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96
196화 소장님 (6)
“안녕하세요.”
한유진이 작게 인사했다. 목소리부터 표정, 태도까지 모두 주눅 든 티가 역력했다. 상급 헌터들 사이에 끼인 스탯 F라면 당연한 모습이었기에 두 일본인은 아무런 의심 없이 마주 머리 숙였다.
“한유진 소장님의 기승수 사육 스킬에 대해서는 저희 일본 제일의 길드, 아마테라스에서도 무척이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 예. 감사합니다.”
“‘검은 소의 숲’ 던전을 원하시는 것도 기승수를 구하기 위함이시겠지요.”
“…예.”
떨떠름한 대답이었다. 동시에 한유진이 세성 길드장의 눈치를 살피는 것을 나카지마는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았다.
“이미 기본적인 조율은 끝이 났으니 길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지.”
성현제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한유진은 머뭇거리다가 그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그늘이 드리워진 한유진의 얼굴에 나카지마가 한껏 상냥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검은 소의 숲을 필요로 하시는 분은 한유진 소장님이시고 슬라임 던전은 해연 길드의 소유가 아닙니까. 그러니 저희 측에서는 한유진 소장님의 의견이 중요하다고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겉보기에는 한유진을 위해 주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속내에는 상대하기 편한 사람을 붙잡고 휘두르겠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동시에 기승수 사육소의 주인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는 속셈도 있었다.
퍼져 있는 소문처럼 마수사육사가 주위의 S급 헌터에게 억압되어 있는 것이라면, 잘 구슬려 빼돌리는 것도 가능할 터였으니. 지금의 모습으로 보아선 헛소문이 아닌 듯해, 나카지마는 더더욱 친절한 미소를 머금었다.
“한유진 군도 그렇게 생각하나?”
성현제의 가벼운 물음에 한유진의 시선이 테이블로 떨어졌다.
“저는, 그냥…….”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한 소장님.”
나카지마의 말에 한유진이 고개를 살짝 들었다. 눈동자가 이리저리 헤엄치다가 성현제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거리는 것에 나카지마가 재차 격려했다.
“괜찮습니다. 걱정 말고 말씀하십시오, 이 나카지마 귀담아듣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슬라임 던전은 해연 길드의 것입니다.”
한유진이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주눅 든 것은 여전했지만 한결 용기를 얻은 모습이었다.
“일본의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새끼 몬스터 또한 제 관할이고요.”
“그렇고말고요.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나카지마는 세성 길드장의 눈치를 살피며 맞장구를 쳤다. 성현제는 의외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저는, 이번 협상에서…….”
잠깐 힘이 들어갔나 싶던 한유진의 목소리가 또다시 작아졌다. 참지 못한 한숨을 흘리며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 모습에 나카지마가 목을 뻣뻣이 세우며 세성 길드장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세성 길드장님, 혹 괜찮으시다면 잠깐이나마 자리를 피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시면 한유진 소장님께서 좀 더 편히 대화를 나누실 수 있을 듯합니다.”
S급 헌터에게 나가 달라 말하는 것은 나카지마로서는 크나큰 각오를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등급이 절대적인 일본의 헌터였기에 이 정도의 반항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졌다. 하지만 상대는 해외의 헌터이며 무엇보다 자국의 길드를 위한 일이다.
성현제가 눈가를 살짝 휘며 입을 열었다.
“우리 한 소장님이 워낙 귀하고 소중한 분이시라. 보호자도 없이 타국 헌터들과 둘 수는 없는 일이네만.”
“목숨이 열 개쯤 되지 않고서야 어찌 감히 세성 길드장님의 보호하에 있는 사람을 해치겠습니까. 한유진 소장님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린다면 세성 길드장님의 손을 더럽힐 것도 없이 직접 제 배를 가르겠습니다.”
“그렇게까지는…….”
한유진이 작게 중얼거리고 나카지마가 믿어달라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재차 부탁드리겠습니다, 세성 길드장님. 한유진 소장님께도 기회를 주십시오.”
