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361
이브는 생각보다 썩 나쁘지 않은 반응이었다. 일단 나와 연락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안심되는 듯했다.
“일단은 드워프 왕국이 어떻게 나오는지를 보고 나서 해봐야 하지만.”
물론 드워프 왕국이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전쟁이라도 일으킨다면, 나 역시 어쩔 수 없이 시오테르를 이용해서 드워프들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다. 전면전으로 끌고 가면 내 영지민들이 죽으니까. 그렇게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는 사이 열흘이 지나갔다. 드워프 왕국의 사절이 회담에 참여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와 에이에이는 다시 시오테르를 향해 레버를 당겼다.
이제 수행할 시간이었다.
우리가 다시 돌아왔을 때, 이번에는 시오테르가 울지 않았다. 그녀는 씩씩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기다리고 있었어. 그럼 바로 시작할까?”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 숨을 몰아쉬었다. 강해진 몸에 따라 수련의 강도도 더 올라갈 테니 각오를 단단히 해야 했다. 시오테르는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만족스러운 얼굴로 숨겨놓았던 쇠그릇 두 개를 꺼내 들었다. 우리가 첫 번째 수련을 할 때 썼던 것들이었다. 수련의 내용은 1단계와 똑같음을 암시하는 장면에 나는 킥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이전처럼 돌을 주워 모으고, 다시 머리 위에 올린 다음 천천히 움직임에 익숙해지기 위해 애썼다. 한 번 균형을 잡았던 몸은 마치 맞춤 정장을 입은 것처럼 편안하게 움직였다. 시오테르는 금방 적응하는 우리를 보고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다시 돌을 들더니, 나무를 향해 휙 던졌다.
1단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로 날아든 돌멩이가 나무에 정확히 박혀 들어갔다. 에이에이는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한 기색을 드러냈다. 나 역시 숨을 몰아쉬며 조심스럽게 시오테르를 바라봤다. 시오테르가 말했다.
“20개를 다 피하면 통과. 쉽지?”
나는 마음속으로 어머니를 불렀다. 머리 위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시오테르의 특훈이 시작되었습니다. (2/5) 보상: 힘 민첩 + 25]보상을 보고 나는 이를 악물었다.
****
“씨발.”
땀에 흠뻑 젖은 몸뚱이를 바닥에 털썩 떨어트리고 우리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마지막으로 쓰러진 에이에이는 팔에 든 멍을 문지르며 얼굴을 찌푸렸다. 전보다 빨라지기만 한 게 아니었다. 1단계에서는 처음에는 사정을 봐주며 던졌다면, 이젠 사정도 봐주지 않고 돌을 날려댔다. 하나를 피하면 내가 맞기 좋은 각도로 더 빠른 돌이 날아왔다. 이 속도에 익숙해지려면 제법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괜찮아? 내가 혹시 너무 세게 던진 건 아니지? 응?”
시오테르는 수련이 끝나자마자 우리에게 후다닥 달려와서 우리 상처를 살폈다. 마침 내가 에이에이에게 힐을 걸어주고 있는 참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웃으면서 시오테르를 달랬다.
“괜찮아요.”
“너무 아프거나 힘들면 좀 속도를 낮출까? 응?”
“아니요. 이대로 해주세요.”
그런 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나는 정말로 이 시험을 제대로 통과해볼 생각이었으니까. 우리의 단호한 반응을 보고 시오테르는 다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내심 그녀도 봐주기는 싫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힘이 빠진 척하며 시오테르의 허벅지에 얼굴을 비볐다. 내 모습을 보고 에이에이가 헛웃음을 흘렸다.
“우, 우와앗….!”
시오테르가 당황해서 나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내가 지쳤다는 걸 알아서 쉽사리 힘을 쓰지는 못했다. 나는 그녀의 허벅지 감촉을 즐기며 말했다.
“시오테르. 원래 친구들끼리는 무릎베개도 해주고 그런 거예요.”
“저, 정말로? 치, 친구들끼리 이런 것도 해줘?”
시오테르는 에이에이를 슬쩍 쳐다봤다. 에이에이는 말했다.
“아니요.”
그녀는 조금 단호한 어투로 그렇게 말하더니 내 팔을 잡고 시오테르의 허벅지에서 끌어냈다. 시오테르는 조금 아쉬운 얼굴로 자기 허벅지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괜찮은데…….”
