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75
275화
모든 대륙에 계열사가 존재하는 세계 3위 기업이 느닷없는 도산 위기에 몰렸다.
열 한 번째 사도가 나타나 오래전의 빚을 갚으라고 했다는 소문이 들려오기도 했다.
황궁은 이례적인 구호 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가 세속주의자 연합과 노동자 연합회로부터 정치적 공격을 받으며 한 발 물러서야만 했다.
계열사들이 다른 기업에 팔리고 병합되는 와중에 넘쳐나는 돈들이, 다른 달맞이 사업에 부흥되는 자본들이 공격적으로 투자되기 시작했다.
물론 오히려 기업 도산 때문에 기존에 자신의 장소에서 달맞이 계획을 이루던 플레이어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레드마스를 찾아오기도 했다.
레드마스가 말했다.
“모두 만신전을 위해서지.”
레드마스는 비온과 휘경을 끼고 있었으므로 자신이 정치 공학적으로 안전한 상태라고 판단했는데, 그런 판단과 별개로 다른 플레이어들은 앞에서 궁시렁대는 것 정도로 넘어갔다. 각자의 달맞이 계획이 있으니 허튼 일에 시간을 쏟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비온은 이 모든 일들이 야천이 돌아왔을 때 어떻게 될 것인지 전전긍긍했다.
그런데 야천이 회의실에 얼굴을 슥 들이밀고 지도를 보고 한 말은 간단했다.
“생각보다 더 재밌는데?”
그것으로 플레이어들의 불만도 사라졌다.
그 말은 레드마스가 벌인 일 때문에 달맞이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면, 알아서 해결하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레드마스가 바라는 일이기도 했다.
‘…어쩌면 이것을 위해서 내가 여기에 온 것일까?’
레드마스는 다른 이들이 주목하지 않는 숫자와 표로 만들어진 세계가 진흙탕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다.
‘아무래도 좋아. 다시 흐름이 시작된다. 제국의 세맥이 다시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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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다의 뒷편.
두 번째 달, 룸.
룸은 겉보기에 구체 형태를 띄고 있다.
하지만 정확히 하자면 구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몇 개의 거대한 관들이 이어져 있고, 그 관의 지지를 받는 격벽들이 층층이 쌓여 있는 구조다.
때문에 룸 자체는 거대하게 보이지만, 내부는 인공 중력으로 유지되는 넓은 층들이 있으며, 이러한 층들은 오직 주요 관을 통해서만 지지되기 때문에 각각의 층에서 룸의 내부는 평원과 같은 지형으로 보인다.
단지 이 평원의 바닥은 강철보다 질기고 단단한 검은색 합성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으며, 다음 층과의 높이가 그리 높지만은 않기 때문에, 시야가 끝까지 닿지 않을 정도의 너른 바닥에도 불구하고 그저 넓은 동굴 안에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룸이 이러한 넓은 공간이 있는 층으로 이루어진 까닭은 초기의 룸은 단순히 전쟁무기로 쓰여지기 위해서 만들어진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이것은 전쟁 무기지.
그렇게 읊조린 것은 골격 위로 거죽만 들러붙은 시체와 같은 존재였다.
여덟 쌍의 팔로 제 얼굴과 몸을 가린 이 존재는 허공에 떠오른 상태에서 거죽만이 가리는 손바닥 안으로 읊조렸다.
-두 번째 달아, 너 또한 우리와 같이 한 번도 제 뜻대로 된 적이 없구나.
동상처럼 정지해있던 존재는 유령처럼 움직여, 이 층을 버티고 있는 거대한 관을 향해 나아갔다.
룸에서는 관을 통해서 룸의 중심으로 이동할 수 있고, 보다 깊은 층으로 들어설 수 있다.
관으로 들어선 존재는 추락에 가까운 속도로 룸의 중심으로 들어간다.
-때가 되었다.
룸 그 자체는 아무런 기능도 존재하지 않는다.
룸은 요람이다. 너른 층들을 가지고 있고 층마다 무언가를 담을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룸의 가장 깊은 곳에는 ‘공장’ 모듈이 존재한다.
공장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설계도에 맞는 것들을 생산해내고, 재료만 충분하다면 공장 그 자신을, 어쩌면 룸을 복제 해낼 수도 있다.
이 공장 덕분에 룸은 그 자체로 가능성을 담고 있다.
