다.”
“크크크, 정색하는 걸 보니 진짜…… 아야야야얏! 아파! 아프다고!”
깐족이는 마린이 리베르타에게 귀를 잡혔다.
그 틈을 노리고 암살자들이 다시 달려들었다.
앞서 동료들이 당하는 걸 보았던 놈들은 빙의한 육체를 방패로 집어 던지고, 스펙터 본체로 공격했다.
영체를 활용한 스펙터 특유의 능력으로 상대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고, 생명력을 빼앗으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켁! 크아아악!”
“어, 어느 틈에!”
스펙터들은 마린이 미리 구축한 방어벽에 막혔다.
바닷물을 기반으로 한 성수로 구축된 이 방어벽은 단순히 차단뿐만 아니라 공격도 할 수 있었다.
“으으. 이오라의 분노를 맛봐라!”
마린은 아픈 귀를 매만지며, 전방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방어벽은 거대한 파도로 변해 암살자들을 덮쳤다.
“끼에에엑!!”
“살려주십쇼, 리켈메 님―!”
지하 공간을 가득 채우는 파도에 휩쓸린 암살자들은 본체인 스펙터가 소멸되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전멸했다.
“흥, 스펙터 주제에 이 몸의 상대가 될 것 같아?”
비록 신일 때의 0.2퍼센트에 불과한 미약한 영능만 쓸 수 있었지만, 이런 하급 마족이나 키메라들을 처치하는 데는 충분했다.
상성도 꽤 좋았고.
“그런데 한 놈이 도망갔구나.”
“뭐?”
리베르타가 지적한 한 놈은 리켈메였다.
놈은 부하들이 불나방처럼 두 여신에게 달려드는 틈을 타서 줄행랑을 놓았다.
“흥, 튀어봤자 이 이오라 님의 손바닥 안이지!”
리베르타도 그렇지만, 마린 역시 마신의 추종자를 용서할 마음이 없었다.
그동안 교단을 좀 방치하긴 했지만, 자신의 신자들이 많은 곳에다 소굴까지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면, 음흉한 짓을 꾸미고 있었던 게 분명하니까.
“호호호, 잡았다, 이놈!”
리켈메의 마기를 추적한 리베르타와 마린은 얼마 지나지 않아 놈을 잡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막다른 곳에 몰린 주제에 놈이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게 아닌가.
‘뭔가 수상하군.’
리베르타는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역시나 예감대로 부단장은 손에 익스플로전 마법이 인챈트 된 수정구를 들고 있었다.
“천계에서 추락한 신들이여! 내 주군을 위해 너희를 죽이겠다!”
“그까짓 마법은 얼마든지 막을 수…….”
성수로 방어벽을 치던 마린은 리켈메가 수정구를 바닥에 내리치는 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설마 바닥을 향해 내려칠 줄은 몰랐지만, 그 정도로 지하 시설을 붕괴시키기에는 부족하다 여겼기 때문.
하지만 그녀도 파악하지 못한 사실이 있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그뤼메가 비밀 기지를 없애기 위해 꽤 많은 폭발성 물질을 숨겨 놓았다는 것을 말이다.
좀 전에 리켈메가 던진 수정구는 이 폭발성 물질에 불을 붙인 촉매 역할을 했다.
콰르르르릉!
지하 공간을 일거에 붕괴시키는 엄청난 폭염이 사납게 밀려왔다.
‘위, 위험해!’
리베르타와 마린의 표정이 딱딱히 굳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영혼은 몰라도 현재 빙의한 육체는 확실히 죽게 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