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98
198화 브레이커 길드 (2)
“록아. 소록아, 나 좀 봐라. 응?”
흰 새끼 사슴이 바닥에 드러누운 채 눈만 끔벅끔벅 나를 바라보았다. 엎드린 것도 아니었다. 네다리 쭉 펼치고 완전히 늘어졌다.
“일어나야지. 여기서 계속 이러고 있으면 안 되잖아.”
귀가 팔랑 흔들리고 짧은 꼬리가 파닥 움직였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소록아…….”
뭐 힘든 일 시킨 것도 아니고, 그냥 훈련실 견학이나 시켜 주려고 한 거였는데 도착도 하기 전에 이 지경이다. 아무래도 현아 씨 사기당한 거 아닐까. 얘 엄청 게을러요! 아직 어려서 잠이 많은 거라면 다행이지만.
“이래 가지고 언제 성장하겠냐.”
이런 상태론 훈련을 시킬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내 새끼 성장 버프만 적용해도 자라긴 하지만 훈련할 때 대비 몇 배는 더 오래 걸릴 텐데. 이제 곧 스태미너 포션도 얻게 되면 전보다 더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건만.
“…내 체력이 아니라 새끼 몬스터가 따라 주지 않을 줄이야.”
다른 애들은 활달하다 못해 나보다 더 적극적이었는데. 게으른 몬스터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심지어 사슴이잖아. 거북이도 아니고.
“일어나자, 응? 아니면 다시 우리로라도 돌아가자. 여기 복도야.”
일으키려 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덩치도 제법 크고 무겁기도 해서 내 힘으론 끌고 가기도 벅찼다. 사람을 부를까.
손을 뻗어 흰 털이 부드러운 옆구리와 다리가 이어져 접히는 부분을 긁어 주었다. 시원한지 기지개를 쭉 켜고는 발라당 반대쪽으로 몸을 뒤집는다.
“일어날 생각 없어?”
– 삐앵.
소록이가 투정 부리듯이 뺑 울었다. 야행성에 이어 활동성 낮은 새끼 몬스터도 추가다. 이런 경우 보통 좋아하는 것을 미끼 삼아 움직이게 만들던데, 아직 소록이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먹이는 평범하게 던전에서 나오는 식물이었다. 브레이커 길드에서 매일 아침마다 배달해 주었다.
잡식성인 유니콘들과 달리 소록이는 백 퍼센트 초식으로, 마석은 간식 정도로만 먹었다. 대신 과일이며 풀을 코끼리처럼 먹어 치웠다. 덩치는 좀 자란 송아지 정도건만 소화 흡수율이 뛰어난 건지 끝도 없이 들어갔다.
“그래, 여기가 좋으면 여기 앉아 있자.”
나도 소록이 옆에 아예 자리 잡고 앉았다. 소록이가 머리를 들더니 내 다리 위에 탁 얹었다. 짧은 꼬리가 실룩실룩 흔들린다.
“크게 급할 건 없으니 괜찮아. 블루 누나가 곧 다 성장할 거거든. 블루 누나는 낯도 안 가리고, 현아 씨와 친하기도 하고, 던전 공략도 좋아했으니까 소록이 클 때까지 대신해 주고도 남을 거야.”
소록이가 완전히 성장한 뒤에도 던전에 따라 문현아가 블루와 함께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블루는 비행형이니까. 현아 씨는 속성 저항을 가리지 않기도 하고.
“어릴 땐 잘 먹고 건강하면 되는 거지. 물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안 되지만. 소록이는 착하니까.”
감당 못 하게 사나운 것보다야 활동성 적어도 순한 게 낫다. 기승수인 만큼 성장하고 나서도 양순하면 문제겠지만. 그래도 보스 몬스터 출신이니 할 땐 확실히 할 것이다.
“좋아하는 먹이를 찾아볼까? 흥미를 나타낼 만한 게 뭐 없나. 소록이 어느 나라 던전 출신이랬지. 설원순록 공략 정보라도 읽어 봐야 하나.”
어떻게 사냥하느냐, 라는 내용이라 도움이 될 가능성은 낮지만. 동물 행동 학자라도 고용할까. 몬스터 상대라 해도 나보다는 더 잘 알아볼 거 같은데.
