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internation Students makes good money RAW novel - Chapter 22
22화 사람이 아닌 상황을 믿어야지
“자자. 현식아. 많이 먹어. 형이 쏜다.”
근처 로컬 음식점에 들린 한정수와 나는 자리에 앉아 밤을 새워가며 강당을 정리한 피로를 음식으로 풀고 있었다.
“형도 수고하셨어요.”
“워~ 네가 뭘 아는구나? 원래 회장이라는 게 좋기도 하지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지.”
한정수는 성공리에 마친 Korean’s Night 덕분인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어차피 그와 척을 져서 좋을 건 없으니까 기분 좋을 때 물어보기로 했다.
“형. 근데 아는 형이 후원한 돈이 만 불이잖아요?”
“그치. 야야. 덕분에 얼마나 편했는지 몰라.”
“근데··· 다른 애들은 점심값도 지원 못 받고 연습했다고 불평을 좀 하더라고요?”
넌지시 물었다.
그의 자존심을 긁거나 구석으로 몰아넣으면 혹시나 급발진이라도 하지 않을까 싶어서.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도 문다고 했으니까.
“어? 아~ 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Korean’s Night에 드는 돈이 꽤 많아. 강당 빌리는 비용도 있고. 세팅하고 하는 거만 몇천 불은 그냥 깨진다니까?”
“아~ 그래요?”
한정수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내가 그저 신입생이기 때문에 한인 학생회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모른다는 전제하에 하는 말이겠지.
하지만 그는 모르고 있었다.
나도 회귀 전에 한인 학생회 임원이었고 어떻게 운영되는지 훤히 알고 있다는 사실을.
“그렇다니까? 진짜 네가 아는 형이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진짜.”
“으응~ 근데··· 미나 말로는 다 해봤자 5천 불 정도 들었다던데요?”
순간 분주하게 움직이던 포크가 우뚝- 하고 멈췄다.
한정수는 약간 뜨끔한 건지, 아니면 머리를 굴리고 있는지 한참을 고장 난 기계처럼 멈춰 있었다.
“어··· 현식아.”
“예, 형.”
“있잖아. 세상을 살다 보면··· 낄 곳이 있고 안 낄 곳이 있는 법이거든?”
한정수는 포크를 내려놓고 깍지를 끼고 근엄한 표정으로 마치 나를 훈계하듯 말하기 시작했다.
“물론 형이 널 아끼는 건 사실이야. 그래. 그래서 네가 조금··· 은 기고만장했을지도 모르지.”
자기소개하는 건가?
내가 한정수를 아끼는 건 아니지만 기고만장은 본인이 한 거 같은데.
“근데 말이야. 사람은 눈치가 있어야 해.”
그 말을 하는 본인이 가장 눈치가 없는 사람이지 않은가.
회귀 전 한정수는 모르고 있겠지만, 그가 저지른 비리 때문에 회계를 맡은 애들이 생고생했었다.
한인 학생회 회장을 내려놓고 졸업반으로 한창 바쁠 때, 보통 학생회 회장을 위한 졸업 축하 파티를 열곤 했었는데 유독 한정수를 위한 파티는 없었다.
왜냐하면 학생회장으로 있는 동안 워낙 멍청하게 관리한 탓에 여기저기서 새는 돈이 너무 많았으니까.
그걸 수습하느라 후임들이 개고생했었지.
그게 한인 학생회 전체에 소문이 나면서 한정수의 이미지가 나락 가버렸고, 도저히 회복 불가 상태였던 터라 그 누구도 한정수의 졸업을 축하해주자고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도 자기가 잘못한 건 알아채지 못하고 한인 학생회로 찾아와서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며 깽판 쳤었다.
그걸 참다못한 김정연이 팩폭을 날려대며 내쫓았었고.
“현식아. 형이 널 아껴. 그래서 이렇게 진지하게 조언해주는 거야. 알지?”
“예. 형. 알고 있죠.”
“그래. 네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어른들의 세계는 좀··· 뭐랄까? 복잡하단 말이야?”
“아~ 그렇군요.”
“그래. 이제 뭔지 대충 알겠지? 우리 현식이가 그래도 아예 눈치가 없지는 않네.”
이 선도 넘고 눈치도 없는 개새끼를 어떡한다?
그냥 적당히 친해져서 뽕 뽑을 때까지 부려 먹으려고 했던 건데.
역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했던가.
그래.
내가 잘못 생각했네, 잘못 생각했어.
“음. 잠시만요, 형. 아는 형한테 연락이 온 거 같아서.”
“오, 그래그래. 어디시래? 곧 오신대?”
폰을 만지는 척하며 대충 시간을 끌었다.
그리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형, 나갈까요? 형이 근처라서 그쪽으로 오라는데요?”
“아이~ 물론이지. 그 형님 꼭 뵙고 싶다니까. 가자, 가.”
