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mains of the Poison King RAW novel - chapter 55
오기를 기다리며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유일한 단서라면 한열
규가 말해 준 죽절림(竹節林), 서너 명의 낯선 이방인이 어른
거렸다고 했나…
근 한 시진을 나아간 후에야 푸른 대나무가 얼기설기 얽어진
죽림에 도착했다. 하지만 인기척은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아직까지 머물러 있을턱이 없지. 쥐새끼들…’
“흔적을 찾아라, 빠른 시간내에!”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십여 명의 무인들이 말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쏜살같이 죽림으로 뛰어들어 비산했다. 검은 어느새 뽑
아 든 상태였고 언제 어디서 누가 공격해 오든 대응할 태세를
갖줬다.
조문덕은 천천히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죽림으로 들어서는 순
간, 자신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무인, 가슴까지 늘어지는 검
은 수염이 낯익었다. 눈은 호목에다가 심혼을 얼리는 듯한 광
망이 쏟아지고, 허리에 찬검은 언제라도 뽑을 수 있도록 우측
으로 기울어졌다.
“쥐새끼…네놈이었군.”
부를 비켜 들었다. 다리는 궁보(弓步)를 취하고 팔은 요부(燎
斧), 궁보료부(弓步燎斧)의 자세로 쇄석부 기수식이었다.
“허허허! 쥐새끼라…그럼 자네는 고양이겠군. 이름이 뭔가?”
“조문덕.”
쉬익!
조문덕은 이름을 말함과 동시에 우륜벽부(右綸劈斧)를 전개하
며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허공에서 내리찍는 도끼가 바람을 밀
어 냈다.
차앙!
사망산검 이철진도 즉시 검을 뽑아 들어 반격을 개시했다. 선
공을 제압당한 결과가 어땠는지는 충분히 체험하지 않았던가.
피잉! 왜엑…!
부와 검은 부딪치지 않았다. 부는 바위를 쪼갤 듯이 위맹스러
운 반면 느렸고, 검은 화살보다 빠르게 쏘아졌지만 부와 부딪
칠 수 없었다.
조문덕이 마음껏 공격하는 반면 사망산검은 검초의 위용을 제
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휘익!
이철진은 뒤로 한걸음 훌쩍 물러섰다. 이대로 싸움을 지속하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판단한 까닭이었다.
조문덕도 쫓지 않았다. 그도 같은 생각이었다. 거친 숨을 고르
고 전신의 진기를 끌어올렸다. 다음격돌에서 승부가 가름나리
란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손목에 힘이 불끈 들어 가고 도끼가 부르르 떨렸다.
살을주고 뼈를 깎겠다. 전에 일검을 맞아봤으니 어느정도인지
는 안다. 몸에 걸친 호피(虎皮)는 군졸들이 입는 지갑(紙鉀)보
다 튼튼하다.
자신이 생겼다. 어깨가 이완되고 손목에 진기가 모였다. 전신
은 활활 끓는 투지로 팽배했다. 모든 내력을 부 한 자루에 다
쏟아내려는 찰나,
“조문덕이라고 했나? 승부는 다음으로 미뤄야겠군/”
이철진이 신속하게 일 장을 물러서며 한 말이었다.
조문덕도 부를 거두고 뒤를 돌아봤다.
다그닥! 다그닥!
지축을 뒤흔드는 말발굽 소리!
요란한 굉음과 함께 나타난 칠십여 필의 말은 사방을 넓게 포
위하며 거리를 좁혀 왔다.
“으…음! 주공…”
조문덕의 입에서 가는 신음이 새어나왔다. 설마 당자인이 나타
날줄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는 태도였다.
“조문덕, 우리 둘은 숙명처럼 부딪치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드는
군. 다음에 보세.”
이철진은 말과 동시에 신형을 공중으로 뽑았다.
무인이 가장 조심해야 하는 순간이 이때였다. 무공이 강한 상
대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등을 보인다면, 그것도 허공으
로 몸을 솟구친다면, 만일 적의 공격도 막지 못하는 경우가 왕
왕 발생했다.
