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7
17화 인사팀장 (2)
고풍스러운 접대실이었다. 전체적인 인테리어는 동양풍에, 고전적인 서양식 가구가 언밸런스한 듯 어울리게 배치되어 있었다. 석시명의 성격상 여기 있는 고가구는 전부 진품일 것이다.
안내하는 대로 검은 가죽 소파에 앉자 음료가 권해졌다. 여기도 원두 종류 물어볼 분위기구만.
“오렌지 주스로 부탁합니다.”
“저도 주스요.”
내 옆에 앉은 박예림이 말했다.
맞은편에 앉은 석시명은 인자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내가 갑자기 쌍욕을 퍼붓더라도 하하하, 그렇군요 하고 자애롭게 넘어갈 것 같은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해연 길드를 우선적으로 선택해 주신 것에 대해 먼저 감사를 드리겠습니다.”
석시명이 정중하다 못해 달달하게까지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낀 건데 저 아저씨 목소리 하나는 끝내준다. 신사적인 호감상에 좋은 목소리라니, 그야말로 영업왕이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예림이도 목소리에 반쯤 낚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 아저씨가 얼마나 독해질 수 있는지 잘 아는 나는 넘어가지 않았다.
좋은 목소리로 뼈 찔리니까 숨이 다 막히더라.
“솔직히 말씀드려 혈연이 큰 역할을 했지요.”
석시명을 따라 미소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 이전에, 박예림 양이 저를 믿어 준 덕분이기도 하고요.”
“아저씨가 믿을 수 있게 행동한 게 제일 먼저죠.”
예림이가 내 팔을 덥석 붙잡았다. 일하는 중에 달라붙지 마라. 너한텐 중요한 계약이야.
“박예림 님께선 아직 공격형 스킬은 없으시지만 그림자 없는 낮과 차가운 탄식만으로도 충분히 전투 적성 헌터라 할 수 있습니다. 근력 스탯이 S급 평균에 조금 못 미치긴 하지만 자체 버프가 가능하니 문제없을 테고요.”
석시명이 제법 정확하게 예림이의 상태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모르겠지만 예전의 박예림은 전투 마법사였기에 근력 스탯은 크게 중요치 않았다. 빙 계열 공격 스킬만 순조롭게 얻는다면 마력 스탯 버프에 빙 속성 스킬 버프 넣어서…….
무쌍 찍겠네. 추가 버프까지 받으면 아주 몬스터를 쓸고 다닐 것이다.
여기에 헤르메스의 신발이 민첩 버프에 비행, 순간이동까지 달려 있으니 완전 사기구만.
나는 새삼스럽게 예림이를 쳐다보았다.
“왜 그래요?”
“아니, 그냥.”
S급이 최적화 스킬 다니까 연계가 장난 아니구나. 빙계 마법만 쓸 때도 강했는데 이젠 아주 괴물이 되겠군. 유현이 녀석 뺨치겠다.
‘그러고 보니 유현이도 상태창 한번 확인해 봐야겠군.’
내 새끼 스킬 대기 시간이 아직 한참 남아서 확인해 보지 않았다. 그 녀석도 최적화 스킬 못 받은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보고 맞춰서 스킬 써 줘야지.
“전투 헌터의 길드 계약 조건은 보통 던전 할당량과 장비 지급이 주가 됩니다. A급 이상 던전의 경우 각 길드마다 할당량이 정해져 있지요.”
A급 이상 던전을 얼마나 많이 관리할 수 있느냐에 따라 길드의 위상이 달라진다. 현재의 해연 길드는 3대 길드 바로 다음으로 많은 던전을 관리하고 있었지 아마?
“박예림 님께서는 아직 미성년자의 신분이기에 B급 던전부터 공략이 가능합니다. 좀 더 빠르게 A급 이상의 공략을 원하신다면 C나 D정도의 던전을 10회 클리어하시는 것을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상급 던전 공략은 서두르지 않을 생각입니다.”
내가 말했다. 예림이는 이제 겨우 열다섯 살이다. 섣불리 A이상 던전을 공략하기보다는 중하급 던전에서 전투와 스킬 사용에 익숙해지는 편이 낫다.
전투 마법사라면 스킬 응용력이 특히나 더 중요하니까 충분한 연습이 필요했다.
“향후 1년은 성장에 중점을 두고 싶습니다.”
“좋은 선택이시군요.”
석시명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로서도 그편을 권하고 싶습니다. 천천히 경험을 쌓아 가며 여러 길드원과 손발을 맞추다가 S급 공략 팀을 새로 편성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니까요.”
