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98)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98화
한창 렉쓰레기라는 이름값을 하던 시기라 그럴까.
엉망인 꼴을 보며 놀라기도 전에, 몸이 제 마음대로 움직였다.
팔이, 다리가. 그리고 입이.
“아, 네. 제가 틀렸네요.”
정신과 몸이 분리된 듯, 입에서 나오는 흘러나오는 말은 낯설었고, 내가 어찌해 볼 바가 없는 것들이었다.
“…다시 하죠.”
어떻게 해 볼 수 있었으면, 나를 쳐다보는 다섯 쌍의 눈을 향해서 이런 말을 안 했을 테니까.
‘미쳤네, 미쳤어.’
사과도 안 하고, 뻔뻔하게 그냥 다시 한다고 말을 한다?
부끄러움에서 비롯된 괴로움으로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이게 당시의 나라니, 제정신이냐고.
“저 이거 끝나고 약속이 있어서요. 빨리 할게요.”
제정신 아니네.
“하… 그래. 일단, 일단 다시 하자. 해야지, 어떡해.”
안무 선생님의 탄식과 함께 이어진 연습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주기적으로 내가 동작을 틀리고, 대형을 제대로 못 맞추고. 댄스 브레이크에서 넘어지고.
아까 1시간쯤 더 걸렸다면, 이번에는 그 두 배 정도 더 걸렸을까.
연습이 끝나는 것보다도, 선생님의 백기가 먼저였다.
“…안 되겠다. 남은 건 다음 시간에 마저 맞춰 보는 걸로 하고,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야 할 거 같아. 쌤도 이 다음 일정이 있어서….”
“어후, 괜찮아요. 저희끼리 한 번 더 해 보고 할게요. 들어가세요, 쌤!”
“…그래, 화성아. 고맙다.”
“자자, 저희는 마저 연습해 보죠?! 곡도 좋은데, 안무가 엉망이면 안 되잖아요!”
화성이가 쾌활한 목소리로 어떻게든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했으나, 그 노력은 쉽게 무너졌다.
왜냐하면.
“…나는 먼저 들어갈게. 수고들 해.”
나 때문에.
아까 ‘약속이 있다’고 언질한 걸 실천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내 다리는 연습실 한복판을 가로질러 빠르게 출구로 향했다.
저절로 움직인 몸이 주섬주섬 문 옆에 던져 놨던 가방을 들 때.
“잠깐, 잠깐만요. 렉스 형, 가지 말아 봐요.”
내 어깨를 붙잡는 커다란 손이 있었다.
화성이의 것이었다.
심란한 듯,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한참 뜸 들이며 말을 고른 화성이는, 자기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형 그냥 가면 안 돼요. 저희랑 조금만 더 있다가 가요.”
“왜? 나 아까 약속 있다고 미리 말했잖아.”
“그야, 곧 있으면 뮤비 촬영 있잖아요. 형, 다음 안무에 앞서서 오늘 안무 숙지도 다 못 했고, 또….”
그 다음 말을 잇지 못 하고, 화성이의 눈동자가 마구 떨리고 있었다.
“또, 뭐.”
“…….”
무언가 얘기를 해야 하는데, 함부로 꺼낼 수가 없어서. 힘들어하는 사람한테 괜한 말을 하는 걸까 봐.
그 정적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건 당연하게도, 나였다.
“…야, 지화성.”
여기서부터는 아주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내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 어떤 행동을 했었는지 말이다.
“어, 렉스 형. 약속 나가요?”
“어. 술 약속.”
“…아직 점심인데. 그럼 저녁은요? 저녁은 들어와서 먹나? 같이 먹을래요? 저 엄마가 대구에서 반찬 좀 보내 줬는―”
“아니, 나 새벽에 들어올 거야. 화성이 너 혼자 먹어.”
“…알겠어요. 조심해서 다녀와요.”
이전까지만 해도, 약간은 거리감이 있더라도 멤버들과 정상적으로 대화를 나누긴 했었다.
그러나. 이때 내가 던진 정신 나간 말, 그거 하나 때문에.
멤버들이 나를 향해서 독한 말을 하게 되고, 나는 그걸 또 모른 척하며 바깥으로 나도는 악몽 같은 시간이 시작됐었다.
‘야, 이 제정신 아닌 놈아. 제발 멈춰, 제발…!’
양손을 들어서 입을 틀어막고 싶었지만, 내 의지를 떠난 손과 입은 제멋대로 떠들기 바빴다.
“너, 나 여자친구 만나러 갈까 봐 이러는 거구나.”
“…네? 아니, 이건 그런 게―”
“뭐, 연애 단속 같은 건가? 좀 당황스럽다. 이전까지는 뭘 해도 아무 말 안 하더니… 술은 되고, 여자는 안 되고? 까다롭네.”
