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342)
342
고독.
코끝이 찡해지는 추위. 기도를 타고 올라 나온 따뜻한 날숨이 추위 때문에 새하얗게 맺혀 공기 중으로 퍼져나간다.
살짝 추운데 이거.
객관적인 기온 자체는 오히려 북부 왕국의 겨울이 여기보다 훨씬 더 추웠지만, 신성으로 만들어낸 인공적인 기후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 몸엔 이쪽이 조금 더 춥게 느껴졌다.
“하아.”
새하얀 입김이 다시 하면 허공으로 퍼져나가고, 나는 눈을 감고 도시 곳곳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신성들 중 가장 가까운 곳이 어디인지 판단했다.
도시 곳곳에서 느껴지는 신성들 대부분은 크게 이동하지 않고 고정된 것이 남제국군과 괴물들의 산발적인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걸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이러한 괴물들의 습격이 보기만 해도 복잡해 보이던 빈민가 구역에서 벌어졌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손해를 입고 나서야 남제국군이 체계적으로 반격을 시작했을 텐데, 시원하게 뻥뻥 뚫리고 잘 정비된 귀족들의 주거 구역에서 괴물들이 습격을 시작한 덕에 예상보다 빠르게 정보가 전달되고 남제국군은 피해를 최소화한 채 반격을 시작할 수 있었다.
솜니아가 대규모 폭발로 빈민가를 통째로 날려버린 결과, 의도치 않게 좋은 결과를 불러온 셈이었다.
그렇다고 그 행동이 옳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지만.
가장 가까운 신성을 향해 뛰어가던 와중, 쌓인 눈을 헤치며 바삐 움직이고 있는 병사 열댓 명을 발견했다. 딱 봐도 지금 내가 가려는 방향으로 가던 이들이라 그들을 불러세웠다.
“이봐!”
뒤에서 들려온 내 외침에 병사들은 급하게 몸을 돌려 무기를 치켜든 채 경계심 가득한 모습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내 뒤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멀리에 보이는 저 커다란 저택에 부상병이 둘 있어. 내가 썰어둔 괴물 시체도 하나 있고. 너희는 그쪽으로 가서 부상병부터 챙기는 게 어때? 그 부상병들 내가 응급처치를 해두긴 했는데 그 상태로 오래 놔두면 안 좋을 게 뻔하거든. 너희가 지원 가던 쪽은 내가 대신 갈 테니까 걱정 말고.”
빼 들고 있던 절망을 어깨에 올리고 고개를 까딱였다. 가장 지위가 높아 보이던 병사는 처음엔 갑자기 나타나서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이내 그의 시선이 내 푸른 검 절망으로 향하더니 무언가 깨달은 듯 병사 몇을 향해 명령했다.
“너희 셋은 저택으로 가서 부상병을 챙겨라. 나머지는 원래 예정지로 간다.”
예상외로 순순히 내 말대로 행동하는 그 모습에 나는 남제국군이 내 예상보다 훨씬 체계적인 지휘계통을 가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미 내가 푸른 검을 들고 다닌다는 정보가 그들에게 전달되어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낯선 이가 하는 말을 귀담아들을 이유가 없을 테니.
명령을 내린 병사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가는 방향이 같다면 우리와 같이 가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너희는 너무 느려서 안 돼. 그럼 먼저 간다.”
무릎까지 쌓인 눈을 박차고 튀어 나가자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들이 얼굴로 잔뜩 몰아쳐 왔다. 그 차가운 감촉을 느끼며 나는 다음 발이 대지에 닿기 무섭게 다시 바닥을 박찼다.
훌쩍훌쩍 뛰어넘으며 나는 최단 거리로 이질적인 신성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오롯이 홀로.
이렇게 혼자 움직일 때면 어머니의 부재가 그 어느 때보다 실감 났다. 예전에는 진정한 의미에서 홀로였던 순간은 단 한순간도 있지 않았기에.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어머니께서 나와 함께 있어 주셨었다.
그렇기에 이 고독이 몰아치는 추위보다 아리게 아팠다.
어머니.
상념을 끊어내고, 눈으로 뒤덮이는 대지를 밟는 발끝으로 신경을 쏟아부었다. 부드러운 눈을 파고들며 그 밑바닥에 숨겨져 있던 단단한 대지를 박차고 몸이 뛰어오른다.
쏟아지는 눈발이 뜬 눈에 닿았다. 그 시야를 가리는 먹먹한 느낌에 마치 새하얀 물속을 헤엄치는 듯했다.
조용히 눈을 감자, 한껏 예민해진 감각으로 비릿한 혈향이 느껴졌다.
저 멀리 보이는 또 다른 저택. 이번에 조금 더 힘을 더 줘서 대지를 박찼다.
1층, 2층, 3층, 4층. 저택의 입구를 훌쩍 넘어 지붕 위로 치솟았다. 허공을 향해 치솟았던 육체가 그 추진력을 다하고, 공중에 멈춰 섰다.
시작은 느리게, 과정은 더욱 빠르게. 새카만 지붕이 내게로 다가온다.
