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staurant where the fox waits RAW novel - Chapter 21
제21화
21화
저승사자.
더럽게 잘생겼고, 더럽게 싸가지 없던 올 블랙 패션 성애자.
그가 어느샌가 소반에 있었다.
당황하는 기색 하나 없이 평범하게 인사하는 태규를 저승사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쏘아보았다.
“오셨어요? 오셨어요 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네. 야, 이 제대로 도른 자야. 너 또…….”
“또 마음대로 사람들 운명에 간섭했다고요? 어떻게 아셨대. 소식이 빠르시네요.”
“지금 웃냐? 야, 넌 저승사자가 우스워?”
저승사자는 머리끝까지 화가 난 채로 씨익씨익 화를 내고 있었지만, 도리어 태규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자신을 놀리는 줄 알았던 저승사자가 소리를 빼액 질렀다. 태규는 그를 조금 진정시키며 말했다.
“차사님 보고 웃은 건 아니고요. 그냥, 그렇잖아요. 지금 이렇게 다시 찾아와서 저한테 뭐라 하신다는 거 자체가, 다시 생각해 보면.”
그만큼 확실하게. 서아가 살아났다는 뜻이었으니까.
“그쵸?”
“와…… 이거 진짜 생각보다 더 도라이네.”
“압빠한테 나뿐 말 하지 마!”
“어허, 미호야. 어른한테는 존댓말 써야지.”
“웅? 웅! 나뿐 말 하지 마요!!”
“허허허, 아주 이것들이 쌍으로 지금 저승사자 놀려 먹으려고 작정을 했나.”
“제가 사실 차사님 돌아가시고 나서 조금 생각을 해 봤거든요?”
“뭔 생각. 생각하지 마, 너는 그냥. 아무 생각도 안 하면 안 되냐?”
“아니, 차사님이 그러셨잖아요. 신이라고 해도 생각보다 간섭할 수 있는 건 되게 적다면서요.”
“그래서 뭐.”
“그러니까 제가 지금 제멋대로 이러고 다녀도, 차사님은 막 엄청난 방해는 못 하시는 거 아니에요? 저랑 미호 다시 데려가실 것도 아니잖아요. 그쵸.”
“…….”
정곡을 찔린 탓일까. 길길이 날뛰던 저승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물론, 그게 오래가진 않았다.
“세상이 말세다, 말세. 하다 하다 한낱 인간이 저승사자한테 이런 소리나 찍찍 싸고 앉았고. 야, 지금 해 보자는 거지. 엉? 네가 몰라서 그런데, 내가 제대로 화나면 아주 그냥, 어?”
정말 한 대 치기라도 할 기세로 천천히 태규를 향해 다가오는 저승.
아무리 그래도 너무 세게 나갔나 싶었던 태규가 슬슬 사과하려고 생각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네가 화내 봤자 뭐 우짤 긴데, 끌끌.”
“어?”
뒤쪽에서 들려오는 노령의 목소리. 하지만 처음 들어 보는 건 아니었다.
가장 먼저 스윽 내다본 미호가 활짝 웃으며 소리쳤다.
“와아! 아줌마다!”
“어어어?!”
미호가 아줌마라고 부를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두부 가게 할머니.
아니, 단순한 할머니는 아닌 누군가.
그런 할머니를 발견한 저승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기세등등하던 아까까지의 기세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채, 심지어 손까지 덜덜 떨었다.
“착한 일 하는 애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협박질이나 하고 앉았고. 아주 그냥 애한테 못 하는 말이 읎지? 응?”
“사, 삼신 할매. 당신이 어떻게 여기…….”
삼신 할매라고, 저승은 말했다.
가정의 가장 큰 신이자 태어나는 아이들을 점지해 준다는 신, 삼신할머니.
그렇다는 건 저 할머니가 정말로…….
“여기 왜 오긴 왜 왔겠어.”
저승이 삼신의 이름을 부르고 정체를 밝힌 순간.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의 모습이었던 그녀의 모습이 순식간에 변했다.
태규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아름다운 외모에, 아름다운 색동 한복을 입은.
립스틱과 매니큐어까지 새빨갛게 칠한 그녀는 정말로 미호가 계속 이야기했던 모습과 똑같았다.
“내 자식 놈 배고프대서 배 좀 채워 주려고 왔지.”
“아니…… 진짜, 하아.”
또각, 또각.
멘탈이 완전히 나가 버린 저승을 뒤로한 채, 삼신은 태규에게 천천히 걸어왔다.
예쁘다, 라는 말보다도 아름답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저승과 마찬가지로 영화배우 같은 외모에 숨을 헉 들이켰다.
“아가, 고생 많았어. 결국에는 해냈네. 장하다.”
“삼신님께서 많이 도와주셔서, 그래서 할 수 있었던 거죠. 제가 감사합니다.”
“음식에 마음 담는 거. 그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 아니야. 멋졌어. 그리고, 우리 작은 아가도.”
“아줌마!”
“오랜만이네. 잘 있었어? 아빠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더니. 만나니까 좋아 보이네.”
“우웅? 움…… 아!”
삼신은 미호를 아는 것처럼 보였다. 시장에서 몇 번 본 걸로 오랜만이라고 하진 않았으니까.
미호도 그런 삼신의 말에 조금 당황한 듯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귀를 쫑긋 세우며 소리쳤다.
“삼신 할무니!”
“나 기억나지?”
“웅! 웅! 처음에는 옷 때무네 잘 몰랐는데. 냄새 마트니까 기억나써요!”
도대체 어떻게 미호와 삼신이 서로를 알고 있는 걸까.
궁금해하던 태규에게 삼신이 웃으며 알려 주었다.
