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97
197화 브레이커 길드 (1)
복도를 따라 걸으며 성현제에게 일본 측과의 계약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내가 뭘 얻었는지는 숨겨 두었다. 그냥 결투를 통해 던전 권리를 가지기로 하고 대신 아이템 몇 개 받았다고만 해 두었다. 성현제는 의외로 아이템에 대해 자세히 묻지 않았다.
“그쪽에서는 박예림 헌터를 쉽게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겠지요. S급 헌터 이와하타 가쿠토라고 하던데, 혹시 아십니까? 2년 차라더군요.”
일단 나는 못 들어 봤다. 즉 회귀 전 헌터 랭킹이 그리 높지 않은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현재까지 일본의 S급 헌터는 총 다섯 명이었지.
“S급 헌터이니 이름 정도는 들어 보았지.”
“걱정할 필요 없겠지요?”
“바닷가라 하지 않았던가. 결말이 난 승부라네.”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예림이는 아직 어리니까.
‘여차하면 우리 애 스킬로 버프를 걸어 주면 되겠지.’
들키면 반칙패 하겠지만 애가 다치는 것보단 낫잖아. 안 들키면 그만이기도 하고. 모르는 사람이 듣기엔 응원하는 것처럼 대사 치면 된다.
“일본에 가려면 준비가 많이 필요할… 아닙니다.”
“그 정도 조언은 해 줄 수 있네만.”
“이미 과하게 친절하신 상담원 노릇을 해 주신지라.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일단 각성자 관리실과 헌터협회에 보고해야겠지. 일정은 일본 쪽에서 연락 온 뒤에 잡으면 될 테고. 예림이 준비야 해연에서 맡아 줄 것이다. 유현이도 같이 가려고 들려나? 성한 씨가 있으니 자리를 비워도 괜찮겠지. 그래도 동행할 거면 미리 던전 정리 하나쯤은 해 놓아야 할 테니, 빨라야 일주일 뒤에나 출발할 수 있겠다.
어차피 일본 측도 하루 이틀로 준비 끝내진 못할 테고. 머릿속을 정리하다가 성현제를 쳐다보았다.
“세성 길드장님께서도 가실 겁니까?”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직접 움직여야 하겠지만. 내일부터 던전 공략 일정이 잡혀 있어서 시간이 맞을지 모르겠군.”
“동업자로서 응원 정도는 해 드리겠습니다만 늦으면 두고 갑니다. 파이팅.”
“하나뿐인 파트너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
말만 들으면 내가 주도권 잡고 있는 줄로 착각하겠네.
일본 가기 전에 사육소 정리는 대충이라도 끝내야 할 텐데. 브레이커와 한신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조언은 필요 없다 하였지만 경고 한 가지는 해 두겠네.”
성현제가 갑자기 의미심장한 말을 꺼내었다. 경고라니.
“한동안 송태원과 단둘이 만나는 것은 삼가도록. 연락 또한 먼저 하지 않기를 권하지.”
“…예?”
“소수의 상급 헌터와 동행하기보다는 차라리 비각성자나 하급 헌터가 다수 있는 공간이 더 안전할 거라네. 평범한 분위기의 공간이라면 자제하기 더 쉬울 터이니.”
“…꼭 송 실장님께서 저를 해치기라도 할 듯이 말씀하시는군요.”
“굳이 자극하지는 말라는 뜻이야.”
성현제가 눈가를 휘며 나를 향한 것인지, 혹은 송태원을 향한 것인지 모를 웃음을 머금었다.
“송태원 실장은 쉽게 흔들리지 않지. 그렇기에 부러질 때 나는 소리가 더욱 클 수밖에 없어. 조용히 넘어간다면 그것 나름대로 재미있겠지만.”
내 파트너가 혹여 다치기라도 해서야 곤란하지. 성현제가 나직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심코 마른침이 삼켜졌다.
“성현제 씨와 제 관계가 약간이나마 변하였기 때문입니까.”