“…렉스 형.”
“예상이 틀려서 아쉽겠지만, 그냥 술 마시러 가는 거야. 그건 괜찮지?”
“…….”
내가 화성이에게 쏟아낸 말에 충격받은 듯, 두 눈을 커다랗게 뜬 시우가 내게로 다가와서 옷깃을 잡았다.
그렇지만, 나는 그걸 무성의하게 털어 내며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시우야, 가라. 형 술 좀 마시고 오게… 너는 아직 미자라서 못 가.”
“혀엉….”
“렉스야.”
이 엉망진창인 상황 속에서, 유찬 형이 그늘진 얼굴로 내게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아니, 재하 형. 놔 봐요. 나는 좋은 뜻에서, 힘이 되어주고 싶어서 한 말인데―”
“네 마음 다 알아. 다 아니까, 일단… 나가자, 화성아.”
잔뜩 화가 난 화성이는 이미 재하 형이 연습실 밖으로 데리고 나가고 있었다.
이런 판단력이 있으니까 역시 재하 형이 리더를 하는 거겠지?
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지만.
“그래. 약속 있다니까, 오래 안 붙잡을게. 대신 우리 대화 좀 할까?”
“무슨 말을 또 그렇게 하고 싶어요, 유찬 형.”
에어컨 바람에 유찬 형의 앞머리가 살랑거리고, 그 아래에 살짝 가려져 있던 두 눈이 드러났다.
시원한 눈매 속 검은 눈동자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네가 연애를 진짜 했든, 안 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어, 그래요?”
나는 수분기가 다 빠져 푸석한 뺨을 몇 번 매만지다가 당혹스럽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요?”
“…….”
“본론만 빨리 말해 주시지. 저 나가고 싶은데.”
“허….”
유찬 형이 숨 고르는 소리가 선명했다.
아무리 호쾌하고, 성격 좋고. 갈등 상황을 잘 아우르는 착한 형이라고 해도, 그게 이런 상황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속에서 튀어나오려는 감정을 잘 갈무리한 유찬 형은, 내게 침착하게 말했다.
“렉스야.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
“네가 힘들어서, 외로워서 사람을 만나고 싶은 거라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돼요. 좀 제대로 말을….”
“같이 사는 우리 멤버들이랑 더 이야기를 나누고, 네가 힘든 걸 우리한테도 얘기하고. 나는 그랬으면 해.”
“하, 하하….”
이 다음이었다.
“유찬 형, 감동적인 말 하는 중에, 미안한데요.”
내가, 돌이킬 수 없는 말을 꺼낸 게.
‘아, 제발. 그딴 말, 하지 마.’
발버둥 치고, 고함을 내지르고 싶었지만 선택지를 고를 권리는 내게 없었다.
렉쓰레기한테 있지.
나는 나를 빤히 보고 있는 시우와 유찬 형을 번갈아 보고는, 결국.
“가족 놀이 할 생각하지 마요.”
자기가 입 밖으로 꺼내고도 상처받을 말을, 그냥 그렇게 던져 버렸다.
이때 나는 뭐가 그렇게 힘들고 억울했을까.
이미 신용을 잃은 나니까, 아니라고 말해 봤자 멤버들이 믿어 주지 않을 것 같아서?
혹은, 멀쩡하게 가족들이 전부 집에 있는 주제에, 나를 동정한다고 생각해서?
아니면, 이미 최악으로 치닫은 상황 속에서, 더 나빠질 수도 없겠다고 여겨서?
아니면, 아니면.
이 후회에는 의미가 없었다. 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내가 가족들을 잃은 건 멤버들의 탓이 아니니까. 오로지, 내 잘못으로 인해서 이루어진 것들이니까.
설령, 그것 때문에 내가 정말 너무 힘들었다고 한들….
“렉스, 너….”
“그러지 마요, 형. 무슨 말을 하고 싶어도 그냥 참으라고요.”
“…….”
“저희 어차피 남이잖아요.”
이런 말은 하면 안 됐는데.
더 이상 나를 붙잡는 손이 없는 상태에서, 내 발걸음은 알아서 문밖으로 걸어나갔다.
“렉스, 형….”
“아, 다 들었구나? 뭐, 딱히 유찬 형한테만 하는 말은 아니었으니까.”
“…….”
이미 살짝 열린 문 너머로 내가 하는 말을 모두 들은 재하 형과 화성이의 표정은 뭐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고.
“들어가요, 형. 화성이도.”
“…….”
“네 말대로, 뮤비 촬영 얼마 안 남았잖아.”
쓰레기 빼고는 잘 찍어야지.
마지막에, 이죽거리기까지.
두 사람이 급하게 몸을 움직여 연습실 안으로 들어가고, 양쪽으로 여닫는 문이 쾅 닫히고.