그렇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차를 타고 있지도 않은 형을 보러 간다는 생각에 신이 난 모양이었다.
이런 게 참 편한 점이긴 하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전형적인 소인배다운 성격이.
그래서 오히려 더 교육하기 편하니까.
적당히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우니 한정수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어딜 봐도 누가 있을 것 같은 곳은 아니었으니까.
“여기야? 그 형님 분은 어디에···?”
“···.”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주차된 차도 없었고.
인적도 없었으니 의아하겠지.
그 익명의 후원자가 바로 옆에 있는 것도 모르고.
나는 마지막으로 자비를 베푸는 마음으로 한정수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기로 했다.
어쨌든 이번 일은 좋게 좋게 넘어가면 좋으니까.
아직은 한인 학생회의 입지가 좁은 나로서는 한정수가 필요했다.
“형.”
“어? 왜 그래?”
“미나가 회계 기록을 굉장히 꼼꼼하게 작성하거든요. 그래서 얼마를 썼고 얼마나 나갔는지 페니 단위로 적어요, 걔는.”
“야. 너 또 그 얘기···.”
“쉿. 내 말 안 끝났어요. 근데 넉넉하게 잡아도 6천 불 정도를 썼더라고요. 이번 행사에서.”
“야. 그건 그냥 오차가 생길 수도 있고···.”
한정수는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 생각인 듯했다.
“형. 4천 불이 비어요. 왜 그럴까요?”
“야. 차현식! 너 진짜. 선 넘지 마. 이 새끼가 진짜.”
“선은 형이 넘으셨잖아요. 적당히 삥땅 치면 눈감으려고 했죠. 그 정도는 수고비 정도로 생각할 테니까.”
“뭐? 너··· 너 진짜.”
한정수를 만나기 전에 이미 홍미나에게 회계장부 복사본을 받아냈다.
그녀 또한 한정수가 받은 돈에 비해 유난히 적은 금액이 사용된 것이 의아했고, 내가 주변 애들이 점심도 못 먹고 연습했다는 푸념을 늘어놓았다고 하니 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치밀하지 못한 놈이 돈을 빼돌리려니 여기저기서 증거들이 줄줄 새지.
“미나가 회계장부 복사본을 이미 넘겼어요. 4천 불이나 빼돌린 거면. 형 이거 Student Affairs에 고발할 수 있는 거 알아요?”
*Student Affairs: 학생처 혹은 학생 지원 부서
Student Affairs는 학생에 관한 전반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다.
이곳에 한인 학생회 회장이 돈을 빼돌렸다는 증거를 제출하면 대학교 측에서도 좌시하지 못할 거다.
“야! 야야. 차현식. 너. 그래. 형이 다 말할게. 말할 테니까 일단 진정해 봐.”
“네. 말씀하세요, 형.”
“에이씨. 너희들··· 걱정할까 봐 내가 그냥 말 안 하고 있었는데. 너도 그 아는 형 체면도 있으니까.”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한정수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부담스러운 진한 쌍꺼풀 눈을 들이밀며 말을 시작했다.
억울한 누명을 쓴 죄인이 본인은 죄가 없다고 하소연하듯이.
“그 형이라는 분이 보낸 돈이 만 불이 아니야. 고작 6천 불 보냈더라.”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러니까. 내가 네 형 체면 때문에 그냥 모른 척하고 넘기려고 했었거든. 네 위신도 세워줄 겸. 이해하지. 어쨌든 큰돈이니까. 보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잖냐?”
“···.”
지랄옘병을 한다.
누가 보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받을 연기라고 하겠네.
궁지에 몰려서 사고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건지, 아니면 그냥 멍청한 건지.
“하아··· 네가 그리 꼬치꼬치 캐물으니까 형도 어쩔 수 없이 얘기하는 거야. 그래서 돈이 빠듯했어. 이제 알겠어? 형도 어쩔 수 없었다고.”
“이제 진짜 알겠네. 딱 알겠어.”
“그렇지? 형이···.”
“개새끼네. 진짜.”
“에이~ 야. 그래도 나름 큰돈 준 형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 너도 괜히 그 형한테 뭐라 하지 말고. 큰일 난다. 알겠지? 그 정도 돈도 엄청 큰 거야. 주기로 한 돈보다 적게 준다고 뭐라 하면 배은망덕한 거다. 알겠지?”
나도 처음엔 신사적으로 해결할까 했다.
그냥 적당히 타일러서 돈 뱉어낼 수 있게 하려고.
문명인끼리 협박이니 겁박은 좀 원시적이지 않은가.
그런데 그것도 대화가 통하는 문명인끼리의 얘기지.
이 개새끼는 대화가 도통 통하지 않는 녀석이었다.
“형, 잠시만요.”
나는 폰을 켜 은행 앱에 접속했다.
