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336
이브가 정말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기 때문에, 나는 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저번 대천신교 프로그램 대상자인 마틸다가 아직 졸업하지 않은 걸로 아는 데, 또 후원이라니 참 신기한 이야기였다. 이브는 내가 허락하자 싱글벙글 웃었다. 집무실에서 인수인계를 받을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나는 바로 에이에이와 함께 드워프 왕국으로 가야 했으니까.
알리오 페스타의 마차가 바퀴를 굴리며 포장된 도로를 거침없이 질주했다. 마탑을 가로질러 드워프 왕국으로 가는 동안, 우리의 앞길을 막는 것은 아무도 없었다. 전 사제장 페타 루시우스와 용사 에이에이라는 이름은 드워프 왕국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편안한 숙소와 깨끗한 길을 안내받는 훌륭한 출입증이었다.
에이에이는 창밖을 바라보며 드워프 왕국 산맥을 바라보았다. 스위스 치즈처럼 구멍이 뻥뻥 뚫린 산맥은 여전히 내게 불쾌함을 불러일으켰다. 매번 볼 때마다 산맥의 구멍은 더 늘어나서, 이제는 드워프 왕국 자체적으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흉한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이네요.”
에이에이는 바람을 맞으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드워프 왕국에서 다시 가보고 싶은 장소 같은 곳은 있었나요?”
“아니요. 일이 중요하잖아요. 그 시오테르라는 마족을 찾아야죠.”
“데이트도 겸사겸사하는 거죠. 저는 에이에이 당신이 좋아하는 게 뭔지 더 많이 알고 싶거든요.”
“낯부끄러운 소리 하지 마세요.”
우리는 마탑 앞에서 잠시 정차했다. 아직 답변이 오지 않았던 마석 견학 문제에 대해 직접 답변을 듣기 위해서였다. 나는 마탑의 입구에서, 저번 마법사 살인 사건 때 우리를 안내했던 마법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내가 다시 돌아오자 매우 반가운 얼굴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사제장님. 그간 별고 없으셨습니까?”
마법사들은 자기 일과 관련 없는 일에 대해서는 일절 모른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는 내가 사제장을 그만뒀다는 걸 전혀 모른다는 듯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얼마 전에 사제장에서 은퇴했어요. 마법사님. 마법사님은 그간 별고 없으셨나요?”
“아이고, 제가 실례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번에 만났을 때도 제법 친절하게 굴던 마법사였다. 그는 이번에도 살갑게 굴고 있었다. 내 대답에 그는 머리를 조아리며 웃는 낯으로 사과를 했다. 모든 마법사가 이 양반처럼 친절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세상일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로 이렇게 마탑을 오셨습니까?”
“마탑주는 지금 잇나요? 아니면 권한 대행이라도 만날 수 있으면 좋을 텐데요. 전에 마석 채굴 관련해서 편지를 보냈었는데, 서신 답변을 받기보다는 제가 직접 이야기를 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아서요.”
마법사들은 마탑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아주 급한 일은 차라리 마탑으로 가서 직접 이야기를 듣는 게 나았다. 마법사는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건물 구석으로 가서 푸른 마법진을 펼쳤다. 잠시 속삭이는 소리가 몇 마디 들려왔다. 마법사는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내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일이라고 전해드리면 되겠습니까?”
“마석 채굴 견학 건으로 연락을 드린 페타 루시우스라고 다시 전해주세요.”
조금 전에 마석 채굴 건이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이해를 못 한 모양이었다. 에이에이가 어색하게 웃었다. 마법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몇 마디 중얼거리고 나를 쳐다봤다.
“아이고, 그……. 해당 문건에 대해서는 영지 쪽으로 답변을 이미 발송한 상태랍니다. 그래서, 대면은 불가하고 답변 내용만 지금 요약하여 제가 대신 전해드리려고 하는 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렇게 해주세요.”
‘내용’만 전달해준다는 걸 보니 어차피 안된다는 소리였다. 큰 기대를 한 건 아니었지만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에이에이도 아쉽다는 듯 눈을 살짝 찌푸렸고, 나는 혀를 찼다.
“해당 사항에 대해서는 드워프 왕국에서 주관하고 있으므로 마탑에서는 따로 부여받은 권한이 없는 점 안내해 드립니다.”
“네. 그 정도면 감사드립니다.”