조문덕은 부를 축 늘어뜨렸다.
공격할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무인 대 무인으로 겨룬다면
얼마든지 싸울 것이고 이길 자신이 있지만 지금갈이 어부지리
로 당보권의 복수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조문덕…너는 실수했다.”
바로 곁에 다가온 당자인이 멀어져 가는 이철진의 신형을 보면
서 나직이 읊조렸다. 이철진은 울창한 죽림 속으로 몸을 감추
고 있어 말을 타고 뒤쫓기는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당자인은
손을 높이 들어 더 이상 추격하는 것을 막았다.
“주공! 이 조문덕을 믿지 않았습니까?”
조문덕은 고리눈을 뜨면서 기분 나쁜듯 신경질적으로 내뱉었
다.
“믿었다. 하지만 너는 나에게 실망을 줬다.”
“저도 주공께 실망했습니다.”
정말 그랬다. 수하를 믿었으면 끝까지 믿고 일을 맡겨야지, 이
게 뭔가, 만일 적이면 머리를 장작패듯 쪼개 버릴 수 있었는
데…
“너는 졌다. 무슨 말인 줄 알겠느냐? 네가 이길 싸움이라면 나
서지 않으려 했다. 만약 내가 나서지 않았다면 너는…”
“주공!”
조문덕은 두터운 살집을 부르르 떨었다. 당자인의 말을 받아들
일 수 없었다.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이철진의 검은 빠름을 위주로 한다. 그
의 검을 본 사람들은 육안으로 식별할 수 없을 만큼 빨랐다고
한다. 하지만 너에게는 바로 그런 검을 전개할 수 없었지. 네
부는 중병(中兵), 너를 베면서 간발의 차이로 떨어지는 부를
받을 자신이 없었을게다.”
“그럼 일부러 시간을 끌었다는 겁니까?”
“너는 이철진에게 말려들었다. 그놈은 너의 부가 먼저 떨어지
는 것을 기다렸다. 그다음 일검은…이제는 알겠느냐?”
“주공, 어찌 그런 일이…”
“원래 무림이란 그런 거다. 다음 싸움에서는 단 일 격으로 끝
내라. 그렇지 않으면 또 말려들 테니…”
“주공!”
조문덕은 이제 실감했다. 싸우면서도 어찌 이게 사망산검인가
싶게 싱거웠다. 그것이 일격필살을 노린 함정이라 생각하니 모
골이 섬뜩했다. 그점을 알아보고 자신을 구해 준 당자인이 새
삼 고마웠다.
“망에 올라라. 가자!”
“주공, 애들이 죽림 안으로…”
“죽었다. 다음부터는 분산해야 될 지형과 밀집해야 될 곳을 잘
파악해라. 놈들에 대한 원한은 당분간 잊자. 그들에게 뛰어난
모사가 있는 모양인데…그렇다면 급하게 서두는 쪽이 진다.
한연지를 수중에 움켜쥘 때…모든 원한을 청산하자.”
당자인은 미련없이 말머리를 돌렸다.
혹시나 해서 뒤쫓아와 봤는데, 역시 한연지의 말이 맞았다. 허
투루 흘려 들었다면 애꿎은 조문덕을 희생시킬 뻔 했다. 한연
지…지략이 뛰어난 계집…당철휘와 그녀의 사이가 심상치 않
지만 빼앗을 자신이 있었다.
갈홍아의 손속은 잔인했다.
무산파파에게서 전수받은 독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중독되어
비틀거리는 상대의 양팔을 잘라내고 두 다리를 잘랐다. 그리고
복부에 깊이 검을 틀어 넣었다.
“죽여 줘…”
한결같은 말들…하지만 죽임만은 사양했다. 피를 흘리면서 중
독된 독에 고통을 받으면서 그렇게 죽어 가야 직성이 풀렸다.
생면부지, 처음 만난 무인들이지만 당문과 연관있다는 사실만
으로도 치가 떨렸다.
오늘은 그 동안 차곡차곡 쌓아 왔던 원한이 화산처럼 폭발하는
날이었다.
