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sword demon changed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214
214. 대인으로 남아주시오
콰과과과과광!
“후우….”
잠력을 터뜨려 날린 정금호의 거대한 강기를 받아친 장백서는 뜻밖의 순간 찾아온 깨달음에 눈을 감았다.
서씨백화수에서 시작해서 단야개벽수로.
거기에 조원의 묘리가 더해져 피어난 새로운 경지.
긴 시간 치우침을 가지고 있던 무리 속 정동[精動]의 균형이 완전히 맞춰지는 순간이었다.
‘백씨 남매를 만난 것이 이런 기연으로 돌아올 줄이야….’
그렇게 깨달음의 환희를 즐기던 장백서가 돌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때.
“…왜 공격을 빗맞힌 것인가?”
정금호가 초췌한 얼굴로 장백서에게 말을 걸었다.
그의 말대로 장백서가 되박아친 강기는 그의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지나 사람이 없는 전각의 지붕을 분쇄하고 하늘로 날아갔다.
만약 그 공격을 정금호를 향해 날렸다면 대부분의 공력을 소진한 그는 저항조차 못하고 황천길을 건넜을 터였다.
그리고 그런 정금호의 물음에 장백서는…
“그러는 정 대인은 어째서 서 부인을 인질로 잡지 않았습니까?”
“!!”
‘전부 꿰뚫어 보고 있었군….’
한순간의 부끄러운 생각을 들켰다는 생각에 정금호는 고개를 숙였다.
“질문에는 질문으로 답하지 말라, 부모님께 배우지 않았나? 기본적인 예의일세….”
“공교롭게도 양친 모두 없는 몸이라 배우지 못했습니다.”
장백서의 당돌한 대답에 정금호는 어리둥절한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하하하하하하하 그런가? 내가 못할 소리를 했구려.”
‘이게 웃기냐?’
너털 웃음을 터뜨리는 정금호를 보며 장백서는 검미를 찌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왜 하필 오늘, 그리고 저 아이까지 데리고 나에게 사과를 받으러 온 것인가? 자네에게도 사람의 마음이 있다면 최소한 나에게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 정도는 줄 수 있었을 것 아닌가?”
정말 궁금하다는 듯 물어보는 정금호를 보고 장백서는 이번에도 질문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러는 정 대인은 어찌 소가주가 서 부인의 정혼자를 죽이고 그녀의 아비가 목을 매는 걸 그냥 보고만 계셨던 겁니까?”
“!!!”
그 물음에 정금호는 흠칫 몸을 떨더니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변명하듯이 말했다.
“나는 금룡장의 장주일세, 그리고 그 바보 같은 녀석의 아비였고… 자리가 자리인 만큼 한 번 뱉은 말을 쉬이 무를 수 없는 법이야…그 랬다가는 가주의 격이 떨어지고 그 말의 무게가 가벼워질 터이니….”
“그 가주의 격이니 말의 무게니 하는 게 두 사람의 생명의 무게와 한 여인의 행복한 미래보다도 더 중한 것입니까?”
“…….”
홀린 듯 변명을 늘어놓던 정금호였지만 장백서의 그 한 마디에 그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후우-
그런 정금호의 모습을 보며 장백서는 한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 일에 연관된 사람 중 이 모든 비극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게 누구일 것 같습니까?”
“…….”
“바로 당신입니다, 금룡장의 장주 정금호 당신 말입니다.”
“……”
“체면이니 가주의 격이니 말의 무게니 미사여구 따지지 말고 당신이 직접 나섰다면 그 누구도 죽지 않고 그 누구도 불행해지지 않았겠지요….”
“그게 내가 사과해야 할 이유라는 건가?”
“…….”
고개 숙인 채 묻는 정금호를 보며 장백서는 그저 자신이 할 말 만을 이어나갔다.