이 정도 답변이면 충분했다. 마탑에서 채굴 견학권을 받을 수 있었다면 편했을 텐데, 그러지 못한게 아쉬울 뿐이었다. 이제는 드워프 왕국으로 가서 직접 허가를 받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마차에 오르며 에이에이가 내게 물었다.
“사제님. 그런데, 드워프 왕국에서 허가를 안 해주면 어떻게 하죠? 안전상의 이유나, 보안상의 이유로 안 해줄 가능성이 크잖아요.”
“용사님. 우리 둘이 함께라면 세상에 넘을 수 없는 벽은 없어요.”
“그건 그럴 때 쓰는 말이 아니잖아요.”
에이에이는 내 대답에 핀잔을 주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사제님. 사제님이 이러다가 잘못된 길로 나갈까 봐 저는 걱정스러워요. 아직 그 마족이 거기 갇혀있다는 확실한 확증도 없잖아요? 최소한의 증거는 있어야 한다고 봐요.”
“용사님은 그 안에 마족이 갇혀있다면 구하실 건가요?”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은 누구나 도움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에이에이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에이에이의 대답에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럼 허락받지 못해도 바로 들이치지 말고 증거 수집부터 해보도록 해요. 대신 어느 정도의 정황 증거만 있다면 같이 가주실 거죠?”
에이에이는 내가 손을 내밀자, 꼭 붙잡으며 말했다.
“당연하죠. 우리는 동료니까요.”
“애인이기도 하고요.”
에이에이는 내가 한마디 더 덧붙이자 손을 슬쩍 밀어내며 투덜거렸다.
“…..그렇게 중요한가요. 그게?”
“중요하죠.”
에이에이는 아직도 내가 부인이라고 부르거나 연인 관계를 과시하려고 하면 거부 반응을 보였다. 진심으로 싫어한다기보다는 부끄러움과 어색함이 결합한 표현이었다. 나는 그녀의 이런 행동이 귀엽게만 느껴졌다. 에이에이는 바깥을 바라보며 말했다.
“드워프 왕국 다 왔어요. 통행증 챙겨오셨죠?”
“마부. 우리 통행증 좀 준비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통행증은 마부에게 맡겨둔 상태였다. 내가 주는 것보다는 마부가 건네주는 게 훨씬 편했기 때문이었다. 앞을 보니 몽땅한 근육질 덩어리들이 수염을 진하게 기르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부리부리한 눈매에서 낯선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이 느껴졌다.
그들이 경비를 서고 있는 성채는 거대한 바위를 통째로 깎아낸 듯 울퉁불퉁하고 단단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거대한 석공이 송곳으로 꿰뚫은 듯 움푹 파고 들어간 창문들에는 강철로 만들어진 석궁들이 놓여 있었다.
나는 말했다.
“독특하네요.”
“사제님은 드워프 왕국에 한 번도 가본 적 없으시다고 하셨죠?”
“네.”
문지기들이 양옆으로 물러섰다. 마부가 우리에게 다시 통행증을 건네주며 끼어들었다.
“여기 있습니다. 저도 드워프 왕국은 처음입니다. 북부 촌놈이 영주님을 잘 만나서 별 신기한 구경을 다 해보는군요.”
우리는 그냥 낄낄 웃으면서 드워프 왕국 내부를 훑었다. 드워프 왕국은 이 대륙에서 가장 이질적인 장소였다. 길거리는 단단한 암석으로 포장되어 있었고, 건물들의 크기는 인간보다는 드워프 기준에 맞춰져 그 규모가 작고 아담했다. 건물에 들어가려면 허리를 살짝 숙여야 했으며, 길거리의 간판들도 높이가 낮아서 걷는 행인들이 부딪히기에 십상이었다.
“아이고!”
행인 한 명이 골목에서 빠져나오다가 표지판에 부딪혀서 쓰러졌다. 쓰러진 행인을 뒷골목 깡패 드워프가 질질 끌고 사라졌다. 에이에이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얼굴을 찌푸리더니 마부에게 말했다.
“마부. 잠깐만 세워주시겠어요?”
나는 낄낄 웃으며 같이 마차에서 내렸다. 갑작스럽게 내린 우리 둘을 보고 드워프들이 흠칫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몰랐던 사실인데, 드워프들은 긴장하면 수염이 빳빳하게 서는 성질이 있었다. 에이에이는 주변을 살피지 않고 빠르게 달려서 골목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아이고!”
근육 덩어리 하나가 골목에서 튀어나와 떼굴떼굴 굴렀다. 뒤이어 에이에이가 행인을 깨워서 끌고 나오고 있었다. 나는 말했다.