일검. 검집에서 미끄러져 나온 절망이 첫 지붕을 베어낸다. 추락하는 속도 그대로 멈춤 없이 지붕을 뚫고 바닥을 향해 처박힌다.
이검. 닿기 전에 베어낸다. 베어낸 잔해들과 함께 다음 층으로.
삼검. 또 한 번 바닥을 베어낸다. 추락하는 몸뚱이가 속도를 더해간다.
사검. 바닥을 베어내자 훅하고 코로 들어오는 혈향과 지독하리만치 붉은 광경. 내 추락의 끝, 그곳에는 장정 넷을 이어붙인 크기의 괴물이 병사 하나를 뭉개고 있었다.
마지막 오검. 추락하던 속도 그대로 절망을 다시 한번 내리긋는다. 푸른 검날은 하나의 올곧은 선이 되어 두꺼운 가죽을 파고든다.
녀석을 향한 올곧은 살의만을 품고서.
내 살의를 품은 검이 피륙을 부드럽게 베어냈다. 귀를 쩌렁쩌렁 울리는 포효가 고막을 때려대고, 한껏 추락한 몸뚱이가 미처 베어내지 못한 괴물의 몸뚱이와 충돌했다.
단단한 근육 덩어리 그 자체임 몸뚱이와 여기저기 얼기설기 기워둔 자국들. 여태까지 베어온 괴물들과 공통된 특징.
괴물의 상처에서 튀어나온 체액이 튄다. 나는 손목을 비틀어 괴물의 몸을 헤집고 빠져나온 절망을 올려 베었다. 조금 전의 일격과 결합해 괴물의 몸뚱이에서 큼지막한 고깃덩어리가 떨어졌다.
옆구리 쪽을 거의 통째로 도려내자 산채로 잡아먹힌 거로 보이는 신체 조각들이 그 구멍을 통해 쏟아졌다.
기이이이이이익!!!
괴성을 내지른 괴물이 기워 붙여진 주먹을 휘둘러온다. 나와 괴물의 몸은 거의 딱 붙어있는 거나 마찬가지인 거리. 뒤로 물러나 괴물의 공격을 피해내는 대신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며 그 발을 축 삼아 어깨로 괴물을 들이받았다.
기우뚱. 내 힘을 버텨내지 못한 괴물의 몸이 흔들렸다. 조금 벌어지는 간격. 내가 벌어낸 그 간격으로 절망을 다시 한번 욱여넣었다. 푸른 날이 괴물의 옆구리를 파고들고서 반대편으로 빠져나온다.
하지만 괴물의 몸이 원체 두꺼운 탓에 단번에 절단되지 않았다. 절망은 괴물을 한 번에 토막 치기엔 그 길이가 조금 짧았다.
이래서 스승님은 사람이 아닌 것들을 잡을 때, 일부러 대검 한 자루를 더 들고 다니신 건가.
쾅!!!
빗나간 괴물의 주먹이 바닥에 내려꽂히고, 가볍게 자리를 박차고 괴물의 뒤편으로 이동했다. 방금까지 베어냈던 녀석의 몸을 마저 베어내기 위해.
괴물의 텅 빈 등. 절망에 의해 도려진 녀석의 왼쪽 옆구리에선 괴물이 집어삼켰던 신체 조각들이 끊임없이 떨어졌다.
방금 앞을 베어냈으니, 이번에는 뒤. 절망을 다시 한번 휘두른다. 옆구리에서 시작해 녀석의 척추까지 깔끔하게 베어내고 푸른 검이 녀석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쿵.
마침내 반 토막 난 녀석의 상체가 그 무게를 못 이긴 채 바닥으로 떨어졌다. 대지를 버티며 서 있던 괴물의 하반신이 천천히 무너져내렸다.
기이이이이익!!!
최후의 발악을 하듯 버둥대는 상체. 괴물의 몸에 올라타 검을 역수로 바꿔 들고서 머리통을 그대로 내려찍었다.
찍고, 찍고, 또 찍는다. 버둥대던 양팔이 바닥으로 축 늘어지고, 괴물의 머리는 난도질당해 피를 줄줄 흘려대는 고기 반죽에 가까운 모습이 되었다.
딱 미트볼만드는 그런 고깃덩어리로.
이제야 또 하나 잡았네. 이번 건 아까보다 더 질긴데. 그나저나 다들 풍기는 신성이 이질적이기는 해도 기워 붙인 자국이 공통적으로 있는 걸 보면 사도가 여럿 있는 게 아니라 하나가 괴물을 만들어서 뿌리는 거로 봐도 되려나.
옷자락으로 대충 괴물의 피가 튄 얼굴을 닦아내자, 침묵한 채 나를 둘러싼 병사들이 보였다.
당황과 공포, 그리고 경외. 여기까지 오면서 수차례 본 익숙한 눈빛들.
나는 그들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얼굴 뚫어지겠네.”
***
“기히히히히.”
