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760
제760화
라온은 글렌의 뒤를 따라서 북망산 초입의 공터로 향했다.
‘한 시간도 안 되어서 여길 또 오다니….’
조금만 위로 올라가면 곰과 꿀 속에서 헤엄을 쳤던 장소가 나오기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차분히 밤하늘을 살피는 글렌의 등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가주님이 왜 오신 거지?’
글렌은 카룬과의 대련이 끝난 후 이번 임무에서 얻었던 금화의 절반을 광풍대에게 넘겨주었다.
대련도 잘 끝났으니, 추가로 받을 보상도 없는데, 왜 부른 건지 모르겠다.
-오늘 여기저기서 밥을 주던데….
라스가 의심스럽다는 듯 글렌을 위아래로 훑어내렸다.
-설마 저 영감이 나딘빵을 멕이려고?
녀석은 나딘빵을 줘도 절대 먹지 말라며 고개를 마구 저었다.
‘오! 너 천재야?’
-크흠! 본왕은 예로부터 마계 제일의 두뇌이자, 계략가로 알려….
‘대단한데?’
-아직 본왕의 말이 안 끝났….
‘대박.’
라온이 라스의 헛소리를 흘려듣고 있을 때 글렌이 뒤를 돌아보았다.
“라온.”
글렌의 눈빛은 평소와 달랐다. 그의 붉은 눈동자 속에서 난로 같은 온기가 피어나는 것 같았다.
“예. 가주님.”
라온이 글렌의 눈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할….”
“예?”
“아니다.”
글렌이 짧게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었다.
“카룬이 참으로 많이 변했더구나.”
그가 뒷짐을 진 채로 턱을 들어 올렸다.
“이전의 카룬이라면 절대로 자신의 못난 점을 인정하지 않았을 텐데, 그 많은 사람 앞에서 스스로의 잘못을 밝힐 줄은 몰랐어.”
글렌은 지금도 의외라는 듯 헛바람을 흘렸다.
-본왕도 인정이니라!
라스가 동그란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눈깔이 대장이 그렇게 달라졌을 줄은 상상도 못 했느니라!
녀석은 인간의 새로운 면을 본 것 같다며 길게 입맛을 다셨다.
“카룬이 그렇게 변한 건 모두 네 덕분이겠지. 고맙구나.”
글렌은 카룬의 변화가 진심으로 기꺼운 듯 은은한 미소를 그렸다.
“아닙니다.”
카룬의 변화는 그가 스스로 이뤄냈다고 생각했기에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카룬과의 대련에서 무언가 깨달음을 얻었느냐?”
글렌이 뒷짐을 진 손을 풀며 물었다.
“얻지 못했습니다.”
라온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카룬의 감정과 힘을 느꼈지만, 초월에 닿을 수 있는 실마리를 잡지는 못했다.
“그럼 카룬을 보고 느낀 게 있느냐?”
“중무전주는 본인이 저질렀던 죄와 후회 그리고 가주에 대한 열망과 지그하르트에 대한 애정까지. 모두 무력으로 전환한 것 같았습니다.”
라온은 카룬의 검을 보며 느꼈던 감정과 의념을 모두 말했다.
“제대로 보았구나. 대련을 허가해준 보람이 있어.”
글렌은 잘 보았다는 듯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
“초월은 단순히 무력을 나누는 경지가 아니다. 자신이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기록하는 일기와도 같지.”
그는 차분한 어조로 초월의 개념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일기….”
라온은 글렌이 꺼낸 ‘일기’라는 단어를 연달아 중얼거렸다.
“카룬이 초월에 오르자마자, 저런 무력을 지니게 된 것도 일기 속에 많은 것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글렌의 손이 카룬의 검계를 그리듯 무겁게 떨어져 내렸다.
“만약 카룬이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고, 초월에 닿았다면 오늘 네가 상대했던 검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
“너는 초월에 오르며 무엇을 담고 싶으냐.”
그는 편히 말해보라는 듯 턱을 내렸다.
