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04
104화 저주독룡들의 주인 (1)
“그렇게 노려본다 해도 네가 뭘 할 수 있지?”
놈이 비웃음을 흘렸다. 그것이 바늘처럼 날카롭게 찔러 들어왔다. 시발, 그래 틀린 말은 아니지. 나 혼자서는 F급 던전에서도 빌빌거리겠지만.
“네놈 애완동물을 두 마리 족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지. 쓸데없이 머리통 셋이나 단 비만 도마뱀, 아주 회를 쳐 놨는데 혹시 보셨나? 서커스단 출신인지 두 발로 잘도 걸어 다니는 도마뱀은 또 어떻고. 머리부터 꼬챙이로 푹 꿰뚫어서 통으로 노릇노릇 잘 익혀 놓았는데. 아직 남아 있을 테니 가서 맛이라도 보시지?”
거대 도마뱀 편육과 통구이, 절찬 판매 중입니다. 가지고 올 수만 있었으면 이 새끼 주둥이까지 손수 배달해 줬을 텐데 진심으로 아쉽다.
“간이 부었군.”
“내 동생 물어 죽인, 씨발, 도마뱀 새끼 주인 앞에 두고 이 정도면 더럽게 침착한 거지. 너무 침착해서 스스로가 짜증 날 정도다.”
나는 왜 약한 거지. 동생 죽게 만든 새끼를 코앞에 두고도 입만 떠드는 신세가 한심하다. 이러니까 유현이도 나한테 아무 말 못 했지.
한껏 이를 으득 갈았다. 안 돼. 지금은 바닥 긁을 때가 아니다. 지난 수년간 충분히 많이, 제 무덤 자리 만들고도 남을 정도로 파헤쳐 놓았으니 지금은 잊자.
“그렇게나 동생을 생각하면서 왜 아직 살아 있는 거지?”
멱살을 잡은 내 손목을 비늘이 드문드문 비치는 손이 움켜잡는다. 손목이 부러질 듯 비틀렸지만 통증은 멀게만 느껴졌다. 대신 놈의 목소리가 귀에 뚜렷이 박혀들었다.
“너만 없었다면 한유현은 자유로워질 수 있었을 텐데. 우리의 제안 또한 온전히 스스로의 실리만 따져 받아들이거나 거절했겠지. 약해빠진 피붙이의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은 채.”
문득 성현제가 떠올랐다. 그리고 리에트도. 그 둘에 비해 유현이는… 훨씬 부자유스러워 보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걱정하던 눈빛. 화내고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는, 다른 두 사람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들.
…정말 아픈 곳만 정확히 찌르는구나, 빌어먹을 새끼.
“그래. F급 형이 그렇지 뭐. 멀쩡히 살아 있어서 내가 정말 잘못했다.”
맞는 말이라고, 고개 끄덕여 주었다.
“근데 네놈은 그 공기가 아까운 F급한테 두 번이나 발목 잡혔잖아. 등급 떨어지고도 SSS급쯤은 되는 거 같은데, 원래는 L급 정도 되나? 그러고도 F급 때문에 절절매기나 하시고. 나는 등급이라도 낮지 나보단 등급값 하등 못 하는 너 새끼가 마시는 공기가 더 아깝—”
퍽, 소리와 함께 걷어차였다. 나뒹굴어 바닥과 부딪힌 부분이 둔하게 아프다. 틀어 잡혔던 손목도 아려오고. 진짜 몸뚱이는 아니건만 실감 팍팍 나네.
“심지어 성현제한테도 사기 당했다며?”
바닥을 짚어 상체를 일으키며 빈정거렸다. 성현제의 이름이 나오자 놈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회귀 전의 현제 씨 리스펙트. 뭔 짓 했는지는 모르겠다만 무조건 잘하셨어.
“퍼줄 거 다 퍼줬더니 받아만 먹고 튄 모양이던데 회귀하니까 이때다 싶어 새벽 두 시 구남친처럼 찝쩍대다가 탈탈 털리고. 완전 개호구 아니냐. 이참에 용인종 말고 호구종으로 바꾸지 그래?”
“…성현제는, 예상 밖이었다. 자기 자신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인간이 불확실한 미래에 기대어 배신을 할 줄이야.”
“뭔 허구한 날 그럴 줄 몰랐다, 예상 밖이다냐. 태생 S급이 몇이나 된다고 죄다 틀려먹어? 심지어 리에트도 제대로 못 끌어들이고. 차라리 동전을 던져 결정하는 게 성공 확률이 더 높겠다.”