S급 던전 공략 팀에는 S급 전투 헌터가 한 명 이상 포함되어야만 한다. 공략 방법이 완성된 S급 하위 던전이라면 A급 팀도 공략이 가능했지만 중위부터는 불가능했다. 상위야 말할 것도 없고. 그러니 해연 길드로서는 박예림이 유현이의 팀에 들어가는 것보단 경험을 쌓아 자기 팀을 만드는 편이 훨씬 유리했다.
S급 공략 팀이 둘이 된다는 것은 공동 관리 중인 S급 던전의 권리를 몇 개 더 가지고 올 수 있다는 뜻이니까.
“다만 그렇게 되면 자연히 계약 기간이 더 길어지게 됩니다. 대신 박예림 님의 성장에 필요한 지원은 아끼지 않겠습니다.”
“특정 길드와 전속 계약한 S급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내 S급은 정부 소속 한 명을 제외하곤 모두 길드장이다. 해외 역시 이때까지는 대부분 길드장이나 정부 소속이며 나머지 극소수는 전부 프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프리헌터는 소속되지 않고 정부나 길드에서 요청을 하면 단기 계약을 통해 협조하는 형식으로 일한다.
“그러니 던전을 공략하지 않고 소속만 되어 있다 해도 해연 길드로서는 상당한 이득일 텐데요. 성장 지원을 핑계로 계약 기간을 늘리겠다는 것은 과한 욕심이시지요.”
S급 헌터를 두 명이나 보유한 길드! 세계적으로도 최초, 유일이니 이름값 상승치만 생각해도 엄청날 것이다.
생각할수록 유현이 놈 어제 후견인 가지고 트집 잡은 게 이해가 안 되네. 그게 길드장으로서 할 짓이냐. 후견인 정도가 아니라 형을 아예 팔아서라도 계약서 도장은 찍고 봐야지.
“생각 이상으로 헌터계에 대해 잘 파악하고 계시는군요.”
석시명이 놀랐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저, 그 동네에서 5년이나 굴렀습니다. 바닥만 치느라 상위 헌터들의 세계까진 속속들이 알지 못하지만 전체적인 경향이야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현재로선 없지.
예언자가 아니고서야 내가 최고다.
“말씀하신 대로 박예림 님께서 길드에 소속되는 것만으로도 저희로서는 큰 이득입니다. 이거 섣불리 이득을 취하려다가 한 방 먹었군요.”
말과는 달리 석시명은 기분이 꽤나 좋아 보였다. 뭐지, 다른 함정이라도 파 놓았나.
“A급 헌터의 경우 기본 5년 계약에 2년 차부터 매년 실적에 따라 200% 상한선 갱신이 평균적인 계약 조건입니다. 그러니 3년 계약에 1년 차부터 매년 실적에 따라 상한선 없이 갱신은 어떻습니까.”
미래의 길드 소속 S급들은 1년 단위로 계약, 조건 갱신 재계약을 기본으로 두었다.
하지만 예림이의 나이와 해연 길드의 성장세를 생각하면 3년 계약도 나쁘진 않았다. 3년 후면 딱 18세니 내 도움도 더는 필요 없을 테고. 적당하네.
“어떻게 생각해?”
예림이를 돌아보며 묻자 그녀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전 들어도 잘 모르겠어요. 아저씨가 알아서 해 주세요.”
“간단히 말해 앞으로 3년 동안 해연 길드 소속이 되는 거야. 다른 길드에는 갈 수 없어.”
“그럼 아저씨는요? 아저씨도 저런 계약 해요?”
응? 여기서 내가 왜 나오냐.
“나야 뭐… 그냥 이대로지? 인지도 있는 길드는 F급 안 받아.”
D급 이하가 길드장인 동네 친목모임 수준의 길드라면 모를까 C급 길드장만 되어도 F급은 길드에 들이지 않는다. 아니, 헌터가 아닌 잡일꾼으로는 쓰긴 하지.
“안 돼요. 아저씨도 3년 계약해야 해요.”
박예림이 단호하게 말했다. 후견인도 모자라 아예 덤으로 끼워 넣을 생각이냐. 왜 이래.
“계약 조건에 넣어 줄 수 있죠?”
“물론 가능합니다.”
예림이와 석시명이 주거니 받거니 했다. 저기, 부디 내 의견도 물어봐 주지 않을래요?
“계약은 무슨 계약이냐. 안 해. 나는 그냥 너 자리 잡는 것만 도와주고 노… 쉴 거야.”
김성한은 그냥 포기하고 예림이와 유명우, 유현이 녀석 정도에게만 간간히 스킬 써서 키워 주고 끝낼 거다. 인간 말고 몬스터나 키우면서 유유자적하게 살 건데 길드 가입은 무슨.