손가락으로 가볍게 턱을 괴고 있던 성현제가 시선을 천천히 움직여 한유진을 바라보았다.
“한 소장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
“저는…….”
“걱정 말고 솔직하게 대답해 주십시오.”
나카지마의 부추김 속에서 한유진이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세성 길드장님, 잠시만 이쪽으로 와 주세요.”
회의실의 구석으로 간 한유진이 성현제에게 무어라 작게 속삭였다. A급 헌터인 두 일본인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이어 성현제에게 간절하게 말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방금 한 말은 잊지 않고 기억해 두겠네.”
“예.”
성현제는 긴말 않고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한유진이 힘없이 자리로 돌아왔다. 아마도 무언가 대가를 제안하고 세성 길드장을 내보낸 것이리라. 나카지마가 한껏 걱정스런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너무 무리하신 건 아니신지요.”
“…괜찮습니다. 세성 길드장님께서도 정도를 아시는 분이시니 과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불안한 듯 테이블 위에 올린 양손을 맞잡아 꼼지락대던 한유진이 크게 한숨을 토해 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검은 소의 숲 던전을 원하지 않습니다.”
“…예?”
나카지마와 그 옆의 일본인이 당황했다.
“새끼 몬스터를 성장시키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갑니다. 단시간에 여러 마리를 성장시킬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세성 길드장님께서는… 제게 일반 기승수 수 마리를 빠르게 키워내길 요구해 왔습니다. 일본의 던전을 차지한다면 새끼 몬스터 수급은 쉬워질 테니까요.”
한유진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것도 세성이 아닌 해연 소유의 던전을 미끼로 내걸면서 말입니다. 겉으로는 해연에도 도움이 되고, 기승수 사육소의 크기도 키울 좋은 기회라 말하지만… 실제로는 세성에서 저를 갉아먹으려 드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기승수를 완벽히 갖춘 S급 공략팀을 만들어 낼 거라고 하더군요.”
“아… 그렇습니까.”
나카지마와 그 동료가 난감한 듯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일본의 던전을 필요로 하지 않다니. 아니, 되레 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니.
“그래도 A급 새끼 몬스터를 안정적으로 구할 수 있게 된다면 향후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냥 의뢰를 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아니, 솔직히 벅찹니다. 제가 직접 나서서 새끼 몬스터를 구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어요. 그러니 가능하다면 이번 협상을, 없었던 일로 해 주시면 안 될까요.”
간절한 목소리에 나카지마가 미간을 좁혔다. 한유진이 원하는 대로 협상을 취소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각종 생산품의 재료가 되는 슬라임 던전을 차지할 기회를 놓칠 순 없다. 무엇보다 일본에는 아직까지 C급 이하 슬라임 던전밖에 나타나질 않았다. 상급 재료용 슬라임은 해외에서 전량 수입해야만 하는 처지인 것이었다.
“…세성 길드장님께서 받아들이지 않으실 듯 합니다만.”
“…예. 그렇겠지요.”
한유진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나카지마가 한유진을 설득했다.
“어차피 협상을 무효화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아니요. 포기하기엔 이릅니다.”
한유진이 돌연 시선을 곧게 들어 올렸다. 어깨를 펴고 나카지마를 마주 바라보았다.
“초면의 해외 헌터께서도 이렇게나 저를 응원해 주시는데 계속 기죽어 있어서야 부끄러운 노릇이 아니겠습니까.”
“아, 그것이…….”
“나카지마 씨께서는 제 편이시지요?”
수줍게 웃으며 하는 말에 나카지마가 말을 더듬거렸다. 슬라임 던전을 어떻게든 차지해야 한다. 하지만 한유진의 편을 들어주는 것도 중요했다. A급 헌터로서의 기세를 살려 협박을 해야 하나, 끝까지 좋게 설득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나카지마가 크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부디 저를 도와주세요.”
“물론 도와드리겠습니다만, 한 소장님. 협상을 진행하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닙니다.”
나카지마가 달래듯 사근사근한 어조로 말했다. S급 헌터라 해도 회의실 문밖에서는 엿듣기 힘든 작은 목소리였다.