“리에트.”
금색 눈이 사납게 치켜올라갔다. 내 앞까지 다가온 놈이 몸을 굽혀 내려다봐 왔다.
“어떻게 디오 발쉐시스에게 내린 명령을 해제시킨 거냐.”
…확실히 이놈들은 시스템 제작자들에 비해 정보가 적다. 내 스킬도, 칭호도 모르는 게 분명했다.
“라우치타스 앞에서는 또 어떻게 살아남았지? 패륜아들이 협조한 건가?”
“패륜아?”
“시스템을 만들고 관리하는 놈들이다.”
그쪽은 왜 또 패륜아지. 진짜 성현제 말대로 세계 멸망이 소원인 부모님을 두고 자식들끼리 편 갈라 다투기라도 하는 건가. 집안싸움에 남의 가족 끌어들이지 마라, 망할 새끼들아.
“서로 언급 못 하는 줄 알았는데.”
“밖에서는 그렇지. 하지만 여기는 내 의식 속이다. 혼자 하는 생각에까지 제한이 걸려 있지는 않아. 정확히는 네 의식과 겹쳐 있는 상태지만.”
역시 실제는 아니군. 일종의 강한 자각몽 같은 건가. 정신계 스킬이고 진짜 신체는 멀쩡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손목의 통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비틀리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고 다쳤다고 믿어 버린 탓이었다.
사실은 가짜, 라고 되뇌도 이렇게나 생생한 감각을 무시하기란 힘들다.
“꼬박꼬박 대답 한번 참 잘해 주시네. 그간 꽤나 심심하셨나 봐.”
“네 세계와 직접 연결하는 일이 잦진 않을 뿐더러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게 몇 없으니 무료하긴 했지. 혹은 순순히 덫에 들어와 준 무력한 사냥감을 위한 자비라고 할까.”
자비는 무슨. 그러나 무력한 건 사실이라 무심코 한숨이 새었다.
“시스템을 만든 자들에 대해 아는 것을 보니 역시 관계가 있군. 하지만 F급 상대인데, 대체 무엇을 받았지?”
받은 거? 장난치냐 싶은 스킬 명은 여럿 받았지.
“누구처럼 버튼만 누르면 줄줄 대답하는 자동응답기가 아니라서. 말해 줄 것 같냐.”
“순순히 대답하는 게 서로 편할 텐데.”
놈이 왼쪽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손바닥에 나 있는 세 개의 상처 중 하나가 벌어지며 무언가가 기어 나온다. 시커먼 진흙 같은 것이 형체를 이루고, 작게 으르렁거리며 순식간에 덩치를 키웠다.
쿵! 묵직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내려선 것은 늑대의 두 배쯤 되는 크기의 용이었다. 네 다리와 단단한 비늘, 가시와 긴 꼬리를 갖춘 그리 크지 않은 저주독룡종. 덩치는 작지만 등급은 대략 S급쯤은 되는 듯했다.
‘저 상처에 전부 저주독룡종을 담고 있는 건가?’
드러난 부위만 해도 열 개는 넘음직하다. 가려진 몸에는 대체 얼마나 많은 상처가 있을까. 저주독룡왕의 주인이라더니, 라우치타스 말고도 많이도 키우는구만. 애동 부자네.
“조금 전 말했듯이 여기는 의식 속이라 갈기갈기 찢어 기억을 찾아내는 것도 가능하지.”
– 크르르.
주인의 옆에 선 드래곤이 번견처럼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두어 발 물러섰지만, 역시 대책은 없었다. 혹시나 싶어 인벤토리를 열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스탯 F급 상대하면서 아이템도 죄다 빼앗아가다니. 그러고도 L급이냐.”
“비쿠스와는 의식을 연결해 놓았기에 네게 피해 무효화 능력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처음부터 쓰지 않았으니 아이템류겠지. 그런 아이템을 사용해서야 귀찮아질 테니 스킬을 펼칠 때 아이템과 인벤토리에 제약을 걸었다. 그래도 옷은 남겨 주었다만.”
그것 참 감사합니다.
“혹시 그 아이템을 패륜아들로부터 받은 건가? 하지만 피해 무효화만으로는 라우치타스를 죽일 수 없었을 텐데.”
“열심히 고민해 봐, 개새끼야.”
대답 대신 드래곤이 움직였다. 아, 진짜 망했군.
* * *
피 냄새가 지겹다. 내 거라서 더더욱.
