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705
제705화
파아아아앙!
푸른 드래곤 투구를 쓴 검사의 팔을 길게 펼치자, 그의 칼날을 휘감은 죽음의 기운이 수백 줄기의 섬광이 되어 쏘아져 왔다.
“잡스럽군.”
글렌은 쇄도해오는 죽음의 기운을 보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앞으로 나아가 진천검을 내리그었다.
파지지직!
새하얀 검신 위로 작렬하는 뇌전이 죽음의 기운을 모조리 집어삼킨다.
진천검이 지나간 곳에 남은 건 머리카락조차 흔들지 못하는 가느다란 바람뿐이었다.
“고작 이 정도 실력으로 나를 상대하겠다고 한 건가?”
글렌은 먼지 하나 묻지 않은 진천검을 내리며 눈매를 좁혔다. 그의 발밑에서 뇌전에 짓밟힌 죽음의 기문이 안개처럼 흩날렸다.
“벌써 점수를 매기면 섭섭하지.”
푸른 드래곤 투구를 쓴 검사가 히죽 웃으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평가는 다 끝난 후에 하자고!”
그가 손목을 뒤집자, 허공에서 죽음의 기운이 응축된 광구가 솟구쳤다.
콰아아아아아!
칠흑빛 광구는 공간을 으깨버리며 글렌의 심장을 향해 뻗어나갔다.
“말했지 않느냐. 조잡하다고.”
글렌이 진천검을 들지 않은 왼손을 내리자, 그에게 짓쳐들어오던 광구가 실 끊어진 인형처럼 뚝 떨어져 대지에 처박혔다.
쿠와아아아아아앙!
지하에서 죽음의 기운이 폭발하며 강가와 강물이 통째로 뒤집혔다.
“네 손자의 말을 빌리자면….”
푸른 드래곤 투구를 쓴 남자가 즐겁다는 듯 웃으며 검을 어깨 뒤로 젖혔다.
검날만이 아니라, 그의 전신이 죽음의 기운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아직 멀었어!”
포효 같은 외침과 함께 드래곤 투구를 쓴 검사가 흑검과 함께 날아들었다. 검격을 날릴 때보다 배 이상 강해진 압력이 글렌의 전신을 짓눌렀다.
“그 아이가 하는 말의 무게는….”
글렌의 눈빛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가 뻗어내는 진천검의 칼날 위로 분노가 깃든 벼락이 돋아났다.
“네놈 따위와 다르다.”
피에 젖은 듯한 뇌전의 칼날이 푸른 드래곤 투구를 쓴 검사의 돌진을 막아섰다.
쿠와아아아앙!
검과 검이 부딪친 순간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터지며 공간이 찢겨 나간 듯한 균열이 벌어졌지만, 글렌은 단 한 걸음도 밀려나지 않았다.
그는 제자리에 서서 한 손만으로 드래곤 투구를 쓴 검사를 짓눌렀다.
뿌드드득!
뼈가 비틀어지는 듯한 오싹한 소리와 함께 푸른 드래곤 투구를 쓴 검사의 다리가 굽혀졌다.
“늙은이가 힘도 좋네. 그런데….”
푸른 드래곤 투구를 쓴 검사는 진천검의 압박에 어깨가 눌리고 있음에도 여유로운 웃음을 그렸다.
“이게 전력은 아니지?”
그는 이 정도로는 안 된다는 듯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
글렌이 푸른 드래곤 투구를 쓴 남자의 눈빛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힘을 아끼고 있군.’
백혈교주를 상대할 때와 비슷한 무력을 드러냈음에도 여유를 보이는 것을 보니, 저놈 역시 전력을 다해서 싸우는 게 아니었다.
‘그 멍청이가 위험하다고 할 만해.’
오그람은 드래곤 투구를 쓴 남자와 일대일로 싸워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죽음의 기운이 지닌 위태로움 때문인 줄 알았는데, 그런 문제가 아니다.
저놈 자체가 죽음의 기운과 상관없이 강했다. 육황오마의 수장 중에서도 상대할 이가 드물 정도였다.
‘숨긴 실력을 꺼내게 만드는 게 좋겠군.’
이런 무인이 갑자기 나타날 리는 없었다. 제 실력을 드러내게 해서 무학의 원류를 파악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터어어엉!