“나라고 해서 사람의 깊숙한 속내까지는 다 알 수 없다네. 관계가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우리 송태원 실장님께서 과연 어떤 속앓이를 하고 계실지. 아직은 모를 일이야.”
의외였다. 대등까지는 멀었다 해도, 성현제에게 있어 내 위치가 조금이라도 올라간다면 송태원은 전보다 안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유현이는 내 친동생이고 예림이는 어리다. 노아도 어린 편에 원래는 A급 보조계였고.
그러니 송태원이 나를 못 미더워할 만했지만, 성현제에게까지 인정받게 된다면 달라지지 싶었다. 좋은 쪽으로 말이다.
“…송 실장님은 어렵군요.”
“양의 편을 드는 것을 넘어서 풀까지 뜯어먹으려 드는 늑대는 어느 쪽에서든 이해받기 힘들지. 그 스스로도 과연 아무런 의문이 들지 않는 것일지 의심스럽기도 하고.”
풀을 뜯어먹으려 든다니. 하지만 어울리는 비유이기는 했다. 상급 헌터도, 하급 헌터와 비각성자도 송태원을 보면 왜 저렇게까지 누르고 사는 걸까 싶어지겠지.
어렵네, 정말.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찾아가 직접 묻고 싶지만… 당분간은 참는 게 좋을까. 그때 휴대폰에 메시지가 들어왔다. 유현이었다.
“동생이 데리러 오겠다네요.”
늦었으니 마중 나오겠다며 아직 일 안 끝났냐고 묻는 메시지에 끝났다고 답해 주었다. 아이템 뜯어낸 걸 떠올리자 또 슬금슬금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 진짜 좋아.
이미 호텔에 다 와서 연락한 것이었는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로비에 들어서자 유현이의 모습이 보였다. 나와 함께 온 수행원들도 있었다.
“유현아~”
이 형이! 완전 좋은 거 얻었다! 크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아직 들켜선 안 되니 참았다. 물밑 계약이니 듣는 사람 많은 곳에서 떠들고 다니면 안 되지. 대신 기쁨을 듬뿍 담아 동생을 와락 끌어안았다.
“내 잘난 동생!”
이번에는 1위 하자! 신입이 일 잘해 줘서 SS급 이상 되는 장비 하나 더 갖추면 진짜 할 만해지지 않을까. 뭐 더 빼 올 건 없나. 정령을 성장시키는 아이템 같은 거 있을 법도 한데. 린이가 다 성장하면 L급이라고 했었지. 천년 걸릴 거라는 게 문제지만.
“…형.”
“응? 왜?”
“혹시… 취했어?”
유현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말했다.
“독 저항 끄고 술 마신 건 아니지?”
“당연히 아니지!”
내가 좀 오버했나.
“안 취했어, 멀쩡해. 그냥 기분 좋은 일이 있어서 그래. 기분은 취한 거 같긴 하다.”
자꾸 웃음이 나오는데 어쩌겠냐. 유현이가 내 뒤쪽을 노려보았다. 아마도 성현제를 향한 것일 터다.
“정말로 아무 일 없었어? 독 저항이 안 통하는 약물 같은 것도 있으니까.”
“진짜 멀쩡하다니까. 얼른 집에 가자.”
여기서는 못 꺼내니까. 성현제에게 적당히 인사 건네고 동생의 팔을 잡아당겼다.
“일본 던전은 결투의 승자가 가지기로 계약했어. 판돈은 미리 이야기했던 대로 슬라임 던전이고.”
차 조수석에 앉자마자 협상 결과를 말해 주었다.
“예상대로 예림이를 지목하더라.”
“상대는?”
“2년 차 헌터라던데, 대결 장소가 바닷가야.”
“그럼 끝났네.”
유현이가 결론짓듯 말했다. 유현이와 성현제 둘 다 홍콩에서 예림이가 싸우는 모습을 보았다. 유현이는 직접 상대하기도 했으니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예림이의 전력에 대해 파악하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하나같이 확실하게 승리를 예측해 주니 절로 마음이 든든해졌다.
“역시 예림이가 이기겠지? 혹시 다칠 일은 없을까?”