바닥을 온통 시뻘겋게 물들이며 몇 가지를 더 알게 되었다.
하나는 즉사할 정도의 충격을 받게 되면 실제 몸뚱이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몸통, 특히 머리는 대체로 무사했다. 끝까지 무사하긴 어렵겠지만.
그리고 심각한 부상도 실제는 아니기에 자기암시만 잘하면 금방 멀쩡해졌다. 자잘한 부상보다는 팔다리가 날아간 게 실감이 안 나서인가 더 회복하기 쉬웠다. 눈 감고 내 팔이 없을 리가 없잖아, 하고 다시 눈 뜨면 옷까지 멀쩡하게 돌아왔다.
세 번째로는 원하는 기억을 쏙쏙 골라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저 빌어먹을 도마뱀 새끼가 맨 처음 끄집어낸 것은 처음 몬스터에게 공격받았을 때의 기억이었다. 그리고 10레벨 스킬이 나오지 않아서 좌절했을 때랑 원래 살던 집이 너무 넓고 휑하게 느껴져서 이사했을 때, 처음으로 혼자 보낸 크리스마스 따위였다.
그러다가 겨우 하나 건진 게 라우치타스를 잡고 나온 소원석을 사용할 때의 기억이었다.
“소원석이라니. 심지어 그걸 회귀하는 데 쓴 건가. 자칫 귀찮아질 뻔했군.”
개새끼가 기분 나쁘게 웃었다.
“지금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도 있다, 라면 일시적으로 무언가 얻은 모양이로군. 패륜아들의 개입인가? 아니면 한유현이 무슨 수를 쓴 건가.”
“비만 도마뱀새끼가 주인 명령 따르는 게 지겨워졌는지 죽여 달라고 배 까뒤집고 꼬리 치더라. 키우던 애동한테도 배신당하고, 혹시 취미가 배신, 큭!”
내 등을 짓누른 발이 발톱을 세웠다.
“소원석까지 나왔다면 라우치타스를 직접 죽인 건 확실하겠지. 그 밖의 것도 보상으로 나왔을 테고. 칭호인가? 저주독룡종과 연관 있는 상위 칭호. 리에트에 더해 성현제가 계약을 어기고도 멀쩡했던 것도 그 탓이겠군.”
놈이 인상을 찌푸린 채 혀를 쯧 찼다.
“아직까지 멀쩡히 나불거리는 걸 보니 정신계 저항류에, 또 뭐가 있지?”
“대답 안 해 줄 거 뻔히 알면서 몇 번을 물어보는 거야? 헛수고 되게 좋아하시네. 아님 머리가 나쁜 건가. 그 애동에 그 주인?”
“정말 귀찮은 스킬이야. 평범한 스탯 F라면 이미 파헤치고도 남았을 것을.”
“그러게 아이템 말고 스킬이나 막지 그랬냐.”
물론 진짜 그랬다간 내가 곤란해졌겠지만. 탈탈 털리고 그리고, 역시 살려 보내진 않겠지. 망할. 버티는 것 외엔 여전히 답이 없다.
“막을 수 있다면 막았겠지.”
놈이 아쉽다는 듯 말했다. 아이템이나 인벤토리는 없앨 수 있어도 스킬은 못 건드린다는 건가. 둘이 뭐가 다르지. 내게 직접적으로 속해 있는 거? 내 몸에서 떼어내지 못하는 거?
아니 무슨 차이가 있든 간에.
‘애초에 스킬도 아이템도 진짜는 아니잖아. 실제가 아니라 의식 속이니까. 일종의 꿈이라면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있는 거고 없다고 생각하면 없는, 그런 거 아닌가.’
잘려 나간 팔이 있다고 확신하면 멀쩡히 돌아오는 것처럼.
“대체 어떻게 막은 거냐. 내가 아이템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뿅 나타나야 하는 거 아닌가? 어차피 머릿속인데 왜 난 계속 약한 거고.”
“일종의 강력한 암시지. 아이템을 가지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대답은 참 잘한단 말이야.
“꿈속에서 날아오른다 해도 이건 불가능한데, 생각하는 순간 추락하는 것과 비슷하다. 현실감이 강하기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스스로의 고정관념에 얽매여 하지 못하게 되는 거지. 그 고정관념을 더욱 단단히 굳혀 주면 아이템과 인벤토리를 쓰지 못하게 하는 것쯤이야 쉬워.”