“대놓고 반발하기에는 세성 길드장은 버거운 거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일단은 숙이는 척 물밑으로 이득을 취하시지요.”
“이득이요?”
“예. 하라다 헌터.”
나카지마의 부름에 옆의 헌터가 인벤토리에서 계약서와 서류뭉치를 꺼내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한유진 소장님의 존재 없이는 검은 소의 숲 던전의 가치는 그리 높지 않습니다. 때문에 만약을 대비해 일종의 덤을 몇 가지 준비해 왔습니다.”
협상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때를 위한 것들이었다.
“세성 길드장은 단순 교환으로 만족하는 듯하니, 한유진 소장님께서 조용히 가져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한유진의 시선이 테이블 위의 서류를 향하였다. 일본어와 한국어, 두 가지 언어로 적힌 서류에는 각종 아이템 목록이 줄지어 있었다.
“…제가 일본어를 몰라서 정확하게 번역이 되었는지 조금, 의심이 갑니다.”
“그것을 위해 여기 이 계약서가 있습니다. 원하는 아이템을 제공하겠다는 계약서를 작성하면…….”
“지금부터 30분간 제가 묻는 아이템에 대해 사실대로 솔직하게 설명하겠다는 계약을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아, 예. 그렇게 하시면 되겠군요.”
나카지마는 계약서를 작성하며 조금 의아하게 한유진을 바라보았다. 고등학교 중퇴에 검정고시를 쳤으며 대학은 가지 못한 채 변변치 못한 일이나 하던, 고작해야 스물다섯 살짜리로 알고 있다. 당연히 이런 자리는 어색하고 서툴러야만 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능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봤자 S급 헌터 손에 쥐인 F급이지만.’
지금도 저렇게 잠깐 의욕을 내비쳤다가, 이내 눈을 내리깐다.
“배려해 주시는 것은 진심으로 감사합니다만, 역시 해연 길드가 마음에 걸리네요.”
“해연 길드가요?”
“예. 슬라임 던전을 세성이 가로채어 제 욕심을 채우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여러 가지,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는 뒷사정이 있기는 합니다만……. 겉보기도 그렇고 실제로도 무척이나 손해 보는 일이라 역시 가능하면 이번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는 편이…….”
또다시 우물거리는 한유진의 모습에 나카지마가 속으로 혀를 찼다. 어째 쉬울 듯 쉽게 넘어오질 않는다. 머리를 굴리던 나카지마가 교활하게 눈빛을 빛냈다.
“하면 이런 방식은 어떠하겠습니까. 일본에서는 헌터 사이에서 분란이 있을 경우, 동일 등급의 결투를 통해 승리자가 모든 것을 차지합니다.”
“결투요?”
한유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드디어 나왔구나.’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겉으로는 어리둥절한 척했다. 나카어쩌고가 느끼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처럼 헌터의 위세가 법규를 넘을 정도로 강하고 등급이 중세 계급 수준으로 취급받는 나라에서는 던전 관리권이나 아이템 소유권을 두고 분란이 일 경우 길드전, 또는 개인전을 벌여 해결하는 게 보편적이었다. 말 그대로 강한 자가 다 해먹었다.
야만적이고 불합리한 방식이지만 지금만큼은 반가웠다. 다 해먹는 거 좋지.
“예. 슬라임 던전은 어디까지나 해연 길드의 소유이니 해연의 헌터와 저희 측 헌터가 결투를 벌이는 것이지요. 교환이 아닌 승자가 패자의 던전을 가지고 가는 겁니다.”
“…해연의 헌터라면.”
“박예림 헌터가 걸맞겠지요. 각성한 지 이제 겨우 3개월 지났으니 승부에서 패배한다 해도 흠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결과가 아슬아슬할 정도로 훌륭하게 싸웠다고 하면 오히려 앞날이 기대되는 유망주로 이름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일본인이 역시나 예림이를 노려왔다. 아직 자신의 팀으로 S급 던전 공략 경험조차 없는 햇병아리 헌터. 만만하게 느껴지겠지.