두 번째 달은 옛신들이 만들어낸 최고의 마도 기술적 성취였다.
-때문에 그네들은 이것을 최후의 요새로 만들었지.
존재는 룸의 가장 깊은 자리로 들어가 복잡한 기계 장치들 사이에서 공장을 가동 시켰다.
존재는 보이지 않는 인과율을 시계처럼 읽을 수 있다.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룸을 기동해야만 한다.
룸은 너무 거대하기 때문에, 원하는 때에 원하는 장소로 이동시키기 위해서는 미리 모든 것을 입력시켜둬야만 했다.
-비록 내 오랜 친우들이 실패했지만…
존재는 손 하나 까딱이는 일 없이 공장을 모두 제어한다.
다행히 손을 댈 것은 많이 없다.
룸은 최후에 요새 상태였고, 요새로서 잠들었다.
존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잠든 룸을 흔들어 깨워, 해야 할 일을 알려주고, 어서 움직이라고 재촉하는 것 뿐이다.
-나는 실패하지 않으리.
이제 존재는 룸의 층마다 쌓여 있던 과거의 유산들을 복원해낸다.
차곡차곡 접혀 있던 고대의 무기들과 기계 병력들, 그리고 움직일 수 있는 시체들이 깨어난다.
이 시체들이 그의 아이들이다.
존재와는 많이 닮지 않았다.
사지를 가지고 있고 민둥한 머리가 우습게 크다.
다만 눈동자가 크고 깊어서 흰자위가 보이지 않는데, 이들은 모두 현명하고 똑똑하였다.
존재는 이 아이들을 무척이나 좋아했고 자신의 자랑으로 알았다.
-…그러지 않았으면 이리 고통스럽지도 않았을 것을.
하지만 이제 그의 아이들 중 생존해 있는 것은 없다.
이들은 종족 전체가 옛신에게 사로잡혔고 모두 뇌를 적출 당했다.
특별한 의식을 통해 제물로 바쳐진 영혼들은 모두 사멸하였다.
남겨진 것은 껍데기 뿐이다.
-…내 눈물이 마르는 날도 오지 않았을 것을.
존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모듈들이 이동을 시작한다.
이 모듈들은 고대 유적들과 같은 나이를 자랑하는 고대의 무기들이다.
이제 이들은 룸의 표면으로 보내어져, 저 아바르틴의 표면을 불태울 것이다.
그의 껍데기 뿐인 아이들도 무기화 되었다.
그저 조종을 받을 뿐인 연산자에 불과하지만, 저 새로운 신들을 상대할 전력으로서는 충분하다.
-오는가?
존재는 허공으로 고개를 들어올린다.
존재의 눈은 룸의 외부 감지 모듈들에 온전히 연결되어 있으므로, 곧 룸의 눈이 존재의 눈이다.
룸은 달 너머에서 오는 로켓 하나를 감지한다.
-놀랍다. 허나 아직은 미진한 기술.
몇 번이나 날아왔던 로켓이므로, 존재는 룸의 의지로 그것을 가볍게 박살낸다.
룸의 기동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밝힐 필요는 없다.
빛줄기 하나가 로켓을 향해 쏘아진다.
-…?
하지만 빛은 로켓을 비켜난다.
존재는 곧바로 이상을 알아차린다.
마법을 통한 빛 왜곡이다. 로켓에 마법이 걸려 있었다.
-이런.
존재가 다시 로켓을 때리기 전에, 로켓은 놀라운 빛을 발한다.
그저 사고에 의한 폭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존재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가시광은 감지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 중 하나다.
빛을 퍼트린다는 건 반사되는 빛을 받아간다는 말이다. 저들은 사진을 찍었다.
존재는 자신의 상태창에 떠오르는 글자를 내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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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충돌!」
「서로 다르게 분화된 두 문명이 접촉했습니다. 두 문명 모두 경험치가 크게 오릅니다.」
「경고: 상대 문명은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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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운은 시스템 창을 확인하고 고개를 들었다.
‘제대로 시스템 메세지가 뜨는 걸 보니까 오히려 농담같은데.’
룸은 어디까지나 시스템 밖에 있으므로, 성운은 시스템 메세지가 뜨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성운의 달맞이 계획에서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기억해둘만했다.
아바르틴의 창공에서, 성운은 욘다를 바라보았다.