“없어.”
“그 정도냐?”
“바닷가면 말 그대로 물 만난 물고기니까. 웬만한 초기 각성 S급 헌터라 해도 당해내기 힘들걸.”
우리 예림이, 각성한 지 이제 겨우 삼 개월인데. 아, 또 히죽거리게 되네. 점잖지 못한 웃음을 참기 위해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게 불빛이며 간판들이 반짝거린다. 저긴 회사 빌딩인 거 같은데 아직도 불이 훤하구나. 퇴근 좀 시켜 줘라.
“박예림 헌터는 당연히 가야 할 테고, 형도 따라갈 거야?”
“아무래도 가 봐야지. 던전도 직접 한번 들어가 보고. 재료 발견은 데리고 간 몬스터가 했다고 알릴 생각이야.”
원래도 던전 안의 몬스터가 파먹는 걸 보고 발견되었다고 했다. 뿌리열매를 생으로 먹어도 효과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피스도 데리고 가야지. 삐약이는 당연하고.
“언제쯤 갈 건데?”
“가능한 빠르게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어. 자칫 두 번째 공략 들어갔다간 열매에 대해 들킬 수도 있으니까.”
첫 공략이야 여유가 없기에 발견될 가능성이 극히 낮았다. 하지만 공략 정보를 갖춘 두 번째부터는 다르다. 회귀 전에는 한참 뒤에 발견되긴 했지만 지금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던전 출몰 시기부터가 달라졌으니 조심해 두는 편이 좋을 터였다.
“그럼 자리 비울 준비를 해야겠네.”
“역시 너도 가게? 오래 머무르진 않을 거지만 혹 모를 일이고, 해외니까 정리 잘 해 둬.”
그래도 성한 씨가 있어서 든든하다.
사육소에 도착해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1층의 응접실로 동생을 데리고 갔다. 상급 헌터가 주 고객층이다 보니 방음이 잘되어 있는 곳이다.
“사실 일본 던전보다 슬라임 던전의 가치가 훨씬 더 높잖아. 게다가 일본 놈들은 예림이를 당연히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걸 빌미로 아이템을 뜯어냈다고, 물밑 거래이니 당분간 비밀로 해 두라며 자랑스럽게 푸른 천둥새의 예장을 꺼내 들었다.
“무려 SS급 장비야!”
“SS급?”
“그래! 국내엔 SS급 외투가 아직 실레키아의 날개밖에 없잖냐. 이게 두 번째가 되는 거라고!”
첫 번째면 더 좋겠지만 두 번째라도 어디냐. 유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는 모습에 절로 가슴이 뿌듯해졌다.
“옵션도 당연히 끝내주고. 한번 입어 봐봐.”
옷을 펼쳐 들자니 옛날 생각이 절로 떠올랐다. 내가 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러는 거 대체 얼마 만이지.
유현이가 옷을 걸쳤다. 흑색의 천 자락이 물결치듯 부드럽게 흘러 떨어진다. 그러면서도 또 약간 빳빳하게 각이 잡혔다. 일본 길드장이 입었을 때도 꽤 멋있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비교가 안 되네. 정말 완벽하게 잘 어울린다. 최고다.
“전(電) 속성 저항이잖아?!”
“응. 그것도 S급이지! 거기에 순간 속도 상승 스킬 말이야, 너한테 딱이지 않냐.”
일본 길드장은 반쯤은 방어 타입인, 자기 자리에서 진을 치고 싸우는 데 특화되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니 잘 맞지 않았겠지. 하지만 유현이는 다르다.
“푸른 버들잎도 일반적인 비행 스킬이 아니라 내가 직접 이동하는 거니까. 여러 가지로 크게 도움이 되겠어. 방어 중첩도 좋은 옵션이고…….”
장비 사용 방법을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는지 잠깐 침묵하던 유현이의 얼굴 위로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정말 고마워! 형.”
“고맙긴 뭘. 속성 저항도 생겼겠다, 이번에는 꼭 이기는 거다!”
“…이번에는?”
