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44)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144화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쏟아지는 연습실의 가운데에서, 입구에 선 호빈 형과 눈을 마주친 나는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
황망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호빈 형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했다.
‘댄스 객원 멤버 촬영을 간다고 하더니, 이게 무슨 개판이냐’라고.
“하하….”
그 얼굴에 내가 보내 줄 수 있는 건 허탈함과 당혹, 그리고 민망함이 담긴 웃음뿐이었다.
아니, 나도 처음에는 그런 줄만 알았거든.
‘스트릿 댄서씬에서 가장 핫한 댄서인 진다솔이 이끄는 크루’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춤 좀 춘다는 녀석이 긴장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그러니까, 그 시안을 짜서 보낸 게 이분이랬죠, 진형? 며칠 전에 온 거.”
“어….”
“흠, 크럼프 베이스로 되게 신나게 잘 만들었던데… 생긴 거랑 안 어울린다. 얼굴은, 글쎄. 그냥 딱 아이돌 코레오용만 짤 수 있을 거처럼 생겼는데.”
“…손님한, …테. 아, 가리를….”
“어어, 다솔 형. 그건 저희끼리만 있을 때만 그러기로 했잖아요? 지금 손님 부른 건 형이잖아요?”
“다솔 형. 잘 보이고 싶다면서요.”
“…잘, 좀 해.”
“뭐… 시안을 실제로 어떻게 추시냐에 따라 다른 거죠, 그건. 일단 한 번 볼까요?”
그에 걸맞게, 처음 이들의 반응은, ‘아이돌에게 큰 기대는 안 한다’. 딱 그 자체였다.
내게 대뜸 연습생 자식이니, 양아치처럼 생긴 놈이니 했던 최건영과 다르게 정중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들의 반응이 바뀐 건 한순간이었다.
“어, 그럼… 음악이랑 같이 보여드릴게요. 이미 안무는 다 따셨다고 했으니까, 디테일만 조금….”
“아, 네. 박자 넣어 드릴게요. 세븐, 에….”
“넣을, 필… 요, 없… 어.”
“에? 무슨… 어?”
로건이 A&R팀과 합작해서 만든 노래, ‘Boyhood Ending’.
‘숨바꼭질’의 안무 영상 촬영에 앞서, 내가 가진 모든 스킬을 동원해서 그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순간.
그러니까, 내가 렉쓰레기 시절에 보아 왔던 다솔 형의 제스처와, 더해 댄스 멤버라고 악을 쓰며 연마한 디테일들, 그리고 엑스에게서 받은 스킬을 동원해 어떻게든 지금의 내가 보일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춤을 보이는 순간.
“어….”
내가 박자를 쪼개고, 손끝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 애드립으로 넣어 둔 간단한 동작들을 부끄럽지 않게 소화한 순간.
…살짝 심드렁해 보이던 그들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그 변화는 정말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었다.
“허억….”
때문에 나는 마지막으로 연습실 바닥을 무릎으로 쓸며 일어날 때까지만 해도, 난 그저 ‘그렇게 나쁘진 않았구나’ 같은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잘… 봤, 어요…. 나야, 전… 에도, 본 적… 있지만….”
“아… 네. 감사합니다, 다솔 쌤!”
“형, 이라고 부… 르기로… 그리고, 브릿… 지 부분, 시안… 이랑. 조금… 달라진, 것… 같던데….”
“어… 네, 형. 이 노래가, 타이틀이랑 같이 기타 소리가 메인으로 들어가는 거라서. 코러스 부분보다는 브릿지에 좀더 힘을 넣은….”
“잠깐, 잠깐. 이거 혼자 짠 거랬죠? …진형이 도와준 거 아니고?”
“내, 가… 몇, 번… 이나, 말… 을… 이, 새끼….”
“야, 진형 좀 누가 잡고 있어 봐. 잠깐, 저 궁금한 게 있는데. 내가 1절까지만 땄거든요? 근데 2절에서 뉘앙스가 많이 바뀌네? 왜 그런… 아냐! 오해하지 마요! 참신해서 그래!”
아, 표정만 많이 안 바뀐 거더라고.
“…….”
나는 갑작스럽게 태세를 전환한 진다솔 크루의 모습을 기억하며, 내 어깨에 감긴 팔들을 풀어내기 위해 애썼다.
진짜, 정말, 너무 곤란했다.
내가 내게 호감을 보이는 사람들을 어려워한다거나, 쏟아지는 시선들을 힘들어한다는 맥락이 아니었다.
그걸 싫어하면 아이돌을 어떻게 해.
이건,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어? 춘용이 댄스팀 들어가는 거야? 그, 잠깐만. 재하야. 계약상 그게 돼? 우리 멤버들 전부, AG랑 전속 계약한 거 아니야?”
“아뇨. 춘용이가 댄스팀…? 절대, 절대로 안 되죠. 회사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요. 으음, 이건 전화해서 바로 말씀을 드려야….”
