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23
23화 내 사람 (3)
철물점에 들러 걸고리를 산 뒤 계약서 처분을 위해 헌터협회로 향했다. 계약서의 판매 수수료는 30퍼센트로 판매 대금은 등록한 계좌로 이체된다. F급이야 그저 그렇고 C급과 D급은 제법 쏠쏠히 들어오지 싶었다.
내가 꿀꺽하는 건 좀 꺼림칙하고, 피해자들에게 나눠 주면 되겠지.
“정말 신세 져도 괜찮을까?”
길드에 도착해 차에서 내린 유명우가 불안스레 물었다. 정말이지 SS급 스킬이 전투 관련이 아니란 게 다행스러운 성격이었다. 아니면 이런 성격이라서 제작 스킬 적성인 건가.
“좀 전에 통화한 거 들었잖아. 기숙사에 외부인이 묵어도 된다고.”
정확히는 친지나 친구, 애인 등의 방문을 위한 규칙이었다. 외부인의 기숙사 거주는 인원수와 행동 범위에 제한이 있고 한 달에 최대 일주일까지 허용되었다. 또한 문제가 발생할 시에는 전부 책임지겠다는 각서도 써야 했다.
“그냥 집에 가도 되는데…….”
“왔다 갔다 뭘 귀찮게 하려 들어. 그냥 교육 끝날 때까지 묵어. 며칠 안 걸려.”
물론 교육이 끝나도 무슨 핑계를 대서든 붙잡아 둘 거지만. 눈에 보이는 곳에 둬야지 불안해서 못 내보내겠다. 넣어 놓을 일반 사원 기숙사 어떻게 삥 뜯지.
“한유진 씨.”
주차장을 빠져나가려는데 김성한이 뒤에서 불렀다. 고개를 돌리자 약간 멋쩍은 듯한 표정의 그가 보였다. 뭐지.
“일단 사과부터 드리겠습니다.”
“예?”
갑자기 웬 사과. 나 모르게 나한테 미안할 짓이라도 했나. 뒷덜미 잡은 거? 미아보호센터에서 방송한 거? 방문 앞을 지키고 선 거야 유현이 놈 명령이었고.
각 잡고 사과까지 할 일은 떠오르지 않아 고개를 갸웃하는데 김성한이 말을 이었다.
“그동안 한유진 씨를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오해요?”
“예. 솔직히 말씀드려 길드장님의 앞길을 방해하는 쓸모없는 걸림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뭐 틀린 생각은 아닌데. 원래의 내가 민폐 좀 많이 끼치긴 했지.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럴 수도 있죠.”
회귀라는 치트키 써서 바뀐 거지 사람 보는 눈 있으셨습니다.
내 말에 그가 작게 웃었다. 와, 저 인간이 나 보고 웃는 거 처음 봐. 툭하면 잡아먹을 듯 노려보기나 했었는데.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예. 저야말로…….”
“괜찮다고 하셔도 잘못은 잘못이니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말씀하십시오.”
“그럼 술이나 한번 사세요.”
이참에 술주정인 척 키워드… 음… 말해야 하나. 인간은 됐고 마수나 키울 생각이었는데. 그래도 일단 술 마시며 친해지는 건 나쁘지 않으니까.
“알겠습니다.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김성한이 한결 상쾌해진 표정으로 가볍게 목례했다. 나도 마주 인사하곤 다시 돌아섰다.
기분이 좀 묘하네. 갑자기 왜 저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눈엣가시 취급당하는 것보다야 나았다.
“저 사람 보는 눈이 없긴 없나 봐.”
주차장을 빠져나오자 유명우가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어떻게 유진이 널 쓸모없는 걸림돌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지?”
그건 내가 진짜로 쓸모없는 걸림돌이었기 때문이란다, 하하.
“내가 동생에 비해 모자라긴 하잖아.”
“그거야 등급이 안 따라 준 탓이고. 같은 S급이었으면 네가 더 나았을 수도 있지. 아니, 틀림없이 훨씬 잘나갔을걸.”
무슨 자신감이냐. 누군가가 날 믿어 준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지만 이놈만큼은 좀 덜 믿어 줬으면 좋겠다. A급도 모자라서 이젠 아예 S급이랑 비교하고 있어.