“하지만 결국 해연에서 일방적으로 던전을 잃고 끝나는 게 아닙니까.”
“당연히 대가를 지불해 드려야지요. 물밑으로 한유진 소장님과 해연 길드가 대가를 받고 세성 길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좋은 한 방이 되지 않겠습니까? 심지어 겉으로는 세성 길드장을 따르는 것처럼 보일 테니 후환도 두렵지 않을 겁니다.”
히죽거리는 나모 씨를 마주 보며 어설프게 미소 지어 주었다. 이것 참, 너무 잘해 주셔서 쥐꼬리만큼 미안해지려고 하네.
“정말 훌륭한 방법 같습니다만… 슬라임 던전의 가치는 작지 않습니다. 해연에 그만한 대가를 주실 수 있을까요?”
“만약을 대비해서 준비해 온 물건이 있습니다.”
나 뭐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검은색의, 로브와 코트의 중간쯤 되는 형태의 옷이었다.
허리의 끈 부분에 알 수 없는 문양과 새의 깃털 모양 장식이 달려 있었다. 분명 기억에 있는 장비인지라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참아내기 힘들었다.
저거 진짜 그건가. 진짠가. 분명 일본 길드장 소유물이긴 했는데 정말로 저걸 내놓겠다고.
“일본 S급 던전 첫 공략 때 나온 ‘푸른 천둥새의 예장’입니다. 무려 SS급 장비지요.”
“SS급이요?”
“예, 직접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나모 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옷을 걸쳐 주었다. 물론 옷자락은 붙잡고 있는 채였다. 혹여 인벤토리에 넣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
“기본 옵션 증가에 순간 속도 상승 스킬, 데미지를 받을수록 방어력이 중첩 증가하고… 전(電) 속성 저항 S급까지 있군요!”
연기할 필요 없이 진심으로 활짝 웃었다. 알지, 이거. 아마테라스 길드장이 랭킹전에서 자주 사용했던 장비다. 속성 저항을 자랑하면서 랭킹 1위인 성현제를 쓰러뜨릴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다며 떠들어 댔었지.
물론 소리만 요란하고 한 번도 이긴 적은 없었다. 하지만 유현이가 가지게 된다면 말이 달라질 것이다. 속성 저항 외의 다른 옵션도 훌륭하고 속성별로 다 맞춰서 상황에 맞게 착용하는 게 최고기도 하니까 무척이나 탐나는 장비였다.
“일본에서도 SS급 장비는 흔치 않을 텐데요.”
“물론 그렇습니다만 저희 길드장님께서 주로 사용하시는 SS급 외투는 따로 있습니다. 천둥새의 예장은 길드장님의 능력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으며 속성 저항의 종류도 현재로서는 필요치 않은 것이거든요. 반면에 해연 길드는 언제든 세성과 맞부딪칠 가능성이 있으니 무척이나 유용할 겁니다.”
아직 S급 세계 랭킹전은 없으니까 저렇게 나올 법했다. 근데 SS급 외투가 또 있다니.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아이템이 배쯤 많이 나왔다고 해도 기껏해야 두세 개쯤 될 텐데 자국의 최상급 아이템이란 아이템은 죄다 긁어모은 건가. 거대 길드의 횡포다.
“그럼 정말로 이걸 대가로 주시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흡족하시리라 믿습니다.”
유현아! 형이 해냈다! 너 줄 옷 뜯어냈어! 마음 같아선 예장에 입이라도 맞추고 싶다. 아이고, 이쁜 것.
“이걸로 해연 길드에 면목이 서게 되었습니다. 슬라임 던전의 가치가 크다 해도 쉽지 않은 결정이셨을 텐데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저희도 해연 길드의 반발은 충분히 예상하고 준비한 것이었습니다. 앞으로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길 바랍니다.”
S급 장비 너덧 개쯤이나 뜯어낼 생각이었는데 대박이다. 아무리 쓰지 않는 장비라 해도 SS급인데 그걸 타국에 홀랑 넘기다니, 생각 이상으로 일본 내 아마테라스 길드장의 권력이 대단한 모양이었다.
