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67
267화
이온 이올카프는 공항에서 이런 일들이 정말로 자신이 원했던 것인지 궁금해졌다.
‘내가 이런 걸 원했었나? 정말로?’
하지만 이온의 불만 따위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온의 논문이 퍼진 뒤, 제국항공우주국의 움직임과는 별개로 이온은 세계 각지에 있는 천문학자들은 물론이고 제국항공우주국에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과학자들과 만나 자신의 이론을 강연하게 되었다.
단순히 이론을 설파하는 것만이 목표는 아니었다.
이온을 수행한 것은 첩보국의 ‘만도 훼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오우거였는데, 라민의 아래에서 이온을 직접 심문한 적도 있었던 인물이었다.
키는 대략 2.8미터로 오우거라면 평범할지도 모르지만, 현대적인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다져진 역삼각형의 몸이 가진 거대한 체구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살상무기를 들고 있는 것 같은 위압감을 전해주는 인물이었다. 아마 이온도 심문 당시에 숨겨야할 것이 있었더라면 만도의 얼굴을 보자마자 모든 걸 털어놓았을 것이다.
‘아니, 정말로 다 털어놓긴 했었잖아. 사실은 이 사람 때문이었나?’
만도는 자신의 몸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사람들은 오우거가 덩치만 큰 배불뚝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그런 몸도 긍정합니다. 저희 선조이신 황훼사 님만 하더라도 그 몸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기셨지요. 하지만 그건 오우거가 지니고 있는 가능성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합니다. 정확히는, 가능성 그 자체죠. 오우거의 뼈가 두껍고 살과 근육이 잘 붙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저는 몸을 만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몸을 만든 다음에는, 이 몸을 가장 잘 사용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정말이지 탁월한 직장을 찾으신 것 같습니다.”
“그렇죠. 그리고 제가 지금 이온 씨를 수행하고 있는 이상, 이온 씨가 하는 일의 중요도만큼 제 일의 중요도가 올라갑니다. 그러니 좀더 의욕을 내주십시오.”
이온의 역할은 단순한 이론의 설명이 아니었다.
단지 그뿐이라면 이온이 세계를 넘나들만한 이유는 없다.
사람들은 이온이 자신들을 설득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제국과 이해관계가 얽힌 장소는 너무 많았고, 그런 장소를 대표하는 인물들도 셀 수 없었다.
제국과 가장 각을 세우는 서대륙 의회의 경우엔 다행히도 사르쵸의 암살 시도 때문에 ‘내원’이라고 불리는 중앙측은 어느 정도 이온의 이론을 받아들여줬다.
하지만 ‘외원’이라고 불리는, 옛 연합왕국 출신 귀족들과 기타 세력들과의 의견 불일치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었다.
“왜 하나하나 자기들을 붙잡고 설명해주길 바라는지 모르겠어요. 세상이 멸망한다고 하는데도.”
두 번째 달 룸에 대한 이야기가 이미 천라망에 가득 퍼졌다.
제국은 그 이야기를 막을 수도 있었지만, 그냥 놔두었고, 외적으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온의 논문이 사실이며 그 발표를 내버려두고 있다는 것은, 사실상의 긍정이라는 메세지기도 했다.
‘오히려 더 강렬한 메세지 아닐까?’
고대 유적에서 나온 자료들을 바탕으로 막연하고 불안정한 위협을 상정한다면 사람들은 혼란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제국은 그 대신 가장 명확한 것, 달 뒤에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만을 가리켰다.
혼란은 줄어들었고, 의심은 집중되었다.
이에 더해 제국은 말 없이 수 십 개의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다섯 번째 수차라고 불리는 자본자 단체가 움직이고 제국의 내탕금, 긴급 세수 조치가 의회에서 빠르게 통과 되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라는 것, 즉 사람의 힘으로 움직여지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었다.
만신전이 움직이고 있으니 진짜일 가능성에 대해서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탐구했다.
제국 중앙 정부의 도움 없이 각자의 세력들이 나름의 방법으로 해당 방안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고, 모든 답은 결국 이온의 논문에 걸려 있었다.
이온의 논문이 진짜라면, 제국의 움직임도 진짜이며, 위험도 진짜였다.
그렇다면 제국 중앙 정부, 만신전과 힘싸움을 벌일 이유가 없었다.
온갖 제국령에서 두 번째 달 룸의 존재 가능성과 제국의 향후 대처에 대해 황급히 설명을 필요로 했다.
만도가 말했다.
“제국은 더 강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오우거의 몸처럼 말입니다.”
“네?”
