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layer who hides his past RAW novel - Chapter 530
◈ 530화. 대리자들 (2)
크리스탈 홀.
“영원불멸의 진리 앞에 맹세하겠습니다.”
마티스 딘 카를.
강단에 선 그는 『진리의 상아 조각』에 손을 얹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은 명확하게 갈렸다.
“찍어, 뭐라도 찍어 하여튼……!!”
정숙이라는 기본 규율조차 숙지하지 못한 이들.
“이게 마법사의 탑 내부였나……?”
“아, 아름다운 걸 넘어서 믿기지가 않는데요?! 아니, 실시간으로 홀의 크기가 넓어지고 있잖아요! 아무리 많은 인원이 입장해도 가득 찰 기미가 보이질 않아요!”
“위압감 장난이 아니네, 이거.”
“딱 하나. 생방송이 안 되는 게 아쉬워요.”
그 정체는 세계 각국의 취재진들.
“쨌든, 이호열 덕분에 이게 무슨 횡재야?”
마탑이 로비를 제외한 다른 공간을 공개한 건 전례가 없는 일.
무수한 카메라가 크리스탈 홀의 전경을 담았다.
당연하게도 그들에겐 못마땅한 시선이 쏟아졌다.
“흠.”
그러나 곧 시선을 거둔다.
치유학파 선임 마법사, 벨리에 유시아.
그녀는 취재진 대신 멀리 떨어져 앉은 탑주.
마르셀로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어째서일까요, 뱅그릿 선임?”
“네?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지……?”
“저런 억지에 응하신 이유가 뭘까요, 두 분 다.”
이번 증명은 마티스의 의지만으로 진행될 수 없었다.
그렇다, 탑주인 마르셀로가 허가가 있었기에.
마티스의 증명은 마탑 마법사들 앞에서가 아닌.
전 세계가 지켜보는 앞에서 진행될 수 있었다.
벨리에가 이마를 짚었다.
“엄살이 아니라 조금도요. 도저히 짐작이 되질 않아요.”
저들이 말도 안 되는 요청을 해온 것도, 그 말도 안 되는 요청에 두 사람이 화답한 것도. 벨리에는 속이 답답했다. 머릿속에선 이 수석님의 목소리가 떠나질 않았다.
‘……한번 말씀하신 건 반드시 지키시는 분.’
그러니 자신의 죗값을 지옥에서 치르시겠다는 말도 이 수석님은 지키시고 말겠지.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벨리에가 그나마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이 수석님께선 부활의 기적을 행하신 적이 있어.’
그 부활을 간접적으로나마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옥은 이야기가 달랐다.
벨리에가 마른침을 삼켰다.
‘……모든 힘에는 대가가 따라.’
마치 치유 마법과 같다.
악과(惡果)를 정화하기 위해서 온전한 하나의 생명이 필요했던 것처럼 이 수석님의 능력인 부활에도 한계는 있을 수밖에 없겠지.
벨리에가 한숨을 뱉었다.
“……후우.”
그러나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대책 없이 걱정만 할 바에는. 이 수석님에게 도움이 될만한 새로운 치유 마법을 연구하는 편이 더욱 옳은 발상일 테니까.
그나저나.
“여기 계셔도 되는 건가요, 뱅그릿 선임?”
“네? 저는 괜찮습니다!”
“으음, 제가 보기에는 아닌데요.”
“하하. 역시 그래 보이나요……?”
“제 눈을 속이시려고요?”
불과 어제 뱅그릿의 상태를 직접 진단했던 벨리에였다.
최소 한 달은 별실 신세를 벗어날 수 없을 정도의 부상.
그럼에도 뱅그릿은 씨익 웃었다.
“헤헤, 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어제부터 잔뜩 엄살을 부려놔서 그래도 증명까지 지켜볼 힘은 남았거든요. 벤쉬 선임과는 다르게요.”
최소 반 년.
비전 마법의 발현은 물론, 그토록 집착하던 결전용 마도구의 사용 또한 자제해야 할 부상을 입은 벤쉬였다. 그런 채로 멀쩡한 척을 할 때부터 낌새가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벤쉬 선임.”
벨리에가 혀를 내둘렀다.
“수다를 떨다가 기절하실 줄은 몰랐다니까요?”
그림자 용병단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요.
어쨌든, 뱅그릿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됐기에.
벨리에는 지그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너무 흥분하지 않고 지켜볼까요?”
이윽고, 빛나는 진리의 상아 조각.
오색 빛이 마티스를 휘감기도 잠깐.
마티스가 말을 이었다.
“이 자리에서 오직 진실만을 선언할 것을.”
말이 떨어지는 순간, 쏟아진다.
“정확하게 흑마법이 뭡니까? 위험한 거 맞죠?”
격식도.
“제주도를 뒤덮은 게 이호열의 흑마법이 맞습니까?”
존중도.
“이호열 플레이어의 흑마법이 아군을 위협에 처하게 할 뻔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니라 제보가 있어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감사도 느껴지지 않는 질문들이.