“고강한 무공은 육체의 노쇠를 초월하게 해주지만 그게 정신의 노쇠까지는 막아주지 못하나 봅니다, 그렇지 않다면 천하무림을 위해 큰 피를 흘린 소림에 망설임 없이 집안의 기둥뿌리를 뽑아 내놓은 당신 같은 사람이 이런 우행을 범할 리 없으니까요.”
얼굴에 금칠을 하는 것인지 똥칠을 하는 것인지 모호한 장백서의 말에 정금호는 서글픈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허허… 그 말대로일세.”
고개를 들어 장백서를, 금룡장을, 그리고 서궁정을 바로본 정금호의 눈이 이윽고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세월의 야속함에도 육체는 쇠하지 않았으나 이지는 흐려져 무엇이 옳은지 틀린지 무엇이 중하고 중하지 않은지도 제대로 구별할 수 없게 되어 버렸구나….”
비극을 초래한 것에 대한 책임감일까? 그도 아니면 흐려져 버린 자신의 이지에 대한 원통함일까?
원망스럽다는 듯 하늘을 올려다보던 정금호는 이내 고개를 숙여 장백서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 말이 맞네, 모든 게 나의 탓이고 나의 잘못이네.”
스윽
그리 말한 정금호는 이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고 그 목적지는 서궁정의 앞이었다.
“…….”
차갑게 식어 있는 서궁정의 눈을 마주하고 정금호는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가주!!”
“아니 어째서…!!”
무사들은 물론 장의 식솔들 모두가 보고 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모든 게 나의 잘못이네, 모두 내가 부덕했던 탓이고 가주의 무게감이니 말의 무게니 하는 아무래도 좋은 걸 지키기 위해 자네를 구할 수 있었음에도 방치하고 방관했네… 모든 게… 모든 게 나의 잘못이라네….”
“…….”
정중히 고개를 조아리는 정금호의 뒤통수를 서궁정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분노? 슬픔? 그도 아니면 기쁨?
오만가지 감정이 뒤섞인 표정으로 괴로운 듯 몇 번이나 입을 열었다 닫은 서궁정은 이내 모든 걸 초탈한 듯 평온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의 아버지는 종종 저에게 정 대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나의…?”
그 말에 정금호가 의아한 듯 고개를 들었다.
“네, 십 몇 년 전, 심한 흉작으로 등봉현의 많은 사람들이 배를 줄이게 되었을 때, 그때 정 대인께서 나서셔 곳간을 열어 많은 이들의 주림을 해소해 주셨다고… 아버지는 그 예기를 하시며 항상 장주님을 대인 중의 대인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서궁정은 순간 복받치는 감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입술을 씹었다.
그리고 다시 평온해진 얼굴로 말했다.
“그러니 부디… 아버지께서 존경하셨던 그런 대인으로 남아주십시오.”
“……!!”
그 한 마디에.
정금호의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알겠네, 그분께서 바라던 사람으로 남기 위해 내 노력하겠네.”
정금호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결연한 얼굴로 그리 답했고 그런 그를 서궁정이 일으켜 세우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렇게 일련의 사건이 훈훈하게 해결되는 장면을 멀리서 보고 있으려니…
“이야, 한 때는 어찌 되나 조마조마했는데 이게 또 이렇게 해결이 되네? 여기까지 전부 의도한 일인가?”
거구의 거지, 당취구가 친한 척을 하며 다가왔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통성명부터 하심이 어떻습니까?”
“……장단 맞출 줄 모르는 친구구만… 등봉현 개방 총타 당취구요, 그냥 당형이라 부르슈.”
“당 대협이라 부르겠습니다.”
“진짜 맞출 줄 모르는, 아니 맞춰 주지 않는 친구구려… 그쪽에서 그리 나오니 나도 그냥 허심탄회하게 묻겠소.”
그리 말한 당취구는 이전까지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우고 차가운 눈으로 장백서를 보며 물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
상당한 기백이 느껴지는 당취구의 모습에도 장백서는 무표정한 얼굴로 서궁정과 정금호,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서 부인이… 그저 힘 있는 자들의 사정에 휘둘렸을 뿐인 사람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소.”