“가지고 가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 아직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라온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하게 끌리는 게 없어서 아무런 결정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럼 다 가져가면 되지 않느냐.”
글렌은 그게 무슨 고민이라는 듯 어깨를 작게 으쓱였다.
“예…?”
“전에도 말했을 텐데, 네 그릇은 나나, 렉타르와 비교해도 독보적이다. 진정한 만검을 이룰 녀석이 왜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 것이냐.”
그가 옅게 웃으며 진천검의 검병을 매만졌다.
“네 일기장은 누구보다도 넓다.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적을 수 있을 것이야.”
글렌은 모든 감정과 의념을 가지고 가라고 말하며 미소를 그렸다.
“모든 것….”
라온이 두 손을 내려다보며 입술을 씹었다.
‘정말 그래도 되는 건가?’
대부분의 무인들은 껍질을 벗으며 본인이 나아갈 길을 선택하기 마련인데,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간다고 생각하니, 과하게 느껴졌다.
‘분노, 만검, 복수, 가족, 동료, 친구, 전생….’
수많은 감정과 의념의 편린들이 뇌리에 휘몰아쳤다. 자신의 그릇이 아무리 커도 저것들을 모두 가져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면….”
글렌이 천천히 손을 내렸다.
“검사의 근본에 다녀오는 게 어떻겠느냐.”
그는 라온의 허리춤에 걸려 있는 제천검을 향해 턱을 까딱였다.
“근본….”
라온은 검병이 살짝 갈라진 제천검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그’도 돌아왔다고 하니, 시간을 내서 가보거라.”
“알겠습니다.”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준 글렌에게 허리를 굽혔다.
“되었다. 네게 받은 도움이 더 크니까.”
글렌은 인사 따위는 필요 없다며 손을 저었다.
“가주님.”
라온이 제천검을 쥐고 있는 손을 놓으며 글렌에게 다가갔다.
“저도 드려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해보거라.”
“이번에 들어온 정보인데….”
멀린에게 들었던 정보들을 글렌에게 말해주었다.
“오마가 무력을 키우기 위해서 움직이는 건 우리도 알고 있었다. 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니, 곧 바빠질 것이야.”
글렌은 광풍대도 움직여야 할 거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검귀가 성검련주가 됐다는 정보는 처음 듣는군.”
그가 눈살을 깊게 찌푸렸다.
“그 소식도 네 친구에게 들은 것이냐?”
“아….”
글렌은 라스를 말하는 듯 친구라는 단어를 꺼냈다.
“아닙니다. 이번에는 다른 친구입니다.”
“친구가 많아서 좋겠구나.”
그는 나쁘지 않은 일이라며 작게 웃었다.
“음….”
일단 친구라고 말했지만, 멀린과의 관계는 아직 정립되지 않아서 할 말이 없었다.
“확인은 해봐야겠지만, 좋은 정보를 주어서 고맙구나.”
글렌은 이제 가보라는 듯 손을 저었다.
“예. 그럼.”
라온은 글렌에게 고개를 숙이고서 별관으로 돌아갔다.
“…….”
글렌은 홀로 남아 검은 커튼처럼 출렁이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렉타르….’
렉타르는 라온이 실종되었을 때 나타나서 자신에게 무엇을 했냐고 따졌다.
그 모습은 성검련주의 명령을 듣는 꼭두각시도 아니었고, 검에 미쳐서 타인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광인도 아니었다.
오히려 라온과 굉장히 가까운 친인처럼 느껴졌다.
글렌이 절망을 담고 있던 렉타르의 눈빛을 떠올리며 얇게 입술을 씹었다.
“당신 설마….”
***
실비아는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별관을 증축하며 만든 연무장으로 향했다.
그녀는 따스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검을 뽑았다.
우우우웅!
실비아의 검 위로 선명한 빛이 명멸했다. 라온이 전해준 휘광류의 기운이었다.
그녀는 찬란한 빛을 이끌며 다양한 검술을 연마했다.
