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02)
102 화 바티스 드라코.
바티스 드라코.
용왕국의 삼 왕자, 바티스 드라코.
사실, 그는 그리 뛰어난 인물이 아니었다. 그저 운 좋게 지극히 강력한 마룡왕의 아들로 태어나 용인족(龍人族)의 피를 이었을 뿐.
자신의 위로 태어난 누나와 형은 물론이고, 자신의 뒤에 태어난 어린 여동생에게마저 정치적으로 밀렸다.
물론, 500년 이상 이어져 온 마룡왕의 끝날 줄 모르는 치세 아래에서 자식들의 지위란 그다지 의미가 없는 것이기도 했지만.
마룡왕은 굉장한 애처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식에 대해서는 지극히 무관심했다. 그가 자식을 만든 이유도 애초에 자신의 네 아내들이 바랐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막상 마룡왕의 아내들도 혹시 모를 마룡왕의 급사나 중병에 대비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나 위치에 대한 염려로 자식을 낳고 보니, 너무나도 정정한 마룡왕의 왕위가 적어도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자식에게 넘어갈 일은 없을 거란 걸 깨달았다.
마룡왕은 언제나 그녀들을 지극히 애지중지 대했다. 마룡왕은 자신과 달리 서서히 늙어 가는 아내에게도 언제까지나 각별한 애정을 보냈다. 그렇게 마룡왕의 첫 번째 아내와 두 번째 아내가 늙어 자연사(自然死)하고 한참의 세월이 지난 뒤, 그와 결혼한 세 번째와 네 번째 아내는 그의 첫 번째 부인과 두 번째 부인의 경우를 보고서 자신이 아무리 늙는다고 해도, 자신의 위치가 위협받을 일은 없을 거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 결과 둘은 앞서 두 부인이 했던 전통대로 마룡왕과의 사이에서 각각 한 명의 자식을 두었지만, 마룡왕의 두 아내는 의무감으로 낳은 자식에게 딱히 관심이 없었다. 그저 자신을 향해 지극한 사랑을 보내오는 사내에게 어떻게 보답할지 매일 궁리할 뿐.
그렇게 바티스 드라코는 부모의 무관심 속에서 자라났다. 그렇다고 그에게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용왕국의 왕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최선을 다해 바티스를 교육하고 보살피려 했다.
그가 부모의 관심을 끌기 위해 사고들을 치고 다니기 전까진.
처음, 그가 처음으로 수업들을 빼먹고 그를 부르러 온 스승에게 끌려갔을 때, 그는 정말 오랜만에 어머니에게 불려가 꾸중을 들었다. 조용히 수업을 들을 때 느끼지 못했던 어머니의 관심.
바티스는 그 관심을 바랐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사고를 쳤다.
지극히 무례하고 지극히 방만하며 지극히 방탕하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방식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처음 몇 번은 직접 불러서 꾸중을 하던 어머니가 자신의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곤, 그 미약한 관심마저 아예 끊어 버렸다.
거기다 그는 왕실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분만 믿고 날뛰는 천덕꾸러기로 낙인찍힌 뒤였다. 그는 언제나 형제자매와 비교를 받았다. 특히 나이가 그다지 차이 나지 않는 여동생, 르소나 드라코와.
지극한 스트레스. 막 사춘기에 접어들었던 바티스는 그렇게 완전히 비뚤어졌다. 어차피 어떻게 살든 누구에게도 관심받지 못할 바에야 그저 눈앞의 쾌락을 좇기로.
다행히 그의 몸속에 흐르는 피는 위대했고, 그에겐 풍족한 용왕국 왕실의 지원 아래 마르지 않는 두툼한 주머니 또한 있었다.
그렇게 바티스는 왕실에서 나와 거리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는 누구보다도 관심받고, 그 누구보다도 화려하게 빛나는 존재였다. 남들과 비교당해 숨 막히도록 짓눌리기만 하는 왕궁 생활과는 달리.
그는 그렇게 돈으로 산 여인들의 품에서 매일매일을 보냈다. 어머니와 아버지와는 달리 자신만을 바라보며 웃어 주는 여인들과 함께.
그렇게 얼마나 긴 세월을 보냈을까. 지극히 방탕하고 방만한 생활 속에서도 바티스는 항상 무언가 결여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자신의 여동생 르소나 드라코가 제국으로 보내는 사절로 임명받아 아버지와 어머니의 배웅과 함께 출정하는 모습을 보고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심. 아직도 그는 부모의 관심에 목이 말라 있었다. 하지만 그가 여태 보내온 방탕하고 방만한 생활이 그에게 남겨 준 건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에겐 그의 돈과 지위를 보고 모여든 수많은 뒷거리의 여인들이 있었다. 바티스는 자신의 고민을 그녀들에게 꺼냈다.
“어떻게 하면 아버지가 내게도 일을 맡겨 줄까?”
그 질문에 대부분의 여인은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오빠한테? 마룡왕님께서 일을? 아무래도 그건 좀 힘들지 않을까? 그분은 오롯이 능력만 보잖아!”