눈까지 내려온 푸석푸석한 머리칼들, 그 틈 사이로 진한 밤색 눈동자가 빛났다. 살짝 굽은 등과 펑퍼짐한 사제복. 음침한 인상의 여인은 자신의 앞에 놓인 거대한 눈동자에 비치는 수많은 점들을 빠르게 관찰하며 무엇이 그리도 재밌는지 연신 기괴한 웃음을 내뱉었다.
그 옆에 걸터앉아 있던 사막의 모래 빛깔 머리색의 여인이 인상을 찡그린 채 말했다.
“그 점들만 보면 뭐가 좀 보이긴 해?”
내려앉아 있던 정적을 깨는 한마디에 음침한 인상의 여인이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그녀는 모래 빛 여인을 빤히 쳐다보다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마치 말을 고르고 고른 끝에 꺼내듯이.
“다, 당연히 안 보이지. 그, 그래서 이거 꽂은 거야.”
음침한 인상의 여인은 거대한 눈에서 뻗어 나온 고깃덩어리 관다발을 발로 툭툭 두드렸다. 그 팔뚝만 한 관들 중 하나는 음침한 인상의 여인의 옆 통수에 푹 꽂혀 있었다.
대답을 끝마친 여인은 다시 거대한 눈동자에게로 시선을 옮겨 혼자 히죽댔다.
“기히히히히.”
모래 빛깔 여인은 그 모습을 쳐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하는 게 뭐 그리 재미있다고 저리 좋아하는지 모르겠네.’
강렬한 생명력. 그 삶의 맥동을 직접 느끼는 것이야말로 상대에 대한 존중이자 더없는 쾌락일진대.
저런 빛나는 점들을 주저앉아서 쳐다만 보는 건 저 점들 너머에 있을 진짜 생명들에 대한 경의가 결여된 행동이었다.
‘구원’의 사도 녀석이 부탁해서 지켜보고 있긴 했지만, 슬슬 앉아서 구경만 하고 있자니 몸이 근질근질했다.
“기히히히… 스, 슬슬 다, 다음 녀석들을 풀어서 붙여볼까? 어, 얼마나 상대해낼 수 있을 지 서, 설레는 걸.”
“나 잠깐만 나갔다 올게.”
“어, 어? 아, 아까 구원이 우, 우리 보고 나, 나가지 말랬는데… 그, 그리고 네가 주, 죽으면 이 은신처가 드, 드러나잖아…”
띄엄띄엄 내뱉는 정론에 모래 빛 여인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쓸데없이 맞는 말만 해서.
“난 안 죽어. 그리고 잠깐만 다녀올 거야. 딱 몇 명만 상대하고 돌아올게.”
“그, 그럼… 여기로는 가지 마…”
음침한 인상의 밤색 머리칼 여인은 거대한 눈동자 위 어느 한 곳을 손가락을 집었다. 거대한 눈 위로 떠 올랐던 밝은 빛의 점들이 그녀가 가리킨 부분을 중심으로 빠르게 사그라들고 있었다.
“이, 이쪽은 조금 많이 위험해…”
무척 어리숙해 보이는 말투지만, 그 말투 뒤에 숨어 있는 굳센 고집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모래빛 머리칼의 여인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알았어. 그쪽은 안 갈게. 그럼 됐지?”
“응. 아, 그리고 하, 하나만 더.”
“또 뭐?”
정리가 안 된 부스스한 밤색 머리칼들 사이로 어두운 밤색 눈동자가 은은히 빛났다. 강렬한 열망을 품고서.
음침한 인상의 여인은 무척이나 조심스럽고 정중하게 물었다.
“마, 만약에 진짜 만약에 네, 네가 죽으면 그 시, 시체는 내가 가져도 돼?”
지극히 무례한 질문이었지만, 이미 수차례 들어본 질문이라 무척 익숙했다. 매번 어디 갈 때마다 물어보는 통에 이제는 그저 귀찮음만이 느껴질 뿐.
“어, 가져. 다 가져.”
“지, 진짜?!”
“어. 그럼 나 간다. 급한 일 생기면 부르고. 구원 녀석이 나 어디 갔냐고 물으면 화장실 갔다고 해줘. 알겠지? 응?”
“응!”
대충 대답한 모래 빛 여인은 바닥에 내려뒀던 방패를 등에 메고, 검 한자루를 챙겨 들고서 방을 떠나갔다.
그렇게 홀로 남자 음침한 여인의 반짝이던 두 눈이 고요히 가라앉았다. 그녀는 방 주변을 둘러보며 홀로 중얼거렸다.
“쟤, 쟤는 사람 죽이는 거 너무 좋아해서 문제야.”
천천히 움직이던 그녀의 시선은 방 한구석에 수북이 쌓여있는 머리들에서 멈췄다. 하나 같이 절규하는 표정으로 굳어있는 머리들을.
가만히 쌓인 머리들을 쳐다보다 여인이 히죽 웃었다.
“그, 그래서 나랑 자, 잘 맞긴 하지만!”
이내 머리 더미에서 시선을 뗀 여인은 다시 거대한 눈동자 위의 빛나는 점들을 쳐다보며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이, 이번엔 진짜 죽어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