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mains of the Poison King RAW novel - chapter 61
설명되었다.
환수 풍도건은 깊은 고뇌의 늪을 헤쳐 나왔다.
그는 먹물이 흠뻑 묻은 붓을 집어 들어 습자지에 일필휘지로
글을 써 내려갔다.
글을 다 쓴 풍도건은 입김을 조심스럽게 불어 먹물을 말렸다.
이윽고 먹물이 다 마르자 비둘기 한 마리를 꺼내 발목에 매달
린 전통 안에 전서를 밀어 넣었다. 봉창을 열고 오가는 사람들
을 세심하게 살핀 후, 비둘기를 힘차게 날렸다.
야공을 날아간 비둘기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춰 버렸다. 그런
데,
“풍도건, 부족한 점이 뭐였나?”
소스라치게 놀란 풍도건이 빙글 몸을 돌렸다.
“시, 실장님…!”
“섭섭하군. 자네를 친자식 이상 보살폈는데…”
풍도건은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혹 자신이 타문
파의 간자라 할지라도, 그런 사실을 알았다 할지라도 이렇게
대놓고 나타낼 실장님이 아니었다. 자신을 친자식 이상으로 사
랑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자신도 친아비같이 따랐으니
까.
“귀속칠가 중 몇 명 안 되는 부대주 중에 일인이니 남부러울
것 없는 명예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사천 당문이라는 이름이
있듯이 풍가라는 가문을 일으키고 싶었습니다.”
눈가가 파르르 경련했다. 그 점은 암기실장 천수나천 당두감도
마찬가지였다. 당두감의 얼굴에는 읍참마속(泣斬馬謖)하는 고
뇌의 표정이 역력히 드러났다.
“실장님, 저 하나뿐입니까?”
엉뚱한 물음이었다.
“열 둘.”
“모두 걸렸군요.”
“너하고 같이 보낸 기간…잊혀지지 않을게다.”
“존경했습니다.”
말을 마친 풍도건은 성명 절기 환수를 펼쳤다. 한 번에 열 개
의 암기를 던져 낸다는…목표는 자신의 신체였다. 기해혈(氣
海穴), 중극혈(中極穴)…
“잘가라…”
당두감은 붉어지는 눈시울을 소매로 찍으며 풍도건의 목을 베
었다. 열 두명의 시신은 귀신도 모르게 불태워졌다.
그들의 벗겨진 얼굴 가죽은 다른 사람이 뒤집어 썼다. 오랫동
안 생활 습성이나 버릇등을 세밀히 관찰했는지 행동이 무척 자
연스러웠다.
그리고 그날 풍가, 사기의 가주가 귀속칠가의 남은 무인 오십
이 명을 모두 데리고 소리없이 당문을 떠났다.
第 三 卷
鬼計難測
第 十五 章. 이율(利率), 저울로 달 수 없는 마음
( 一 )
꼬끼오! 꼬꼭! 꼬고고곡…!
투계(鬪鷄)들이 날개를 휘저으며 서로를 쪼아대는 모습은 표현
할 수 없는 흥분을 불러왔다. 서로를 공격하는 모습도 신랄했
지만 종국에 한 마리가 주둥이 사이로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광경은 인간 내면에 잠재된 폭력에의 욕구를 대신하는 것 같았
다.
갈홍아는 깊은 골짜기로 침강(沈降)했던 마음이 되살아났다.
“와아아! 와아…!”
흥분한 군중들은 목청이 터져라 함성을 질러댔다. 지금 막 투
계 한 마리의 머리에서 선혈이 샘솟 듯 뿜어 나왔다. 근 일 년
동안 주인의 정성 어린 보살핌과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으며
싸움이 시작되기 전 달아 본 중량도 한계 체중에 육박했던 닭
이었다. 필경 최종 승리의 꿈을 꾸었을 투계가 덧 없이 죽어
갔다.