“뭐?!”
그녀들의 대답에 바티스가 짐짓 분함을 표현하자, 그녀들은 그저 다시 한번 꺄르르 웃으며 그를 이끌고 놀자고 속삭였다. 바티스는 못 이기는 척 그녀들의 뒤를 따라 놀러 갔다. 그는 여전히 용왕국에서 가장 고귀한 한량이었으니까.
그렇게 습관적으로 여인들에게 질문을 던지던 어느 날, 한 여인이 대답했다.
“오빠 능력이 안 돼서 문제면 결혼 같은 거로 외가의 힘을 빌리면 안 될까? 오빠랑 결혼하는 여자의 가문이 엄청나게 떵떵거리면 아무리 그 마룡왕님이라도 오빠한테 어느 정도 관심을 줄 수밖에 없겠지. 게다가 그 가문과 소통할 때는 오빠한테 일을 맡기…”
여인은 말을 하다 말고 혹시 이 돈이 줄줄 흘러넘치는 손님을 잃을까 경계한 다른 여인들의 날카로운 눈빛에 잽싸게 말을 멈췄지만, 그녀의 말은 이미 바티스의 마음속 깊숙한 곳에 너무나 매력적으로 꽂혀 든 지 오래였다.
그는 들고나온 돈 전부를 자신에게 해답을 알려 준 여인의 가슴에 꽂아 주고는 당장에 왕궁으로 되돌아와서 다른 나라의 유력한 가문들에 관한 정보를 모았다.
특히, 아직 혼처가 정해지지 않은 딸이 있는 가문 위주로.
그리곤 바티스는 무작정 과년한 딸이 있는 유력한 가문들에 모조리 청혼의 제안이 담긴 편지를 보냈다. 똑같은 내용의 편지를 일괄적으로.
당연히 그러한 작태는 너무나도 쉽사리 다른 가문들의 귀에 전해졌다. 그의 뒤에 있는 용왕국이라는 배경과 삼 왕자 자리는 용왕국 내에서는 존경의 대상이었을지 몰라도 타국의 대귀족들에게 있어선 크게 의미가 없었다.
게다가 자신의 가문만이 아니라 여러 가문에 동시에 뿌려진 성의 없는 청혼에 냉큼 귀한 딸을 내놓는다는 건 그 어떤 귀족이라도 반기지 않을 일이었고, 다른 귀족들에게 대대로 비웃음당할만한 일이었다.
그렇게 바티스의 방에는 정중한 거절이 담긴 편지만이 한가득 쌓여 갔다. 하지만 이 교육을 덜 받은 철부지는 작금의 상황이 어째서 이렇게 흘러가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대체! 대체 내 어디가 부족하다고!!!”
수많은 여인들 중에서 가장 나은 가문을 고르려 했던 그의 방만한 상상은 그렇게 무너졌다. 잔뜩 충격받은 바티스가 방에 틀어박히려던 와중, 한 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다른 편지들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 담긴 편지가.
그 편지 안에는 정중한 어투로 그대의 청혼을 수락한다는 내용과 함께, 아내가 될 여인은 현재 가출한 상태로 재주껏 데리고 가서 결혼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청혼에 대한 답장으로는 지극히 이상한 내용이었지만, 바티스는 이 유일한 승낙에 잔뜩 기뻐하며 돈만 잔뜩 챙겨서 날아올라 떠났다.
자신의 청혼에 답해 준 가문이 있는 북부 왕국을 향해서.
***
쾅!!!
베아투스가 검은 막으로 둘러싸인 그때. 바티스가 한 선택은 지극히 간단했다. 베아투스를 뒤덮은 괴현상들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낀 그는 다키아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떨쳐 버리고 거대한 용으로 변해 힐덴을 챙겨 들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난데없이 생겨난 검은 막과 충돌한 다음 그대로 추락해 바닥을 뒹굴었다.
“아프잖아!!!”
이제는 망한 일레흐의 동부지부장이었던 사내, 힐덴은 용왕자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거 못 뚫으시겠습니까?”
“잠깐 있어 봐.”
샛노란 비늘을 반짝이며 대답한 용은 날개를 펄럭이며 거대한 입을 벌렸다. 동시에 용의 입으로 샛노란 빛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힐덴은 그 압도적인 광경을 보며 속으로 감탄을 터뜨렸다. 진짜 저 왕자는 입만 벌리지 않으면, 그 비루한 내용물을 보일 일이 없으니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콰아아앙!!!
허공으로 치솟아 오른 샛노란 광선이 검은 막과 충돌했다. 그 충돌의 끝에 마침내 검은 막에는 자그마한 구멍이 생겼다. 겨우 사람 하나가 빠져나갈 만한 구멍이. 그리고 그 구멍은 언제 존재했냐는 듯이 순식간에 회복한 검은 막에 뒤덮여 사라졌다.
바티스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이제껏 그가 용의 몸으로 쉽게 해내지 못했던 일이 없었기에, 겨우 저런 막 하나를 뚫지 못한 건 그에게 있어 진짜로 큰 충격이었다.