일단 먹이부터 종류별로 나누어 선호도를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발소리가 들려왔다. 유현이와 예림이가 이 시간에 올 것 같지는 않고, 문현아 아니면 강소영이겠지. 고개를 돌리자 한 손에 케이크 상자 같은 것을 든 문현아가 보였다.
“복도에서 왜 그러고 있어, 한 소장님.”
“보시다시피 소록이가 꿈쩍을 안 해서요.”
“애가 잠이 많나 봐.”
“어릴 땐 다 그렇죠 뭐. 잘 자야 잘 큽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소록이가 또 뺑 하고 울었다. 내가 다시 앉을 기미가 없어 보이자 버둥버둥 일어나 선다. 그러곤 내 옷자락을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다. 이러는 건 유니콘들과 비슷하네.
“집에 돌아갈까?”
가자가자, 하고 걸어가려 했지만 옷을 문 채 꼼짝도 하질 않았다. 복도가 마음에 든 건가.
“이거 들어 봐, 소장님.”
“뭐예요?”
“애플파이.”
애플파이 상자를 내게 건넨 문현아가 소록이를 번쩍 안아 들었다. 소록이가 바동거리는데도 흔들림 하나 없다.
– 삐애앵.
“꼬맹이가 힘 제법 쓰는데?”
문현아가 웃으면서 사육실 쪽으로 걸음을 옮겨 갔다. 우리가 줄줄이 늘어선 사육실은 한쪽 벽이 크게 열려 있었다. 운동장과 연결되는 통로였다. 아무리 잘 만들어 놓았다 해도 우리는 갑갑하니까 잔디를 깔고 나무를 심은 너른 뒤뜰에 벽을 높게 쳐서 새끼 마수들이 뛰어놀 수 있게 해 놓았다.
볕을 받으며 자기들끼리 놀고 있던 두 유니콘이 나를 발견하곤 폴짝폴짝 뛰어왔다.
“망아지들도 많이 컸네. 블루가 옥상 정원에 있는데 풀어 놔도 괜찮은 건가?”
“공격하면 안 된다고 가르쳐 놓긴 했어요.”
피스의 도움을 받아 가며 한나절 넘게 안 돼를 외쳤었다.
“그래도 혹 모르니 운동장 개방 시엔 A급 헌터가 감시하고 있습니다.”
운동장 쪽에 나가 있는 헌터에게 고갯짓으로 인사를 보내며 말했다. 블루가 다 큰다 해도 A급 방어계면 막는 건 가능할 거고, 안면 있는 사람 말은 주인의 증표가 없다 해도 곧잘 듣는 편이니까. 정확히는 대신 같이 놀아 줘, 에 가깝지만.
– 푸르릉!
– 푸흐.
검고 하얀 유니콘이 문현아를 힐끔거리며 내 양어깨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우리 안에 소록이를 내려놓은 문현아가 유니콘들을 바라보았다.
“하양이, 까망이였지.”
“예에.”
처음에는 아니었지만. 소록이 맡기면서 문현아가 나더러 새끼 몬스터 이름은 직접 짓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했었다. 근데 소록이도 크게 다를 거 없지 않나. 그냥 작은 사슴이라는 거잖아. 한자가 다르다고는 했지만 듣기엔 그냥 그거다.
“블루가 곧 다 클 거라고 했으니 이 녀석들도 머잖았네?”
“네. 그래서…….”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문현아가 알고 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해연이 기승수에 맞춰 S급 공략팀 개편할 예정이라는 건 나도 들었어. 도련님 팀은 수를 확 줄일 거라던데.”
“남는 사람들은 김성한 헌터 쪽으로 넘어가게 되었죠. 세상에서 제일 빠른 S급 공략팀이 될 겁니다.”
피스와 유현이를 메인으로, 두 유니콘에게 소수의 팀원만 할당하는 소규모 팀이다. S급 던전이라 해도 유니콘의 속도를 따라올 몬스터는 별로 없으니 공격계는 제외하고 방어, 보조, 힐러로만 구성해 유현이 외 최대 여섯 명 예정이었다.
김성한은 방어계이니 남는 공격계를 전부 몰아주면 새로 공격계 헌터를 들이거나 내보낼 필요도 없었다. 보조와 힐러는 좀 부족한 편이었지만 이건 MKC 쪽에서 데려올 예정이고.
