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51)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51화
* * *
[타겟팅 스타>의 포지션 경쟁 무대를 시작하기 전, 연습생 대기실.중간 평가에서 ‘아무리 자기가 잘하는 분야가 아니라지만, 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뼈 아픈 혹평을 들었던 로건은.
“로건, 아니!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다시, 다시. 여기 ‘바닥까지 떨어진 것 같아도 난’ 부분부터…….”
“Holy. 아니, 화성. 저 방금 잘하지 않았어요?”
…나와의 대화 이후로 확실히 나아진 모습이었다.
이게 마지막 무대라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진짜 나중 일은 나중으로 미뤄 두기로 결정한 건진 모르겠지만, 당장은 저 상태가 낫긴 했다.
“김춘용 연습생이 말해 준 것들이 도움이 되면 아주 좋겠네.”
“…저도 마찬가지예요.”
만일 도재찬 사장님이 지금 신 이사님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물 밑 작전이 잘 통한다면, 오늘 있을 무대에서 보일 모습 역시 중요했으니까.
그리고 그때.
마치 누군가가 짜 둔 각본이 실행되는 것처럼.
“좀 잘하는 걸로는 안 되죠! 아, 이 싸람이 진짜. 확실히 중간 평가 때보다 훨씬 좋아지긴 했지만―.”
“저, 지화성 연습생.”
“음방 나가기까지는 부족… 에? 작가님?”
“잠깐 로건 연습생 좀 데리고 가도 될까요?”
“…What? 저요?”
“네. 피디님께서, 주, 중요한 일이라고 하시던데요….”
열과 성을 다해 자기 파트를 연습 중이던 로건이, 막내 작가에게 얼떨떨한 모습으로 불려 나갔다.
“로건만 데리고 간다고? …왜 다른 랩 포지션 연습생들은 안 부를까요?”
“음, 글쎄. 따로 전달할 사항이라도 있나 보지.”
로건과 같이 랩 포지션인 지화성에게는 모르는 척 변죽을 둘렀지만, 나에게는 이미 본 적 있는 광경이었다.
내가 이전에 겪었던 [타겟팅 스타> 당시 말이다.
‘I’m so sorry. 죄, 죄송합니다….’
그때도 저렇게 불려 나갔던 로건은, 곧 죽을 것 같은 얼굴로 돌아와서는 무대를 완전히 말아먹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개인 사정으로 인한 하차 안내문을 박아 버리면서, 그렇게 [타겟팅 스타>를 떠나갔었고.
그러니까, 지금 이 부름은 로건의 하차와 관련된 부름이라는 의미였다.
당시에는 내 무대, 그리고 내 순위에 신경 쓰기도 바빠서 ‘다시 영국에 갔구나’ 정도의 감상뿐이었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좀?
아니. 엄청 다르지.
“후.”
나는 내 허리를 조이고 있는 하네스의 높이를 살짝 조절하며 숨을 골랐다.
“…나는 내 대기실로 갈게. 수고해라, 지화성.”
“용용 형 어디 가요! 나랑 놀아 줘야지!”
“가오옌이랑 놀아, 인마!”
“그래, 화성. 이제 내 랩을 들어줄 차례가 됐다. 랩의 화신 가오옌을 보여주겠다.”
나는 어울리지 않게 질척거리는 지화성을 가오옌에게 집어던지고는 복도로 슬그머니 기어 나왔다.
물론 내가 이렇게 나온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일이 있지는 않았지만, 마냥 손가락만 빨고 있을 정신머리도 아니니까.
“어, 김춘용 연습생. 어디 가세요? 막 움직이면 동선 파악에 어려운.”
“아, 작가님. 저 옥상을 잠깐 다녀오려고요.”
“네? 연습생이 옥상은 왜 가요?! 김춘용 연습생, 설마!”
“아, 생각하시는 거 아니에요! 음료수, 음료수 뽑아서 먹으려고요!”
“흐음… 알겠어요.”
나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막내 작가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막내 작가가 저런 반응을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뮤직데이즈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옥상에 가는 일은, 대부분 한 가지 이유이기 때문이었다.
“후우….”
나는 발걸음을 재촉해 도착한 옥상의 문을 슬쩍 열며 소리가 나지 않게끔 조심조심 움직였다.
앞서 도착한 누군가가 태운 담배향이 코끝을 찔렀다.
…옥상 정원에 구석에 위치한 흡연 구역.
밤샘 작업이 잦은 방송가 사람들이 잠깐 숨을 돌리는 장소인 거기는, 의외로 그 외의 기능을 하기도 했다.