남 주는 대신 자기 필요한 것과 교환하는 짓으로 봐선 개인적인 욕심이 큰 듯도 하고.
A급 슬라임 던전을 차지하면 일본 내에서의 길드 위치가 더욱 굳건해지긴 하겠지. 그걸 위해서인가. 아무튼 감사.
“일본 측에서 설마 길드장이 나오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요? 박예림 헌터가 어리다 보니 걱정이 되어서요.”
“당연히 그럴 수야 없지요. 2년 차 헌터로 할 예정입니다. 이 자리에서 아예 확실하게 계약서를 작성해 드리겠습니다. 아, 해연 길드장의 허가를 따로 받으셔야 할까요?”
“아니요, 이번 일에는 제가 전권을 위임받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기도 했고요. 여기 관련 서류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위치는 바다 근처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너무 일방적인 싸움이 되면 어린 마음에 상처가 클 수도 있으니까요.”
“원하시는 대로 최대한 맞춰 드리겠습니다.”
일본인이 자신 있게 말했다. 예림아, 경기장 침몰시켜도 괜찮아. 마음껏 날뛰렴. 우리 땅 아니니까.
‘바닷가라면 유현이와도 맞먹을 정도였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그래도 이왕이면 유현이를 상대로 지목했으면 싶었지만 일본 측에서 그런 위험을 감수하려 들진 않을 테고.
예림이와 이야기는 이미 끝난 상태였다. 랭킹전 참가 못 하는 거 계속 아쉬워했는데 좋아하겠구만.
나 뭐시기가 길드장 서명이 들어가 있는 계약서를 꺼내었다.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내기 결투였다.
계약서를 이중으로 작성하고 푸른 천둥새의 예장을 포함해 예림이 줄 S급 팔찌도 하나 챙겼다. 절로 마음이 푸근해지는 거래였다.
“이거 세성 길드장님께서 탐탁잖게 여기실 수는 있겠습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계약서를 챙기며 일본인이 걱정하는 척 말했다. 성현제가 이번 일로 날 핍박이라도 하면 자기들은 좋을 거면서, 뭘.
“걱정 마세요.”
“혹시라도 힘든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하십시오. 한유진 소장님이시라면 대환영입니다.”
그러면서 명함을 건넨다. 아예 넘어오라고 대놓고 말하지 그러냐. 슬라임 던전 차지하고, 세성과 내 관계 틀어 놓고, 나와 해연과는 돈독해지고, 노림수 많이 깔아 놓기는 했다.
명함을 받아 인벤토리에 넣고 폰으로 문자를 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내 문이 열리며 성현제가 들어섰다.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다가온 그가 내게 들고 있던 것을 내밀었다.
“주문하신 아이스 카페라떼입니다.”
“제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파트너가 원하시는 것인데 당연히 들어드려야지.”
두 일본인의 얼빠진 시선 속에서 빨대를 쪽 빨았다.
“제가 한 말 잊지 않고 기억하시겠다더니, 과하게 단데요. 휘핑도 빼 달랬잖습니까.”
아이스 카페라떼 중간 사이즈로 너무 달지 않게, 휘핑은 빼서. 근데 달잖아. 휘핑크림 위에 코코아 파우더도 뿌려져 있다.
“맛있지 않나?”
“맛있긴 하네요. 이 호텔 커피 잘하네.”
비싼 데라서인가.
일 다 끝났으니 미련 없이 돌아서려다가 참, 하고 내 명함을 꺼내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비즈니스적인 마음을 듬뿍 담은 미소를 머금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고객님. 가능한 빠른 준비 부탁드리지요.”
“자, 잠깐만요, 한 소장님!”
“네?”
“아니, 그… 두 분께서…….”
나카지마는 더듬거리다가 말을 잇지 못하고 나와 성현제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했다. 많이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아닙니다. 조만간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고민 끝에 결국은 그냥 내 명함을 챙기고 만다. 아직은 예림이를 이기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기대 잔뜩 해 두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