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82
185화〉
카이세2
시작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였다.
“재밌네요~.”
어렸을 적 카이세는 개미집 옆에 쪼그리고 앉아 종일 개미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다 그냥 바라만 보는 게 지겨워지면 다른 곤충을 잡아서 개미집 옆에 놔뒀다.
“많이들 먹어요~.”
개미들이 더듬이를 꼼지락거리며 먹이를 집으로 옮기는 모습을 보노라면, 마치 그에게 감사 인사를 표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적적할 때마다 곤충이나 작은 짐승의 사체를 가져다 개미집 앞에 놓았다.
자신이 가져다 놓은 먹잇감을 두고 개미들이 바글바글 모여 먹이를 해체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없는 뿌듯함이 들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왜 안 먹는 거죠~?”
개미들이 카이세가 가지고 온 동물의 발목을 조금 맛보더니 모두 피하기 시작했다.
카이세는 금세 기분이 더러워졌다.
그는 이 작은 생명체에게 벌을 내리기로 했다.
감히 신이 내려 준 음식을 거부한 대가였다.
본드를 가져와 개미집 주변에 잔뜩 뿌려 놓은 뒤 기름에 적신 휴지를 가져와 개미집에 넣고 불을 질렀다.
타닥, 타닥, 타닥.
팝콘 튀는 소리가 들린다.
단백질이 불에 구워지며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개미들이 몸을 돌돌 말며 죽어 갔고, 카이세는 색다른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이 일이 계기가 되어 능력을 개화했다.
화염술사(火超術師).
카이세는 유기물이 타들어 갈 때 나는 냄새와 비명이 좋았다.
라반을 처음 교육했던 날도 그의 주특기인 화염을 사용했다.
오크만큼 커다란 덩치를 지닌 남자가 새된 비명을 지르며 네발로 기는 장면은 다시 볼 수 없는 장관 중의 장관.
“당신은~ 어떤 표정으로 저를 즐겁게 해 주실 건가요?”
민시우라는 헌터가 강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전력은 절반 정도가 아니라, 90% 정도는 깎여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주특기인 마법은 못 쓰지, 힐은 막혀서 몸에 생긴 수많은 상처에 속수무책이지, 마계 인근이라 마력은 사용하기 버겁지.
게다가 라반과 아무루가 체력을 흠뻑 빼 놨을 테니 지금 시우의 몸은 천근만근일 것이다.
카이세는 햇살 좋은 날 관찰하던 개미가 떠올랐다.
지금 민시우는 그에게 한 마리 개미에 불과했다.
어딜 어떻게 괴롭혀야 개미들처럼 혼비백산하며 몸을 둥글게 말고 죽어 갈 것인가.
카이세의 두 손바닥으로 마력과 마기가 불길한 기운을 뽐내며 모여들었다.
2계 마왕의 권속인 솔라소와 직접 계약한 그는 다른 4위계에 비해 월등한 마기를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마약을 사용해 마기량을 부풀렸던 아루무와 라반의 마기까지 그러모았으니, 그 위력은 평소의 몇 곱절은 될 터.
“20%~ 정도의 위력이라 죽진 않을 거예요. 하지만 죽을 만큼 괴로울 테니까 마음의 준비는 하고 계시는 게 좋아요.”
말이 끝나자마자 검붉은 마법진이 전방에 아로새겨지며 뜨거운 불길이 시우를 향해 쏘아졌다.
사람 하나를 집어삼키고도 남을 큼지막한 불꽃.
화르르륵ㅡ!
“아하하~ 너무, 너무 좋군요. 이렇게 아름답게 타들어 가는 모습이라니. 이것 좀 보세요, 라반 씨, 아루무 씨! 당신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입니다!”
카이세는 황홀경에 젖은 얼굴로 활활 타오르는 시우의 모습을 바라봤다.
불길에 휩싸여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에게선 삶과 죽음의 향기가 동시에 나는 법.
“뭐 하세요~ 민시우 헌터! 당신은 고작 이 정도로 죽을 인물이 아니잖아요! 얼른 제 불길을 훌훌 털고 나오세요, 그리고 다시 제 불길을 견디시는 겁니다!”
그는 새빨간 불길을 두 눈 가득 담은 채 외쳤다.
열기 때문인지 아니면 흥분 때문인지, 카이세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 모습을~ 죽은 발록 님이나, 오로바스 님도 보셨어야 하는데 말이죠! 정말 너무나도 멋진···.”