“쇠질로 몸을 단단하게 만들 수 있었지요. ‘이놈의 군살 참 보기 밉다’하면서 말이지요. 충분히 근육을 키우고 나면 식사량을 조절해서 지방을 줄이고 근육이 도드라지게 만들어보일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지요. 그냥 다 놔뒀습니다.”
“비유법이군요? 제가 문학 시간에 집중해본적이 없어서…”
만도가 껄껄 웃었다.
“이런 불만들이 당장은 불편하고 무가치해보이지만 결국엔 제국의 힘이 될 겁니다. 제국은 지금 몸을 만들고 있는 거죠. 이온 씨는 지금 제국의 가장 무거운 쇳덩이를 들고 있는 힘줄 중 하나고요.”
이온은 잘 이해할 수는 없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이온은 동대륙과 남대륙, 서대륙을 오가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연합왕국의 놀 왕족과 오크 대귀족,
자수성가한 엘프 자본가,
과거 혁명에서 이탈한 지역 공동농장의 고블린 수장과
아직 혁명이 끝나지 않았다고 부르짓는 혁명군의 프로그맨 군단장,
끝내 문명을 받아들이길 거부한 고대 부족의 인간 부족장,
극렬 환경주의 트롤 단체장과 같은 인물들을 만났다.
그들은 제국령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힘이 있었고, 아직은 제국을 완전히 신용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온도 이 사람들을 자신이 모두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제국의 모든 힘이 모여도 예의 두 번째 달이라고 부르는 ‘룸’을 막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서도, 어차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이상을 할 수는 없을 거라고, 그렇게 믿었다.
‘만도 씨가 응원했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어. 나는 할 수 있는만큼만 할 거야.’
게다가 이온은 아직 세속주의자이기도 했다.
악신과 신들의 전쟁이 계속될 거라는 건 그리 유쾌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이온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이야기, 즉 과학적인 이론에 대해서만 명쾌히 설명했다.
기존에 알려져있던 이론을 설명하고, 이에 동의를 구한 다음, 계산에 어떤 문제가 있었고, 실제로는 어떤 수치가 도출되는지를 보여주었다.
이후에야 첩보부가 세계 각지에서 수집해온 두 번째 달의 증거들이 별첨되는 수준으로, 유감스럽게도 제국은 아직 달 궤도로 로켓을 쏘아보내거나, 룸을 직접 촬영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들이 이온의 말을 듣고 돌아섰다.
놀 왕족이 말했다.
“그대의 말에는 만신전의 사제 놈들이 보여주는 확신도, 그에 대한 기대도 없군. 난 그대를 믿는다.”
엘프 자본가가 말했다.
“좋습니다. 중앙 정부에서 요구하는 프로젝트들을 일괄 진행하도록 하죠.”
고블린 수장이 말했다.
“우릴 괴롭히러 온 게 아닌 건 확실하군. 농장 부지를 옮기는데 협력하지.”
프로그맨 군단장이 말했다.
“합리적인 설명이로다. 우리 군단은 달 연구 진척이 있기까지 제국에 무기한 휴전을 제안할 것이다.”
인간 부족장이 말했다.
“모든 이치가 맞아떨어지는구려, 현명한 친구. 적어도 우린 적이 아니고, 나는 그대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지.”
트롤 단체장이 말했다.
“거짓말이 아니군요?”
무언가 경직되어 있던 제국의 곳곳에서 실핏줄에서 마른 자리가 채워지듯 에너지가 역동했다.
적어도 이온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몇 달 사이 제국의 중앙 정부가 직접 손을 대지 않으면 도저히 움직여지지 않던 자원과 인물들이 스스로 나서서 지원을 시작했다.
그간 겨우 다섯 번의 로켓 발사가 있었는데, 곳곳에 로켓 발사대 설계도가 공유, 신축되고 신의 힘으로 경이적인 속도로 건물이 글자 그대로 ‘창조’ 되기도 했다.
제국항공우주국만 움직인 건 아니었다.
제국군은 모든 편제를 룸에 대처하기 위해 몸을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달맞이’라고 불리는 혁신적인 개혁이 이어졌고, 이 거대한 계획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어떠한 방법으로 알게 될런지는 오직 신들만이 알고 있을 뿐이었다.
모두가 그저 거대한 계획의 얼개만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 어떤 확신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보다 거대한 존재의 일부분으로 살아있다는 실감이 감지되었다.
‘이게 무슨 감각일까?’
이온은 정확한 답을 알아내진 못했고, 전세계를 순항했던 일정을 끝낸 뒤 다시 제국항공우주국으로 돌아왔다.
물론 돌아온 이온은 전과 같은 행정반에서 근무하지는 않았다.