‘……벨리에 님의 말씀이 옳아.’
뱅그릿은 탑주 마르셀로.
마티스 선임을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이런 질문이 쏟아질 것이라고는 자신조차 짐작할 수 있었다.
‘이것도 기이의 탐구 덕분이려나.’
이 세계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대충은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 증명을 추진하신 이유가 짐작되지 않았다.
뱅그릿은 욱신거리는 옆구리를 매만졌다.
‘이 수석님께선 이미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셨어.’
그런 상황에서 마티스 선임이 할 수 있는 것?
아마도.
이 수석님의 과오를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밖에 없겠지.
‘심지어 진리의 상아 조각에 맹세까지 한 지금…….’
마티스 선임은 오직 진실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벌써부터 우려가 됐다.
증명이 끝난 뒤 벌어질 파장이 쉽게 짐작되지 않았다.
그때였다.
“모든 질문에 답하겠다.”
마티스가 입을 열었다.
.
.
.
“제주도, 그 섬을 뒤덮은 건 적합한 마력이었다.”
파이몬의 권역이 출현한 순간.
마티스는 마탑을 지키고 있었다. 출탑의 자유를 획득한 순간부터 출탑에 별다른 허가를 받을 필요는 없었으니, 그 판단은 오롯이 마티스의 의지였다.
그 이유를 마티스가 숨김없이 말한다.
“흑마도학의 창시자인 나, 마티스 딘 카를조차도 그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제주도를 뒤덮은 건 짙고도 위협적인 적합한 마력이었다.”
『진리의 상아 조각』
그에 맹세한 자가 거짓을 내뱉는다면.
거짓을 고한 자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거대한 상아 조각 끄트머리.
핏자국이 그 대가를 짐작케 한다.
카메라가 일제히 진리의 상아 조각을 향한다.
……고오오.
상아 조각에 움직임은 없으니 진실.
다시금.
격식 따윈 없는 질문이 쏟아진다.
“그렇다면 마티스 선임께서도 동의하시는 겁니까? 플레이어, 이호열이 인류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여러 전문가의 추측에 말입니다!”
인류의 위협이라.
‘그럴지도 모르지.’
슥.
마티스는 자신의 반지를 바라봤다. 반지를 장식한 보석은 한계치 이상의 적합한 마력과 접촉한 탓에 전부 파괴된 상태였다. 마탑과 제주도의 거리를 고려한다면…….
마티스는 장담할 수 있었다.
‘만약, 제주도로 향했다면 지금쯤 나는…….’
이 수석님의 적합한 마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 수석님의 한없이 깊은 어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폐인이 되었겠지. 예를 들자면, 무간에 투옥됐던 악마 숭배자들과 같은 신세가 되었으리라.
마티스는 이번에도 진실만을 말했다.
“그 의견에 동의한다.”
“……!!!”
그 선언에 이번엔 곳곳에서 플래시까지 터져 나왔다.
마티스는 크리스탈 홀을 둘러봤다.
마탑 모두가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오직 마르셀로 탑주만을 제외한 채.
마티스가 마르셀로를 향해 작게 미소를 지었다.
증명을 허가해주신 순간부터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역시, 당신께선 나와 같은 생각이시군요.’
웅성웅성.
취재진 측에서 더욱 노골적인 질문이 이어진다.
“그렇다면 마탑이 어떤 태도를 보이실 생각이신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인류에게 위협이 된다는 건 마탑에도 위협이 된다는 뜻이 아닙니까?”
“마탑을 주축으로 새로운 연합을 구축할…….”
“혹시 성전 연합군 탈퇴를 생각하시는 건지요!”
그러나.
이들은 아직도 무언가 크나큰 착각하고 있군.
현실과 아르카나의 언어는 크게 다르지 않다.
둘 다 끝까지 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마티스가 입을 열었다.
“오해가 있는 모양이군.”
“오해라니요. 분명 동의하신다고……?”
“나는 위협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마티스의 동공이 서늘하게 빛났다.
그래.
벤쉬 윌리엄을 꾸짖을 때보다 더욱더.
고오오.
마티스가 가볍게 마력을 일렁거린다.
정숙이라는 마탑의 기본 규율조차 알지 못하는 이들이다.
크리스탈 홀에선 무력 행위 금지라는 규율을 알 턱이 없을 터.
……화들짝.
“가, 갑자기 왜 그러시는 건지……?!”
움찔거리는 취재진들을 향해 마티스는 내뱉었다.
“그대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간단한 발현이었다. 간섭 과정에서 조금만 달라져도 발현되는 마법의 종류가 달라지는 것처럼. 인간의 말도 마법과 같으니.”
“……?”
“나의 말을 멋대로 곡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
기대도 하지 않았거늘.
크리스탈 홀에 입성한 뒤.
원하는 장면, 대답, 리액션.
모든 걸 카메라에 담았던 취재진들이었다.
그러나 찬물.
아니, 얼음물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기세등등했던 이들이 잔뜩 움츠러들었다.
뚜벅.
“히이익.”
