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internation Students makes good money RAW novel - Chapter 54
54화 그 아버지에 그 아들
“말하는 본새 하고는.”
“···.”
남을 무시하고 자기 하고 싶은 말은 거침없이 내뱉는 것이 내가 기억하는 엄동식의 아버지 엄태홍이 맞았다.
회귀했다고 그 사람이 개과천선하는 건 아니니까.
“동식아. 이 아한테 3만 불 빚졌다고?”
“네···.”
“그까이꺼 3만 불. 내가 당장 내줄 테니까 계좌불러라.”
“정수 형. 계좌 좀 불러드려요.”
“근데 있다 아이가. 니도 우리 동식이 시켜서 차 관리시키고 했다매?”
“네?”
“그라니까 니도 잘못이 있다는 기다.”
“제가요? 동식이한테 차 빌려준 제가 오히려 잘못이 있다고요?”
얼척이 없었다.
나는 왜 지난 생에서는 동식이와 그의 아버지가 이렇게 허무맹랑한 사람인지 모르고 있었을까.
그저 조금 특이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때는 콩깍지를 넘어 아예 봉사 수준이었나 보다.
“그라니까 만 오천 불로 퉁 치자. 으이? 니 만 오천 불. 내 만 오천 불. 됐나?”
“되다니요?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세요?”
“하이고 마. 니 진짜 이래 나올끼가?”
“네?”
“니 내 눈지 아나?”
누군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한인 교회 장로이자 한인 타운 상인연합 반장 엄태홍 아닌가.
얼마나 주변 사람들한테 생색을 내고 다녔는지 지긋지긋하게 들어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한인 교회 장로이자 여 한인 타운 대빵이다. 아나?”
“그래서요?”
“니 댈러스에서 살꺼 아이가? 니 여서 살려면 내랑 척지고는 몬 산다.”
“그렇구나~”
“인자 말이 쫌 통하네. 니 또 사업 같은 거 찔끔 한다매? 그라믄 내한테 이라면 안 되지. 만 오천 불로 퉁 치자. 알긋나? 쪼잔하게 굴지 말고. 사내 대장부가 되가꼬.”
“감당할 수 있으시겠어요?”
“감당? 하! 니 진짜 재밌네. 내 한인 타운 상인연합 반장 엄태홍이다. 아나?”
“그러니까 반장인지 쌈장인지 엄태홍 씨.”
“와~ 이 새끼 봐라. 야, 엄동식이. 니 인제 임마랑 놀지 마라. 알긋나? 예의를 밥 말아 처묵었네. 아새끼가.”
엄태홍이 예의를 운운하니 어이가 없었다.
본인이 먼저 난생처음 보는 사람에게 반말 찍찍- 해대면서 수리비 3만 불을 반으로 후려친 거 아닌가.
무슨 타노스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후려칠 걸 후려쳐야지.
“예의는 당신이 먼저 차렸어야죠. 난데없이 반말 싸면서 지랄한 게 누군데.”
“하! 말세다. 말세야! 내 아니꼽고 치사바서 돈 준다. 어이? 근데 니는 앞으로 한인 타운에 발도 들일 생각일랑 말그라이.”
“일단 돈부터 주시죠.”
“준다 안카나? 계좌나 불러라.”
“정수 형. 계좌 번호 좀 불러주세요.”
“어, 어어. 그래.”
엄태홍은 한정수에게 계좌 번호를 받아 갔다.
한바탕 큰 소리가 오고 간 탓에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우리를 주목하고 있었다.
역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란 말이 딱 맞는다.
아들이 누구에게서 배우겠는가.
아버지한테서 배운다.
이래서 잡초는 뿌리째 뽑아야 하는 거다.
*
한인 타운에 위치한 엄 씨네 분식.
엄태홍은 아직 영업시간이 되지 않은 가게 문을 걸어 잠그고는 엄동식을 테이블에 앉혔다.
평소 엄하기로 소문난 아버지라 그런지 엄동식은 눈치를 살피며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있었다.
“니 엄동식이.”
“예··· 아버지.”
“사내대장부가 되가꼬 이딴 일로 기 죽어가 되겠나?”
“예?”
“임마. 싸나이가 살다 보면 차 사고도 나고~ 어이? 다 그라는 기다.”
“아. 예··· 죄송합니다.”
“죄송은 얼어 죽을. 이 아빠가 그딴 푼돈 엄겠나?”