글렌이 손목을 비트는 순간 드래곤 투구를 쓴 남자가 거칠게 뒤로 밀려났다.
“이건….”
드래곤 투구를 쓴 남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는 듯 눈매가 길게 벌어졌다.
“격의 차이를 느끼게 해주마.”
글렌이 진천검을 들어 푸른 드래곤 투구 속에서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겨누었다. 하늘에 닿은 검사가 기수식을 취하는 것만으로 천지가 요동쳤다.
사람 자체가 하늘의 검으로 화한 듯한 고고한 기파가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오늘 예상을 벗어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네.”
푸른 드래곤 투구를 쓴 남자가 글렌의 기파에 질린 듯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지.”
그는 충격이 남아 있는 오른손을 털어내고서 글렌의 우측으로 짓쳐 들었다. 죽음의 기운이 차오른 흑검을 섬전처럼 쏘아냈다.
캬갸갸갸걍!
진천검과 흑검이 맞물리며 오러와 오러가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일렁거렸다.
쩌어어엉!
글렌과 드래곤 투구를 쓴 검사는 서로의 숨결이 흐르는 좁은 공간 속에서 검을 나누었다. 강대한 오러가 아니라, 순수한 무를 겨루는 싸움이었다.
쿠구구구!
수십 합의 격돌 끝에 드래곤 투구를 쓴 남자가 튕기듯 밀려났다.
그가 뒷걸음질 칠 때마다 대지가 깊숙하게 파여나갔다. 글렌의 힘을 모두 해소하지 못한 것이다.
“크흐….”
드래곤 투구를 쓴 남자가 바닥에 피를 뱉어내고서 거친 숨을 내뱉었다.
“어느 쪽이고 이길 수가 없군.”
그는 검술과 오러 그리고 인내심까지 모두 글렌이 위라고 인정하며 입술을 씹었다.
“이제 만족했나?”
남북맹주가 옆으로 다가오며 픽 웃었다.
“아직은 안 되겠네.”
푸른 드래곤 투구의 검사가 여기까지라는 듯 손을 털어냈다.
“그래도 나름 맛은 봤어.”
“그럼 진짜 싸움을 시작해보자고.”
남북맹주가 손을 뻗자, 강물이 용오름을 타고 오른 듯 솟구치더니 그의 손아귀로 모여들어 푸른 창의 형태를 갖췄다.
스스로 주인을 선택한다는 고대의 무구 중 하나, 해령창이었다.
고오오오오!
푸른 드래곤 투구를 쓴 남자가 여유를 지우고, 머리 위로 흑검을 들어 올렸다.
칼날에서 타오르는 죽음의 기운이 점점 더 짙어지더니, 흑색의 뇌전이 되어 타올랐다. 글렌을 따라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조잡하구나.”
글렌은 서슬 퍼런 살의를 드러내며진천검을 중단에 세웠다. 검신에서 치솟은 뇌기가 하늘과 땅을 뒤덮으며 적색 광휘를 뿜어냈다.
“검계현신.”
그의 가라앉은 음성이 세계를 뒤틀었다.
“천의무봉.”
* * *
“어우….”
도리안이 조종대를 잡은 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어찌 살아남았네요.”
그는 다행이라고 말하면서도 긴장이 풀리지 않은 듯 헛구역질을 해댔다.
“대주님 덕분이지. 이 인간 아예 진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한 모양이야.”
크레인이 눈을 감은 채 누워 있는 라온을 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할 리가 없지. 라온은 생사결을 걸 때부터 승리를 자신했을 거야.”
버렌은 무서운 놈이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저놈은 약속을 어긴 적이 없어. 그냥 믿어주기만 하면 돼.”
마르타가 라온의 복부에 외상약을 발라주며 은은한 미소를 그렸다.
“나찰녀랑 안 어울리는 말이네.”
루난은 마르타를 보며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이게 진짜….”
“오늘 라온은 대존잘 상태야.”
그녀는 달려들려는 마르타를 무시하고 라온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쓸어올려 주었다.
“다들 방심하지 마.”
라온의 옆에 있던 리메르가 크게 손뼉을 쳤다.
“아직 안 끝났으니까.”
그는 평상시와 달리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특히 라온의 예측과 달라진 부분을 조심해야 해.”
“달라진 부분이라면….”
