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2
◈ 2화. 검증
칠흑 같은 어둠이 고요한 야산에 깃들었다.
“이쪽이야.”
조막만 한 손으로 땅굴을 판 사내아이는 겁에 질린 여동생을 잡아끌었다.
“어서 들어가.”
“무섭단 말이야.”
“그래도 참아야 해. 조금만 참으면 놈들도 돌아갈 거야.”
좁은 토굴에 밀쳐진 여아의 등에 손바닥 모양의 핏자국이 선명히 남았다.
나뭇가지를 주워온 사내아이가 토굴의 입구를 덮으려 하자 여자아이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왜 안 들어와?”
“오빠는 다른 곳에 숨을 거야. 해가 뜰 때까지 절대 밖으로 나와선 안 돼.”
억지로 동생의 손을 뿌리친 아이는 입구를 감추고 산길을 내달렸다.
하지만 작은 아이의 뜀박질로 추격자들을 따돌리는 것은 불가능. 순식간에 세 명의 장정이 아이를 포위했다.
“뭐야. 꼬마잖아?”
“악귀의 자식이다. 베어야 한다.”
한 사내의 손이 검병에 오르자 다른 사내가 앞을 막아섰다.
“신룡대협께선 무공을 익히지 않은 자와 어린아이에겐 손대지 말라고 하셨소.”
“그런 안일함 때문에 무림은 큰 대가를 치른 것이다. 이백 년 전 팔황(八皇)을 완전히 뿌리 뽑지 못한 대가가 천하에 혈겁을 불러왔다는 걸 잊었느냐?”
혈겁에서 사문과 가족을 잃은 사내의 원한은 지독했다.
“나를 막으면 너희들도 벤다.”
그의 사정을 잘 아는 두 사내는 체념한 듯 눈을 감으며 물러났다.
천하를 휩쓴 혈겁에 멸문한 무림방파는 무려 백여 개가 넘었고, 힘을 잃고 몰락한 방파도 부지기수였다.
화령을 중심으로 반격에 나선 무림은 신룡 단소룡이 팔황문주를 죽이고 승리를 거뒀으나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천하대전이 끝난 뒤 무림의 고수들은 팔황문이 이백 년간 힘을 키워온 은신처, 천하에 산재한 은곡(隱谷)의 위치를 쫓기 시작했다.
은곡 출신 무인들이 얼마나 무서운 자들인지 몸소 경험했기에 결코 두고 볼 수 없던 것이다.
겁에 질린 아이의 목으로 번뜩이는 검신이 떨어지는 순간, 우측에서 불어온 미풍에 떨어지던 검이 우뚝 멈췄다.
딱딱히 굳은 사내들의 고개가 향한 곳엔 민머리의 노승과 잘생긴 어린아이가 있었다.
“그만두게. 그 아이에겐 죄가 없네.”
잔뜩 긴장한 사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설마 노야도 은곡에서 나왔소?”
“그건 아니네만.”
“그럼 관여치 말고 가던 길 가시오. 이놈은 악귀의 자식이오.”
“그 아이는 악귀의 자식이 아닐세. 청수산의 은곡은 팔황문의 거사에 반대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곳이네. 뿌리만 같을 뿐 다른 곳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노승을 향한 사내들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처음 듣는 소리로군. 하지만 그건 중요치 않소. 내겐 똑같은 악귀일 뿐이니까.”
사내가 다시 검을 치켜드는 순간, 노승의 곁에 서 있던 잘생긴 아이가 지면을 박찼다.
“조심해라! 악귀의 무공이다!”
한줄기 섬광이 길게 늘어지는 순간, 세 사내는 즉시 방향을 바꿔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아이의 신법은 놀라웠다.
절묘하게 공격을 피한 아이는 순식간에 사내들의 손목을 후려쳐 검을 떨어뜨렸다.
사내들의 경악한 눈동자에 아이의 싸늘한 눈빛이 꽂혔다.
그와 동시에 북해의 빙굴처럼 오싹한 한기가 전신을 옥죄자 사내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돌아가라. 두 번 말하지 않겠다.”
아이답지 않은 눈빛과 말투, 그들은 몸을 움직이는 순간 목이 떨어질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그 싸늘함에 압도된 사내들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돌아섰다.
그들이 떠나자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 사내아이는 긴장이 풀렸는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모든 것이 나의 업보로구나.”
조금 전에 사내들에게 말했던 뿌리. 그것은 바로 노승 자신이었다.
혼절한 아이를 살피며 탄식한 노승이 고개를 돌렸다.
“무립아.”
“네.”
“내가 뿌린 씨앗은 내가 거두는 것이 마땅하겠으나 안타깝게도 남은 시간이 많지 않구나. 하여 네게 어려운 부탁을 해야겠다.”
양친을 잃은 진무립에게 노승은 스승이자 부모와도 같았다.
“말씀하십쇼.”
“모든 죄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함부로 무공을 전한 내게 있다. 이들이 빛을 보고 살 수 있게 도와다오. 천음지체의 몸으로 팔천영신공(八天映神功)을 익힌 너라면 가능할 것이다.”