“용사님. 여긴 외국이잖아요. 그런 식으로 행동하시면…….”
“드워프들 성격 탓인지 이런 건 신경 쓰지 않더라고요. 전에도 몇 번 휘말렸었는데, 경비원이 오는 걸 본 적이 없어요.”
행인은 머리를 부여잡고 우리를 쳐다본 다음 꾸벅 고개를 숙여서 감사 인사를 했다. 에이에이는 행인에게 말했다.
“앞으로는 조심히 다니세요. 위험한 곳이잖아요.”
“네. 명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다시 마차에 탔다. 에이에이는 사람 하나를 도와서 기분이 좋아 보였다. 우리가 탄 마차는 드워프 왕국 중심가로 향하고 있었다. 드워프 왕국은 산맥을 울타리 삼아 거대한 분지 형태를 이루고 있었는 데, 그 중심가에 있는 성은 이질적으로 생겨난 돌연변이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돌로 만들어진 성문은 그 이질감에 정점을 찍었다. 성 앞에 서 있는 경비병들은 매끄럽고 두꺼운 강철 갑옷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들이 입은 갑옷은 왕국 기사단의 갑옷보다 훨씬 품질이 좋았으며, 상태창으로 확인했을 때 내구도도 더 단단했다.
우리는 비교적 친절한 경비병들의 안내를 받아서 드워프 왕궁 최심부로 들어갔다. 알현실로 향하는 계단은 위층이 아니라 아래층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하로 갈수록 은은한 마석의 불빛이 더욱 강렬하게 복도를 채우고 있었다.
따로 묵을 숙소를 안내받은 마부를 제외하고, 우리는 드워프 병사의 안내에 따라 알현실로 하염없이 내려갔다. 에이에이는 이미 한 번 왔던 길이었기에 여유롭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알현실의 정문은 복잡하고 고급스러운 무늬가 새겨진 강철 문이었다. 멋과 실용성을 동시에 잡아, 예술적이면서도 튼튼했다. 하지만 그 무게만큼은 어떻게 하지 못한 건지 드워프 병사는 낑낑대며 문을 열어젖혔다. 양손으로 문을 꼭 붙잡고 낚싯줄에 매달린 붕어처럼 파닥대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저번에 왔을 때도 이런 식으로 열어줬나요?”
“네. 보안상의 이유라더라고요. 이렇게 만들어야 전쟁 때 왕과 왕비를 보호할 수 있다고…….”
우직하고 터프한 성의 생김새와 달리 상당히 겁쟁이 같은 이유였다. 하지만 굳이 이런 문제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가 왕에게 물어볼 건 딱 한 가지였으니까. 마석 발굴 현장에 대한 견학권. 만일 이걸 얻지 못한다면, 우리는 맨 밑바닥에서부터 조사를 시작해야 했다. 나는 그런 일만은 피하고 싶었다.
병사의 손아귀가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그가 땀을 뻘뻘 흘리는 만큼 문도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문 너머로 왕과 왕비의 모습이 보였다. 왕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드워프 전사를 그대로 가져온 듯 위엄이 넘치는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문이 조금 더 열리고 그의 왕비로 추정되는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에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드워프 전사를 그대로 가져온 듯 위엄이 넘치는 드워프가 앉아있었다.
씨발 누가 왕비지?
시골길을 거니는 마차가 뒤뚱거리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마틸다는 인형을 꼭 쥐고 불안한 얼굴로 저 멀리 보이는 저택의 정경을 바라봤다. 그녀 옆에 있던 수녀가 손을 꼭 잡아주며 말했다.
“괜찮을 거란다. 이번에는 정말 유명하고 좋은 분이시니까.”
“네.”
마틸다는 이번에 후원자로 지명된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페타 루시우스. 자신을 지옥에서 구해준 사람이자, 대륙 전역에 이름난 호색가였다. 종족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아내로 삼는 거로 특히 유명해서, 아카데미 내부에서는 ‘섹스왕’이라는 저질스러운 별명으로 불렸다. 마틸다는 이런 인간만 만나는 게 자신의 운명이 아닌가 싶을 지경이었다. 델몬 영지의 영주는 자신에게 손을 대려고 한 저질스러운 인간이었고, 이후 만났던 또 다른 귀족은 불법 마약밀매 조직의 거두로서 기사단의 끈질긴 추격에 덜미를 잡혀 지난 밤 처형당했다. 마틸다는 이런 이야기를 생각할 때마다 표정이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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