“에덴.”
리메르가 도리안을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라온은 에덴이 아니라, 흑탑이 올 거라고 예측했어. 꽤 큰 변수가 발생한 거지.”
그는 느낌이 좋지 않다며 손끝을 두드렸다.
“음….”
마크 괴튼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뱃머리로 나아가 기감을 펼쳤다.
“그런데 대주님이 포섭했다는 에덴의 세작은 누구일까요?”
버렌이 리메르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타천의 말을 들어보면 간부급인 것 같은데….”
“멀린이겠지.”
리메르가 턱을 매만지며 시선을 내렸다.
“머, 멀린이요?”
“그 광녀가?”
“그래. 멀린은 라온을 잡으려는 척하면서 오마의 개입을 계속해서 막아줬어. 당시에는 급해서 넘어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이상한 일이지.”
멀린은 라온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나타나서 다른 오마를 상대했다.
그때는 미쳐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타천의 말을 들어보니 그녀가 라온과 내통한 세작이 분명해 보였다.
“저, 저도 봤어요!”
도리안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손을 들어 올렸다.
“예전에 저희 전부 죽다가 살아났을 때도 갑자기 멀린이 튀어나와서 대주님을 찾았잖아요!”
그는 창염마군에게 당해서 광풍대 전체가 죽을 뻔했을 때를 말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멀린이 라온의 편이라는 건 알겠어. 그런데….”
마르타가 뒤를 돌아보며 입술을 씹었다.
“멀린이 세작인데도, 에덴이 숨어있다는 점을 몰랐다는 건….”
“멀린이 세작이라는 게 들켰다는 뜻이겠지.”
버렌이 라온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럼 지금 멀린은….”
“이미 당했거나 굉장히 위험한 상태일 거다.”
리메르는 멀린이 라온에게 말을 전할 수 없을 정도로 급했을 거라며 뒷목을 매만졌다.
“아….”
“그런….”
“일단 지금은 이곳을 벗어나는 것만 생각해. 뒷일은 나중에 파악….”
리메르가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뒤편에서 수많은 기척이 움직이고 있었다.
“전투 준비.”
리메르가 검병에 손을 올리며 뒤를 돌았다.
“전투 준비!”
버렌이 리메르의 지시를 복명복창하자, 광풍대 전체가 간판으로 퍼지며 검을 뽑아 들었다. 그들은 흔들리는 갑판 위에서 대광풍진을 유지할 수 있도록 광풍류의 바람을 일으켰다.
1분 정도 지났을까.
강물을 칼로 베는 듯한 소리와 함께 작은 쾌속선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함도 두 척 있었는데 채주들이 직접 왔는지 간판 위에서 강대한 기파가 일렁거렸다.
“찾았어! 이쪽이다!”
“라온 지그하르트와 광풍대가 보인다! 더 속도를 높여!”
육지에서는 백혈교와 암살자로 보이는 이들이 따라붙었다. 대주교급이 보이는 것을 보니 저쪽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리메르는 강에서 추적해오는 남북맹과 육체에서 쫓아오는 암살자들을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이대로라면 잡혀.’
도리안의 배가 빠르기는 하지만, 강물을 제대로 타지 못해서 얼마 가지 못하고 따라붙을 것 같았다.
전장을 이곳이 아니라, 적의 배로 만들어야 했다.
스르르릉!
리메르가 가루누아의 바람을 휘감은 채 검을 뽑아 들었다.
“여기서 라온을 보호해. 금방 다녀올 테니까.”
그는 세 명의 조장들에게 지시를 내리고서 강물로 뛰어들었다.
퍼어어엉!
바람과 물살을 타고 나아가 가장 먼저 다가온 쾌속선에 올라탔다.
“과, 광검!”
“쳐라!”
수적과 산적들이 놀란 눈을 한 채 검과 도를 꼬나쥐고 달려들었다.
“너희랑 놀 시간 없다.”
리메르는 무기를 든 수적이 아니라, 쾌속선의 간판을 향해 강기를 쏟아냈다.
콰드드드득!
쾌속선의 중앙 갑판이 터져나가며 수적과 산적들이 그대로 강물 속으로 빠져버렸다.
터엉!
리메르는 가라앉는 뱃머리를 박차고 옆에 있던 쾌속선으로 옮겨타서 다시 검을 들었다.