소문의 온상지.
그리고 이번에는 소문의 온상지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게 아니었다.
“왜 바보 같은 짓을 해, 주 피디.”
냉정한 얼굴의 신 이사님과.
“이게 바보 같은 짓인지, 아니면 좋은 수인지는 아무도 모르지.”
그 기세에 지지 않겠다는 듯, 함께 으르렁거리고 있는 주 피디가 거기 서 있었거든.
이러기를 바라기는 했지만, 대놓고 당사자들의 면면을 보게 되다니.
이런 걸 유레카라고 하던가?
나는 황급히 흡연 구역 유리벽 옆에 있는 자판기 뒤쪽에 주저앉으며 숨을 죽였다.
가려진 내 모습을 보지 못한 두 남자는 서로를 향해 신랄한 말들을 마구 꺼내 댔다.
“…하루아침에 설득이 될 일이었으면 저 사람들이 한국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그 부분도 이해가 안 되나?”
“신 이사 당신도 확신은 못하고 있잖아.”
“미성년자의 보호자가 피보호자를 데리고 가는 걸 확신 못한다고? 주 피디. 머리가 어떻게 된 거 같은데.”
‘허.’
충격적인 말에 나는 혀를 내두르며 이마를 가볍게 짚었다.
그래. 어떻게 하루아침에 하차가 결정됐나 했더니.
…로건의 부모님이 방송국까지 온 거구나.
그래, 어쩐지. 로건 성격에 부모님이 직접 오시는 게 아니었으면, 끝까지 버티고도 남았겠지. 원래라면.
나는 허탈함으로 주저앉으려는 다리에 힘을 주며 마저 귀를 기울였다.
“이 일이 끝나면 좀 더 길게 얘기를 해 봐야 할 거 같네. 누누이 말하지만, [타겟팅 스타>의 투자는….”
“그놈의 투자, 투자! 누가 들으면 신 이사 당신이 프로그램 만드는 줄 알겠어. 지금 제대로 말해 두지. 결국 방송을 만드는 건 나야. 알아 두라고.”
쾅!
무언가 거세게 발로 차이는 소리가 들리고, 흡연 구역에서 나온 주철영 피디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옥상을 걸어나가 버렸다.
나를 발견하지 못했으니 좋은 일일까, 아니면 곧 촬영에 임해야 할 사람이 흥분했으니 안 좋은 일일까.
그러나 나의 그런 생각은 길어질 수가 없었다.
곧이어 흡연 구역을 나온 신 이사님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거기 누구지?”
나는 그 말이 당연히 나를 향한 말인 줄 알았다.
무대를 앞둔 와중에 여기까지 올라와 있을 간 큰 사람이 나 외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으니까.
근데, 있더라고.
“…난데.”
여기까지 올라온 또 다른 간 큰 연습생이.
내가 몸을 숨긴 자판기 옆, 여기저기 널린 플라스틱 의자 틈 사이로 배경처럼 앉아 있던 인영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곳에 몰래 찾아온 나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사람.
나와 같은 하얀 셔츠, 그리고 그 위에 걸친 하네스.
어떤 상황에서도 전혀 당황하지 않을 것 같은 얼음장 같은 얼굴.
“내가 여기 오면 안 되는 이유는 없어.”
순간, 그 사람과 두 눈을 마주친 나는 나도 모르게 입 모양으로 중얼거렸다.
‘…류웨이.’
그리고, 마치 그게 들리기라도 한 것처럼 류웨이의 두 눈동자가 내가 있는 곳을 향했다.
나는 헙, 하고 헛숨을 들이켜고는 내 몸을 더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왜 여기까지 올라온 거냐, 류웨이?”
그 시선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은 신 이사님이 말을 꺼내면서 내 존재는 일단락되었다.
“대기 시간 동안은 쓸데없이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을 텐데.”
신 이사님의 날선 윽박에도, 여전히 내가 숨은 곳에 시선을 박은 류웨이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목이 말라서.”
“…목이 말라서 옥상까지 올라왔다고? 그걸 사람 믿으라고 하는 소린가?”
내가 알기로 둘은 서로 목적에 따라 돕고 도움받는 관계인데, 나누는 말들은 퍽 곱지 않았다.
“아니. 그렇지만 대답은 해야 하니까.”
“버르장머리 없는 애새끼 같으니.”
아니, 곱지 않다 수준이 아니라….
“데뷔를 하고 싶으면 이상한 곳에 정신 팔지 말고 집중이나 해.”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다.”