“신룡을 죽이면 됩니까?”
진무립은 천하제일인을 죽이겠다는 말을 당당히 내뱉었다. 노승은 고개를 저었다.
“피맺힌 원한은 돌고 도는 것이다. 이들이 천하와 더불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줬으면 좋겠구나.”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두 사람 모두 안다.
진무립은 어린아이답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떠나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살아갈 사람에 바라는 게 많습니까?”
죽은 모친의 유언조차 지키지 못했는데 그보다 더 큰 돌이 다른 쪽 어깨에 올려졌다.
노승의 얼굴에 멋쩍은 미소가 번졌다.
“네겐 미안할 뿐이다.”
침상에 누워 옛 생각을 하던 진무립은 감았던 눈을 떴다.
“미안하면 부탁을 하지 말지. 덕분에 제자는 천하의 음적이 됐수다.”
***
진무립이 마도림에 도착한 지 한 달이 되던 날.
상호군이 회의에 참석하는 동안 모처럼 여유롭게 아침을 보내던 진무립은 느닷없이 들이닥친 노인을 불쾌한 듯 바라보았다.
“뭘 하라고?”
당대 림주 초무강조차 자신들에게 하대를 하지 않는다. 외림원주 우가산은 진무립의 말투에 불쾌한 속내를 감추고 말했다.
“청하객잔을 되찾아오십시오.”
우가산의 갑작스러운 제안은 아침부터 열린 회의의 결과였다.
초평천의 아들 중 혈겁에서 살아남은 이는 초무강 한 명뿐이다.
쉰을 바라보는 림주 초무강에겐 아들이 없고 어린 딸만 있을 뿐이니 유사시 후계에 문제가 생기기 충분한 구도였다.
진무립을 데려온 상호군은 대검문이라는 대적을 앞둔 지금 림주의 후계자가 오를 수 있는 대공자 자리를 오래 비워두고 싶지 않았다.
상호군은 진무립이 지금부터라도 단계를 밟아 마도림의 중추에 들어오길 바라며 적합한 직책을 맡기길 원했으나 외림원주 우가산은 능력이 증명되지 않았다며 반대 의견을 표했다.
격렬한 논쟁 끝에 처가의 행사로 출타한 림주 대신 회의에 참석한 태상림주는 우가산에게 진무립의 능력을 검증하라는 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진무립이 물었다.
“되찾아오라는 건 빼앗겼다는 건가?”
“본디 우리 마도림에서 관리하던 것을 철사방에게 빼앗겼습니다.”
진무립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철사방은 또 뭐야?”
“중경에 암약하는 흑도 방파요.”
“부자는 망해도 삼 대는 간다던데 마도림은 고작 이 대만에 흑도패한테 사업장을 빼앗길 정도가 된 거야?”
진무립의 독설에 우가산은 결국 분을 참지 못했다.
“소공자! 말씀을 삼가시오! 철사방은 단순한 흑도패가 아니란 말이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침상에 비스듬히 누워있던 진무립이 몸을 일으켰다.
“시끄럽군.”
진무립과 눈이 마주친 우가산은 저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아주 찰나의 순간, 마치 눈앞에 광폭한 맹수가 지나간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진무립은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우가산의 어깨를 잡았다.
“미안하네. 귀가 밝아서 큰 소리에 민감하단 말이지. 그래서 청하객잔을 되찾아오라고?”
“그, 그렇소. 대신 타인의 힘을 빌려선 안 될 것이오.”
“그게 마도림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인가?”
“물론이오.”
모친이 죽는 날까지 끌어안고 있던 마음의 짐.
아들로서 그것을 덜어주기엔 마도림을 부흥시키는 것보다 나은 길은 없었다.
진무립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기한은?”
“닷새를 드리겠소.”
“알았으니 그만 나가 봐.”
우가산은 진무립의 당당한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청하객잔을 관리하는 철사방의 배후엔 중경의 패권을 거머쥔 대검문이 있다.
애당초 쉬운 일이었다면 진즉 마도림에서 청하객잔을 취했을 터, 우가산은 진무립이 포기하길 바라고 이런 시험을 낸 것이었다.
“더 묻지 않으시오?”
“물을 것도 없어.”
떨떠름한 얼굴로 진무립을 바라보던 우가산은 다시 입을 열었다.
“소공자의 호위를 겸해 두 명의 무인을 붙일 것이오.”
“감시?”
우가산은 불쾌한 듯 말했다.
“원하신다면 조장 이하의 무인을 직접 차출하게 해드리겠소.”
호위를 붙이는 것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진무립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우가산이었지만 그래도 마도림의 소공자인 이상 불상사가 벌어지는 것은 막아야 했으니까.
마도림의 무인이라면 이번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 테니 진무립을 포기하게 했으면 하는 의도도 있었다.
“알았으니 좀 나가. 잠 좀 자자.”
축객령을 내린 진무립이 다시 침상에 드러눕자 불만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던 우가산은 처소를 나설 수밖에 없었다.
