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65)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65화
* * *
기초 안무 레슨 내내.
“김, 춘용 연습생.”
“…….”
“야, 춘용아. 다솔 멘토님이 너 부, 부르시는데.”
“아, 네! 죄, 죄송합니다. 제가 반박 빨랐죠. 그, 박자를 쪼갠다는 게.”
“…괜, 찮아요. 별로, 안 빨랐… 어요. 다시, 한 번 갑니다.”
집중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차라리 방금 유찬 형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꽉 채워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거든.
아까 유찬 형이 누나의 아웃그램 게시글을 본 때부터 지금까지가, 내가 서바이벌을 시작하고 가장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운 순간이었다.
…아니, 그렇잖아.
“야. 미쳤어? 너 이런 거 먹으면 데뷔 못해!”
“누나, 그거 내가 연습 끝나고 먹으려고 사 둔 거라고!”
“내가 너 데뷔하는 거 도와주겠다고 대신 처리해 주는 거잖아. 바보냐?”
평소에 머리를 질끈 묶고, 내 등을 후려 갈기면서 ‘그런 정신머리로 무슨 아이돌을 하겠다고’ 같은 말만 했던 게 내 기억 속 보미 누나인데.
[제 동생을 향한 루머에 대해 해명을 하고자 아웃그램 계정을 생성했습니다.]그런 누나가, 저런 글을 썼다잖아.
걸핏하면 말 앞에 붙던 ‘내가 고등학교 교사인데’라는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누나가 남긴 아웃그램의 글은 어디 하나 부족함 없이 깔끔한 글이었다.
[1. 여자 친구 루머 관련설명에 앞서, 현재 제 동생의 여자 친구 증거라고 세간에 떠도는 사진 속 여성은 저임을 먼저 밝혀 두겠습니다.
당시 저와 아버지는 동생을 응원하기 위해 아침 일찍 직접 숙소로 바래다주고 있었습니다. 해당 사진은 그 순간에 맞춰 누군가가 찍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더해 그 날짜와 루머 속 날짜는 다소 상이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는 앞서 다른 연습생분이 올려 주신 영상으로 시간대 비교 추정이 가능하니, 참고 바랍니다.]
공문서라도 되는 것처럼 깔끔한 문장, 그리고 육하원칙에 딱딱 맞춘 상황 설명까지.
[2. 게임 아이템 루머 관련저와 제 동생들은 게임 아이디 생성 시, 앞부분의 영문을 맞추고 뒤에 따라붙는 숫자만 바꿔 생성하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습니다.
때문에, ‘이 계정이 김춘용의 계정이다’라고 올라온 게시글 속 게임 캐릭터는 제 동생의 캐릭터가 될 수 없습니다.
해당 게임은 계정당 한 캐릭터만 생성 가능한 게임이니, 대답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의심의 여지가 있을까 싶어, 저와 제 동생들 캐릭터의 사진과 계정을 사진에 첨부하겠습니다.]
심지어, 누나와 나리는 과거에 나 때문에 계정만 만들고 방치했던 게임 속 캐릭터를 굳이 찾아서 사진에 올려놓다니.
차라리 거기서 끝났다면 나았으려나. 그러나, 누나의 아웃그램 게시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금껏 동생의 의견을 존중해 가족 관련으로 이렇다 할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대중에게 노출되는 직업을 택함으로 인해 감수해야 할 여러 애로사항이 있음 역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고, 동생이고, 오빠입니다.
제 동생이 하지 않은 일들로 인해, 보지 않아도 될 악의적인 문장이 쏟아지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악성 멤버로 살 당시 내가 보아 왔던 악플과 루머, 그리고 기사는 지금의 것과는 수위부터가 달랐다.
그러니까, 이 정도는 나한테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누나가 이렇게 할 이유는 없었다.
애초에, 이렇게 대응을 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하는 게 한두 개가 아닌데!
학생들 생기부 쓰기도 바쁠 교사가 무슨 시간이 있다고 저런 걸 쓰는 거야, 진짜.
“감사합니다, 먼저 가 보겠습니다!”
기본 안무 레슨이 끝나자마자, 나는 연습실을 뛰어나와 누나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마음이 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니까, 글쎄.
내가 비상 계단참에 도착하는 그때. 이어지던 연결음이 끊겼다.
고등학교는 이제 막 점심을 먹을 시간이었다.
– …여보세요?
“누나, 나야. 김춘용.”
– 뭐야. 왜 이 시간에 전화를 하고 자빠졌어? 나 학교인 거 몰라?
휴대폰 너머 누나는 여느 때와 같이 나를 타박하기 바빴다.