“네가 알아서? 알아서 하는 놈이 미션 현장에서 휴대폰이나 보고 있어?”
…거의 싸우고 있는데.
“그렇게 해서 딱히 내 순위가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건 그 영상이 아직 올라가지 않아서고, 내가 네 위주 편집을 지시했기 때문이야. 네가 그렇게 멍청한 줄은 몰랐는데. 이거 참 일이 심각하게 됐어.”
“일이 심각하게 된 건 당신이다.”
“…뭐?”
“일 하나 제대로 처리 못해서 빌빌거리고 있으면서.”
“하, 하하… 이, 씨발 건방진 중국인 새끼가….”
“그래, 난 중국인이지.”
그것과 관계없이.
“자기 일에 집중해야 할 사람은 당신 같다.”
마지막으로 류웨이가 꺼낸 말에 신 이사님이 어이없다는 듯 한국말로 욕을 몇 마디 지껄이는 소리가 들리고, 옥상 문이 쾅 하고 닫혔다.
조용해진 옥상에는 오로지 나와 류웨이만이 남은 채로였다.
…저쪽도 모르긴 몰라도 개판이었군.
나는 잠자코 류웨이도 이곳을 떠나가기를 기다리며 눈동자를 굴렸다.
그러나 류웨이는 내가 바라는 대로 옥상을 떠나지 않았다.
“나와.”
주어 없이 누군가를 부를 뿐이었지.
“나오라고 했다.”
이렇게 되니 모르는 척할 수가 없었다.
이유야 모르겠지만, 류웨이가 신 이사님에게 내가 있다는 걸 드러나지 않게끔 시선을 끈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나는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나며 꺼낼 말을 골랐다.
여기서 무슨 말을 해야 좋지?
우연하게 여기 오게 되었다고?
너스레를 떨까, 모르는 척을 할까.
그러나 내 그런 고민이 무색하게, 나를 향해 다가와 앞에 선 류웨이의 다음 말은 서릿발보다도 차가웠다.
“…쥐새끼처럼 숨어 듣는다고 뭐가 달라지나?”
“뭐?”
얘가 뭐라는 거야.
내가 그 말의 의미를 미처 깨닫기도 전에, 자판기 쪽으로 다가온 류웨이는 내 어깨를 제 오른손 검지로 꾸욱 누르며 중얼거렸다.
“저기 안에 있는 건 이제 곧 하차할 거고, 그 다음은 너야.”
아.
이렇게 다 알고 있는 티를 내시겠다?
가오옌에게 제안한 나와 로건을 향한 견제, 로건을 하차 ‘시키려는’ 것.
그리고 나에 대한 적대감.
그냥 이렇게 보여 주시겠다고.
나는 순간 솟아오르려는 화를 잘 참아 내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나를 향한 류웨이의 이런 안하무인의 태도는 이미 같이 활동을 하던 3년간 겪은 적이 있었기에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악성 멤버인 내가 끼치는 피해 때문에 눈치를 좀 봤지, 내가.
근데….
다시 돌아와서 아무 관계가 없는 이제는 눈치 볼 필요가 없고.
나는 내 어깨에 올라와 있는 류웨이의 손을 툭 밀어냈다. 큼직하고 하얗게 질린 손이 맥아리 없이 떨어져 나갔다.
“류웨이. 네가 뭘 좀 착각하는 거 같은데. 난 그냥 여기 너랑 ‘똑같이’ 음료수나 뽑아 먹으러 온 거거든.”
“…….”
내 너스레에도 류웨이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언제나처럼 평온하고, 얌전하고, 차가운 얼굴.
때문에 나는 그와 대비되게 활짝 웃고는 단어를 꼭꼭 씹었다.
“그래서 누구 다음은 내가 하차라고 한 거. 난 그게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지만 말이야….”
사실 다 알고 있지만, 어쨌든.
“그건 네 희망 사항이지, 사실이 아니잖아. 이 자식아.”
내 단호함에 류웨이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나는 덩달아 입을 다물며 녀석을 똑바로 쳐다봤다.
지옥 같던 날들에서 돌아온 나는 누가 뭐래도 내 속죄를 하고, 가족들을 지켜야 하거늘.
누구 맘대로 하차래, 이게.
나는 류웨이의 넓은 어깨를 툭툭 치다 어깨동무를 하며 씨근덕거렸다.
“야, 내려가자.”
100번 말해 봐야 이 오만한 녀석한테는 먹히지 않는다는 걸 나는 잘 알았다.
그럼….
다른 걸로 보여 주는 게 맞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