카이세의 표정이 작게 일그러지며 말이 멈춘다.
분명 새빨갛게 살이 익어서 버둥거려야 할 텐데.
불꽃을 휘젓고 나온 시우의 모습은 그을림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이었다.
“왜 표정이 그따위야? 훌훌 털고 나오라며.”
“···흠. 이렇게까지 아무렇지도 않길 바란 건 아니었는데 말이죠.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 걸까요?”
“네 불꽃이 허접해서 그런 거 아닐까.”
“하하~ 하하하. 당신은 역시 정말 재밌는 사람이에요! 계속 그렇게 저를 즐겁게 해 주시길 바랄 게요!”
카이세의 작은 눈동자에 살기가 그득 실렸다.
화염술사인 자신을 상대로 불꽃의 수준을 운운할 줄이야.
“이번에는~ 부위별로 지져 드리도록 할게요. 위력은 50% 정도로 가겠습니다.”
“마법을 쓸 거면 나도 저주 정도는 풀어 줘야 공평하지 않겠어?”
“하하하~ 농담도 잘하시네요. 아쉽게도 그렇게 하면 제가 죽을 것 같아서요. 일방적인 괴롭힘이니까 당신은 그냥 울부짖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카이세의 몸에서 솟구친 마력과 마기가 전방으로 뭉쳐 흐르며 다시금 마법진을 구현했다.
수십 개의 화염구가 순식간에 시우를 겨냥한 채 날아간다.
주위 온도가 뜨겁도록 달아오른다.
시우는 발뭉을 들고 날아드는 불꽃의 구를 쳐 내고 베어 냈다.
하지만 화염구는 그 수가 너무 많고, 너무도 빨라 대부분의 공격이 시우의 몸에 처박히고야 말았다.
퍼버버버버벙!!
무섭도록 뜨거운 열기가 사방을 에워싸고 시우의 몸에 작열했다.
어마어마한 연기가 뿜어지고 바닥에서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그래요~ 이겁니다! 몸부림치세요! 바닥에 뒹굴고 살려 달라고 애원하세요! 히히히~ 좋아요, 아주 좋아요!”
카이세는 흥겨운 듯 손뼉을 치며 맑은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거대한 불길이 시우를 중심으로 화려하게 일어났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죠? 제가 일으킨 화염이 아닌데. 저주의 유효 시간도 아직 남아 있으니 마법을 쓴 것도 아닐 테고요.’
카이세는 가느다란 눈 가득 의구심을 품은 채 연기 너머를 응시했다.
그곳에는 샛노란 불길에 휩싸인 채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시우의 모습이 있었다.
‘저 불꽃색은~ 제 능력의 색이 아닌데요.’
카이세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저주의 유지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
특히 효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저주의 발동 조건이나 유지 시간도 까다로워지기 마련.
따라서 시우에게 건 저주도 그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상대방을 피폐하게 만들 만큼의 시간이기는 했어도, 그 효과가 몇 시간씩 지속되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트롤의 피도 마찬가지였다.
“마법을~ 벌써 사용할 수 있게 된 건가요?”
“설마. 그랬다면 넌 벌써 죽어 나뒹굴고 있을걸.”
시우는 불길의 기세를 거두지 않고 카이세를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
처음 카이세의 불길이 날아들려는 순간.
【좁밥, 그동안 즐거웠다. 죽어서 귀신이 되면 내가 졸개 1호로 데리고 다녀 주마.】
프레는 코딱지만 한 날개로 시우의 등을 토닥거렸다.
“재수 옴 붙은 소리 할래?”
【너 힐도 없고, 마법도 못 쓰지 않냐. 그 둘을 못 쓰는 너는 그냥 유통 기한 지난 유제품 같은 것이다.】
시우는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프레를 노려봤다.
‘저걸 때릴 수도 없고.’
그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비워진 단전에 집중했다.
마법을 쓰지 못한 탓에 단전에 있는 마력을 소모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력보다 정순한 기운인 에테르를 사용하기 위해선 단전에 있는 모든 마력을 비워야만 했다.
구태여 발뭉에 마력을 밀어 넣어 라반과 칼 씨름을 했던 이유는 바로 그 때문.
시우는 단전보다 한층 더 깊숙한 코어에 다가가 에테르를 한 움큼 끌어 올렸다.
청량감이 도는 마력과 달리 뼛속까지 시린 한기가 전신에 고루 흘러넘친다.