“기대되네. 저번에 피스와 둘이서만 들어갔을 때도 기록 깼잖아. S급 육지형 하위 던전이면 사흘 내에 돌파하는 거 아닐까 몰라.”
“화력만 충분하다면 가능하죠. 속도가 완전히 다를 테니까요.”
버프 받으면서 불길로 싹 쓸어버리며 내달리면 일반 몬스터쯤 순식간에 정리 가능할 것이다. 피스도 유니콘 아종이고 질주 스킬도 있으니, 달리는 속도와 공략 속도가 엇비슷한 수준이라면 사흘이 뭐냐. 이틀 컷 끊을지도.
S급 상위라면 좀 더 안전하게 운용해야겠지만 중위까지는 통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저쪽 커튼 친 우리는 코메트 건가? 많이 컸다고 소영이가 자랑하던데.”
“지금의 블루만 해졌어요. 다 자라면 덩치는 블루보다 더 크지 싶더라고요.”
“애들 하나둘 떠나겠네. 우리도 얼른 A급 기승수들도 구해 봐야겠어. 열심히 일하라고, 소장님.”
문현아가 기대 어린 미소를 머금으며 소록이를 바라보았다. MKC가 한참 이르게 폭삭 망해 버린 것처럼 브레이커 또한 회귀 전과 달라질 수도 있다. S급 기승수만 해도 회귀 전에는 없었던 일이다.
“여기까지 오셨는데 집에 잠깐 들렀다 가실래요? 파이도 사 오셨고, 차라도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참, 이거 받아.”
문현아가 미니포털 키와 열쇠를 내밀었다.
“아직도 포털 키 교체 못 하고 있다면서?”
“안쪽 문은 바꿨습니다. 포털은 협회가 영 뻣뻣하게 나오네요.”
성현제도 협회가 먼저 수락하면 생각해 보겠다 그러고. 한신도 마찬가지였다.
“요새 상황이 복잡해서 그런 것도 있을걸.”
문현아가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긴 다리가 성큼 발을 내디뎠지만,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내게 맞춰 주는 듯했다.
“MKC가 망하면서 여의도가 비게 되었잖아. 거기 채워 넣고 싶어서 안달이야, 지금.”
MKC 길드는 여의도 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브레이커는 청와대 근처며, 한신은 서울역과 시청 사이에 위치했다. 해연은 강남의 헌터협회와 법원 사이에 있고. 세성은 좀 엉뚱하게도 현충원 근처였다.
“해연과 기승수 사육소, 둘 중 하나를 여의도로 옮기는 게 어떻겠냐는 말이 나오고 있지. 길드는 아니지만 사육소도 충분히 든든할 만하잖아. S급 헌터와 몬스터에 상급 헌터들도 다수 머물고 있으니.”
“석 팀장님은 무시하라던데요. 어차피 비용 대 주지도 못할 거라면서.”
사육소 짓는 데 한두 푼 들어간 것도 아니고. 해연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최근에 확장 공사도 시작했다.
“그야 그렇지. 하지만 그거 핑계로 귀찮게 군다 이거야. 포털 키처럼.”
괜한 심술이라는 거네. 협회가 물갈이됐다지만 저번 A급 랭킹전 때처럼 외부 압력을 무시하진 못하니 내 요청을 거절하는 거고.
“세성이나 찌르라지 그럽니까.”
“그게 됐으면 처음부터 세성이 여의도로 갔지. 당시에 세성 위치 놓고 물밑 구두질이 장난 아니었어. 국회의원이며 재벌이며. 세성이 현충원 근처로 간 것도 그거 질린 탓이란 소문도 있잖아. 자칭 잘나셨다는 분들이 나 같은 사람 지켜야 하지 않겠냐고 나대는 것에 대한 대답으로.”
지켜질 가치가 있으려면 최소 현충원에 들어갈 수준은 되어야 한다는 뜻인가. 실제 이유야 알 수 없지만 순순히 여의도로 갈 성격은 아니긴 하지.
“애초에 S급 헌터가 있는 길드를 요구할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던전이야 S급 헌터가 자리 비운 사이에 터질 수도 있고, 다들 헬기 갖추고 있는데.”
