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37)
137 화 검거.
검거.
‘ㅅ…ㅏ…ㄹ…ㅎ…ㅐ…’
꾹꾹 손바닥을 눌러 지압을 해 드렸다. 어머니께선 창고에 쌓인 짐 사이에 몸을 기댄 채로 내 손바닥 마사지를 즐기셨다.
잠복 두 번째 날. 우리는 잠깐 상단 경비들에게 자리를 부탁하고 대충 끼니를 해결하곤 다시 창고로 돌아와 잠복을 개시했다.
주변의 흔적을 꼼꼼히 분석한 딜겐트의 말에 의하면 꼽추 카투스가 한낮에 창고를 털러 나타날 확률은 무척이나 희박하다고 했기에, 어머니는 그 말을 듣자마자 주변을 요리조리 돌아다니며 푹신푹신한 짐들을 모아 나름의 안식처를 구축하셨다.
‘살해!’
나는 불쑥 내밀어진 반대쪽 손을 받아들고서 손바닥을 꾹꾹 눌러 새로 지압해 나가기 시작했다. 딜겐트는 그런 우리의 모습을 힐끔 보곤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가만히 두 눈을 감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나와 어머니의 모습을 보곤 둘이 대체 무슨 관계냐고 질문을 던질 법도 하건만, 잠복을 시작한 뒤로 그는 나와 어머니에게 이번 사건과 관계없는 질문을 던지질 않았다.
마치 악마를 잡는 것만이 자신의 사명인 것처럼. 저 과묵함은 그가 레인저로 복무했던 경험 때문일까, 아니면 악마를 쫓는 사제로서의 태도일까.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사제인 적이 없던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잡념 속에서 하얀 어머니의 손을 꾹꾹 누르길 한참. 어머니는 어젯밤에 그렇게 주무셔 놓고도 또 잠이 오시는지 두 눈을 끔벅대다 이내 곯아떨어지셨다.
지금 자 두면 적어도 새벽에 조시진 않겠지. 아직 이른 오후라 해가 지려면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다. 나는 경비들에게 받아 온 얇은 모포를 어머니에게 덮어 드리고 벽에 몸을 기댔다.
우리가 잠복한 장소는 카투스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동선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임과 동시에 그의 시야의 사각에 해당하는 장소였다.
멍하니 창고의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시간이 마치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한없이 길게만 느껴졌다.
되게 심심하네. 마침 딜겐트는 눈을 감고 있긴 했지만, 규칙적으로 까딱이는 손가락으로 보건대 그냥 눈만 감고 있는 듯했다.
“주무십니까?”
툭 던진 내 말에 딜겐트의 눈이 천천히 벌어졌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저 잠깐 생각을 좀 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제게 하실 질문이라도 있으십니까?”
질문. 질문이라. 그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몇 개 있긴 했다.
“몇 가지 물어봐도 괜찮겠습니까?”
딜겐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편히 물어보셔도 됩니다. 어차피 해가 질 때까지 조금 여유가 있으니까요.”
나는 잠깐 뜸을 들이곤 그에게 질문을 꺼냈다.
“어째서 저입니까?”
“그게 무슨 뜻이신지?”
“이곳 에베도스에는 저 말고 다른 사제분들도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굳이 저를 딱 집어서 같이 범인을 쫓자고 제의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흐음…”
딜겐트는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다 이내 아주 가볍게 대답했다.
“뭐,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굳이 하나를 꼽자면, 마르낙 사제님께서 꼽추 카투스의 얼굴을 보셨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제가 여기저기 수소문해 가며 사람을 찾았지만 꼽추 카투스의 얼굴을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더군요. 그래서 곤란해하던 차에 마르낙 사제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제님께서 범인을 뒤쫓아 광장을 가로질렀다는 이야기를 말입니다.”
그래서 의원에서 처음 봤을 때와 나중에 만났을 때의 온도가 달랐던 건가. 그는 기지개를 쭉 켜곤 빙그레 웃었다.
“마르낙 사제님께선 훌륭하게 범인의 뒤를 쫓아 카투스를 본 것으로도 모자라, 그가 악마와 계약했다는 사실도 알아내셨지 않았습니까? 저는 마르낙 사제님이야말로 이번 일에 적합한 인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거기다 마르낙 사제님께서 그날 본 꼽추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으시니만큼, 혹시라도 카투스와 마주쳤을 때 꼽추 본인이 맞는지 확인해 주실 수도 있고요.”
“역시 나름의 계산이 깔려 있었던 거군요.”
딜겐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의도적으로 내게 접근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맞습니다. 제가 마냥 짐이 될 사람과 같이 일하는 취미는 없어서 말이죠.”
“그런데 딜겐트 사제님께선 영주님의 아드님이 살아계실 거라 생각하십니까?”