룸은 아직 욘다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성운의 시선은 그곳에 가 있었다.
성운은 가볍게 시스템 창을 조작했다.
「플레이어 목록」
…
딅뒗寃?
」
곧장 바로 옆으로 화상 채팅이 떠오른다.
익숙한 별모양의 머리, 위즈덤이다.
“어떻게 부르면 좋겠나?”
“듸데… 정도로 부를까?”
“그럼 그렇게 해두지.”
“어차피 저 친구들도 원래는 제대로 된 이름이 있을테니까. 당장은 적당히 불러주자고.”
성운이 잠시 생각했다.
‘뷀, 절우비, 샤차, 절요, 여기에 듸데. 봉신 상태인 플레이어 셋과 나머지 만신전을 더하면 딱 서른 두 명이군.’
위즈덤이 동의한다.
“달맞이 계획은 어떻지?”
“끝났어.”
“빠르군.”
성운이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빠르진 않아. 룸이 움직이고 있어. 전에 확인되지 않았던 위치에 뭔가 올라가있던데.”
“준비인가? 인과율이랑은 관계 없이 기동할 수는 있나보군.”
“잘 모르겠지만, 듸데라는 건 시계처럼 착착 맞아떨어지게 움직이는 놈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게 아니면 저걸 움직일 권한을 다른 악신한테 줬을테니까. 제일 잘하는 녀석이 가져갔겠지.”
“그럴듯하군.”
룸은 무기다.
성운은 악신들의 게임 플레이적 역량이 그리 뛰어나지는 않다고 판단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전략적으로 행동한다고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합리적으로 무기를 잘 다루는 이에게 무기를 넘겼을 것이다.
성운은 룸과 룸을 다루는 듸데를 우습게 볼 생각이 없었다.
위즈덤이 가면을 써 표정이 드러나지 않는 성운의 얼굴을 빤히본다.
“뭔가 걱정하고 있군.”
“그래.”
“계획이 끝났는데도?”
성운이 어깨를 으쓱했다.
“중요한 건 달맞이 다음이니까.”
위즈덤이 잠시 침묵한다.
“네뷸라, 난 일을 순차적으로 하길 바란다.”
“그럴 거야.”
“우리 동맹의 최고 고민 리소스가 당장 필요하지 않은 곳에는 안 쓰였으면 한다는 거지.”
성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다른 플레이어들의 준비 상태는 확인했나?”
“허송세월을 보내는 이도 있고, 이미 큰 도움이 되는 이도 있지.”
위즈덤은 성운이 성역 안에서 바빴던 시간 동안, 자신 나름의 달맞이 계획의 과업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다른 플레이어들의 달맞이 계획을 확인하고 있었다.
플레이어들 중엔 그 사실을 인식한 이도 있었지만 인식하지 못한 이도 있었다.
어처구니 없는 계획들은 사전에 잘려나갔고, 그럴듯한 계획들은 더 집중 되었다.
계획과 계획들이 서로 더해져 더 큰 계획이 되기도 하고, 선택되지 않은 것들이 잘려나가며 더 명료해지기도 했다.
물론 이 거대한 그림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정리를 해낸 위즈덤으로서도 완전히 완성된 모습은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네뷸라는 그리고 있는가?’
그것도 잘 알 수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일에 집중하느라 다른 작업들을 도외시했으므로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모를 것이다.
‘그럼, 다행이군.’
위즈덤은 논리적으로 사고했다.
다른 모든 달맞이 계획이 잘못 되더라도 네뷸라는 자신의 달맞이 계획이 성공할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성운이 말했다.
“룸이 움직였으니, 우리도 움직여야겠어.”
“더는 시간을 끌 필요는 없다는 말이기도 한가?”
“그렇지.”
성운은 욘다를 바라본다.
저 뒤에 룸이 있고, 룸은 기동을 시작했다.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면 더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유유자적하고 있을 틈은 없는듯했다.
제롬이 예고 했던 시간 보다도 1년 가까이 빠르게, 놈이 움직인다.
물론 룸은 지금부터 완전 기동하는데 1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확신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서야 움직인다는 말은, 놈도 준비가 안 되었단 말이지.”
그런 고로, 성운이 생각하기에 최선의 선택은 다음과 같았다.
“룸이 우리를 공격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룸을 기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