“그래도 비워 둘 수는 없으니까 내가 이번에 물보라 길드와 합병한 우즈 길드를 추천했거든? 병신 같은 것들이 A급은 둘째치고 여자 길드장은 믿음이 안 간다고 하더라. 세상 바뀐 지 3년이나 지났건만 그놈의 썩은 머리통들은 여전하다니까!”
문현아가 인상을 확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우즈와 물보라라면 저번 A급 랭킹전에서 1위와 3위를 차지한 헌터가 길드장인 길드다. 둘이 힘을 합쳐 S급 던전 관리권에 도전하겠다더니 합병했구나.
“랭킹전 1, 3위가 합쳤으면 다른 어느 A급 길드보다 든든할 텐데, 진짜 멍청한 소리네요.”
미니 포털 근처를 지키는 헌터가 문현아를 보고 인사를 건네 왔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피스가 마중 나와 꼬리를 탁탁 쳤다.
– 꺄아웅!
“그래, 피스야. 삐약이와 벨라레는 어디 갔지?”
마중 안 나오는 게 수상쩍다. 피스가 머리를 갸웃 기울이더니 앞장서서 종종종 걸어간다. 그러곤 주방 문 앞에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벨라레!”
주방 문의 잠금장치가 독에 녹아 있었다. 제법 크게 동그란 구멍이 났다. 원래는 잠금을 풀고 문을 열 생각이었던 모양이지만 구멍으로 그냥 통과해 버린 듯했다.
“삐약이 네가 시켰지!”
문을 활짝 열어젖히자 식탁 위를 나뒹구는 작은 병이 눈에 들어왔다. 뚜껑도 독에 녹아 없어진 상태에, 안이 텅 비었다. 마석 병을 부엌에 두는 게 아니었어.
이 녀석들 어디 숨었지.
“…삐약아, 아빠 나간다.”
– 삐약!
냉장고 위에서 삐약이가 둥실둥실 떨어져 내렸다. 식탁 위에 내려서서 곤란한 듯 마석 병을 바라보는 게 다른 쪽 삐약이 같긴 한데… 요새 먹보 삐약이도 머리가 많이 좋아져서 헷갈린단 말이야. 연기냐 아니냐.
“벨라레는?”
– 삐약삐약.
삐약이가 작은 날개 끝으로 전자레인지를 가리켰다.
“우리 삐약이 착하네. 상 줘야겠다.”
활짝 미소 지으며 인벤토리에서 마석을 꺼내 들자 삑삑거리며 반갑게 달려든다. 사고 친 녀석 맞구나.
“아빠가 혼자 부엌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 삐야.
“게다가 독은 위험하다고 했잖아! 벨라레가 독 쓰게 하면 안 돼, 독은 안 돼!”
혹시 문제는 없는지 삐약이를 들어다가 이리저리 살폈다. 그사이 벨라레가 전자레인지 뒤쪽에서 머리를 슬쩍 내밀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사사삭 기어 나와 꼬리를 흔들어 댄다. 그 모습이 피스와 많이 닮아 있었다.
“벨라레 너도 허락 없이 독 쓰면 안 된다고 했지.”
– 시잇.
“이리 와.”
다른 데 독 쓰진 않았겠지. 식탁과 문을 내 손으로 먼저 문지른 뒤 물티슈로 닦아 냈다. 주방 문 너머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문현아가 혀를 짧게 찼다.
“고생이네, 애 아빠.”
“평소엔 얌전한데 오늘따라 사고를 치네요.”
진짜니까 웃지 마시죠.
애플파이를 접시에 옮겨 담고 주스와 함께 거실로 내왔다. 이 파이 맛있네. 예림이랑 소영 씨도 사 오는 간식거리마다 다 맛있었는데.
“혹시 괜찮으시다면 브레이커 길드에 대해 알 수 있을까요.”
“우리 길드?”
“예. 엮여 있는 곳이 많다고 들었습니다만.”
“엮여 있는 곳이라.”
문현아가 포크 끝으로 접시를 톡톡 치며 눈웃음을 머금었다.
“구경 올래?”
“오늘이요?”
“아, 근데 몇몇 시설은 여자만 출입 가능해서 여장해야 하는데.”
“…사양하겠습니다.”
“농담이야. 사우나 빼고.”
문현아가 남은 파이 조각을 입에 털어넣곤 몸을 일으켰다.
“친절하게 안내해 드릴 테니 따라오시죠, 한 소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