“안돼요. 시오테르 씨. 사제님은 손버릇이 나빠서 그러다가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고요.”
에이에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끌어냈다. 나는 그녀에게 반항할 기운이 안나서 그냥 질질 끌려갔다. 시오테르는 아쉬운 듯 나를 보다가 다시 에이에이를 보며 말했다.
“그, 그런가……. 확실히, 너는 루시우스의 아내인데, 내가……. 좀 너무 나갔지? 질투하게 해서 미안해.”
“그, 그런 거 아니에요!”
에이에이는 시오테르가 내뱉은 말에 화들짝 놀라서 몸을 일으키더니 다시 나를 집어서는 시오테르의 무릎 위에 올렸다. 시오테르의 말랑한 허벅지 위로 얼굴이 푹 눌렸다. 시오테르는 낯선 감촉에 화들짝 놀라서 어깨를 들썩거리고 이상한 소리를 냈다.
“햐읏.”
에이에이는 바닥에 다시 앉아서 숨을 고르며 말했다.
“지, 질투하는 거 아니에요. 아시겠어요? 저는 그러니까, 그 부인이긴 한데, 일단 그 전에 사제님이랑은 동료 관계고, 또 그러니까 그…….”
“그렇지만 사랑하는 사이잖아?”
“아니, 그러니까, 사랑하는 건 아니라 그, 동료이자 시오테르 당신의 친구로서, 또 걱정하는 마음도 있고, 그게, 그러니까 그……. 싫어하냐 좋아하냐를 따지자면,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 또…….”
혼자서 횡설수설하는 에이에이의 얼굴이 점점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굴었다. 입은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데 얼굴은 점점 일그러졌다. 시오테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럼 싫어한다는 거야?”
“…..제가 잘못했어요.”
“응? 무슨 말이야? 괜찮아. 용서해줄게.”
“용사님은 가끔 저래요.”
“…..조용히 해주세요. 더 놀리면 화낼 거에요.”
나는 에이에이의 한마디에 웃음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입술을 깨물고 시오테르의 허벅지에 얼굴을 파묻었다. 시오테르는 내 머리를 쓸어주며 말했다.
“괜찮아. 많이 힘들었지? 푹 쉬자.”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게 기분이 좋았다. 나는 그녀의 허벅지 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에이에이가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내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시오테르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비어있는 다른 허벅지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여기 누워도 되는 데.”
“……너무 높은 베개는 싫어서요.”
에이에이는 그렇게 말하고 내 허벅지에 머리를 두고 눈을 감았다. 나는 살짝 허리를 뒤로 빼서 그녀가 머리를 대기 쉽게 만들어주었다. 에이에이는 눈을 살짝 찌푸리더니 이내 편안한 얼굴로 내 허벅지를 꾹 눌러왔다. 나 역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고 했다. 첫날부터 몸을 굴렸더니 눈을 감자마자 잠이 왔다.
****
알리오 페스타의 마차가 첫 번째 소식을 전해주었다. 이브의 편지에는 간단한 주변 상황이 적혀있었다. 개울에서 흐르는 물로 세수를 하며 나는 편지를 읽었다.
[신랑. 드워프 왕국과의 1차 회담은 북부 대공 씨발년이 조약 내용을 격렬하게 반대해서 무산됐대. 그래서 지금 전황 분위기가 안 좋아서 일단은 마틸다를 대천신교 본부 쪽으로 보냈어. 만일 전쟁이 일어나면 그쪽이 더 안전할 테니까.그래도 아직은 오지 않아도 될 거 같아. 2차 회담을 준비 중이라고 하거든. 신랑이 보냈던 편지에도 왕궁이 답을 했어. 유사시를 대비한 연락책은 만들어두고 수행에 매진하라더라고. 영지는 아직 평화로워. 사람들이 불안해하긴 하는데, 내가 입단속을 잘 시키고 있어서 아직 자세한 상황은 모르는 분위기야. 신랑. 요즘엔 어떻게 지내고 있어?
고블린 사생아 같이 생긴 드워프 씹새끼들만 아니었으면 지금쯤 마틸다랑 소풍이라도 갔을 텐데, 그게 마음에 걸리네. 마틸다랑 아주 친해졌거든. 신랑. 다음 방학 때는 신랑이랑 마틸다도 좀 친해졌으면 좋겠어.