갈홍아는 둥글게 쳐진 울타리 한쪽에 멀거니 서서 죽어 가는
투계의 눈을 직시했다. 무언(無言)에 죽은 사람의 눈을 바라보
면 악마의 저주를 받는다고 했는데 이런 미물의 눈도 포함되는
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당절휘의 자포독에 중독되었을 때 그 모습이 꼭 저렇지 않았을
까? 감기는 눈까풀을 밀어 올릴 힘도 없어 퇴색한 눈으로 생의
마지막을 의미없이 받아들이는 저 투계같이…내장이 뒤틀리던
고통…잠시 시간이 흐르자 참 편안했었지. 지금 저 투계는 고
통을 느낄까?
꼬끼오…!
싸움에서 이긴 투계는 목을 길게 뽑고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잠시 후 다른 투계 두 마리가 서로 기세를 올리며 날개를 푸덕
이자 사람들은 곧 동전 몇 문씩을 꺼내 내기를 걸었다.
저렇게 사는것이 인생이었다. 한쪽에서는 목숨을 걸고 싸우는
데 다른 한쪽에서는 그 모습을 보며 동전 몇 문을 잃거나 딴
다.
사람들끼리 으르렁 거리는 것은 누구의 장난일까? 당철휘와의
숙명적인 싸움, 단비하의 일생…인간을 지배하는 신이 있다면
어느쪽에 내기를 걸까?
그리고 목숨을 건 싸움에 내깃돈을 얼마나 걸까?
갈홍아는 흥분된 마음을 가라 앉히며 걸음을 옮겼다.
보름 동안 내처 달려왔다. 무작정 뒤를 쫓아왔지만 그가 향하
는 곳이 사천성(四川省) 성도부(成都府)일 것을 의심치 않았
다. 당문을 찾아갈 줄 알았기에…그런데 뜻밖에도 단비하는
청성산(靑城山)으로 왔다.
그리고 또 보름.
단비하는 움직일 줄 몰랐다. 청성산 입구에 있는 허름한 농가
를 빌려 거주할 곳을 마련한 다음, 낮에는 산에서 약초를 채집
하고 밤에는 단약을 제련했다. 무산에서부터 쉬지 않고 달려온
행동에 비하면 터무니 없을 정도로 느슨한 행동이었다.
갈홍아는 아무 소리 하지 못했다.
“그들은 이곳으로 왔어. 어디 있는지는 나도 모르지만 반드시
나타 날거야.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고 기다려.”
그 말 이후 단비하는 하루하루 생활에 충실했다. 그런 점이 갈
홍아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마치 아무런 목적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으니까. 그러나 갈홍아는 단비하의 말을 절대적
으로 믿었다.
무산에서부터 청성산까지 보름 동안의 여정, 정녕 피를 말리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정체를 알수 없는 복면인들은 끊임없이 앞길을 가로 막았다.
하나같이 독공을 절정으로 익힌 고수들…그들이 사용하는 독
도 치명적인 절독이었다. 조금이라도 방심한다면 그대로 황천
으로 직행하는 살얼음 판이었다.
단비하의 하독 솜씨는 날이 갈수록 고명해졌다. 내공을 사용하
는 기미는 전혀 없었다. 독을 살포하는 기구도 사용하지 않았
다. 하지만 자연적인 요건을 최대로 활용한 하독에 복면인들은
일 장 안으로 들어서지도 못했다.
“정말 당문에서 배우지 않았어?”
“당문에서? 후후후! 그렇다고 할수 있지. 또한 모모(姆姆m)의
무산파 절학이라고 할 수도 있고…”
“그게 무슨 소리야?”
“정확히 말하면 독을 다루는 모든 독문의 절학이라고 할수 있
지.”
“빙빙 돌려 말하지 말고 똑바로 이야기해 봐. 그럼 네가 전 독
문의 모든 독공을 귀일시켰단 말야?”