살짝 낮고, 나랑 꽤 많이 닮은 말투로.
그 목소리에 입을 다문 나는, 머릿속으로 말을 정리하며 띄엄띄엄 문장을 내뱉었다.
“누나.”
– 뜸들이지 말고 용건 빨리 말해. 오늘 급식에 탕수육….
“나 누나가 올린 아웃그램 게시글 봤어.”
– …연습 안 하냐? 빠져 가지고 SNS나 하고 있네.
“왜 올린 거야? 내가 어제 메시지 보냈잖아. 신경 안 써도 되는 거라고. 그거 쓰느라 시간 들었을 텐데.”
누나는 잠시간 말이 없더니, 정말 별거 아니라는 투로 가볍게 얘기했다.
– 어. 좀 들었지. 근데 거기 사진에 있는 게 나잖아? 그걸 해명 안 하고 배겨? 내가 내 동생 여친이 되고 있는데? 아 씨, 소름 돋아.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지금…!”
– 야. 그럼 뭐가 중요한데?
내가 언성을 높이는 순간, 누나는 내게 날카롭게 쏘아붙이며 목소리를 깔았다.
보미 누나가 가장 무서운 순간이 있다면, 바로 이럴 때였다.
선생님으로서의 면모가 드러날 때.
– 내가 못 쓸 말 썼어? 아니면, 너한테 피해 가는 말 썼어?
“…아니.”
– 근데 뭐가 문제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며. 대답해 봐.
“…….”
이러려고 전화한 게 아닌데.
8년의 시간을 되돌아와도, 이 시절 누나를 논리로 이길 수가 없다니.
내게서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누나는 수화음 너머로도 느껴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단어를 씹었다.
– 김춘용. 너. 나한테 피해 올까 봐 걱정되는 건 알겠는데, 그거 자의식과잉이다.
“…….”
– 너 그렇게 안 유명해. 해명글? 그거 써도 댓글 안 생기더라. 그러니까 그걸로 나한테 생길 피해 같은 것도 없어.
“아니, 그건 누나가 댓글을 막아 놔서….”
– 아아, 시끄러워. 나 밥 먹어야 해. 너 오늘 탕수육 다 떨어지면 책임질 거야? 그런 거 아니면 끊고 가서 죽어라 연습이나 해.
촬영 잘하고.
– …가온이 사인 잊지 마라. 알겠냐?
뚝─
“…누나? 보미 누나? 아, 씁.”
몇 번이고 더 다이얼 버튼을 눌렀지만, 아까처럼 연결음이 끊어지고 누나의 목소리가 들리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무시를 하시겠다, 이거지.
허탈함과 당황으로 내가 머리를 싸쥐고 있던 그때, 비상 계단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올 줄 알았지.”
그리고 또 한 명의 익숙한 목소리.
내게 이 사달을 전부 직관시켜 준 주인공.
“…유찬 형.”
“춘용이 너, 앞으로 가는 곳 레퍼토리 좀 바꿔야겠다. 이러다가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또 보면 어떡해.”
또 한 번 괘활한 웃음을 지은 유찬 형은 곧 내 곁에 다가와 엉덩이를 붙이며 내 어깨를 퍽퍽 두드렸다.
“이제 다 잘 풀릴 거야. 당장 중간 순위가 조금… 내려가긴 했지만. 다시 오를 거고!”
“아니, 그것보다도. 저는….”
“춘용아.”
“…네.”
“피해 주기 싫어하는 거 알아. 그게 맞지. 근데, 이런 일은 다른 사람한테 도움 좀 받는다고 더 나빠질 일 없잖아? 심지어 네가 직접 한 일도 아닌데, 뭐 어때.”
틀린 게 없는 말이었다.
해명할 수 있고, 해결을 볼 수 있다면 빠르게 할수록 좋은 게 분명하니까.
그렇지만 내가 이걸 그냥 무대응으로 넘기기로 한 건, 증거도 없는 루머에 말을 얹어 상황을 부풀리기 싫은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게 위해서였다.
이전의 나는 너무 많은 사람을 고생시켰으니까.
기왕 멀쩡하던 그때로 돌아왔다면, 그래서는 안 됐으니까.
그런데, 정작 내가 속죄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나서서 도움을 주고 있다니.
나는 내 어깨에 올라온 유찬 형의 팔을 슬쩍 빼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쩌면 그때 해야 했으며, 지금 반드시 해야 하는 말.
“…고마워요, 형.”
그냥, 고맙다고.
같은 멤버일 때도 나를 포기하지 않더니, 지금도 도와주려고 해서. 여전히 내가 알고 있는 그 멤버라서 고맙다고.
