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172
◈ 172화. 단려화의 제안
같은 시각, 태산표국주 청금환은 자신을 찾아온 손님과 마주 앉아 있었다.
“정말 놈들이 그런 제안을 해왔단 말이오?”
배가 잔뜩 나온 중년인, 제령상단주 엽평이 황당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대량표국이 아니면 표행을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어디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허허허.”
엽평은 웃고 있었으나 청금환은 그럴 수 없었다.
백표대는 지금 제남 전역의 상단과 방파를 감시하느라 움직일 여력이 없다.
놈들이 무엇을 준비하고 기다리는지 모르는 지금 표사들만으로 표행에 나섰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이 개 같은 새끼들이.’
엽평은 청금환의 속도 모르고 태평하게 말했다.
“무적의 백표대가 나선다면 그깟 산적 놈들은 추풍낙엽처럼 목이 떨어질 것입니다. 이참에 본때를 보여주시지요.”
“물론 그럴 것이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있어 백표대를 외부로 돌릴 수 없소. 상행은 잠시 미루시오.”
엽평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치켜떴다.
“예? 상행을 미루다니요.”
“놈들이 산동을 목표로 삼은 모양이오. 양산채뿐만 아니라 각지의 산채에서 지원을 보내고 있소이다. 나 역시 오대표국의 지원을 요청할 것이니 그때까진 가급적 외부 출입을 삼가시오.”
위기를 모면하고자 둘러댄 말에 엽평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게 정말입니까? 정말 이곳 산동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청금환은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이리 알려줘서 고맙소. 내 앞으로 제령상단의 상행은 각별히 챙길 것이오. 물론 표행비도 신경을 써주겠소.”
바라던 대답을 들은 엽평은 밝게 웃으며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국주.”
엽평이 돌아가자 청금환은 대표두들을 소집했다.
세 사람이 차례로 자리에 앉은 가운데 좌황이 입을 열었다.
“국주님.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갑니다. 다른 표국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청금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금 나더러 정체가 까발려지게 생겼으니 제발 도와달라며 읍소라도 하라는 것인가?”
흑면수 구표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국주님. 여기서 일이 틀어지면…….”
말을 채 끝맺기 전에 청금환의 주먹이 탁자를 내리쳤다.
쾅!
쩍 갈라진 탁자가 바닥을 나뒹군다.
청금환은 이를 바드득 갈며 말했다.
“시끄럽다. 고작 거산채 하나와 무면산왕만 처리하면 되는 일이다. 이 정도도 해결하지 못하면 그들이 나를 뭐로 생각하겠느냐? 이 일은 우리 손에서 마무리한다.”
그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부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국주님. 서풍방에 갔던 백표대원 둘이 사라졌습니다.”
“뭣이?”
벌떡 일어난 청금환이 문을 벌컥 열었다.
부하는 즉시 예를 갖추며 말했다.
“교대할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은 것을 보면 일이 생긴 게 분명합니다.”
좌황이 말했다.
“서풍방에 백표대원을 감당할 수 있는 무인은 없습니다. 분명 그놈들이 서풍방을 지키는 게 분명합니다.”
침묵하던 악계화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대로 끌려다니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먼저 선수를 쳐야겠습니다.”
“자세히 말해보아라.”
“대원들에게 지시한 것은 국주님의 무공을 알게 된 자를 특정했을 때 제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알고 있다. 확실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말라는 지시도 했었지.”
“다른 곳이 멀쩡하고 서풍방의 대원만 당했다는 것은 그들이 뭔가를 눈치채고 움직이다 당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음.”
좌황이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아아! 그렇군! 놈들이 우리처럼 제남 전역의 방파와 상단을 감시하지는 않을 겁니다. 백표대가 움직일 때 놈들이 나타나는 곳이 국주님의 무공을 목격한 방파입니다.”
시종일관 굳었던 청금환의 표정이 그제야 밝아졌다.
“그렇다면 백표대가 움직였을 때 놈들이 나타나지 않는 곳은 아무것도 모를 확률이 높겠군.”
악계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적당히 움직이는 척을 해서 대상을 좁혀야겠습니다.”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한 기분이다.
청금환은 즉시 팔을 뻗었다.
“지체할 것 없다. 당장 시행하라.”
* * *
백표대는 청금환의 명에 따라 일제히 수뇌부를 습격했다.
상천의 무인이 나타나지 않은 곳은 불필요한 살상 없이 은밀히 퇴각했고, 나타난 곳에선 치열한 접전이 펼쳐졌다.
대상을 좁히고자 하는 백표대의 움직임은 곧장 진무립에게 전해졌다.
제법 널찍한 처소, 수뇌들이 모여든 가운데 시평이 보고했다.
“주군. 백표대가 동시다발적으로 수뇌부를 암습했다고 합니다.”
“동시에?”
“예. 약간의 오차는 있겠으나 계산해보니 거의 같은 시각이었습니다.”