“호빈 형? 호빈 형? 지금 용용 형이 나르려고 하는 거 같은데요? 이거 뭐지? 우리가 응원하러 왔는데, 불같은 배신? 와씨, 이거 배신 맞죠!?”
“God, 저는 춘용 형을 [타겟팅 스타> 시절부터 의지하고, 정말로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춘용, 형아….”
나의 멤버들은 상상도 못한 광경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서로 어깨를 붙잡고 의논하기 시작했고.
“지금 저기, 소속사 직원분이 오신 거지? 잠깐만 기다려. 네가 법적으로 보장받아야 하는 휴일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드리고 올게. 우리 팀에서 활동하기 위한 계약서는 그 다음에 쓰자.”
한국대 기계공학과, 철학과, 로스쿨에 다니다가 자퇴하곤 댄서가 된 사람이 갑자기 호빈 형에게 딜을 하려고 하질 않나.
“춘춘, 믿어도 돼. 얘가 우리 크루에서 제일 똑똑해. 수능만 3번을 쳤다니까? 나는 그거 안 쳤거든. 가출해서.”
지화성의 용용 형에 이어서, 요상한 춘춘인지 뭔지 하는 별명으로 부르질 않나.
“빨… 리, 다… 녀 와.”
느릿느릿하게 옆에서 바람을 불어넣지를 않나.
“잠깐만. 저분 뒤에는… 멤버들인가? 그, 멤버들 맞지? 타이밍 찢었다.”
“저쪽은 우리가 맡자. 잘생기기만 하고 아직 어린 애들이야. 댄서씬에서 욕 뒤지게 처먹어 가면서 얻은 깡으로 상대해 주자고.”
남은 사람들은 티오제 멤버들과 무슨 결투를 하려고 하기까지!
“…잠깐만요! 하하, 네. 잠깐만 쉬었다가 할까요? ‘제’ 매니저 형이랑, ‘제’ 멤버들이 형들 드리려고 간식을 좀 사온 거 같거든요. 아, 너무 고맙네!”
나는 뒷목을 흠뻑 적신 식은땀을 훔치며 아무렇지 않은 척 상황을 정리하고 나섰다.
이런 건, 아주 빠르게 내 입장을 얘기하면 정리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고맙지. 그냥 객원 크루 멤버로 촬영하러 온 건데, 갑자기 ‘우리 팀이 되어 줘!’ 같은 반응이라니.
누구나 꿈꿔 본 상황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네. 저는… 제 멤버들이랑 잠깐 좀. 하하!”
진다솔 크루들이 아무리 내게 좋은 말을 해 주고 좋은 조건을 제시해도, 나는 크루에 들어갈 생각이 없다고.
지금 내가 속한 쪽은, 내 입에서 나온 것처럼 명확하다고.
“…….”
아수라장이던 연습실에 잠깐 정적이 찾아오고, 이성을 되찾은 이들이 두 눈을 끔뻑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시나 그 상황에서 제일 먼저 입을 여는 건 그나마 이성적인 이들이었다.
“…안녕하세요? 춘용 씨와 티오제의 매니저인, 유호빈입니다. 아까 전화드리고 왔는데요.”
“어, 네. 그분이시구나. …진다솔 크루의 임승호입니다.”
“네. 춘용 씨가 많이… 잘했나 보네요. 이렇게 뜨거운 환영도 받고.”
“하하. 뭐, 자퇴한 놈이 진짜 법적 분쟁에 대해 알겠나요. 농담이에요.”
정신 차린 두 대표가 멋쩍게 악수를 나누는 순간, 첨예하게 흘러가던 연습실 분위기가 유해졌다.
“저어, 안녕하세요. 손재하입니다. …저희 춘용이 잘 부탁드린다고, 간식을 좀 사왔어요. 커피랑 에이드랑, 빵을….”
“어어, 네넵! 아, 감사합니다. 뭐 이런 걸 다….”
“아, 멤버분들은 여기로… 그, 의자 같은 게 없어서 죄송하네요. 저희가 연습 끝나면 항상 누워서 떠드느라고….”
“어후, 아니에요! 하하, 저희도 비슷해요. 안무 연습 끝나면 항상 누워서 죽겠다고 말하고, 네.”
“어딜 가나 연습실 풍경은 다 비슷하네요. 혹시 성함이….”
“아, 네. 티오제의 방유찬입니다!”
이거야말로, 내가 딱 바라던 광경이었다.
“…쳇.”
뭐, 살짝 탐탁치않아 하는 사람이 하나 있는 거 같긴 했지만.
그렇게 열다섯 명을 조금 안 되는 인원이 연습실 여기저기 흩어져 각기 대화를 나누고, 잠깐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이.
“춘용 씨. 괜찮으십니까?”
“…아, 호빈 형.”
아까의 그 아수라장을 정리할 수 있게 도와준 호빈 형이 내게 커피를 내밀며 다가왔다.
“네, 완전요. 뭐, 저분들도 진지하게 그러신 건 아닐 거예요. 신경쓰지 마세요.”