갓 떠오른 태양이 하늘의 중심에 오르고 나서야 실비아가 검을 내렸다.
다만 휴식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녀는 어제 라온에게 들었던 투귀와 백귀검주의 움직임을 떠올리는 듯 검날 속에 거칠면서도 화려한 변화를 일으켰다.
치이이잉!
푸른 빛에 물든 칼날이 짙은 광휘를 토하며 햇살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쿠구구구!
휘광류라는 이름처럼 빛으로 적을 쓸어버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치이이잉.
실비아는 손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체력과 오러를 소모하고 나서야 검을 내렸다. 그녀는 정말 온 힘을 다 쓴 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마님.”
헬렌이 실비아에게 물과 초콜릿을 건네주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꼭 필요한 노력이야.”
실비아는 고개를 젓고서 단숨에 물을 들이켰다.
“다시는 가족을 잃고 싶지 않거든.”
라온은 남부럽지 않은 아들이 되어주었고, 직계에 올라서 아버지와의 관계도 천천히 회복되고 있으며, 검사들에게도 존경 어린 시선을 받게 되었다.
자신이 원하던 꿈이 모두 이루어졌지만, 이틀마다 찾아오는 악몽은 사라지지 않았다.
쌍두귀의 광소와 그의 앞에서 쓰러지는 에드가와 시야,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어둠 속으로 끌려가는 자신. 20년 넘게 반복해온 악몽은 지금도 자신을 괴롭혔다.
‘또 같은 일을 겪을 수는 없어.’
라온과 별관의 아이들만큼은 지켜야 해.
가족을 잃는 슬픔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에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자신의 목숨을 던져서라도 모두를 구해낼 것이다.
실비아는 영혼에 맹세를 하고서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
“고마워. 헬렌.”
헬렌이 건네준 초콜릿을 입에 넣으며 몸을 일으켰다.
‘멈춰서는 안 돼.’
그랜드 마스터의 벽을 너무 쉽게 깼기 때문인지 그 이후로 거의 성장하지 못했다.
지금은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라, 전력을 다해서 힘을 키워야 할 때였다.
실비아는 다시 검을 말아 쥔 채 진중하면서도 따스한 빛을 일으켰다.
***
라온은 휴가를 받았음에도 수련을 하지 않고, 지그하르트 남부로 향했다.
-어디를 가는 것이냐?
라스가 길게 하품을 하며 턱을 까딱였다.
‘오랜만에 들릴 곳이 있어서.’
-오랜만? 서, 설마 네놈….
라스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라온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본왕에게 구슬 아이스크림을 사주려고? 그것도 새로운 맛….
‘아닌데?’
-끄응….
녀석은 아쉽다는 듯 길게 입맛을 다셨다.
-잠시 들러도 괜찮을 텐데….
‘응. 안 가.’
-쯧, 그럼 여기는 어디냐. 본 것 같은… 음?
라스가 굴뚝마다 진한 연기를 뿜어내는 작은 마을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기 네놈의 검을 만든 곳 아니냐?
‘맞아. 기억나나 보네.’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밤낮없이 쇠를 두드리는 대장장이들의 마을. 미르탄이지.’
어제 글렌이 찾아가라고 했던 ‘그.’는 대륙장인 발칸이다.
오랜만에 제천검도 정비받을 겸 시간을 내서 찾아왔다.
-여기 재미 더럽게 없는 곳이니라.
라스는 관심 없다고 중얼거리고서 얼음꽃 팔찌 속으로 들어갔다.
‘모든 관심이 구슬 아이스크림이구만.’
라온은 팔찌를 툭툭 치고서 미르탄으로 들어갔다.
용광로의 불길과 쇳소리 그리고 장인들의 외침을 듣자, 자신까지 활력이 도는 것 같았다.
천천히 구경하면서 발칸의 공방으로 올라가는데, 낯이 익은 뒤통수가 보였다.
“도리안?”
“어? 대주님!”
정말 도리안이었다. 그는 장인과 거래하다 말고 방실거리며 다가왔다.