엄태홍은 자리에 앉아서 소주를 한 병 병째로 들이켰다.
“크으~ 이봐라. 동식아.”
“예, 아버지.”
“가슴 펴고 댕기라. 니 그렇게 살라꼬 대학 보낸 거 아이다.”
“죄송합니다···.”
“그만 죄송하라카이!”
테이블을 내리치며 엄포를 놓자 엄동식은 화들짝 놀라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금방이라도 손이 날아올 것만 같은 상황에 엄동식은 잔뜩 움츠러들었다.
“어깨 피라 이노마야.”
“히끅! 네, 넵.”
“그딴 돈. 내가 다 갚을 끼다. 그카고··· 니 이래 비실비실 댕길끼가? 내가 말했제? 돈만 많다고 되는기 아니다. 권력이 있어야 하는 기다. 권력이. 으이? 무서운 거 없는 대기업 회장들도 벌벌 떨게 만드는 게 니 뭔지 아나? 정치인이다. 알긋나?”
“네···.”
“내가 누꼬?”
“힘 있는 아버지··· 요.”
“그래~ 동식이 이놈아. 아빠는 반장도 하고! 장로도 하면서! 힘이 있으이까네 이래 떵떵거리고 사는 기라. 힘이 있어야 하는 기다. 돈이 있어야 하는 기 아니라. 그 현식인지 면식인지 카는 놈이 돈 쪼매 있다꼬 까불고 다니제? 그까이꺼 권력으로 찍어 눌르면 된다.”
“근데··· 한인 학생회에서는··· 좀···.”
“니가 한인 유학생이가? 그 반쪽짜리 아새끼들 있는 곳에 가서 뭐 하게?”
“예?”
“니는 글마들이랑 종 자체가 다른 기라. 니는 코리안 아메리칸이다. 알긋나? 갸들이랑은 차원이 다르다꼬.”
엄태홍의 말에 엄동식은 조금은 용기를 얻었는지 고개를 들었다.
“아.”
“인제 알긋나?”
“예···.”
“그딴 쪼매난 학생회에서 회장해서 뭐 할라꼬?”
“코리안 아메리칸.”
“그래. 니는 태생부터 글마들이랑 다르다카이. 니는 쪼매난 한국 사람이 아이라 미쿡 사람인기다. 이 아빠가 니를 그래 낳았다카이.”
“예, 아버지.”
“그카고. 돈 없어서 빌빌거리지 말고! 니 엄태홍이 아들이다.”
“네.”
“아빠가 니 대학 졸업하면 사업 자금하라꼬 모다 놓은 돈이 쫌 있다. 한 20만 불.”
“허업.”
엄동식은 20만 불이라는 금액에 깜짝 놀랐다.
적지 않은 돈이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제 갓 대학교에 들어간 사람에게는 더더욱.
“뭐 한 50만 불 정도까지 뿔려가 줄라꼬 켔는데 지금 가갈래? 니도 사업 한 번 므찌게 해볼래? 아빠처럼?”
“예, 아버지. 제가 진짜. 진짜 열심히 한 번 굴려보겠습니다.”
“그래. 그라믄 내가 준비할 테니까 니도 그 돈을 밑천 삼아가 한 번 날개 펴봐라.”
“아버지 감사합니다! 진짜 감사합니다!”
“오야. 니 인자 가봐라. 오늘 갑자기 건물주한테 연락이 와가꼬 건물보러 온다꼬 켔으니까. 아빠는 인제 바쁘다. 이번에 건물주가 바낐는데 그 때문이지 싶다.”
“예. 아빠··· 아니. 아버지. 아들 진짜 열심히 해볼게요. 진짜요.”
“그래. 대학은 타이틀만 있으면 되는 기다. 알겠나? 최소한만 하고. 니도 니 꿈을 펼치 봐라.”
“예!”
엄동식은 기쁜 소식을 듣고는 뛸 듯이 기뻤다.
돈이 없어서 궁하게 살았던 삶은 이제 모두 청산할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먼저 집 드가라.”
“예에!”
엄동식이 떠나고.
얼마 있지 않아 정장을 차려입은 사내 하나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예에~ 엄 씨네 분식입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누구신지···?”
“이번에 건물주가 바뀌었다고 말씀드렸죠?”
“아~ 그 변호사 양반?”
“네. 최기명 변호사라고 합니다. 이번 건물 매입으로 건물주가 되신 분 전속 변호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아~ 그 건물주께서는 오늘 안 오시고요?”