내 전화를 받지 않는 나의 누나에게도.
“어후, 야. 말이 너무 간지러운데? 뭐 이게 별거라고. 인터넷 조금만 찾아보면 다 대처 방법 나오고 그래. 나 학교에서 자료 조사할 때도 이것보다는 더 했다. 정작 뭘 한 건 재하인데, 뭐.”
“형이 학교 다닐 때 교양으로 간단하게 고소 방법 같은 것 좀 알아봤었거든? 걱정 마, 렉스야. 형 좋다는 게 이런 거지 뭐.”
예전과 비슷한 말을 변함없이 내뱉는 유찬 형을 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푸핫 하고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 맞다. 가오옌이 먼저 너 보러 가야 한다고 그랬는데! 내가 순서를 뺏어 버렸네. 하여튼, 파이팅해, 춘용. 이따가 밥 먹을 때 또 보자.”
“그래요, 형. 고마워요.”
나는 내게 활기차게 손을 흔들고는 계단을 오르는 유찬 형의 뒷모습을 꽤, 오래 지켜봤다.
이래서, 내가 애로우즈 멤버들에게.
가족들에게 더, 더 잘하고 싶은 거였다.
굳이 자기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손을 벌려 주는, 착한 사람들이니까.
“정말 아름다운 우정이다, 춘용 형. 나와 형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저렇게….”
그리고, 그런 내 감흥을 깨는 존재가 아래 지하에서 성큼성큼 걸어 올라오며 말했다.
그래. 거기 있는 거 다 알고 있었어.
나는 살짝 잠긴 목을 큼큼, 하고 가다듬으며 장난스러운 목소리를 꺼냈다.
“겠냐? 인마.”
내 태도가 퍽 무안할 법도 했는데,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은 가오옌은 뭔 첩보 영화에 나올 몸짓을 몇 번 하더니 작게 속삭였다.
“형이 말한 걸 찾아봤다.”
“…그래.”
어쨌든, 가오옌 덕분에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형들과 누나가 내게 보여 준 도움이 빛 바라지 않게, 내가 할 일을 지금부터 빠르게 진행해야 했다.
…무사히 중간 순위 발표를 마치, 생방송 전에 류웨이와 담판을 짓기 위해서는 말이다.
* * *
나는 가오옌과 천천히 비상 계단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생각을 되짚어 봤다.
엑스의 불안, 리밍쉔의 걱정, 가오옌의 호들갑에도 내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고수했던 것.
그건, 이 방법을 쓰면 정말 돌이킬 수가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나와 류웨이는 애로우즈 시절에 이렇다 할 교류가 눈에 띄게 있지 않았지만, 딱 한 번. 맥주를 나누면서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이미 그 사고가 일어난 후였고, 내가 악성 멤버로서의 명성을 조금씩 떨치기 시작할 때즈음이었다.
그러니까, 류웨이가 탈퇴를 하기 직전.
“아, 좀 살 것 같다….”
다른 멤버들과 달리 개인 스케줄이 전무했던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숙소로 돌아와서 냉장고에 있던 맥주를 축내고 있었고, 새벽이 되기 전까지는 그 어떤 멤버도 돌아오지 않았어야 맞았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류웨이가 숙소 문을 박차고 들어왔던 거지.
“…류웨이? 네가 왜 벌써 들어와. 라디오 있었잖아.”
“취소했다.”
“뭐, 그래.”
평소 같으면 내게 일언반구 없이 방으로 들어갔을 류웨이는. 어째선지 내가 든 맥주를 빤히 바라보며 주방을 서성였었다.
마치, 자기도 그게 필요하다는 것처럼 말이다.
“너도 술 마실래? 마시면 좀 나은데.”
뭣도 모르지만, 내가 꺼냈던 말.
그리고, 술이라고는 전혀 마시지 않던 류웨이가 고민 끝에 내가 건넨 맥주를 받아 들고, 한 방에 그걸 다 들이켜고 꺼낸 말.
“드디어 약혼을 깼어.”
아이돌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되는, 그 말.
지금까지는 그 대상에게까지 피해가 가면 안 된다는 생각에 한참 후순위로 미뤄 두고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까지 그걸 고려할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선을 넘은 건 류웨이가 먼저니까.
자, 그럼….
“그 사람 계정은 좀 찾아봤어?”
“지금 확인 중에 있다. 나만 믿어라, 춘용 형. 가오옌이 광동어뿐만 아니라 보통화도 공부한 건 다 이때를 위해서였다.”
약혼을 좀 더 빨리 파투 내 보자고, 류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