“마, 막아!”
“배를 부수려고 한다!”
그는 기겁해서 덤벼드는 수적들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배만 부숴버렸다.
콰아아아앙!
리메르는 도리안의 배를 추적해오던 쾌속선을 모조리 침몰시킨 후 전함 쪽으로 이동했다.
‘이 전함만 망가뜨리면 어렵지 않게 벗어날 수 있겠어.’
백혈교와는 거리가 벌어지고 있으니, 전함만 파괴한다면 아무런 피해 없이 지그하르트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후우.”
리메르가 숨을 고르고 전함에 올라갔다.
“죽여라!”
“배를 부술 수 없도록 달라붙어!”
수적들이 기다렸다는 듯 사방에서 달려들어 왔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내가 급하거든.”
리메르가 어금니를 지그시 씹으며 바람을 일으켰다. 검날 위로 피어나는 녹색의 오러가 수적들의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푸카아아악!
달려들던 수적들의 몸이 반으로 갈라진 채 기울어졌다. 그들은 무얼 당했는지도 모른 듯 팔을 허우적거렸다.
“네가 대가리냐?”
리메르가 전함의 함장으로 보이는 채주에게 다가가려 할 때였다.
끼아아아아아아!
높은 하늘 위에서 괴기스러운 포효가 울려 퍼졌다.
“저, 저건….”
시선을 올린 리메르가 입술을 떨었다. 새하얀 뼈가 어둠의 마나로 타오르는 거체가 움직인다. 죽은 드래곤을 언데드로 되살린 본 드래곤이 날아들고 있었다.
쿠구구구구!
본 드래곤 뒤에는 가고일과 레이스, 스펙터로 이루어진 언데드 군단도 움직이고 있었다.
화아아아!
본 드래곤의 등에 타고 있던 괴인의 로브가 벗겨지고, 황금빛 안광이 번쩍이는 백골 가면이 드러났다.
“망혼귀?”
리메르가 백골 가면을 보며 입술을 씹었다. 저 가면을 쓰는 놈은 오직 한 명뿐이다. 아리안 가문에서 라온에게 죽었던 망혼귀가 분명했다.
‘되살아난 건가?’
망혼귀는 아크 리치의 가면을 쓰고 있는 귀신답게 부활이 가능했는데, 그 이능을 이용해서 살아난 것 같았다.
‘하필 저놈이라니….’
망혼귀는 일대일이 아니라, 다수 대 다수, 그것도 난전일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마법사다. 지금 상황에서는 최악의 적이나 다름없었다.
‘거기다….’
더 강해졌어.
망혼귀와 놈의 언데드에게서 느껴지는 어둠의 마나의 격이 높아졌다. 놈은 되살아난 것만이 아니라 한층 더 성장해서 돌아왔다.
“일단 인사부터 시작하지.”
망혼귀가 섬뜩한 안광을 빛내며 손가락을 들어 올리자, 본 드래곤이 입을 쩍 벌렸다. 시꺼먼 아가리에서 솟구친 어둠의 숨결이 도리안의 배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쿠와아아아아앙!
광풍대가 대광풍진을 방어 형태로 유지하며 본 드래곤의 브레스를 막아섰다.
다만 배에 큰 충격이 일어난 듯 나아가던 속도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모조리 죽여라!”
망혼귀의 외침에 본 드래곤를 수호하던 언데드 군단이 도리안의 배를 향해 급격히 하강했다.
“도리안! 속도를 높여!”
리메르가 전함을 벗어나서 강물에 뛰어들며 바람의 칼날을 날렸다.
다만 언데드들이 너무 많기에 모두 막을 수가 없었다.
“일단 어떻게든 막고… 어?”
그는 달려가다가 수면으로 시선을 내리며 헛바람을 흘렸다.
‘아래에도 있다고?’
물속에서 격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망혼귀의 언데드 군단은 하늘 위에만 있는 게 아니라, 강물 속에서도 도리안의 배를 노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이 상태라면 무슨 짓을 해도 도리안의 배가 침몰 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나와라! 당장 나와!”
망혼귀는 라온을 부르려는 듯 도리안의 배를 사방에서 공격했다.
본 드래곤의 브레스에 충격을 받은 광풍진 위로 언데드 군단의 날아들자, 검사들이 움직임이 어지러워졌다.
