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staurant where the fox waits RAW novel - Chapter 31
제31화
31화
아버지.
이 세 글자에 담긴 무게는 겪어 본 사람만 알 수 있었다.
당연한 것이지만, 도리어 당연하기 때문에 무거웠다.
아버지이기에. 내 아이이기에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위험을 감수하든, 어떤 고생을 하든. 나 자신보다 소중한 내 새끼를 위해서 해야만 하고, 당연히 감수할 수 있는 일.
“해 봐야죠. 그게 맞는 것 같네요.”
“응원할게요. 혹시라도 출출하시면 소반 오세요. 맛있는 거 해 드릴게요.”
“당연하죠. 감사합니다, 태규 사장님.”
부르릉-!
순식간에 계산을 마친 뒤, 최시원은 트럭을 타고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을지는 조금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태규와 이야기를 나누고 소반을 나서는 그의 눈빛에는 아까보다 훨씬 더 생기가 넘쳤다는 것이다.
그런 눈을 하는 아버지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태규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기에 응원했다.
‘잘될 거예요. 삼신님도 도와주고 계시는데.’
아까 그가 했던 말처럼.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길 바랐다.
* * *
“죄송합니다, 오늘은 어려울 것 같아요.”
– 아이고, 괜찮아. 괜찮아. 평소 그렇게나 빠릿빠릿하던 최시원 사장이 갑자기 이러는 거면, 그만큼 급한 일이 있는 거겠지. 걱정하지 말고 내일 봐요. 응?
“감사합니다!”
트럭 안에서 전화를 끊은 최시원이 후우, 하고 깊은숨을 내쉬었다.
본래 오늘은 5시부터 일정이 있었다. 쌀과 농작물 일부를 대주는 상회 쪽과 미팅을 하기로 한 것인데, 큰 고민 없이 내일로 미룰 수 없겠냐 전화해 물어보았다.
신뢰로 먹고사는 상인들 입장에서 당일에 이러는 건 큰 실례긴 했지만, 평소 시원의 행실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별말도 없이 약속을 미뤄 주었다.
그만큼 시원이 잘 살아왔다는 뜻이겠지.
깊은 감사와 죄송함을 전하며, 오늘 남은 일정을 전부 비워 낸 시원이 잠시 고민하다 이내 트럭을 몰고 어딘가로 달려갔다.
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유치원. 내 딸, 미애가 다니는 그 유치원으로.
도착하자 오후 6시 정도 되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를 발견한 선생님 한 명이 후다닥 달려 나왔다.
“혹시 어떻게 오셨어요?”
“아, 딸애 데리러 왔어요. 미애라고. 여기 있죠?”
“아하! 미애 아버님이시구나! 잠시만요.”
미애 아버님이라고, 그렇게 불러 주었다.
참 당연한 말인데. 이게 뭐라고 가슴 한구석이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래. 내가 미애 아버지지.
“아빠아!!”
선생님이 안으로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애가 유치원 안에서 우다다 뛰어나왔다.
녀석이 나온 곳을 확인해 보니, 다른 아이들은 전부 집에 돌아간 채였다. 홀로 틀어진 TV와 여기저기 널브러진 장난감과 동화책. 속이 쓰렸다. 미안해서. 계속 혼자 기다리고 있었을 딸을 볼 면목이 없어서.
하지만 녀석은 그저 행복해 보였다. 달려 나온 미애가 시원의 품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나 데리러 온 거예요?”
“응. 미애 데리러 왔어. 계속 혼자 있던 거야? 안 심심했어?”
“우웅, 갠차나요. 선생님들이랑 놀다가 티브이 보다가 하면 되니까.”
“배는 안 고프고?”
“조금?”
“그래. 아빠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배고프면 안 되지.”
“좋아요. 근데, 아빠한테 이상한 냄새 나.”
시원의 품속에서 연신 코를 킁킁거리던 미애. 아까 먹고 나왔던 청국장 냄새가 조금 남았던 것일까.
혹시 나쁘게 느끼려나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그래? 이상해?”