처마 위로 푸르게 펼쳐진 하늘을 눈에 담자 우가산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착각인가?’
극도로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한순간 진무립이 보인 눈빛은 범인의 것이 아니었다.
우가산은 축축한 손아귀를 옷에 슥 문지르며 발을 내디뎠다.
우가산이 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상호군이 들이닥쳤다.
“소공자!”
“또 뭐야?”
시큰둥한 얼굴로 일어나는 진무립과 달리 상호군의 표정엔 다급한 기색이 역력했다.
“외림원주가 다녀갔다고 들었소. 대체 무슨 말을 하고 갔소이까?”
“남의 힘을 빌리지 말라던데.”
상호군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꼬장꼬장한 우가산의 성격상 결코 쉬운 일을 맡길 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소공자. 혹시 외부의 일이라면······.”
진무립은 그의 말을 잘랐다.
“호위 둘을 붙여주겠다더군. 내가 차출해도 된다고 했으니 쓸만한 놈으로 둘 데려와. 닷새간 강론은 중지야.”
이런 상황에서 강론을 이어갈 생각은 없었다.
“정말 돕지 않아도 괜찮으시겠소?”
“까라면 까야지. 그게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 사이에서 살아남는 법 아니겠나?”
“자신은 있으시오?”
진무립의 입가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묘한 미소가 감돌았다.
“사람 사는 곳, 어딘들 똑같겠지.”
***
주어진 시간은 닷새.
하지만 진무립은 나흘이 지날 때까지 처소 밖으로 나서지 않았다.
궁금함을 참지 못한 상호군은 몇 번이나 처소를 찾아갔으나 그때마다 문전박대를 당하고 돌아갔다.
그는 결국 초평천을 찾아갔다.
“먹고 자고 싸기만 한다고?”
상호군의 얼굴엔 답답한 기색이 역력했다.
“예. 소공자도, 외림원주도 입을 꾹 다물어 무슨 일을 하려는 건지 짐작조차 되지 않습니다. 혹시 태상림주께선 아는 바가 있으십니까?”
초평천은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르네.”
“외림원주가 두 명의 호위를 허가했다더군요. 하여 기껏 무인들을 추려서 보냈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전부 돌려보냅니다.”
“누구를 보냈는가?”
“금청대의 석오, 담영, 천검대의 진포와 반규하, 유설을 보냈습니다.”
초평천도 익히 아는 이름이다.
연배가 젊은 만큼 높은 자리에 오르진 못했으나 모두가 초평천의 관심을 받을 만큼 뛰어난 후기지수였다.
상호군은 답답함을 토로했다.
“속하의 눈에 그들보다 나은 무인은 없습니다. 소공자의 의중을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태상림주께서 한번 나서주심이······.”
“내가 개입하면 결과가 나왔을 때 외림원주를 납득 시킬 수 있겠는가?”
상호군은 반론할 수 없었다. 듣고 보니 태상림주가 관여한다면 공정성에 흠집이 날 것이다.
“그러면 이대로 지켜보실 겁니까?”
“외림원주가 완고한 면이 있긴 하다만 대책 없이 고집만 부릴 인사는 아닐세. 지켜보다가 행여 위험한 일이 생길 것 같으면 본인이 직접 나설 것이야. 이번엔 그 아이가 어떻게 처리하는지 지켜보세. 일이 끝날 때까지 나는 관여하지 않겠네.”
그 말처럼 우가산은 고집스러운 면이 있긴 하지만 마도림에 대한 충성심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각별했다.
그리고 초평천은 자신의 손자가 생각 없는 한량이 아니라는 것을 믿고 있었다.
그렇게 약속한 날로부터 나흘째 밤이 찾아왔다.
***
근 한 달간 자지 못했던 낮잠을 나흘에 걸쳐 몰아 잔 진무립은 달이 떠오름과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쓸만한 놈으로 보내랬더니 칼 쓸 줄 아는 놈들만 보내고 있네.”
무림에서 쓸만한 놈이란 당연히 싸움질 잘하는 놈이 최고 아니겠냐 마는 지금의 진무립에게 그런 자는 필요치 않았다.
자신의 재능을 아는 놈은 콧대가 높고 자존심이 강하다.
그런 놈들이 약간의 호신술에 십 년 남짓한 내공으로 알려진 상관을 제대로 따를 리 없다.
결국 진무립은 스스로 호위를 구하기 위해 처소를 나섰다.
문 앞에는 시비 성요가 쪼그려 앉아 자고 있었다.
깨울까 고민하던 진무립은 그녀를 살포시 들어 옆 방에 눕히고 나왔다.
“저 녀석을 재우니 길잡이가 없군.”
총단 내에서 가본 곳이라곤 상호군의 죽현각(竹賢閣)과 태상림주의 처소 등 손에 꼽을 만큼 적었지만 진무립은 일단 발을 내디뎠다.
밤하늘의 달이 밝다.
진무립은 피식 웃었다.
“삼두육비의 음적이 돌아다니기에 딱 좋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