“우리 큰 아가는 기억 못 하겠지만. 예전에 작은 아가 어머니 살아 있을 때, 내가 먹을 것도 많이 가져다주고 그랬거든.”
“마자요! 할무니가 막 닭고기랑 두부랑 나무리랑…… 아무튼 마싯는 고 많이 가져다조써요!”
미호 어머니 살아 있을 때면 그게 아마 조선 시대일 텐데.
태규의 전생. 그가 선비였을 때, 삼신에게 신세를 졌다는 걸 이제야 알아 버렸다.
생각보다 가지고 있던 연이라는 게 훨씬 더 깊을 수도 있겠구나. 잠시 고민하던 태규가 삼신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예전에 저희를 많이 도와주셨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기억이 없습니다. 죄송해요. 처음에도 바로 알아뵙지 못하고 실례를 저지른 것 같아서.”
“괜찮아. 어쩌면 당연한 건데 뭘. 애초에 나도 한번 지켜보자는 생각이었고. 그래도 네가 이렇게 훌륭하게 보여 줬으니까, 이젠 내 차례라는 거지. 안 그래? 우리 저승 아가야.”
“내가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었죠.”
뭣 씹은 표정으로 삼신과 태규를 바라보던 저승이 짜증 나 죽겠다는 표정으로 으르렁거렸다.
하기야, 그렇게나 자존심 세고 콧대 높아 보이던 저승이 무려 아가 소리를 듣고 있으니 저런 반응이 나올 법도 했다.
물론 그렇다 해서 삼신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왜? 삼신이 뭐 하는 신인데. 모든 인간들의 어머니 아니니? 우리 아가들, 다 내가 하나하나 예쁘게 점지해 줘서 태어난 거잖아. 내가 너희 걱정을 얼마나 하는데.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집에 불은 잘 때는지.”
“또 저 소리 하신다. 왠지 이상하다 싶긴 했어. 서아, 그 애도. 내가 어떻게든 소반 근처에 못 가게 하려고 방해를 하는데도 애가 기를 쓰고 찾아가더니. 할매가 도와준 거 아니야.”
“우리 저승이 똑똑하네?”
“하아.”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푸욱 내쉬는 저승.
그가 이 정도까지 말리는 모습은 처음 봤는데 말이다.
순간, 분위기가 사뭇 진지해졌다. 이전까지는 명절날 뵈러 간 할머니 같은 눈빛의 삼신이었지만, 지금은 정말로 신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힘으로 저승을 바라보았다.
조금 애처로운 목소리. 정말로 자식에게 묻는 어머니처럼 그녀는 이야기했다.
“태규가 그래도 어떻게든 잘살아 보려고, 미호 잘 키워 보려고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저승 아가. 우리 애기들 좀 가만히, 그냥 예쁘게 자라도록 둘 수는 없는 거니?”
“그럼 제가 물어봅시다. 할매가 그렇게 다 도와줘서, 사람들이 다 잘됐어요?”
그러나 저승사자도 만만치는 않았다. 그 또한 진지하게 하고 싶었던 말이 있던 것인지 묵은 마음들을 토해 내듯 소리쳤다.
“당신이 그렇게 정성으로 하나하나 점지한 애들 중에 범죄자가 얼마인지나 알아요? 사기꾼, 살인자, 자식을 짐승 다루듯 하는 말종들. 차마 입에 담기도 뭣한 짓 해서 지금 지옥 불에 활활 타고 있는 애들이 몇인지 아냐고요.”
“아니, 무슨…….”
“내가 그런 애들 데려갈 때마다 아주 꼴좋다 싶어요. 이제 지옥 갈 거라는 말 들은 걔네 표정이 어떤지 모르죠? 나쁜 짓 하고 산 놈들은 지가 제일 잘 알거든요.”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는 모른다. 그리고 아마 알 수도 없을 것이었다.
평범한 인간보다 까마득하게 많은 세월을 살아오며, 평범한 인간들은 겪을 수조차 없는 일을 하는 저승의 입장이니. 그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했는지 태규는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말이 너무 심하잖아.
“아저씨 나빠써! 아줌마한테 나쁜 말 해써!!”
“미호 말이 맞아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주 예전의 추억을 기억해 버린 탓일까. 진심으로 화가 난 미호 또한 흰색 귀와 꼬리를 전부 드러낸 채로 저승을 바라보며 하악거렸다.
그리고 이런 말을 들어 버린 삼신의 대답은.
“그래도 한 번 정도는, 기회를 줘 볼 수도 있는 거 아니니.”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났다는 감정은 조금도 없이, 그저 한없이 자애로운 목소리로 이렇게 부탁하듯 말할 뿐이었다.
“내가 많이 부족한 탓인지 안 좋은 길을 택하는 아가들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기회 한 번은 주고 싶네.”
“……또 그딴 소리나 할 줄 알았는데. 내가 미쳤다고 당신이랑 이야기를 했네.”
웃으며 이야기한 삼신이지만 도리어 저승의 표정은 확 썩어 버렸다.
진짜 질려서 못 해 먹겠다.
그런 티를 팍팍 내며, 저승은 ‘쯧’ 하고 혀를 한번 차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소반 밖으로 나가 순식간에 검은 연기로 변해 사라져 버렸다.
조금 얼떨떨한 기분. 잠시 우물쭈물하던 태규가 조심스럽게 한마디 했다.
“저승사자님이랑 연이 깊으신가 보네요.”
“어쩔 수 없이 그리되더라. 서로 비슷해서 그런가?”
“비슷하다니요?”
한 색깔로 온몸을 도배하는 패션 센스가 비슷하다는 말씀이신가 싶었는데.
“아니, 이름이 비슷하잖니. 난 삼신이고, 쟤는 사신이고.”
“어…….”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기분 탓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