이윽고, 마티스가 한 걸음 다가가자 이젠 울상이 된 취재진들이었다. 비로소 규율을 준수한 정적이 흐른다. 뒤늦게나마 격식을 갖췄나.
이제야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을 듯싶었다.
“그대의 질문들은 전부 인지했다. 조금 더 현명하리라고 여겼는데, 아직도 본질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을 줄이야. 만약, 이 수석님이 자리에 계셨다면 그대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겠지.”
“……?”
“아직도 주제 파악을 하지 못했나, 라고.”
“!”
새로운 연합을 구축?
이 수석님에게 대응하겠다?
마탑은 그 신흥 세력에 협조?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는 발상이었다.
“위협의 여부는 그대들이 판단하는 게 아니다.”
보고도 깨닫지 못한 것인가?
“인류에게 위협이 될지, 그 반대가 될지는 오직 그 당사자이신 이 수석님의 의지에 달린 일이라는 걸 그대들은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나.”
마티스의 말에 뒤늦게 깨달은 이들이 있었다.
“……그, 그랬어.”
이번 사태에서 이호열을 멈춘 건 용기사로 각성한 스칼도, 거대 연합도, 상위 마왕 파이몬도, 그런 파이몬을 일격에 꿰뚫은 의문의 손도 아니었다.
“이, 이호열이었어……!!”
결국, 호열 자신이었다.
마티스가 진리의 상아 조각을 바라봤다.
“그러니 이번 증명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단하다. 나는 나를 위해서도, 마탑을 위해서도가 아닌 오직 그대들을 위해서. 거추장스러운 증명까지 치러가며 나의 지식을 나눠주고 있는 것이다.”
조각은 여전히 굳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것은 마티스.
그가 여전히 단 하나의 거짓말도 하지 않았다는 증거.
“그러니 부디 현명하게 선택하길 바라지.”
그가 마지막 말을 내뱉는다.
“짐승조차 채찍과 당근. 모두를 쥔 자에게는 거스르지 않으니.”
*
“고생하셨습니다, 마티스 선임님.”
마르셀로가 싱긋 웃었다.
“자제하시느라 노고가 많으신 것 같던데요?”
마르셀로는 과거.
그러니까…….
호열이 마탑에 입성하기 전 마티스의 모습을 떠올렸다.
흑마도학이라는 고독한 길을 걸었던 마티스였다.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이가 단 한 명도 없던 그 시절의 마티스. 그의 모습은 비유하자면 고슴도치 같았으니. 만약, 그 시절의 마티스가 증명을 진행했더라면.
‘지금쯤 취재진 중 몇 명은…….’
이내, 마티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 말씀하시니 부끄럽군요.”
“이런 그런 반응을 원한 건 아니었는데요.”
“그 또한 송구합니다, 탑주님.”
“……역시, 말로는 마티스 선임을 이길 수 없겠군요.”
자신이 최연소 수석 마법사로 선출되지 않았더라면 수석 마법사의 자리에 올랐을 마티스였다. 굳이 세대를 따지자면, 마티스는 선임들보다 원로 마법사 세대에 가까웠으니까.
마르셀로가 엄살을 부리는 것도 과장은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증명 과정도 놀라웠습니다.”
마티스가 반문했다.
“이미 짐작하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탑주님께서는?”
마르셀로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런 마르셀로에게.
마티스는 솔직하게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이 수석님께서 제 증명을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모험가의 세계에 관해서 많이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숙지하고 있는 마티스였다.
새로운 소식이 텔레파시보다 빠르고, 넓게 퍼져가는 세상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는 뜻.
하지만 우려하는 마티스와 다르게 마르셀로는 여유로웠다.
“글쎄요. 이 수석님께는 마티스 선임께서 직접 말씀드려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슥.
마르셀로는 대답 대신 테이블 위에 놓인.
기이의 탐구를 위한 모험가들의 마도구.
스마트폰을 향해 눈짓했다.
여전히 잠잠했다.
아까부터 그 어떠한 진동도 없었다는 것.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마르셀로가 어깨를 으쓱였다.
“전부 마티스 선임의 증명이 훌륭했던 덕이겠죠?”
*
TQBC.
밀착취재 생생 아르카나팀.
PD가 촬영본을 보고는 덜덜 떨었다.
“이런 미친……!!”
시청률을 위해서는, VBC 투데이 아르카나를 짓누르기 위해서는, 현용석 그 싸가지 없는 새끼를 비웃어 주기 위해서는,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겠다고 다짐했었거늘.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마탑에서의 촬영본 전부 폐기해.”
“네? 대체 뭐가 찍혔길래, 아깝잖아요?!”
“아까워? 지금 아깝다는 말이 나와?!”
PD가 사색이 돼서는 말했다.
“이건 협박이잖아? 마탑이 진리에 맹세하고는 우릴 협박하고 있는 거라고! 이호열 심기를 건드렸다가 좆 되는 건 이호열이 아니라, 너희 인류라고. 한 치의 거짓말도 없이 경고하고 있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