그제서야 몸의, 목소리의 통제권이 나에게로 돌아왔다.
“잠깐, 아냐. 아무리 그래도, 이건, 이건 아니지….”
나는 황급히 연습실 문을 열고자 안간힘을 썼지만, 굳게 닫힌 문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덜컹거리는 문 틈으로 멤버들이 나누는 대화가 조금씩 들릴 뿐이었다.
“…그때, 내가 괜히 시우 상대로 날을 세우지만 않았어도, 렉스랑 제대로 얘기해 볼 수 있었을 텐데.”
“아니에요. 제, 제가 괜히 유찬 형한테 예민하게 굴어서. 그래서….”
“이게 어떻게 둘 탓이에요? 상황이 이런 건데! 그리고 아무리 그렇다고 해서, 렉스 형이 저희한테 저럴 이유는 전혀 없다고요!”
“아냐, 화성아. 그런 말 하지 마.”
자책하는 목소리, 혹은 약간 화가 난 목소리.
또, 체념하는 목소리.
“…우리가 뭐라고 하든, 이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
불처럼 활활 타오르던 감정이 가만히 내려앉는다. 차갑게, 물을 뿌린 것처럼.
나는 그 목소리를 향해 멍하니 중얼거렸다.
“…아냐. 달라질 수 있어요, 재하 형.”
이번에는 정말 다를 거예요.
왜냐하면, 지금의 나는 렉쓰레기가 아니라 김춘용이니까.
멤버들, 그리고 가족들한테 잘못을 빌려고 돌아왔으니까.
악마인지 천사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내게 도움을 주는 엑스와 함께, 게임 마냥 상태창도 가지고 무적처럼 나아 가려고 하니까.
“바뀔 수, 있다고….”
쏟아지는 생각과 죄책감으로, 나는 문 앞에 털썩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끼이이이익―
그리고, 그 안에서 재하 형이 천천히 걸어나왔다.
아까 내 폭탄 발언에 충격받은 듯 창백한 얼굴은 온데간데 없이, 아주 평온하고 다정한 낯으로 말이다.
마치, 아까 엘리베이터에서 본 것처럼.
“달라질 수 있을 거 같아, 춘용아?”
“…왜 당연한 말을 해요, 재하 형.”
이제 이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됐다.
왜 하필 내가 멤버들에게 가장 미안해하는 순간이 눈앞에 펼쳐졌는지, 그리고 재하 형이 그 상황의 화자역을 맡고 있는지.
“음, 그냥. 확신이 잘 안 들어서 그래. 너를 못 믿는다는 건 아니고.”
재하 형은 내 옆에 앉으며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네가 힘들어서,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것들이 있잖아. 알지?”
“…네. 알고 있어요.”
“정말 달라지고 싶으면, 그걸 꼭 해결해야 할 거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재하 형이 천천히 내 뒤에 있는 문을 열었다.
“그럼, 잘 가. 춘용아.”
꿈에서 깰 시간이니까.
서서히 등이 뒤로 넘어가면서, 끝없는 구멍 아래로 몸이 떨어졌다.
시야에는 깜빡거리는 엘리베이터 불빛이 보였다.
네 귀퉁이에 달린 전구들이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나는 이 꿈에서 처음 깰 뻔했을 때 느꼈던 어지러움을 그대로 느끼며, 추락에 가만히 몸을 맡겼다.
이렇게, 떨어지다 보면….
* * *
뿅!
“…허어억!”
갑작스럽게 울린 휴대폰의 깜찍한 알림에, 김춘용은 고함을 내지르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얼굴에 올려져 있던 휴대폰의 네 귀퉁이가 메시지가 왔음을 알리며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무, 무슨 꿈이 이딴….”
뿅! 뿅! 뿅!
여전히 미친 듯이 울리는 알림에, 김춘용은 정신도 다 차리지 못 한 상태에서 황급히 휴대폰을 확인해야만 했다.
엑스에게서 온 메시지가, 온통 알림창을 뒤덮고 있었다.
– X: 야아아아아 김춘용용 추뇽 추뇽 빨리 일어나
– X: 야 목표창 새로 갱신된 거 봄? 봄?
– X: 드디어 새로운 챕터의 시작이라구 >[
– X: 데뷔한 거 축하해 응? 물론 아직 노래도 춤도 아무것도 모르지만 명함은 달았으니까!!
– X: 새롭게 찾아온 날을 기념하자구 ㅎㅎ 나랑 같이!
“허….”
쓰잘데기 없는 그 문장들을 모두 읽은 김춘용은, 천천히 다시 침대에 드러누우며 제 얼굴을 손으로 문질렀다.
“좋은 날에는 악몽을 꾼다더니, 정말….”
티오제의 멤버가 된 후.
첫 번째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