“뭐? 우하하하하…! 모든 독공을 귀일시켜? 어림없는 소리…
나는 그만큼 실력이 높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럴 생각도 없
어. 그럴만한 시간도 없고…내공을 지녔을때는…휴우! 그만
두자.”
아리송한 대화가 오간 다음부터 갈홍아는 단비하의 하독을 눈
여겨 보았다. 관찰이 용이하게끔 복면인들은 끊임없이 나타났
고, 단비하는 부지런히 손을 놀려야했다.
복면인들의 무공은 예전의 자신이라 할지라도 승부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지고했다. 분명 오랜 기간 혹독한 수련을 받았
음이 틀림없었다. 죽으면서도 극히 낮은 비음만 터뜨렸으니까.
생포되어 잔혹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벙어리처럼 굳게 입을 다
물었으니까.
그런 그들이 단비하에게 힘없이 쓰러졌다.
독을 무시하지 마라. 하류잡배들이 어두운 그늘에 숨어서 꼼지
락 거리는 그런 독이 아니다. 맞서 보자. 무공이라도 좋고 천
하절독이라도 좋다.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진정 거리낄 것
없다는 듯이 나타나는 복면인들을 그는 당당하게 물리쳤다.
‘이상해…이건 너무 이상해…’
단비하의 하독 방법에는 특이한 점이 없었다. 자신 또한 독에
대한 지식이 깊지 않으니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할머니의
독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아니 독술이랄 것까지도 없었다. 뭐라 할까? 굳이 독문을 들먹
일 필요도 없이 일상 생활에서 사용되는 그런 기초적인 방법만
이 동원되었다. 하지만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것임은 물론이
었다.
그날의 기후, 자신이 위치한 곳의 지형 지물을 완벽히 소화해
야 사용할 수 있는 독술이었다.
청성산에 와서 하는 짓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약초와 독물을 채집하고 단약을 제조한다는 것이 말은 그럴듯
하지만 실상 내막을 알고 보면 독문에 갓 입문한 무지렁이들이
하는 짓거리에 불과했다. 단비하는 그런 기초적인 작업을 하면
서도 무슨 큰 절학이라도 개발하는 듯 심각했다.
갈홍아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단비하가 하는 짓에 동조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혼자서 당문
을 쳐 들어갈 엄두는 도저히 생기지 않았다. 당문에 간다해도
당철휘 그놈이 있다는 것을 보장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자
칫하면 개죽음 당하기 십상이었다. 하울며 단비하는 당철휘가
청성산에 있다고 하지 않는가.
오늘도 여느 날처럼 심심파적으로 마을을 돌아봤다 동네 아낙
들은 천생배필이라고 쑤군덕거렸다. 남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종 잡을수 없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먹고 사니 아마 그들 눈에
는 부부처럼 보인 것 같았다.
그런 눈길이 왠지 밉지 않았다. 어느 땐가는 정말 그랬으면 하
는 생각을 자각하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도 있었다. 무슨 황당
한 생각인지…그의 결에는 이경화라는 여인이 있는데…설혹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시궁창에 더렵혀진 몸으로 여인의 능력
을 상실한 몸으로…하지만 후텁지근한 바람결에 묻어 오는 땀
냄새가 싫지는 않았다.
‘말도 안돼. 저런 촌녀석을…’
갈홍아는 자신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추슬렀다. 지금은 당철휘
한 놈을 죽이는 것만도 벅차지 않은가. 어써면 평생을 뒤쫓아
도 이루지 못할수도 있는데…
투계들의 싸움을 보고 흥에 겨워 술 마시는 모습을 보고
오늘은 마을 전체가 축제 분위기에 들떴다. 무슨 좋은 일이라
도 있는 모양이었다.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던 갈홍아는 황급히 신형을 숨겼다.
당자인…
사망산검과 일전을 겨웠던 조문덕이란 놈을 대동한 채 유유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작고 가녀린 놈은 분명 당자인이었다.