무산파파는 갈홍아의 뒤를 따르며 어두운 안색을 풀지 못했다.
살기가 지나치다. 인의(仁義)를 따라 후회없는 삶을 살아 왔는
데, 덕분에 무산파가 봉멸하는 위기에 놓였어도 한탄하지 않았
는데 혈육이 뭐라고…
무산이 그리워졌다.
의독에 진정한 관심을 보이는 젊은이들을 모아 자신의 비기를
전수하고 싶었다. 명예와 부귀를 탐하지 않는 젊은이…세상
천지를 찾아봐도 그런 사람을 찾기는 수월치 않았다.
단비하, 손녀의 목숨을 두번이나 구해 준 청년은 한지에 먹물
스며들 듯 자신의 의독술을 흡수했다. 갈홍아가 하나를 배운다
면 단비하는 열을 깨우쳤다. 천고에 다시없는 기재는 아니었
다. 마음을 비우고 완벽히 깨달을때까지 침식을 잊고 몰두했
다. 집념이 낳은 소산이었다.
단비하가 손녀의 과거만 알지 못하더라도 사윗감으로 더없이
적합할 텐데…과거가 없는 깨끗한 처녀 이경화가 그의 결에서
헌신적으로 보살핀다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미모는 갈홍아에
게 비할 바가 아니지만 마음이 청순하다는 것도…순간,
“위험!”
말보다 손이 먼저 나갔다.
갈홍아의 뒤로 덮쳐 들던 무인이 허공에서 뚝 떨어졌다. 손에
사정을 두지 않기로 작정했기 때문에 같은 독을 하독해도 전에
펼쳤던 사심독과는 질이 달랐다.
쒜에엑! 쉐엑!
갈홍아는 놀란 기색도 없이 검을 펼쳤다. 왼 눈에 검상을 입어
검은 안대를 한 무인은 즉시 사지가 절단되고 고통에 찬 신음
을 저미하게 흘렸다.
‘돌아가야 해. 이 아이를 위해서라도 돌아가야 돼!’
무산파파는 마지막 무인이 갈홍아에게 죽는 모습을 보면서 마
음을 다잡았다.
( 二 )
사천성에 자리한 아미산(峨嵋山)은 대아산(大我山), 이아산(二
我山), 삼아산(三我山)의 총칭으로 면적은 육백여 리에 이른
다. 주봉은 셋으로 만불정(萬佛頂), 금정(金頂), 천불정(ㅊ天
佛頂), 그 높이는 각기 천 장을 넘는다.
절강성(浙江城)의 보타산(普陀山), 안휘성(安徽城)의 구화산
(九華山), 산서성(山西城)의 오대산(五臺山)과 함께 불교의 사
대 명산으로 불리는 명산.
아미산 삼봉에 걸쳐 밀리 퍼져 있는 아미파의 중심은 복호사
(伏虎寺)였다. 금정 산기슭에 있는 보국사(保國寺)를 지나 삼
백 장정도 올라가면 십만여 그루의 수림으로 뒤덮인 복호사가
나타난다.
누구든 복호사는 한 눈에 알아보았다.
밀림 속에 자리잡은 절간, 그러나 희한하게도 지붕에 나뭇잎과
가지가 하나도 없는 영험한 절, 부처의 기운이 몸에 스미는 듯
했다.
또한 이곳은 당금 무림을 지배하는 열 개의 하늘중 아미파의
장문이 기거하는 곳이기도 했다.
미독환사 전유는 아미장문 소석(蘇石) 선사(禪師)가 들어서는
순간 몸을 일으키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의 양 어깨에
무산파의 부흥이 걸려 있다 생각하니 천근 바위에 짓눌린 듯
마음이 무거웠다.
“아미타불…전 시주, 오랜만이구려.”
“장문께서는 더욱 기후가 좋아지신 것 같습니다.”
“허허허…!”
의례적인 수인사가 오고 갔다.
“이렇게 불원천리 찾아오신 연유는…”
전유는 다시 한번 마른침을 삼켰다. 입 안이 바짝 타 침도 나
오지 않았지만…
“도움을 청할까 합니다.”