“음, 제 눈에는 진심인 것 같았는데요. 특히, 회사랑 법정 분쟁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하하! 그, 공부를 많이 하셔서, 농담도 그렇게 고차원적으로 하신다네요, 승호 형은. 그러니까, 정말, 걱정하지 마세요.”
“…잘 알겠습니다.”
내 격렬한 해명에 드디어 찌푸린 미간을 푼 호빈 형은, 곧 빙그레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뭐, 오늘 분위기를 보니까 촬영은 어려웠을 것 같네요. 워낙 자유분방들 하셔서….”
“…아.”
나는 호빈 형이 하는 말의 맥락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대충, 저렇게 시끌벅적한 사람들 옆에서 춤추느라고 촬영이 많이 딜레이 된 것 같다, 뭐 그런 말이겠지.
…호빈 형도 참.
그래. 정말로, 촬영이 어렵긴 했다.
남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잠깐, 춘춘. 여기서 동선이 양쪽으로 나뉘는 거야? …세 명씩?”
“아, 네. 시안은 그렇게 짰어요.”
“내 생각에는, 약간 언밸런스하게 잠깐 나뉘었다가 다시 합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여기 사운드도 좀 둥, 두둥. 이런 느낌이고….”
“그런가요? 근데, 그럼 메인 박자에 맞추기가 좀 어렵….”
“어? 아니야. 너 할 수 있을걸? 아니, 해야 해. 생각해 봐. 하면 얼마나 멋지겠어!”
“그것도 맞는데요, 이미 방송에 안무를 한 번 올려서….”
“에헤이. 크게 생각해. 더 좋아지면 팬들도 더 좋아할걸? 이렇게 하는 거다, 어?”
…완전히 새롭게 진행하고, 새로 짜고, 디테일을 잡는 문제로 어려웠던 거지만.
지금의 저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다르게, ‘진다솔 크루’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들은 모두 프로패셔널했다.
더 완벽한 동작.
더 보기 좋은 동선.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되는 디테일까지.
“너 더 잘할 수 있어. 네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안 궁금해? 아까 했잖아. 한 번 하면 두 번도 할 수 있다니까?”
“죽… 을 것 같은데요!”
“춤추다가 죽는다고…? 와씨, 찢었다. 내가 장례식에서 고인의 생전 죽기 직전 모습이라고 하고 반복 재생으로 틀어 줄게!”
…아까야, 무슨 만화 같은 상황에 웃고 떠들었지만, 지금 힘들어서 팔다리가 떨어져 나갈 것만 같다고!
“그래도 분위기가 좋아서 괜찮았을 것 같은데요. 기대가 돼요.”
잠깐의 폭풍이 스쳐 지나가고, 호빈 형이 내게 응원의 말을 건네자, 내가 이곳에 찾아온 이유와 고생을 사서 하고자 한 까닭이 떠올랐다.
“…하하, 네.”
피로하고, 어이없고, 당혹스러운 와중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나는 가만히, 5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모든 춤을 녹화한 카메라에 시선을 던졌다.
“…네. 저도 참 기대돼요.”
저게, 퀸스에게 보내는 나의 반격이었다.
* * *
이틀 뒤.
티오제가 섰던 쇼케이스장에, 다른 이들의 현수막이 걸렸다.
[MONOCHROME: The First ‘WEZ’ Showcase]초록색과 갈색, 그리고 옅은 핑크빛으로 서부 영화 혹은 명작 빈티지 영화 같은 분위기를 냈던 티오제와 달리, 흑백톤으로 이루어진 그 현수막은 미묘한 위압감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야, 이제 30분 있다가 리허설이야. 다들 목 풀어.”
그리고, 그 위압감은 대기실에서도 느껴졌다.
새카만 라이더 자켓, 그리고 은은한 광이 도는 워커와 다들 검정색으로 염색한 머리까지.
대기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청년과 소년 사이의 사람들은, 제각기 무대 위로 올라가기 전 긴장을 풀기 위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아, 아, 음….”
“제이든. 같이 동선 맞춰 볼래?”
“Sure.”
목을 풀고, 가벼운 안무 연습을 하고.
“…….”
“물 있는 사람? …됐다. 니들 할 일 해. 내가 찾아 마실게.”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고, 약을 먹고.
“하하…. 이거 재밌다. 응. 다들 관심 없어, 혹시?”
누군가는 휴대폰으로 영상을 보며, 아주 재밌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리고.
“…….”
자신의 말에 반응 없이 할 일을 하는 멤버들을 향해 빙그레 미소 지은 안태이는, 아까 전부터 반복 재생 중이던 영상에 다시 한번 집중했다.
[[JDS crew> ToZ- ‘Boyhood Ending’ Cover with ToZ CY (조회수: 2,934,997)]누군가가 보낸 아주 크고 거대한 반격을 본 그의 반응은…
“하하, 진짜 재밌는데. 이걸 다들 안 보네….”
…아주, 즐거운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