“…고작 그런 이유로 여기까지 일을 저지른 건가?”
“그렇소.”
“미친놈이군, 아니면 협객이거나.”
당취구의 말에 장백서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말대로 광인과 협객은 종이 한 장 차이인 법이니까.
***
“갑자기 데리고 나가더니 귀찮은 일이나 시키고 말이야, 너 혹시 내가 네 부하나 졸개 같은 거라 생각하는 거냐?”
돌아가는 길, 설묘가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사실 설묘는 장백서의 지시로 금룡장에 있는 내내 비밀리에 서궁정을 호위하고 있었다.
정금호가 선을 넘지 않을 거라 예상하긴 했지만 혹시 모르니 만약을 대비했던 것이다.
“고마워요 설 대협, 저도 모르는 동안 저를 지켜주고 계셨던 거군요.”
“흥, 뭐, 별로 힘든 일도 아니었다.”
살수로 살아오며 솔직한 감사의 말을 들을 기회가 몇 없었던 설묘는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는 서궁정의 말에 쑥스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소림으로 돌아가는 길.
계속해서 무어라 이야기를 이어가던 서궁정을 보며 장백서는 짧게 말했다.
“됐습니다 서 부인.”
“네?”
“이제 여기에는 저희들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참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여지껏 억지로 밝은 척 이야기를 하던 서궁정이 그 한 마디에 굳어 버렸다.
그리고…
“사실은…… 사실은 정금호 그 작자도 금룡장도 용서하고 싶지 않아요… 그들 때문에 제 소중한 것들 이 전부 사라져 버렸으니까!! 저는… 저는….”
서궁정은 눈물을 흘리며 분노했다, 소리 지르며 발을 구르며 여기 없는 누군가, 그리고 이승에 없는 누군가에 대한 분노를 토해냈다.
일각정도 울고 소리쳤을까? 분노하는 것에도 지쳤을 즘, 설묘가 그녀를 달래주었다.
등을 토닥여 주고 괜찮다는 말을 반복해 그녀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렇게 서궁정이 진정되었을 즘…
“두분 먼저 올라가십쇼, 저는 잠시 볼일이 있어서.”
장백서는 두 사람을 먼저 보내고 소림으로 향하는 계단에 우두커니 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그러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금룡장에서부터 몰래 그들을 뒤따라온 정무선이었다.
“…그러시다네요.”
“당연한 일입니다, 오히려 그렇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죠….”
아버지를 살해당했음에도 분노는 커녕 죄스러운 마음만이 가득한 정무선의 모습을 보며 장백서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사랑은 맹목적이란 건가?’
“서 부인은 이제 어떻게 되시는 건가요?”
“……아직 정해진 것은 없지만 당분간은 소림에 머무를 것 같습니다, 이번 일에 대해 서 부인께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듯하니까요.”
“그런가요…….”
“정공 자는 어떻습니까? 이제 정 공자가 금룡장의 새로운 장주가 되시는 겁니까?”
이에 정무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당분간은 할아버님 밑에서 후계 수업을 받고 차근차근 자리를 물려받게 될 것 같습니다.”
담담히 거기까지 말한 정무선은 이내 조심스레 물었다.
“만약… 제가 무언가를 했다면 그 사람은… 아버지는 그런 인간이 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처음으로 정태산을 아버지라 제대로 부르는 정무선의 모습에 장백서는 담담히 대답해 주었다.
“자식의 죄를 부모에게 물을 수는 있으나 그 반대는 있을 수 없는 법이지요, 당신은 할 만큼 했습니다.”
“그런가요.”
그 말이 정무선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었을지는 모를 일이다.
아무리 밉다고 해도 정태산은 정무선의 아버지였으니까.
한 번도 부모가 있어본 적 없는 장백서는 아마 평생 정무선의 기분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니 그저…
장백서는 정무선을 보며 포권을 취해보이고는 말했다.
“부디 대인이 되시길.”
그가 그의 아버지와 다른 길을 걷길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