간신히 말을 내뱉고 소석 선사의 기색을 살폈다. 그러나 선사
에게서 마음을 읽기는 불가능했다. 변함없이 인자한 미소를 머
금은 얼굴, 웃음이 배인 얼굴이었다.
오척 단구의 작은키, 살점이 하나도 없는 뼈만 남은 늙은이.
이런 노인이 금광도법(金光刀法)과 금정산수(金頂散手)를 절정
으로 익혔으며 대정신공(大靜神功)의 달인이라면 누가 믿을까?
“허허허! 아미파에 무슨 힘이 있다고…”
“장문, 무산파를 재건하려 합니다. 장문도 아시다시피 무산파
는 인의를 중시했습니다. 다른 문파에 해악을 끼친 적이 없잖
습니까?”
“허허허…!”
소석 선사는 사람좋은 웃음만 실실 흘렸다. 승낙도 아니고 거
부도 아닌 묘한 웃음이었다.
“장문!”
갈은 연배,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 중 한사람은
대문파의 장문으로 또 한 사람은 멸문 직전인 문파의 장로로
만났다. 그러나 전유는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든가 모멸감 같
은 것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그만큼 아미파의 도움은 절대적
이었다.
“허허허! 무산에서 문파를 다시 일으키려면 당문의 입김을 많
이 쐐야 할 텐데. 당문에 도움을 청하지 그랬소? 같은 독문이
니 훨씬 도움이 될 텐데…”
‘여우같은 늙은이.’
전유는 부지불식간에 튀어 나오려는 욕설을 간신히 억눌렀다.
“장문, 당문은 오히려 무산파를 멸문시키려 합니다. 그런 점을
모르시지는 않을 텐데요.”
“허허허! 그렇소? 당문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재기불능인데…
어찌 할 심산이오?”
“도와만 주신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아미타불…! 호북성에서 일전을 겨웠다고 들었소. 아마 독비
독심 당철목이 이끄는 형옥실과 싸운 것으로 아는데…”
당문 십절 중 일절과 싸우고도 승부를 가름하지 못한 주제에
무슨 헛소리냐? 지금도 당가 애송이들의 뒤꽁무니만 따라다니
고 있지 않느냐? 독술로도 상대가 되지 못하고 세력도 없으면
서 무슨 문파를 만들겠다고 이 난리냐?
뻔한 소리였다. 그리고 맞는 말이었다. 한 문파의 재건을 도와
주려면 막대한 금전을 소모해야 한다. 제삼 제사 숙고한 다음
투자해야 한다. 밑 빠진 독인 줄 뻔히 알면서 물을 부어 넣을
사람은 없었다.
보국사에서 받은 천대가 이와 무관하지 않으며, 복호사까지 와
서도 장문 처소로 안내받지 못하고 조그만 암자에서 만나는 까
닭이 그런 연유였다.
‘결국은…’
제갈문, 온갖 귀계에 뛰어난 그자가 하필이면 이런 자리에 자
신을 보낸 까닭을 몰랐다. 그의 말대로 당문과 대적 하겠다는
주장은 설독력이 없었다.
“차앗!”
우렁찬 일갈이 조그만 암차를 쩌렁 울렸다. 그와 동시에 전유
의 손에서 흑풍사가 양각풍(羊角風)처럼 말려 올랐다.
파앗!
소석 선사는 과연 일파의 장문이었다. 지척에서 전개한, 그 누
구도 피하지 못할 것 같은 흑풍사를 간단한 신법으로 비켜 내
며 턱밑까지 파고들었다. 무공을 떠나 신의 몸짓이라고 해야
할까?
“전 시주, 이게 무슨 짓이오?”
소석 선사의 눈은 화염처럼 이글거렸다. 감히 아미파에 들어와
장문인 자신에게 독을 전개하다니, 흑풍사 같은 것에 당할 줄
알았던가.
대나무 가지처럼 마른 그의 손은 칼끝처럼 날카롭게 곤두선 채
전유의 목젖에 들이대졌다. 아미파의 이름난 절기 금정산수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