“여기는 어떻게 오셨어요?”
“너야말로 왜 여기에 있어?”
“저는 필수품을 챙기고 있었죠!”
도리안은 전쟁에서 사용했던 무기와 철을 보충하기 위해서 나왔다며 웃었다. 잠을 안 잤는지 눈이 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설마 너 지금까지….”
“네. 계속 필수품을 사고 있었어요. 새벽 시장에서 좋은 생선이랑 고기도 구했죠!”
그는 배 주머니에서 신선한 고기와 생선을 꺼내며 헤헤 웃었다.
“천천히 챙겨도 될 텐데….”
“천천히 해서는 필수품을 다 챙길 수 없어요!”
도리안이 포효 같은 소리를 지르며 발을 굴렀다.
“어…?”
“우아하게 떠 있는 백조가 물속에서 다리를 휘젓듯이 제대로 된 보급을 하려면 밤낮없이 뛰어야 한다구요!”
그는 미간을 구긴 채 턱을 치켜들었다.
“아시겠어요?”
“아, 응….”
라온이 질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저 아직 챙겨야 할 필수품이 남아서. 나중에 봬요!”
도리안은 대장장이에게 물건을 챙기자마자, 바로 미르탄 마을을 떠났다.
“허어….”
라온은 빠르게 사라지는 도리안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과할 정도로 피곤해 보였지만, 또한 굉장히 행복해 보였다.
-본왕이 말했잖느냐. 네놈 지갑은 변태라니까….
라스는 주변에 정말 별난 놈들뿐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지도….’
라온이 한숨을 내쉬고서 미르탄 마을의 정상에 올라갔다.
쩌어엉!
둥그스름한 공방에서 지금까지 들었던 것과는 궤를 달리하는 망치질과 열기가 느껴졌다.
‘여전하시네.’
라온은 옅은 미소를 짓고서 공방의 문을 두드렸다.
“손님 안 받는다!”
공방 안쪽에서 발칸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쿠웅!
라온은 발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설마 또 은퇴하신 겁니까?”
“음…?”
발칸이 천천히 등을 돌렸다. 그는 이전보다 더 크고 탄탄해진 근육을 드러낸 채 입을 떡 벌렸다.
“라온!”
발칸이 벌떡 일어나서 라온을 끌어안았다.
“오랜만입니다.”
“그래. 참으로 오랜만이다!”
그는 왜 이제야 왔냐며 시원하게 웃었다.
“네놈의 활약은 다른 놈들에게 귀가 떨어지도록 들었다. 지겨울 정도였어.”
발칸은 대견하다는 듯 크게 어깨를 두드렸다.
“다 장인님의 검 덕분입니다.”
라온이 제천검의 검병을 만지며 웃었다.
“실력은 몰라도 아부는 확실히 늘었구나!”
발칸이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저었다.
“내 얼굴을 보러 온 건 아닐 테니, 검이나 꺼내 보거라.”
그는 제천검을 봐주겠다고 말하며 손을 까딱였다.
“알겠습니다.”
라온이 고개를 숙이고서 조심스럽게 제천검을 뽑았다.
“흠….”
발칸은 제천검을 살피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나름 관리한 것 같지만, 날이 상했군. 싸움이 정말 치열했던 모양이구나.”
그는 제천검을 통해서 라온이 싸워온 시간을 돌아보는 듯 탄식을 흘렸다.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검이 닳았다는 건 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뜻이다. 주인이 죄송할 건 없어.”
발칸은 지그하르트 검사다운 모습만 보여주면 된다며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부르려고 했는데, 딱 좋은 때에 왔군.”
그가 제천검을 내려놓고 공방의 구석으로 걸어갔다.
“예?”
라온이 발칸의 등을 보며 눈을 끔벅였다.
“아주 좋은 재료들이 들어왔거든.”
발칸이 낡은 상자 속에서 금탄과 붉고 푸른 쇠구슬을 꺼내 들며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네 검을 더 날카롭고 단단하게 세워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