1년에 상급 기승수 한 마리만 키워내도 돈 펑펑 쓰며 잘 먹고 잘살 텐데 뭐 하러 사서 고생을 하겠냐.
내 말에 박예림이 울상을 지었다.
“책임지신댔잖아요! 3년, 딱 3년만 계약해요!”
팔 그만 잡아당겨라. 아프다.
“계약 안 해도 3년은 네 후견인 해 줄 거니 걱정 마. 못 믿겠으면 새로 계약서 하나 써 줄게.”
“그래도 이왕이면 같은 길드에 들어가면 좋잖아요.”
“내 동생이 여기 길드장이야. 정식 계약만 안 했지 이미 반쯤은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거든? 그러니 딴 데 안 간다.”
여기서 꿀 빨 건데 어딜 가겠냐. 예림이가 조금쯤 안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진짜 다른 데 안 갈 거죠?”
“안 가. 받아 주는 데도 없어.”
지금은, 말이지. 기승수를 키워내게 되면 어느 길드에서든 두 팔 벌려 환영해 줄 것이다. 물론 옮길 생각은 없지만.
예림이를 달래 놓고 다시 계약 조건 협상에 들어갔다.
S급 헌터의 기본급은 연 천만 달러 정도다. 적어 보이지만 이건 말 그대로 기본급으로 진짜 수익은 던전에서 나오는데, S급 던전의 경우 평균배분율이 8:2였다. 던전 공략 준비 비용은 전부 길드에서 부담하고도 공략 팀이 8을 가져가는 것이다.
팀의 리더인 S급 헌터는 그 공략 팀 수익에서 공적에 따라 최소 5에서 최대 8까지 가져간다. S급 던전을 한 번 공략하면 천만 달러 정도야 우습다. 그래서 대부분의 헌터는 기본급보다 수익배분율을 중요시했다.
“헌터 계약은 처음이실 텐데 어째 저보다 더 조율에 능숙하신 것 같습니다.”
석시명이 줄줄이 늘어진 조건 사항을 눈으로 훑으며 말했다.
그야 아저씨는 3년 차고 전 5년 차니까요. 게다가 각성 전에도 동생 때문에 헌터계에 기웃거려댔었다. 즉 쌓인 정보량만 치자면 무려 8년 치이니 내가 더 능숙할 수밖에.
헌터 전문 채널에서 해준 S급 헌터 특집 시리즈를 열 번은 더 돌려 봤었다고. 계약 조건쯤이야 아주 달달 외운다.
“이 정도면 S급 전투 헌터 표준 계약서로 삼아도 되겠군요. S급 헌터를 언제 다시 영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표준 계약서 맞습니다, 그거. 각성센터 생기고 S급들이 슬금슬금 늘면서 이런저런 사건 거치고 한 2년쯤 뒤에 나온 거였지, 아마.
정확히는 표준 계약서를 예림이 상황에 맞게 살짝 고친 것이었다. 표준 계약서는 성인 전투 헌터 기준이니까.
“S급 장비 우선권과 경매권은 아직 쓰지 않겠습니다. 일단 레벨 10때의 스킬을 확인한 뒤 결정하는 편이 나을 테니까요.”
10레벨 정도야 금방 오른다. 창백한 비가 나오면 좋을 텐데. 그럼 바로 빙 계열 마법 위주 장비를 갖추면 된다.
“알겠습니다. 여러모로 정말 완벽하시군요. 박예림 님의 신임을 얻으실 만합니다. 마치 몇 년은 헌터계에서 활동하신 분 같아요.”
“하하, 바로 며칠 전에 각성했는걸요.”
내가 너무 아는 척을 했나. 그래도 이왕 쌓인 지식 안 써먹기엔 아깝다.
계약 조건 조율을 마무리 짓고 계약서를 출력한 뒤 서명했다. 지장도 찍고.
예림이가 손가락에 묻은 인주를 내 손등에 문질렀다. 야 인마, 하트 그리지 마.
“각성자 등록은 내일 바로 하러 가셔도 됩니다. 이야기 전해 두겠습니다.”
아마 기자들에게도 연락을 넣겠지. 크게 화제가 될 사건이니까 화려하게 포장해 내보내려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박예림 님께 돌아갔어야 할 유산과 관련된 자료입니다. 유용하게 쓰실 수 있을 겁니다.”
석시명이 서류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오, 감사.
“잘 쓰겠습니다.”
이제 대충 다 끝났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석시명이 나를 붙잡았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예? 뭔가 더 남은 게 있나요?”
다 끝난 거 같은데. 석시명의 의욕 넘치는 눈길이 나를 똑바로 찔러왔다.
“한유진 씨와 계약하고 싶습니다.”
…아니 난 또 왜? 안 한댔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