“잘나셨네요. 뒤집어 말하면 뭐든 할 수 있긴 있다는 건가?”
“이론적으로는. 하나 현실과 다름없는 감각 속에서 직접 체험해 본 적도 없는 능력을 끄집어내기란 불가능하지. 스탯 F가 갑자기 S급이 되는 건 무리라는 뜻이다. 제아무리 상상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한계가 있으니. 그보다도.”
놈이 제 턱 아래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이대로는 끝이 안 날 듯하니 방향을 틀어 봐야겠군. 예를 들면, 한유현의 시체라든가.”
“…그게 왜.”
지금 나오는 거냐.
“회귀하면서 없어진 건, 알아.”
“원래라면 그랬겠지. 하지만 이미 말했듯이 한유현은 새롭게 계약을 한 상태였기에 죽었다고 해도 계약에 따른 간섭은 가능했다.”
여유롭게 까닥이는 손끝을 멍청히 쳐다보았다. 계약해서, 간섭 가능했다고……?
“아니, 오히려 사망했기에 건드릴 수 있었다고 해야겠군. 살아 있었다면 이 세계에서 잘려 나가지 않은 채 손댈 틈도 없이 현재의 한유현과 합쳐졌을 테니까. 하지만 계약에 묶인 죽은 시체는 어렵지 않게 손에 넣을 수 있었지.”
…무슨 소리를 들은 건지 얼른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 동생을… 네놈이 데리고 있다고?”
“계약을 한 건 나였지만 챙겨 간 자는 별을 헤아리는 새다. 그녀가 어째서인지 관심을 보여 가지고 갔지. 나는 시체에는 관심 없어.”
발톱이 파고든 등보다 그 아래, 안쪽 깊숙한 곳이 더욱 아팠다. 그런 내 반응을 놈이 달갑게 살펴보았다.
“역시 이쪽이 더 효과가 좋은데. 한유현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 볼까.”
“…네 입에서 들을 생각 없어.”
머릿속이 약간 멍했다. 조금 붕 뜨는 느낌 같은 것도 들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반응은—”
“체험이라.”
쿠르릉!
소리의 울림과 함께 빛이 튀었다.
– 캬악!
나를 짓밟고 있던 드래곤이 전격을 맞고 펄쩍 튄다. 용새끼 주인 또한 갑작스럽게 휘몰아친 섬광을 피해 뒤로 물러났다.
“이건!”
“성현제 그 인간 스킬을 한두 번 겪어 본 게 아니거든.”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살벌한 병아리반 선생님 스킬. 내게 직접적으로 전해져 오는 감각을 몇 번이나 겪었다. 번개를 다루는 그 움직임 하나하나, 마력의 요동침도, 스킬이 지닌 힘과 더욱 세심한 부분까지.
내가 직접 사용하듯 느꼈다.
“머리에 열이 오르니, 약간 몽롱해지는 게 쓰기 쉽네.”
그냥 그때의 감각 그대로 몸을 맡기면 되니까.
– 크르릉!
몸의 절반 가까이가 타 버린 용새끼가 비틀거리며 덤벼들었다. 위로 뛰어오르며, 날개를 펼쳤다. 금빛 용의 날개. 노아의 것이다. 드래곤인 채로, 날개만 꺼낸 채로, 비행 연습한다고 수없이 감각을 공유했었지. 조교는 블루였고.
파지지직!
공중에 떠오른 채로 다시금 전격을 흩뿌렸다. 사슬도 장침도 없어 퍼져 나가는 전류였지만 효과는 뛰어났다. 용의 비명이 울린다.
그도 그럴 게.
[베테랑 F급] [라우치타스의 천적]두 배. 그리고 다시 두 배.
웃으면서 망할 도마뱀 주인 새끼를 바라보았다.
“SSS급이었나? L급이라도 상관없지만.”
아직 하나 더 남아 있거든. 고작 한 시간이었지만 감각 공유 이상으로, 너무나도 선명하게 내 몸에 직접 깃들었던 힘.
바닥을 붉게 물들이고 있던 피가 검게 변색한다. 이어, 지독하게 불타오르는 흑혈염이 되었다.
– 캬아아아!
아직 숨이 붙어 있던 드래곤이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 주인 놈도 버티지 못하고 허둥지둥 몸을 피한다.
마지막 보답. 다시 두 배.
“방법을 가르쳐 줘서 정말 고마워.”
유현아.
“이번엔 내가 네 기억을 뒤져 볼 차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형이 데리러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