에테르가 마나맥을 타고 혈관 구석구석을 맹렬히 휘젓는다.
근섬유가 찢어지고 세포가 타들어 가는 격통이 몸에 찾아온다.
전 같았으면 달갑게 받아들였을 감각이건만. 지금은 전혀 그럴 수가 없었다.
시우는 그렇게 달궈진 몸의 기운을 한 곳에 집중했다.
지하 카타콤 안에 잠들어 있던 무명의 왕에게서 받은 전설급 아이템, 화염석(火超石).
평소라면 마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터라 굳이 눈여겨볼 아이템이 아니었지만, 마족을 증오했던 왕의 원념이 마음에 들었기에 품에 지니고 있었다.
녀석이 화염술사라는 대사를 들은 직후, 시우는 머릿속으로 이 모든 계획을 떠올렸다.
카이세에게서 뿜어져 나온 격과 마기의 기세를 보았을 때, 놈의 급은 결코 낮지 않았다.
적어도 시우가 마주했던 4위계 중에서는 가장 강한 편에 속했다.
따라서 어지간한 화염으로는 카이세의 불길에 맞서 압도할 수 없으리라 판단했다.
“후우.”
시우는 일반적인 마력을 써서 화염석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더욱 정순한 에테르를 사용해 화염석을 깨우기로 했다.
고대 왕국의 국보급 아이템인 화염석에 순도 높은 마력인 에테르가 쏟아져 흐른다.
마력을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아이템들은 주입되는 마력의 질과 양에 따라 그 능력이 비례하는 법.
시우의 에테르를 머금은 화염석은 그 무엇보다 정백한 에너지를 공급받고 그 위력을 최상으로 발휘할 수 있었다.
불길이 삽시간에 몸집을 키운다.
카이세가 쏘아 날린 불꽃에 맞서 화염석의 기운이 장대히 타오른다.
선선히 사라진 자신의 공격에 카이세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곧이어 두 번째 공격이 시우에게 퍼부어진다.
이번에는 위력도 두 배 이상 늘고, 개수도 수십 개로 많아졌다.
시우는 발뭉을 들어 쳐 낼 수 있는 불꽃은 쳐 내고, 나머지는 화염석의 기운으로 막아 냈다.
아니 막아 냈다기보다는 화염석의 불길이 상대의 불을 상쇄시켰다.
“마법을~ 벌써 사용할 수 있게 된 건가요?”
카이세가 웃음기를 지운 채 시우를 노려보았다.
진작 통구이가 됐어야 하는 상대가 멀쩡히 버티고 서 있자 이해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당신은~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는 분이군요. 고통스러워하지도 않고, 불길에 그을리지도 않고. 제 계획이 이만큼이나 먹히지 않는 경우도 드문데 말이죠.”
카이세는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시우는 처음으로 가식을 지운, 있는 그대로의 카이세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분명 힐은 못 쓰는 게 맞고, 마법은 구속된 게 맞을 거예요. 왜냐하면 피를 그렇게 흘리면서도 지혈 하나 못하고 있으니까요.”
“글쎄, 상처가 너무 얕아서 치료할 필요성을 못 느낄 수도 있지.”
시우는 신경 마디마디가 잘려 나가는 듯한 고통을 참아 내며 대꾸했다.
이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안 그래도 좋지 않은 컨디션에 에테르의 기운마저 빌린 까닭에 신체가 과부하 상태에 직면한 것이다.
“하하~ 무슨 꾀를 썼는지는 모릅니다. 그렇지만 제 진심 어린 화염을 받아 내고도 살아남은 존재는 아직 보질 못했어요. 답례로 뼛속까지 태워 드리도록 할게요.”
카이세는 몸 안에 있는 모든 마기와 마력을 한 곳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격의 기세가 주위를 압박하고 땅을 뒤엎는다.
“죽으세요~~ 하하하하!”
‘마나의 맹세’로 다른 이의 마기까지 합친, 화염술사의 전심전력이 시우를 향해 솟구쳐 왔다.
쿨럭!
육체가 견딜 수 있는 고통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시우는 피를 울컥 토해 낸 뒤 입술을 짓씹었다.
한 움큼 끌어 올렸던 에테르를 화염석에 전부 때려 박았다.
화르르륵ㅡㅡㅡ!!
하늘 높이 치솟는 새파란 불기둥이 카이세의 불길을 살라 먹고 일대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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