이온은 천문관측반과 함께 움직이며 전세계 곳곳에 있는 로켓 발사대 일정과 발사각, 다른 천체와 소행성 관측을 통한 위험 통제 등에 바쁘게 움직였다.
이미 몇 개의 로켓이 발사되기도 했다.
위성 통신망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는데, 이 위성 통신망과 통신망을 이용하는 휴대전화라는 물건의 전세계 보급이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이온은 몇 개월 전까지는 생각해본적도 없던 물건을 손에 쥐기도 하고, 사람들이 불과 한달만에 익숙하게 사용하는 꼴을 보면서 세계의 움직임을 감지했다. 사람들이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않지만, 세계는 그야말로 기술적 폭발을 하고 있었다.
더불어 이상한 일이 있었다.
“저, 요원 님 요즘 얼굴을 자주 뵙네요.”
“어어, 이온 씨. 안녕하세요. 어어, 저 일 때문에.”
첩보국의 라민이 우주국 내부에서 자주 발견이 되었던 것이다.
라민은 이온을 보고 인사했다가도 황급히 복도 반대편으로 사라지곤 했는데, 이온은 내심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후에 일의 내막을 알게 된 뒤에는 라민을 용서했다.
이온은 로켓 발사체에 달려 이동하게 될 유인 우주선 탑승자, 즉 우주인 후보들과 마주할 기회가 있었다.
이들 우주인 후보는 지상의 중앙관제실과 직접적으로 소통할 인물들이므로 당연히 앞으로 익숙해져야할 사람들이었고, 우주국 내부에서 우주인 후보가 될만한 인물들은 이미 몇 번의 시험을 치른 상태기도 했다.
이온은 체력과 선천적인 혈관 장애 때문에 탈락했지만, 아쉽진 않았다.
첫 유인 우주선에 탄다는 것은 명예롭기도 하지만 위험한 일이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그 우주인 후보 사이에서 라민을 보았을 때는 황당한 기분부터 느꼈다.
“왜 거기 계시는 거죠?”
“…그러게요.”
이온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우주인 후보 명단에서 라민을 찾아냈다.
라민의 인명 정보는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두꺼웠고,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삭제된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주인 후보로 선택될만한 요소는 차고 넘쳤는데, 온갖 분야에 대한 학위들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사실 꼭 필요하다고 할만한 물리학과 수학, 프로그래밍과 같은 부분은 합격점에 이를 정도는 아니지만, 우주국에서 우주인에게 가장 큰 기대를 가지고 있는 부분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점수가 높았다.
『해당 후보는 앞선 ■■■■ ■■ ■■■ 등, 가장 최악의 상황에서도 우월한 기량을 선보인 바 있으며, 따라서 우주선과 다른 우주인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음. 별첨: 만신전 성호 등록, …선택받은 자.』
이온은 마지막장을 넘긴 뒤 라민에게 말했다.
“알고 계셨나요? 추천인이 두 명뿐인데.”
“엇, 그래요? 세 명한테 받아야 한다고 들었는데.”
“근데 요원 님은 통과에요. 추천인이 황제랑 첩보국 국장이라.”
“아, 고르고타 짜증나.”
첩보국 국장을 반말로 하대할 수 있는 사람을 우주국에서 다룰 수 있을지 의문이긴 했지만, 이온은 딱히 언급없이 넘어가기로 했다.
이온의 논문 발표로부터 여섯 달 뒤, 쏘아진 무인 로켓이 달로 향했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촬영된 영상에서, 첫 번째 달 뒤에 있는, 크고 음울한 그림자가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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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이 바쁜만큼이나 만신전 또한 바빴다.
상상해낼 수 있는 모든 계획들이 쏟아져나왔다가 사라졌다가 다시 튀어나왔다.
몇 개의 계획은 긴급하게 용인되고 제국의 사정에 맞게 수정되어 적용되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명백히 부족했다.
성운은 너무 과열되었다면서, 정해진 일과를 없는 경우엔 플레이어들이 잠시 쉬며 각자 최선의 답을 고민해보라고 한 상태였다.
덕분에 제롬은 도서관 구석에서 이 방안을 해결할 수 있는 고대 유적의 지식이 없는지 몇 번이나 검토하고 있었다.
실마리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고, 은근히 자신이 찾고 있는 것이 답이 되길 바라고 있기도 했다.
‘퀴즈 대회같군. 불가능한 문제가 나왔으니 각자 해결 방법을 찾아보라고 하는 거 같아. 자기는 답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마냥.’
그도 그럴 것이, 제롬은 성운에게 두 번째 달에 대해 말했을 때의 반응을 기억했다.
“남은 시간이 약 3년 3개월이라고?”
분명 성운의 중얼거림은 이렇게 끝났다.
“여유롭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