과연 단비하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저들이 이곳에 나타나다
니…
상식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행동이었다. 당문과는 별로 사이가
좋지 않은 청성파의 관할 구역을 유유히 걸어다니다니 호랑이
간이라도 삶아 먹었는가.
“그냥 확 쓸어 버립시다?”
“입 다물어라.”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멀리서도 또렷하게 들렸다.
“아, 그런 좀스런 놈들과 실랑이하려니 몸이 들쑤셔서 그렇지
요. 주모님은 골방에 들어가서 기척도 없고…에잉!”
“조용히 하지 못할까?”
“알았습니다. 알았어요. 입 꼭 다물고 있으면 되잖습니까.”
조문덕은 정말 입을 굳게 다물었지만 침묵은 오래가지 못했다.
“우리 이렇게 다리품만 팔지 말고 술이나 걸찍하게 마십시다.”
“술? 그것도 좋겠지.”
갈홍아는 당자인과 불곰처럼 커다란 덩치가 주루에 들어서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후 부리나케 신형을 날렸다.
당자인은 전갈 네 마리가 뒤엉킨 당문 고유의 무복을 입었다.
파문이라 생각한 순간부터 영원히 입지 못할 무복으로 생각했
는데…사마전에게 밀지를 받았지만 당문 무복을 입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청성산 부근에 밀집해 있는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당문을 두더
지 취급하는 반당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경멸스런 눈초
리로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청성…빌어먹을 청성에 들어서면
서부터 하루에도 열댓 번씩 보아야 하는 눈초리들…
예전의 당문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흠모와 존경을 받았다. 독에
중독된 사람들은 물론, 고질적인 병을 않던 사람들도 당문에서
는 거뜬히 치료해 줬다. 살아 있는 신의 손 그렇게 불리는 사
람들이 항시 너댓명씩 존재했다.
그러던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당기룡이 당문주로 취임하면서
부터…
당문 십절, 신의 손이라 불리던 당문 십절이 독공의 대가들로
교체되었다. 축출된 사람들이 가는 곳은 오직 한군데뿐. 당문
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영원한 은거에 들어갔다. 신의 손은
사라졌다. 대신 죽음의 손이 나타났다.
당문의 무력(武力)은 구파일방에 버금갈 정도로 높아졌다.
하지만 세인들의 존경은 무력과 비례하여 추락하고 말았다. 일
반적으로 다른 문파들이 무력과 동시에 존경이 높아지는 것을
생각한다면 모순된 일이지만 이해 못 할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약초 도매상들과 결탁하여 이윤을 추구한 현실도 존경심을 떨
어뜨리는 데 한몫을 했다. 많은 독단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불
가피한 일이었지만…
“지난 보름 동안 눈에 불을 켜고 찾아봤지만 삼절의 행방은 오
리무중이에요. 그를 끌어 내는 방법은 오직 하나, 전면전이죠.
당신은 청성의 이목을 집중시키세요. 사소한 시비면 충분할 거
예요. 정말로 전면전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만약 그
런 일이 생긴다면…호호호! 책임을 혼자 걸머져야 돼요.”
“만약 삼절이 나타난다면?”
“그는 당철휘가 요리할 거예요. 그도 마찬가지죠. 실패한다면
그 혼자 책임을 져야해요.”
“흥! 당철휘 따위가 삼절을?”
“그의 독공은 당문 십절의 수준에 올랐어요. 암산이라면 그를
능가할 사람이 없어요. 조문덕을 상대로 내기해 볼까요?”
한연지의 눈은 귀광으로 번쩍였다.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정
말 조문덕이 암산 당할것 같은 예감에 몸을 떨어야했다.
“너는 뭐 할 거냐?”
“청성의 이목이 당신에게 돌려진 틈을 이용해서 삼절을 찾아
내야죠. 그를 죽일 방법도 찾아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