“뭐 워낙 바쁘신 분이라서.”
“그래요, 뭐. 근데 무슨 일로?”
“건물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여기 사업장이 규격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요. 신고라도 당하면 벌금 물을 수도 있다고 하니 당장 가서 확인을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엄태홍은 뜨끔했다.
이전 건물주와는 완만하게 해결했던 일을 새로운 건물주가 트집을 잡은 것이다.
미국에서 사업장을 내려면 규정된 규격이 있고 그 규격에 어긋나면 벌금뿐만 아니라 사업자등록이 취소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에이~ 무신 말씀을. 여기 규격 다~ 제가 알아서 맞찼습니다.”
“그러니까요. 제가 더블 체크하는 차원에서 마지막으로 한번 보겠습니다. 규정은 밖에서 기다리는 전문가께서 측정해 주실 겁니다. 영업시간에 맞게 마무리하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죠.”
“어어~ 여 변호사 양반. 우리 가게 제일 잘 나가는 1번 세트 하나 드셔보실라우?”
“1번··· 세트요?”
“그··· 뭐라카노. 떡튀순 세트인데~ 사이드로 쪼매~ 맛난 게 나오는데. 일단 밥부터 자시고 시작하자고요.”
*
“이게 뭡니까?”
최기명 변호사는 자기 앞에 놓인 흰 봉투를 보며 의아했다.
분명 1번 세트를 시켰는데 떡튀순은 안 나오고 웬 의심스러운 봉투가 나오지 않는가.
“그기 우리 가게서 젤로 맛있는 깁니다.”
“흐음.”
찰칵-
최기명 변호사는 최소한의 동작으로 흰 봉투에 든 돈이 보이게끔 각도를 조절해 촬영했다.
예쁜 얼짱 각도로 찍힌 뇌물 봉투 사진을 고이 저장한 최기명 변호사는 혹시라도 모를 불상사를 대비해 바로 메일로 전송했다.
“지, 지금 뭐합니까?”
“뭐 하긴요. 증거 수집이죠.”
“에헤이~ 이 양반이. 그냥 작은 성읩니다. 큰돈도 아닌데···.”
“어제까지만 해도 건물주께서 대충 형식적으로만 하라고 했는데요.”
“근데요?”
“갑자기 심기가 굉장히 불편하신 듯 보였습니다. 그러시더니 규격 검사 철저하게 해서 다 뜯어고치라고 하더군요.”
“아니~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격 아입니꺼?”
“모르죠. 한강에서 뺨을 맞으셨을지도요.”
“무슨 건물주랑 만난 적도 없는데 무슨···.”
“그러게. 맘을 좀 곱게 쓰셨어야죠.”
“예? 그기··· 무슨···?”
“라고 건물주께서 전달해 드리랍니다.”
그 말을 끝으로 최기명 변호사는 흰 봉투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건물 규격 검사를 전문가와 함께 시작했다.
화장실 공사부터 시작해서 주방 규격까지 전부 불합격.
최소 한 달은 쉬면서 건물 리모델링을 대대적으로 들어가야 할 판이었다.
조금이라도 싼 가격에 해보겠다고 사업장을 낼 때부터 대충 만든 탓이었다.
그걸 엄태홍도 분명 알고 있었으나, 잘 되는 가게가 리모델링 때문에 흐름이 끊어지기라도 하면 매출에 지대한 영향이 있을 게 뻔했기 때문에 전 건물주와는 이런 식으로 완만히 해결해 왔었다.
이번에도 그렇게 완만히 해결되리라 생각했으나, 이번 건물주는 만만한 사람이 아닌 듯했다.
최기명 변호사라는 꽤 젊은 나이의 변호사는 돈에 꿈쩍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정이니 예의니 하는 걸 원천 봉쇄하고 있었다.
“아니··· 다 알겠는데··· 요 주방만 좀 봐주이소.”
“거기가 제일 심한데요?”
“여까지 갈아엎으면 우리 가게 망합니다.”
“얼마나 다행입니까? 이런 불법 사업장을 보고도 건물주께서 내쫓지 않은 게.”
“하아··· 이 양반은 진짜 말이 안 통하네.”
“제가 좀. 불통의 아이콘이라서요.”
엄태홍의 끈질긴 부탁에도 최기명 변호사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으르렁대며 위협적으로 나오는 엄태홍을 오히려 똑바로 바라보며 지적여 보이는 안경을 고쳐 올릴 뿐이었다.