“흠…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멀쩡하게 살아 있을 가능성이 무척 낮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지금 저희가 뒤쫓고 있는 상대가 평범한 이들이 아닌 악마 계약자지 않습니까? 영주님의 자제분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최대한 구해 보려 노력하겠지만, 일단 제 우선 목표는 악마 계약자의 목입니다. 그런 부정한 것들이 이 땅 위를 돌아다니는 걸 좌시할 수는 없는 법이지 않습니까?”
그 지극히 살벌한 한마디에 한 명의 악신의 숭배자로서 그냥 그런 것들을 좀 좌시하면서 살라고 진심을 담아 충고해 주고 싶었지만, 당연히 상상으로 그쳤다. 괜한 의심을 살 필요는 없었으니까.
살짝 닭살이 돋았다. 이거 그냥 심심풀이 삼아 농담 따먹기로 물어본 건데, 예상과는 달리 나온 대답이 너무 살벌했다.
“흠흠. 그런데 오늘도 꼽추 카투스가 이곳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흔적들로 보건대 그럴 확률이 많이 낮습니다만, 그때는 카투스 본인에게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겼거나 그가 행동의 변화를 일으킬 만큼 상황이 변했다는 건데… 그중 최악의 경우는 카투스가 저희의 존재를 알아채는 경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수색을 시작해야 한다는 점에선 같지만요.”
오히려 그편이 내게는 반가운데. 카투스가 갑작스럽게 종적을 감추면 이 수색 기간이 더 길어질 테고, 수색 기간이 길어지면 지젤네들이 성물의 위치를 알아낼 확률이 올라갈 게 분명했다.
그 뒤로 나는 딜겐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때웠다. 역시 혼자 멍하니 앉아 있는 것보단 둘이 떠드는 편이 시간이 훨씬 빠르게 지나갔다. 마침내 해가 저물자 우리는 다시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켰다.
이제부턴 언제 카투스가 나타날지 모르니, 일체의 소리를 내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만 했다.
‘살해…’
중간에 깨어나신 어머니는 입을 쩍쩍 벌리고 연신 하품을 하시며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 오셨다. 아직 잠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건지, 어머니는 두 눈을 꼭 감은 채로 ‘나 안 잔다…’라며 중얼거리셨다. 누가 봐도 졸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그 모습도 나름 귀여워 굳이 어머니를 깨우지 않았다.
창고의 창틈 사이로 들어오는 달빛이 기울었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나 달이 저만치 움직였음에도 카투스는 도통 이 창고를 찾아올 생각을 하질 않았다.
설마 여태까지 감질나게 챙겨 간 것과 달리, 저번에 왔을 때는 식량을 두둑이 챙겨 간 건가. 근데 내일 아침은 뭘 먹지. 뭐, 지금 고민해 봤자 어머니가 먹고 싶은 걸 먹게 될 거 같긴 하지만. 그나저나 지젤네는 성물에 대한 단서를 찾았…
툭.
두꺼운 팔꿈치가 내 어깨를 툭 하고 쳤다. 나는 딜겐트의 신호를 듣자마자 드디어 우리가 기다리던 꼽추 사내, 카투스가 이곳에 찾아왔음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그는 저번 도둑질 때도 평소와 똑같은 양의 식량만을 훔쳐간 듯했다.
자박자박.
새카만 창고의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걸었다. 희미한 달빛만이 창고 안을 비추는 통에 평범한 이들은 창고 안을 거니는 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신성과 약물로 개조된 육체는 어둠을 꿰뚫고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존재의 얼굴을 정확하게 내 머릿속에 때려 박았다.
굽은 등과 이미 구면인 얼굴, 한쪽 다리를 대신하는 조악한 의족. 그래, 그날 나와 마주쳤던 꼽추 사내가 저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등에는 자그마한 자루를 걸친 채로.
나는 서리강철 검의 손잡이를 조용히 붙잡았다. 대체 어디로 들어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눈에 띈 이상 놓쳐 줄 생각은 없었다.
쿡쿡.
‘살해!!!’
손가락 개수가 안 보인다는 한마디. 잽싸게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른 어머니께선 우리의 의심이 들어맞았다는 사실을 내게 전해 오셨다.
이젠 정말 저 꼽추 카투스는 악마 계약자가 맞을 확률이 다분히 높았다.
카투스는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더니 식재료가 쌓인 곳에 멈춰 서서 자그마한 자루에 음식을 주워 담았다.
그리고 딜겐트와 내가 움직였다. 딜겐트의 큼지막한 손이 빠르게 허공을 훑자 날카로운 두 자루의 단검이 허공을 꿰뚫고 날아 카투스의 왼쪽 어깨에 박혔다.
“하압!”