“피해는 없었나?”
“은무대와 양산팔수가 지키고 있었기에 큰 피해는 없습니다.”
천주와 거산채주의 호위가 지키는 곳을 소수의 백표대로 뚫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잡지 못하고 놓친 곳은 있습니다.”
진무립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그들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건 우리가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대비한 것일 테지. 려화.”
“네.”
“우리가 지키지 않는 방파에 잠입해서 무슨 일이 없었는지 확인해줘.”
“그건 왜죠?”
“만일 다른 곳까지 전부 습격이 있었다면 이건 전투를 지켜보고 돌아간 곳을 특정하기 위한 시험이야. 그걸 확실히 해야 다음을 대비할 수 있다.”
“아! 그렇구나.”
단려화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녀올…… 잠깐.”
그녀는 돌아서다 말고 눈을 흘겼다.
“날 이용하지 않겠다면서요?”
진무립이 짓궂게 웃었다.
“이건 이용이 아니라 부려먹는 거다.”
복면을 쓰는 그녀의 얼굴이 형편없게 구겨졌다.
“부려먹지 말고 차라리 이용을 해요.”
처소를 나선 단려화는 조용히 담을 넘었다.
어둠 속에서 빠르게 신법을 전개하던 단려화가 갑자기 발을 멈췄다.
‘……그러고 보니 투덜거리면서도 시키는 건 다 하고 있네.’
화령도에선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럼에도 기분 나쁘지 않다는 사실이 왠지 어이가 없었다.
실소를 흘린 단려화는 일다경을 달린 끝에 중홍문에 도착했다.
담장을 넘기도 전에 안에서 고함이 들려온다.
“흉수는 아직 찾지 못했느냐!”
“장원 전체를 뒤졌으나 찾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사라진 모양입니다.”
“이런!”
혀를 차는 소리까지 확실히 들려온다.
‘무립의 예상이 맞았어. 태산표국이 대상을 특정한 이상 곧 움직일 게 분명해.’
가까운 상단까지 확인한 그녀는 다시 동진상단으로 발을 옮겼다.
‘이제 그들은 어떻게 움직일까?’
열 곳의 상단과 방파를 상천이 지키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을 것이다.
‘표국 앞에서 실력을 봤으니 피해가 큰 정면충돌은 원하지 않을 거 같아. 자칫 사람들이 모여들면 또다시 본신 무공을 노출하게 될 테니까.’
목격자를 전부 죽일 생각이 아니라면 그건 피할 것 같았다.
고민하는 사이 그녀의 눈앞에 어느새 동진상단의 담장이 나타났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가볍게 지면을 박찬 그녀가 담을 넘는 순간이었다.
‘잠깐. 일급표사들은 분명 은곡의 무공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었지?’
불현듯 머릿속에 다양한 가능성이 떠오르며 자신이 취할 만한 행동이 떠올랐다.
‘일반 표사가 싸우는 모습은 노출해도 될 것 같단 말이야. 그렇다면 그들을 미끼로 사용하지 않을까?’
그때 창문을 활짝 연 진무립이 물었다.
“거기서 뭘 하는 거야? 다녀온 건 어떻게 됐어?”
“당신의 말이 맞았어요. 죽은 사람은 없었지만 다른 곳도 똑같이 습격을 당했어요.”
“그럼 들어와. 준비하고 움직일 거다.”
“가만있어 봐요. 생각하는 중이니까.”
“생각?”
우두커니 서 있던 그녀가 갑자기 어딘가로 몸을 날렸다.
“어디 가?”
뒤를 힐끔 쳐다본 그녀가 싱긋 웃었다.
“기다려요. 사람들이 날 과격한 여인으로만 생각하는데 그게 오해라는 걸 보여주겠어요.”
순식간에 이동한 그녀는 안채의 담장을 뛰어넘었다.
* * *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백표대원이 청금환의 집무실에 들어섰다.
“말씀하셨던 것처럼 상천의 무인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무위는 속하보다 한 수 위였습니다.”
청금환이 물었다.
“숫자는 몇이냐?”
“두 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놈들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급표사까지 전원 집결시켜라.”
“명을 받듭니다.”
백표대원이 나가자 청금환은 세 명의 대표두들에게 말했다.
“무면산왕이 분명 동진상단에 머문다고 했으렷다.”
“그렇습니다. 상단에 들어간 숫자는 일백 정도 될 것입니다. 감시를 두었으니 놈들이 움직이면 바로 알아챌 수 있습니다.”
“표사들을 이끌고 동진상단 앞에 진을 칠 것이다. 이 정도 숫자가 나타난다면 놈들은 다른 곳에 무인을 보내지 못할 터. 백표대를 이끌고 방파들을 지운 뒤 상천의 소행으로 위장해라.”
대표두들은 즉시 무기를 챙겼다.
“명을 받듭니다.”