쿠우우웅!
결국 배와 라온을 보호하기 위해서 광풍대가 사방으로 떨어지며 광풍진이 붕괴됐다.
“이대로 안 나온다면….”
망혼귀가 이를 바득 갈며 손을 들어 올리자, 그의 머리 위로 어둠의 마나가 모여들더니 거대한 구체를 이뤘다.
“아예 박살을 내주마!”
어둠의 마나로 이루어진 새까만 광구가 도리안의 배를 향해 가라앉는다.
광풍대가 다시 광풍진을 형성하려고 했지만, 시간이 없어 보였다.
‘늦어!’
리메르가 피나도록 입술을 씹었다. 구체의 움직임이 너무 빨랐다. 광풍대도, 자신도 막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치이잉!
어떻게든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강환을 쏘아내려고 할 때 도리안의 배 앞에서 반투명한 빛이 번쩍이더니, 노파의 가면을 쓴 멀린이 튀어나왔다.
찌지지직!
멀린이 펼쳐낸 마법진에서 하얀 불꽃이 튀어나와 망혼귀가 쏘아낸 흑색의 구체를 막아냈다.
쿠와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며 도리안의 배가 뒤집힐 듯 출렁였다.
“고맙다! 네 덕분에…아?”
리메르는 멀린에게 말을 걸다 말고 입술을 떨었다. 그녀의 가면은 반쯤 뭉개졌고, 로브 역시 피에 젖은 채 이곳저곳이 찢어져 있었다.
“드디어 나왔구나!”
망혼귀가 섬뜩한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라온 지그하르트를 노리면 바로 튀어나올 줄 알았지.”
그는 이제야 복수를 할 수 있겠다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집착 심한 남자는 별론데.”
멀린이 뚝뚝 끊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비웃음을 흘렸다.
“금장의 어항에 갇혀 있는 동안 오직 네년을 죽일 방법만을 생각했다. 어떻게 죽일까. 어떻게 괴롭힐까.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망혼귀의 눈동자 위로 오싹한 광기가 타올랐다.
“타천이 구해주지 않았다면 그곳에서 아예 미쳤을 것이다.”
“이미 미친 것 같은데?”
멀린은 늦은 것 같다며 손을 저었다.
“그래. 그 여유가 어디까지 가나 보자.”
망혼귀의 손가락을 튕기자, 그의 아공간 속에서 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언데드 군단이 튀어나왔다.
“후우.”
리메르는 멀린과 망혼귀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다시 도리안의 배에 올라타서 숨을 골랐다.
“멀린. 여기서 막자. 네가 도와준다면….”
“아니.”
멀린이 시선을 돌리며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는 막을 수 없어.”
그녀는 페드릭이 안고 있는 라온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은은한 미소를 그렸다.
“뭐? 그게 무슨….”
“이곳은 내가 막을 테니까. 너희는 라온을 살려.”
멀린이 가볍게 손짓하자, 도리안의 배 허공을 떠오르더니, 폭풍을 만난 듯 어마어마한 속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멀린!”
리메르가 순식간에 점이 되어버린 멀린을 향해 소리를 쳤지만,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
멀린은 빛살처럼 나아가는 배에서도 오직 라온에게만 시선을 고정했다.
‘이제 됐어.’
라온은 오늘 생사결을 통해서 더욱더 높은 곳으로 나아갈 것이다.
어둠을 걸어온 자신과 달리 오직 빛만이 가득 찬 대로를 걸어갈 그의 모습을 눈에 담았으니 여한이 없었다.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다가 도망쳐놓고, 라온을 공격하니까 튀어나와? 정말 미쳤구나.”
망혼귀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비웃음을 흘렸다.
“멍청한 년. 라온 지그하르트가 네년을 받아줄 거라고 생각하느냐. 너는 그저 이용당하다가 버려지는 도구에 불과해.”
그는 한심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맞아. 라온이 날 봐줄 일은 없겠지. 함께 할 일도 없을 거야.”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알면서 이런 멍청한 짓을….”
“그래도 상관없어.”
멀린의 등 뒤로 마법진으로 이루어진 장대한 날개가 피어났다. 그녀는 가면 위로 피를 토하면서도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내 사랑은 언제나 일방적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