단숨에 거리를 좁힌 나는 그대로 카투스의 가슴팍을 걷어차 넘어뜨리고 그대로 검을 녀석의 목에 가져다 댔다. 바닥에 떨어진 자루에서 과일과 곡식 낱알들이 쏟아졌다.
나는 당황으로 가득 찬 카투스의 눈을 내려다보며 짧게 말했다.
“좀도둑질은 여기서 끝입니다. 카투스. 아니, 악마 계약자.”
“어, 어떻게 그, 그걸?! 그, 그리고 다, 당신은 그, 그때의 사, 사제? 내, 내가 있는 곳을 대체 어, 어떻게 알아냈…”
카투스는 당황한 목소리로 답하며 버둥댔다. 그건 한쪽 어깨에 두 자루의 단검이 박힌 사람에게서 나올 만한 종류의 힘이 아니었지만, 나는 그저 발에 조금 더 무게를 실어 줌으로 그의 반항을 제압했다.
나는 짧게 딜겐트와 눈빛을 교환했다. 딜겐트는 여전히 품속에 손을 넣은 채로 카투스의 돌발행동에 언제든지 대처할 수 있는 준비를 끝마치고 있었다.
“카투스.”
검을 움직여 그의 목에 가져다 댔다. 살짝 베인 상처로 희미한 핏방울들이 검신을 따라 바닥에 떨어졌다.
“물어볼 게 많지만, 지금은 우선 단 한 가지만 물어보겠습니다. 영주님의 아드님은 어디에 숨겼습니까?”
영주의 아들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눈빛이 돌변했다.
“그, 그걸 네, 네가 알아서 뭐 하게!!!”
변화는 조악한 의족에서부터 시작됐다. 수백 가닥으로 갈라진 의족이 그의 몸을 뒤덮어 가며 제 몸을 멋대로 불려 댔다. 나는 빠르게 검을 놀려 그대로 카투스의 목을 베어 냈지만, 카투스의 덜렁거리는 목에선 피 한 방울 떨어지지 않았다.
마침내 카투스가 있던 자리에는 족히 성인 장정의 두 배쯤 됨직한 나무 괴물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슴을 닮은 나무 가면과 비정상적으로 길쭉한 다리와 팔. 그리고 어둑한 색깔로 이루어진 날카로운 나무 손톱.
사슴 가면을 쓴 나무 괴물. 카투스는 널찍한 손을 치켜들고는 으르렁대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괴물이 된 그는 더 이상 말을 더듬지 않았다.
[다 꺼져.]후웅.
날카로운 손톱이 허공을 긁었다. 나는 재빨리 검을 휘둘러 그 손을 쳐내려 했지만, 나무는 내 검날과 닿는 순간 가루가 되어 허공에 흩날렸다.
그래, 기이한 헛짓거리를 할 것쯤이란 건 이미 예상했다.
나는 그대로 검의 궤도를 틀어 사슴 가면의 정중앙에 검을 틀어박았다.
그리고 소리 없는 비명이 뒤따랐다.
바로 내 뒤, 어머니가 있는 방향에서.
발끝에서부터 일어난 닭살이 머리끝까지 타고 올랐다. 가면을 부수고 그대로 목을 쳐 날린다. 내 팔은 제 임무를 다했다. 하지만 고개가 돌아가질 않았다. 뒤편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하기가 두려웠다.
겨우 움직이지 않는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피. 선명한 붉은 피. 어머니의 왼쪽 팔 위에 새겨진 선명한 상흔을 타고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나는 검도 내팽개치고 어머니에게로 달려갔다.
“괘, 괜찮으십니까?”
재빨리 내 사제복을 찢어 내 어머니의 팔 위에 묶어 지혈했다. 내가 중간에 방해한 탓인지는 몰라도 상처는 그리 깊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만 방울방울 흘리면서 고통을 호소했다.
콰앙!!!
“천천히 오십시오! 제가 쫓아가겠습니다!”
목이 날아간 몸이 움직여 벽을 부수고 도망치고 딜겐트가 그 뒤를 따라 쫓았다. 검은 이모탈리움 갑옷이 내 하반신과 오른팔을 뒤덮었다.
“어머니. 손으로 변해 주십시오.”
어머니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말라비틀어진 손등 위에 새겨진 선명한 상처에서 일렁이는 피가 방울져 떨어졌다. 나는 다시 한번 옷을 감아 지혈을 해 드리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젠 카투스가 이번 사건의 범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오른손에서 튀어나온 도살자를 쥐었다. 시동을 걸자 도살자가 시끄럽게 울어 대며 제 존재를 과시했다.
도살자를 틀어쥐고 카투스가 도망친 방향을 노려보았다.
그 입으로 무어라 지껄이든 산 채로 저며 버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