유현이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의아한 듯도, 당황스러운 듯도 했다. 아차 싶어져서 얼른 설명을 덧붙였다.
“아니, 그동안 한 번쯤은 성현제와 싸울 일 있었겠지 싶어서. 송 실장님이 던전 브레이크 자주 일어났을 땐 S급 헌터끼리 종종 붙었다고 그랬고. 물론 네가 약하다는 건 아니고, 성현제 그 인간이 좀 사기잖아. 유현이 넌 아직 어리기도 하고, 장비 차이도 있고.”
“…….”
동생이 눈에 띄게 시무룩해졌다. 그, 정말로 진 적 있긴 있었나 보다. 솔직히 전투예지 그거 완전 사기잖아. 수색자의 사슬도 그렇다. 주인 등급보다 한 등급 위라니, 초반부터 SS급 무기 들고 다니는 셈인데 누가 그걸 이겨?
“예전 일이잖아. 너무 신경 쓰지 마. 애초에 성현제는 시작부터 달랐다던걸. 상급 던전들도 먼저 차지하고 공략하고. 반면에 유현이 넌 학생이었잖냐.”
“…내가 좀 더 어른이었더라면 형이 성현제에게 의지하지 않았을까?”
“응?”
“차이가 나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질투가 나. 나도 던전이 생겼을 때 스물, 아니 서른쯤이었으면 많은 게 달라졌을 텐데.”
…그야, 그랬을 것이다.
“달라지긴 했겠지. 하지만 유현아, 내가 제일 많이 의지하는 사람은 바로 너야. 그건 언제가 되었든 변하지 않아.”
스물이든 서른이든.
“너 없으면 안 된다. 네가 있으니까 다른 사람과도 손잡을 수 있는 거야.”
애초에 유현이 네가 아니었더라면 내가, 지금 이렇게 서 있지도 못했겠지.
“그리고 나도 질투 나는 건 마찬가지거든?”
“…형이 왜?”
“왜기는. 나도 너랑 비슷해. 너 나랑 떨어져 있을 때 성현제가 이것저것 도와줬다면서.”
“별거 아니야. 갚았고.”
유현이가 조금 뾰로통하게 말했다. 그래도 안 받은 건 아니지. 영향도 꽤 컸을 테고. 같은 태생 S급이기도 했다. 동시에 나는 따라잡기 버거운 어른이었다.
“나는 해 줄 수 없는 일들이었으니까. 질투 나고 부러워. 내가 대신 해 주고 싶다는 생각, 여러 번 했다. 그래도 성현제가 없었던 것보다는 나았겠거니 생각하면서도, 속이 아픈 건 어쩔 수 없었어.”
말하면서 절로 입안이 씁쓸해졌다.
“진짜 별 관계 없었어. 신경 쓸 필요 전혀 없어. 그리고 나도 형이 아니면 안 되는걸. 지금도 날 이렇게 챙겨 주고 있잖아. 형이 최고야.”
유현이가 응석을 부리듯 날 끌어안으며 말했다. 내 동생이지만 정말 착하다. 나도 마주 동생을 끌어안았다.
“그래, 잘나신 세성 길드장 랭킹전에서 제대로 꺾어 버리자.”
“S급 랭킹전도 정말로 하게?”
“아예 세계적으로 해버리려고.”
그놈의 전투예지에 SS급 무기까지 있으니 쉽진 않겠지만… 확 우리 애 버프 써 버릴까. 그런 거 없이 정당하게 이기는 게 최고긴 하다만. 뭘 더 준비하지. 유현이도 전투예지 같은 거 얻을 방법 없나. 상쇄할 수 있다면 해볼 만한데.
일본에 가서 S급 헌터와 싸우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예림이는 무척이나 들떠했다. 확실하게 쓸어버리겠노라고 말하면서 테이블을 반 토막 내었다. 아직도 힘 조절 못 하냐는 유현이의 빈정거림에 우리 집에서 먼저 S급 헌터 대결이 벌어질 뻔도 했다.
다음 날, 세성 길드장은 던전 공략하러 들어가고 문현아가 사육소를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