시에리가 안부 전해달래. 우리 엄마는 되도록 천천히 돌아오라더라고. 신랑이 없으면 엘시가 더 자주 놀아준다나? 소야는 마석 공급이 끊겨서 요즘엔 다른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 중이래. 엘시는 신랑이 자길 데려가지 않은 게 본인이 좀 약해서라고 생각하나 봐. 더 열심히 혼자서 수련하고 있어. 아이라도 신랑이 보고 싶다더라고.
그리고 나도 보고 싶어. 신랑.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
“당연하지.”
나는 웃으면서 그렇게 대답했다. 이브에게 대답이 닿지는 않겠지만,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답장을 적었다.
[이브. 우리는 잘 지내고 있어. 이곳에서 하루하루 훈련을 할 때마다 나는 강해지지만, 너를 보고 싶다는 생각에 마음이 여려지는 건 막을 수 없는 듯해. 가끔은 그냥 훈련을 그만두고 돌아갈까. 그런 생각도 해. 너희가 걱정되니까.하지만 그럴 수 없어. 그래서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나는 에반젤린 같은 커다란 문제들과 싸우기 위해선 힘이 필요하다는 현실을 자각해. 우습지? 예전에는 이런 문제를 생각한 적 없었는데, 요즘엔 커다란 문제들이 짐이 되어서 내 주변을 맴돌아.
우리는 이제 2단계 훈련을 진행하고 있어. 훈련을 진행하면서 조금씩 성취를 쌓아나가고 있지. 이브. 너는 그렇게 말한 적 있지? 내가 너무 강해지면, 너를 두고 가는 게 아니냐고. 너는 어떻게 하냐고.
이브. 내가 너무 강해진다고 해도, 날 계속 사랑해줄 거지? 그리고, 내가 사랑하고 있는 거 알지?]
나는 편지를 다 쓰고 이 편지를 받은 이브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녀는 분명 얼굴을 붉히고 내 욕을 하면서도 좋아하는 티를 잔뜩 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오면 언제 상여자처럼 굴었냐는 듯이 나를 꼭 끌어안고 놔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녀를 마주 껴안고, 입을 맞추고 침대로 데려가겠지.
“용사님. 편지에 쓰고 싶은 말 없으세요?”
“아힐데른으로 제 소식 좀 전해달라고 해주세요. 저는 여기서 잘 지내고 있다고.”
그녀는 스스로 그렇게 말하면서도 묘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그 내용을 편지에 추가로 적어 내려가면서 기분이 묘해지는 걸 느꼈다. 편지를 다 적고 나서 우리는 알리오 페스타의 마차에 다시 편지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시오테르가 마력으로 레버를 원격 조종해서 마차를 순간이동 시켰다.
나는 편지로 알게 된 소식을 에이에이와 시오테르에게 공유했다. 암만 드워프 왕국이 유리한 싸움이라지만, 인간 왕국이 너무 저자세로 나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에이에이는 이런 주제에 대해선 잘 모른다며 판단을 보류했고 시오테르는 고개만 기울일 뿐 무슨 소린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깥소식들 들은 것만으로도 우리는 기운이 난 것 같았다. 나는 다시 한번 그릇을 들어 올리고 시오테르에게 도전하겠다고 외쳤다. 시오테르는 기쁜 얼굴로 돌을 주워 담았고 에이에이는 한쪽으로 비켜서서 나를 응원했다. 우리는 질 수 없었다. 영지 사람들이 우리를 기다려주고 있었으니까. 내 부인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우리가 2단계 시험에 합격한 건 그로부터 하루 뒤였다.
[시오테르의 특훈을 완료하였습니다. (2/5) 보상: 힘 민첩 + 25]머리 위에 메시지가 뜨는 것으로 성취를 직감할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었다. 나는 메시지가 뜨기 전부터, 이전보다 내가 조금 더 강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몸을 더 잘 쓸 수 있게 됐다고 표현하는 게 옳을까? 허공에 팔을 한 번 붕 휘둘러보면 확실하게 체감이 됐다.
에이에이는 몸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오테르는 자신이 강해진 것처럼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너희 정말 대단하네. 그래서, 그……. 이제 또 저택으로 갈 거야?”
시오테르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나는 에이에이를 쳐다봤다. 에이에이는 고개를 저었다. 수련의 효과를 몸으로 느껴봤으니 그녀 역시 몸이 달아있었다. 나는 시오테르를 한 번 꼭 껴안아 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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