“으응. 좋아요. 맛있는 냄새!”
이 나이면 청국장 냄새 이상하다고 싫어하는 게 오히려 평범한 걸 텐데. 미애는 맛있는 냄새라고 말해 주었다.
역시 내 딸이구나. 아빠를, 나를 닮았구나.
그렇게 생각하자 절로 웃음이 피식 튀어나왔다. 시원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다음 미애를 데리고 유치원을 나왔다.
6시면 한창 성장기일 애들은 배고플 시간인 게 당연했다.
급한 대로 유치원 근처 식당에 들어가 돈가스를 시켜 먹여 준 다음, 사뭇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미애야, 아빠가 몇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응. 뭔데요?”
“미애 엄마 말이야. 혹시…… 요새 어떤지 말해 줄 수 있어? 그냥, 미애가 평소에 집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엄마는 뭐 하는 건지.”
“우웅, 알겠어요.”
잠시 고민하던 미애였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눈앞에 있는 아빠. 믿을 수 있는 사람. 사랑하는 부모님. 그렇기에 대답했다.
조금의 거짓도 없이, 미애 자신이 느끼고 눈으로 본 있는 그대로 전부 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시원의 눈썹이 순간 크게 움찔거렸다. 하지만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말해 줘서 고마워, 우리 딸.”
“아빠…….”
“응?”
“엄마랑 싸울 거예요?”
조심스럽게 물어 오는 미애. 이제 유치원 다니는 녀석의 얼굴에는 나이에 맞지 않는 조심스러움이 가득했다.
그 점이 가장 마음 아팠다. 그냥 해맑게, 오늘 뭐 먹고 뭐 하고 놀지만 생각하며 죽어라 놀아도 부족할 아이가 이런 표정을 짓는다는 것 자체가 정말 슬펐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해야만 했다. 오늘 담판을 짓지 않으면 미애는 하루 더 고생할 것이었기에. 나는 우리 딸 아빠니까. 그런 죄를 지을 수는 없었기에.
“아빠는 싸우기 싫어. 그러니까…… 예쁘게 이야기해 볼게. 미애가 아빠한테 해 준 것처럼.”
“웅! 좋아요.”
느긋하게 밥을 먹인 뒤 다시 유치원 앞에 주차해 둔 트럭으로 돌아갔다.
미애를 조수석에 태우고 같이 유튜브를 보며 놀아 주고 있자니, 8시가 넘어서야 뭉그적거리며 유치원 앞에 애 엄마가 나타났다.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네에.”
미애에게 만화가 나오던 휴대폰을 들려 준 다음 조심스럽게 트럭에서 내렸다.
시원의 트럭을 알아본 애 엄마는 아까부터 표정이 썩어 있었는데, 거기서 내리기까지 하자 허! 하며 헛웃음을 쳤다.
“뭐 하자는 거야? 지금?”
“우리 미애 보러 왔지.”
“지금 유치원에 트럭 끌고 온 거야? 내가 미치겠다, 진짜. 넌 지금도 내 생각은 하나도 안 하지? 이딴 후진 트럭 끌고 온 거 다른 애 엄마들이 보면 나를 뭐라고 생각하겠어? 쪽팔려서 죽겠다 진짜. 어?!”
도리어 화를 내는 그녀.
화를 내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먼저 약속을 깨 버린 건 시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화는 미애가 아닌, 순수하게 자신만을 위하고 있었다. 그 안에 미애는 없었다.
이 트럭 때문에 내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났으니까. 너 때문에 내 급이 떨어져 보이니까.
그렇기에 시원은 화가 났다. 진심으로,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미안한데, 그건 내가 할 말이거든.”
“뭐? 너 진짜 미쳤냐?”
“그것도 마찬가지로 내가 할 말이고. 나는 쪽팔려 해도 돼. 멋진 직업은 아니니까. 근데 네가, 미애 키운다는 사람이 애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
“뭔 소리야, 갑자기. 술이라도 마셨냐?”
“미애가 다 말해 줬어. 네가 어떻게 애를 키우고 있는지. 전부 다.”