그는 순식간에 쪼그라들어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와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서 힐덴에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우리 꼼짝없이 여기 갇힌 거야?”
힐덴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만… 일단은 조금 대책을 생각해 봐야겠군요. 이건 절대 평범한 현상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마 제 추측으로는 요즘 북부왕국에서 날뛰고 있는 악신의 숭배자들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뒷세계에서 굴러먹던 힐덴의 노련한 판단에 바티스는 진짜 얘를 살려서 데리고 오길 잘했다고 느꼈다. 사실, 그에게 있어 힐덴은 매번 투덜대면서도 그를 떠나지 않는, 처음으로 생긴 가신 비스름한 것이었기에 나름 굉장한 애착을 느끼고 있었다.
“아, 그런데 이렇게 되면 그, 극장에도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까? 혹시 내가 다키아를 구하러 가면 다키아도 나를 새롭게 보지…”
“절대 아닐 겁니다.”
힐덴은 아직도 현실을 깨닫지 못한 이 용왕자를 향해 거침없이 충언했다.
“제가 딱 옆에 서 있는 마르낙이라는 사제를 보는 공녀의 눈빛을 보니까 소싯적 제 아내가 절 바라보던 그 눈빛과 완전히 똑 닮아 있더라고요.”
“그게 무슨 뜻인데?”
“지금 완전 사랑에 푹 빠져 있다는 거죠. 아마 바티스 왕자님이 엄청나게 멋지고 제대로 된 사람이었어도 지금의 다키아 공녀를 꼬시는 건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 그 되지도 않는 마음은 접으시지요.”
“하지만!!!”
바티스의 거친 대답에 힐덴이 혀를 찼다.
“쯧쯧. 게다가 반한 이유가 그게 뭡니까? 자기한테 차갑게 대해서 좋다니. 솔직히 돈만 잔뜩 주면 얼마든지 그런 역할극을 해 줄 여자는 이 북부왕국에 널리고 널렸습니다. 그러니까 공녀에 대한 마음은 일찌감치 접고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빠져나갈지 저랑 고민이나 하시죠.”
“그런데…”
바티스가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서 힐덴을 노려보았다.
“방금 은근슬쩍 돌려서 날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이라 돌려서 비아냥댄 거 같은데 기분 탓이지 그거?”
“하하하…”
힐덴이 어색하게 웃으며 변명거리를 떠올리던 그때. 한 사내가 시내를 가로질러 뛰어왔다. 사내는 힐덴과 바티스를 번갈아 보고서는 이내 바티스를 바라보며 거침없이 말했다.
“혹시 용왕국의 왕자님 되십니까?”
바티스는 눈앞의 사내가 누군지 잘 알았다. 검은 들개 카르멘 발타스. 다키아의 동료. 그는 눈앞의 카르멘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래, 내가 바티스 드라코. 용왕국의 삼 왕자다. 그런데 무슨 용건이지?”
카르멘은 눈을 빛내며 힘차게 말했다.
“방금 베아투스를 구원하기 위해 용으로 변하여 직접 힘쓰시는 모습을 잘 봤습니다! 지금 저희가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규합 중이니 혹시 조금 도움을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내가 왜… 읍?!”
힐덴은 거침없이 거절을 내뱉으려던 바티스 왕자의 입을 막고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일이 잘 풀리면 굉장한 명성을 얻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북부 왕국에 큰 빚을 지워 둘 수 기회라고요! 당장 알겠다고 하십쇼! 어차피 지금 당장 빠져나가지도 못하지 않습니까?”
바티스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북부 왕국에 큰 빚을 지워 둔다? 거기에 명성도 얻고?
이건 아버지와 다키아가 자신을 다시 보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기회였다. 그가 조사해 본 바에 의하면 검은 늑대 카르멘 발타스는 흔쾌히 자신의 헌신에 대해 여기저기 퍼뜨리고 다녀 주리라.
바티스는 자신의 입을 막은 힐덴의 손을 치우고 활짝 웃었다.
“좋지. ‘내가’ 특별히 ‘너희를’ 도와주마! 온전히 ‘선의’로!”
***
“지치네. 이거… 때려치울까… 그냥…”
또 한 번의 교전. 살점 덩어리 촉수들은 끊임없이 솟아났고, 별 피해 없이 이를 제거할 수 있는 이들은 무척이나 적었다. 그에 따라 당연히 바티스는 쉴 틈도 없이 촉수들과의 한바탕 전투를 계속해서 이어 나가야만 했다.
겨우 교대하고 잠깐 휴식을 취하러 생존자들의 근거지로 돌아온 그의 눈에 한 여인이 들어왔다.
은발 금안의 여인, 다키아 이르멜.
그리고 그 옆에 거머리처럼 붙어 있는 마르낙이라는 놈팡이.
그가 미처 무어라 소리치기도 전에 다키아가 큰소리로 외쳤다.
“아버지께서 여기 계신다고요? 게다가 제정신을 차리셨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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