그리고 보낸 내역을 확인한 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정수에게 폰을 건넸다.
“이게··· 뭐야?”
“봐요.”
한정수는 한참 폰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머릿속이 복잡하겠지.
분명 자기 계좌번호가 찍혀 있고 10,000달러를 보냈다는 내용이 떡 하니 찍혀 있었으니까.
“형.”
“어··· 어? 어.”
“제가 그 익명의 후원자예요.”
문득 엄동식이 내 모든 돈을 빼돌린 정황을 찾아내 녀석에게 따지던 그때가 생각났다.
녀석은 글렀다는 걸 깨달은 뒤에는 돌변하여 적반하장으로 나왔었지.
그래서 궁금했다.
한정수는 과연 어떻게 나올까?
“혀, 현식아! 그, 그래. 내가 너 포르쉐 탈 때부터 알아봤어야 해. 그래. 혀, 형이··· 현식아. 혀, 형이···.”
얼마나 당황했으면 말까지 더듬을까.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지만 한꺼번에 여러 말이 비좁은 입에서 튀어나오려다 보니 서로 엎치락뒤치락하겠지.
“미, 미안하다. 진짜. 혀, 형이 진짜 모르고. 모르고 그랬어.”
회귀 전에 엄동식은 막장으로 나왔었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그럴 수 있었던 게 내가 아무런 대비를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다른 점이라면 내가 한정수를 엿 먹일 수 있는 모든 대비를 해놨다는 것.
그 차이가 아마도 엄동식과 한정수의 태도를 다르게 하지 않았나 싶었다.
아마 오늘처럼 엄동식이 꼼짝도 못 할 증거와 대비를 해놨다면, 녀석이 과연 적반하장으로 나왔을까?
“형. 제가 원하면··· Student Affairs에 고발해서 징계를 먹일 수도 있고요. International Office에 연락해서 형 I-20 취소시킬 수도 있어요.”
*I-20 : 대학교에서 발급하는 학생 비자.
“혀, 현식아? 그··· 있잖아. 형이··· 뭘 하면 될까? 형이 아직 그 돈··· 그대로 가지고 있거든? 혀, 형이 개인적으로 쓸려고 한 건 아니고. 다~ 한인 학생회를 위해서 그런 거야. 어? 우리 여름 방학 때 여행도 가야 하잖아. 그때 보태 쓸려고 했지.”
한정수는 침을 튀겨가며 핑계를 대기 시작했다.
이놈을 그냥 내쫓을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모자란 놈이라고 하더라도 한인 학생회 회장이 갑자기 부재하게 되면 학생회는 휘청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내가 도맡기에는 신입생 신분이라 어렵고.
“그랬던 거예요?”
“어! 진짜! 형 좀 믿어줘. 진짜야.”
“형··· 근데. 제가 의심병이 있어서요.”
“그래. 현식아. 내가··· 진짜 네가 시키는 대로 다 할게. 뭐든지! 혀, 형은! 개야. 짖으라면 짖을게. 월월!”
한정수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강자라는 걸 인식시키면 고개를 숙이리라 생각했다.
내가 강자로 있는 한, 한정수는 절대로 나를 배신하는 일이 없을 테니까.
사람은 누구나 배신할 수 있다는 걸 엄동식을 통해 배웠다.
그리고 그 배신을 막을 수 있는 방법 또한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만약 내가 내 돈을 스스로 관리하고 매번 엄동식의 사업 활동을 감시하고 확인했다면, 녀석이 그리 안일하게 내 돈을 빼돌리려는 생각조차 못 했겠지.
이 세상에 무조건적인 믿음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사람이 아니라 상황을 믿기로 했다.
어쩔 수 없이 복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져 있는 이상.
한정수는 절대로 나를 배신하지 못할 거다.
해도 상관없다.
그러면 수십 배는 더 세게 복수할 만반의 준비를 해놓을 테니까.
“에이~ 형. 뭘 그런 걸로 그렇게까지 해요. 전 형이랑 친해지고 싶은데요?”
“그, 그래? 이야. 역시 현식이가 진짜 배포가 남달라. 진짜.”
“그리고··· 앞으로 한인 학생회 예산은 걱정하지 마요.”
“어? 왜, 왜?”
“제가 계속 후원할 거니까요. 여름 방학 때도 근사한 곳으로 여행도 가야죠.”
“지, 진짜?”
그래, 내가 이렇게 돈을 쥐고 한정수를 흔들고 있는 한.
그리고 이번에 잡은 약점을 쥐고 협박하고 있는 한은 절대로 나를 배신하지 못할 거다.
하면 한정수만 손해니까.
골수부터 시작해서 뼈로 사골을 우려낼 때까지 부려 먹을 테다.
한정수.
그리고 여기에는 없지만 나를 배신한 엄동식 너도.
그러니까 우리···
“예전처럼 친하게 지내요,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