* * *
어스름히 밝아오는 새벽하늘 아래로 겨울의 냉풍이 몰아친다.
전각 위에 위태롭게 올라선 진무립은 몰려든 표사들을 쳐다보며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이게 당신의 계획인가?”
단려화는 진무립의 어깨를 잡으며 싱긋 웃었다.
“그럼요. 정문 밖이 표사들로 가득한 거 봐요. 정말 내 생각대로 움직였잖아요?”
“얼추 오백은 넘겠군.”
“그렇네요.”
“이쪽은 우리 둘이 전부고.”
“그것도 그렇네요.”
“음.”
진무립이 작게 끄덕이더니 물었다.
“혹시 미친 건 아니지?”
* * *
동진상단의 입구가 표국의 표사들로 가득 찼을 무렵이었다.
상단에서 오십 장가량 떨어진 조용한 골목.
나직한 담장으로 둘러싸인 집안의 방문이 슬며시 열렸다.
문틈 사이로 은밀히 사방을 살피는 이는 시평이었다.
‘좌측 담장 너머에 하나. 우측으로 오 장 밖에 하나.’
근방이 장원을 주시하는 감시자들로 가득하다.
저들을 죽이면 이곳을 지나갔다고 떠드는 것과 같다.
시평은 머릿속으로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안채에 다녀온 단려화가 활짝 웃으며 복면을 벗었다.
“역시 있었어요.”
진무립이 시큰둥하게 물었다.
“뭐가?”
“암도. 몰래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있다구요. 지금부터 설명할 테니 잘 들어봐요. 내 얘길 듣고 계획이 괜찮으면 채택해줘요.”
“일단 들어보지.”
그녀는 행여 누가 듣기라도 하듯 잔뜩 움츠리며 눈을 빛냈다.
“은곡의 무공을 익힌 백표대는 은밀히 움직일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표사들을 우르르 이끌고 와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자 하겠죠.”
진무립이 의외라는 듯 그녀를 쳐다봤다.
“그런 생각까지 할 줄은 몰랐군.”
“끝까지 들어요. 채주께서는 모두를 이끌고 암도를 나가서 백표대를 막아주세요.”
이미 양산채의 무인들이 열 명씩 나뉘어 지키고 있었으나 수가 많은 백표대에 즉각 대응하기는 어렵다.
단려화는 시평과 백하진, 한천유와 녹사대가 그들을 돕길 바라는 것이다.
한천유가 물었다.
“그럼 이곳은 어떡합니까?”
단려화는 새삼스럽다는 듯 대꾸했다.
“여기 대장님이 계시잖아요?”
대책이 있으면서도 없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다.
시평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물었다.
“인근에 태산표국의 감시자들이 수두룩합니다. 암도를 나선다 한들 들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단려화는 싱긋 웃었다.
“거기서부터는 채주께서 알아서 해야죠.”
“예?”
“설마 그 정도도 못 해요?”
“…….”
현실로 돌아온 시평은 한숨을 속으로 삼켰다.
‘소저의 부친도 천재적인 군사는 아니었지.’
다행스럽게도 세부 계획은 진무립이 모두 정비해주었으니 문제는 없다.
‘그래도 상황은 꿰뚫어 볼 줄 아는 아가씨야. 부대를 지휘한 경험이 없어서 그렇지.’
고개 돌린 시평의 눈에 바닥의 계단을 딛고 선 한천유가 보인다.
그 밑의 통로에는 녹사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와 시선을 교환한 시평이 작게 끄덕였다.
‘준비해라.’
뒤로 손을 뻗은 채, 밖을 내다보는 그의 동공에 저 멀리 동진상단의 담을 넘어오는 백하진이 보였다.
복면을 눈 밑까지 끌어올린 백하진은 안에서 석두가 넘겨주는 짐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지켜보는 감시자들의 눈이 가늘어진다.
‘저게 뭐지?’
그렇게 술 한 병 들이켤 만큼 짧은 시각이 지난 뒤, 주변을 둘러본 백하진은 쌓았던 짐을 도로 담장 안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저놈 지금 뭘 하는 거냐?] [확인해볼까?] [조금 더 지켜본다.]감시자들이 기대했던 반전은 없었다.
짐을 모조리 던져 넣은 백하진이 훌쩍 뛰어오르더니 순식간에 담장 안으로 사라졌다.
지켜보던 이들이 허탈한 숨을 내쉴 때.
흩어지는 그들의 숨결처럼 시평과 녹사대도 골목 밖으로 자취를 감췄다.
동진상단의 높은 전각 위.
녹사대가 사라지는 걸 확인한 진무립이 백하진에게 전음을 보냈다.
[혼자라면 빠져나가기 쉬울 것이다. 너도 시평을 도와라.] [예. 주군.]백하진이 암도로 모습을 감춘 직후였다.
정문 앞에서 쩌렁쩌렁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무면산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