화가 너무 심하게 나면 도리어 사람이 차분해진다고 했던가. 지금의 시원이 딱 그랬다.
조곤조곤 이야기하지만 목소리는 그 무엇보다도 차가웠다.
그 기에 눌린 것인지, 자신 있게 말을 내뱉던 애 엄마가 순간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애 속옷이나 양말도 제대로 안 사 주고. 빨래도 안 해서 팬티를 이틀씩 입고. 밥은 허구한 날 배달이나 편의점 음식 먹이고. 애 혼자 밥도 안 먹이고 유치원에 8시까지 내버려 두고.”
“그, 그건…….”
“요새 빠르면 8시고, 늦으면 9시에 온다며. 미애가 그러더라. 유치원 선생님들이 미애 엄마는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길래 애한테 이러는 건지 수군거리는 거 들었다고. 애가 그 상황에서 무슨 생각 했을지, 넌 고민이라도 해 봤냐? 아니, 못 했겠지. 애 생각도 안 했으니까.”
잘 키워 줄 줄 알았다.
아니, 그래도 양육권 가져간 애 엄마니까. 다른 애들에게 남부럽지 않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최소한의 애정이라도 쏟아 줄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뭐야. 진짜 이게 뭐냐고. 응?
“너 요새 뭐 하고 다니냐? 직장 잡은 거 아니잖아. 그치? 내가 보내 주는 돈은 다 어디에 썼어? 한 달에 4, 5백만 원. 그거 절대로 적은 돈 아니야.”
“그냥, 미애 장난감도 사 주고…….”
“장난감을 사 줘? 애가 그 흔한 장난감 하나 없어서 유치원에서 다른 애들한테 굽신거리면서 빌린다더라. 이제 일곱 살인 애가!!!”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를 쳐 버렸다. 아니, 여기까지 참은 게 더 용했다.
직접 찾아와 본 상황은 상상 그 이상이었으니까.
“방치고 방임이야. 애 엄마 노릇, 네가 한 게 뭐가 있는데 도대체.”
“내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그냥, 요새 일 찾아보고 하면서…….”
“야.”
쓰잘데없는 변명이고 거짓말임을 알고는 있었다.
네가 쓰레기 같은, 엄마라는 말도 아까운 인간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양육권을 가진 건 너니까. 정말 개같이 인정하기 싫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나라에서 그렇게 정했으니까.
그렇기에 시원은 여기에 온 거다.
협박도 뭣도 아니고. 그냥 단순히 부탁을 하고 싶어서. 사람으로서 호소하고 싶어서.
“돈 줄게.”
“뭐?”
“다 알아. 좀 솔직해지자고. 너 미애 데려간 거, 결국 돈 때문이잖아. 아니라는 소리 하지 마.”
“…….”
“양육비는 계속 보내 줄게. 아니, 내가 일 죽어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더 넉넉하게 보내 줄게. 그래도 불안하면 이 자리에서 양육권 소송 안 하겠다는 각서까지 써 줄게.”
상상과는 다른 이야기가 나온 탓일까. 그녀가 조금 놀란 표정으로 시원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제발. 진짜 제발! 내가 이렇게 부탁 좀 하자.”
“뭔데.”
“잘 좀 키워 주라. 밥 잘 먹이고, 옷 잘 입히고, 주말에 나들이도 가고 장난감도 좀 사 주고 하면서. 그냥…… 그냥, 잘 좀 키워 주라. 네 애잖아. 네가 배 아파서 낳은 네 애잖아.”
그녀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런 건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하고 싶었던 말들을 진심으로 할 뿐이었다.
“너 차에, 핸드폰에 미애 사진 하나라도 있어? 미애가 무슨 음식 좋아하는지 알아? 만약에 모르면, 지금이라도 좀 알아 가라고. 자신 없으면 나한테 보내도 돼. 그러니까 그냥…… 잘 좀 키워 주라. 제발. 내가 이렇게 부탁할게.”
“생각은…… 해 볼게.”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이거였다.
생각은 해 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