난데없이 큰돈이 들어가야 할 일이 생겨버린 엄태홍은 속이 쓰렸다.
안 그래도 아들한테 20만 불 준다고 큰소리 떵떵 쳤는데.
또 그렇다고 안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오가 머리를 지배하는 가족력을 가진 사람이었으니까.
빚을 지더라도 아버지로서의 가오는 지켜야 하는 그런 사람.
그게 엄태홍이었다.
“그럼. 기한 내에 리모델링 잘 부탁드립니다.”
“··· 으이구. 내 속이야.”
“이거 벌금 다 때리면 장사 접으셔야 합니다. 아시잖아요?”
“됐거등요! 볼 일 다 봤으면 가이소.”
“오히려 절약했다 생각하십시오. 아니, 오히려 돈을 버셨네요. 수십억 손해 볼 걸 몇만 불로 퉁 칠 수 있었으니까요. 건물주께 차액의 절반이라도 입금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 지랄하지 말고 볼일 다 보셨으면 가시라고!”
버럭- 화를 내는 엄태홍을 뒤로 하고 최기명 변호사는 유유히 사라졌다.
그리고 홀로 남은 엄태홍은 앞으로 리모델링으로 장사도 못하고 엄한 돈까지 나가야 할 생각을 하니 머리가 다 지끈지끈했다.
“도대체 어떤 우라질 새끼가 건물준 거야? 으이. 내가 보면 가만 안 둔다. 진짜. 아오!”
*
“현식아. 들었냐?”
“뭘요?”
한정수는 조심스럽게 나에게 다가와 귓속말하기 시작했다.
“요즘 동식이 말이야. 돈도 다 갚고. 완전 기고만장해서 돈을 뿌리고 다닌다던데?”
“아. 그래요?”
“그렇다니까. 애들 말로는 지가 돈이 좀 많아서 사업을 할거라나 뭐라나.”
드디어 그때가 된 듯했다.
시기가 맞진 않지만 딱 이런 상황에서 동식이는 아빠 찬스로 사업 자금을 지원받았었지.
그러고 보니 추억 돋네.
나와 동식이가 K-푸드 식당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때는 바야흐로 언제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종종 한인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곤 했다.
대부분 한인 식당 그랬듯이 이 근처에도 한국인이 그리워하는 한식을 만족스럽게 먹을 수 있을 만한 충분한 수준의 음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심하면 편의점에서 파는 음식보다 못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맛없는 한식을 팔아서 굉장히 화가 많이 났었는데, 어떤 음식점에는 매운 라멘을 판다면서 맹맹하고 짜기만 한 국물에 생 고추장을 풀어준 곳도 있었다.
조리되어 있지 않은 고추장은 풋내가 심해서 요리에 그대로 넣으면 풋내가 나서 음식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기초적인 지식도 모르는 사람이 아시아 음식을 대표한다면서 식당을 차리는 걸 보고 있자니 속이 상했었다.
그래서 동식이는 자기가 아버지 잘 꼬드기면 사업 자금 모을 수 있을 거 같으니 나랑 같이 사업하자고 먼저 제안했다.
그렇게 시작한 사업이 프랜차이즈로 발전하고 미 전역에 가맹점을 낼 정도로 성공했었지.
아마도 지금 그 자금을 동식이는 아버지에게 받은 것이다.
어떻게 확신하냐면, 전생에서도 딱 동식이가 돈을 받았을 때 저런 패턴으로 행동했었으니까.
“그리고 또 애들 말로는 요즘 편 가르기 한다더라. 지는 아시안 아메리칸이라면서. 시민권 있는 애들 한 명씩 꼬드기고 있다던데. 얼마 전에는 김정연한테도 갔단다.”
“당연히 정연 누나는 대차게 깠겠죠.”
“잘 아네. 아무튼 그러고 있다네.”
“동식이를 좀 만나야겠어요.”
“왜? 교육이 필요하면 내가 직접···.”
“아니요. 형은 이렇게 정보만 알아 오는 거로도 충분해요.”
“그, 그래? 하하. 내가 좀 유능한가?”
“노예로는 만점이죠.”
“충성충성.”
그래, 동식이를 만날 생각이다.
그리고 갑자기 큰돈이 생긴 동식이에게 인생의 선배로서 어떻게 돈을 관리하는지 좋은 교훈을 줄 생각이기도 하다.
“형. 그럼 저는 동식이 만나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