“부디 남들 듣는 데선 그런 말 하지 마라. 특히 여긴 유현이 녀석 팬이 득시글하다고. 자칫하다간 돌 맞아.”
덕분에 본격적으로 사고 친 이후에는 여기 오기 더럽게 싫었었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쓰레기 보는 듯한 시선들이란.
내 말에 유명우가 목을 움츠리며 주위를 살폈다.
“그, 그래도 사실은 사실이니까.”
사실은 무슨.
“근데 너, 장갑 안 벗어? 갑갑할 텐데.”
“괜찮아! 교육 끝날 때까지 계속 끼고 있을 거야.”
녀석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설마 그거 끼고 볼일까지 보려는 건 아니겠지.
유명우를 데리고 로비 구석의 보안실로 향했다. 나와 예림이는 길드장이 직접 통과 오케이 해 줬지만 평범한 외부인이 1~3층 외 구역에 들어가려면 보안 검사를 거쳐야만 했다.
“상급 헌터 기숙사 외부인 방문하려는데요.”
보안실 문을 열며 말하자 데스크의 여직원이 이쪽으로 와 달라고 하였다.
“보안 검사 후 15층 기숙사 관리실에서 방문 신청하시면 됩니다. 검사 대상은 어느 분이시죠?”
“이쪽이요. 각성자입니다.”
“성함과 전화번호, 헌터이실 경우 자격증 일련번호를 말씀해 주세요.”
유명우가 이름과 전화번호를 말했다.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잠시 울리고 다른 직원이 열쇠로 잠글 수 있는 팔찌를 가지고 왔다.
“인벤토리 봉인 팔찌입니다. 강제로 벗을 시 즉각 퇴거 조치되며 그에 따른 비용을 배상해야 합니다. 용무를 끝마친 후에는 반드시 반납해 주십시오.”
각성자가 늘어나면서 제일 곤란해진 것이 바로 인벤토리였다. F급도 각성만 하면 가질 수 있는 검사 불가 공간이니까.
그나마 던전에서 나온 물건이 아니면 넣을 수 없어서 실생활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보안이 필요한 장소에서는 만일을 대비해 인벤토리를 봉인시켰다. 각성자 수가 너무 늘어나 버린 몇 년 후에는 아예 건물 전체에 봉인 저주를 걸어 버리기도 했다.
덕분에 던전에 들어가지 않아도 떼돈 벌 수 있는 각성자 1위가 저주 헌터라는 말까지 나왔었다. 조건만 맞추면 별의별 걸 다 할 수 있으니까. 다만 그 조건 맞추는 게 힘들어 전투 활용도는 낮은 편이었다.
보안 검사를 마치고 기숙사 관리실에 들러 방문 신청도 한 뒤 A-15호로 돌아왔다. 예림이는 아직 코디 받는 중인 건가?
“이게 기숙사실이야?”
집 안으로 들어온 유명우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감탄했다.
“집 엄청 좋다. 기숙사가 아니라 그냥 고급 아파트 같아.”
“서비스도 좋아. 월 백만 원까지 생필품 제공에 청소랑 세탁까지 주 2회 해준다더라.”
“우와, 진짜?”
유명우가 선망의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나 말고 집을 봐 줘. 애초에 원래는 들어올 자격 안 되거든?
“이래서 다들 등급 등급 하는 거지. A급쯤 되니까 길드에서 모셔가선 이런 고급 시설도 턱턱 내어주잖아.”
“A급이 아닌데도 이런 곳에 들어올 수 있다니, 역시 넌 대단해!”
“…아니 이건 인맥빨이고.”
미치겠네. 누가 쟤 눈에서 콩깍지 좀 떼 줬으면. 무슨 아이돌 만난 십대 애들처럼 굴고 있었다.
들어오자마자 유명우 찾으러 나간 탓에 나도 아직 집 전체를 돌아보진 못했다. 머물 곳 정할 겸 살펴보자 방이 무려 네 개였다. 진짜 그냥 아파트네. 그중 둘은 침실이었기에 소파에 이불 펼 일은 없었다.
주방도 넓고 세련된 데다가 뭔지 모를 주방가전들로 채워져 있었다. 저건 오븐일 거고, 이건 뭐지.
“오, 냉장고도 채워져 있네.”
채소나 과일, 기타 식재료는 물론이고 오렌지 주스에 맥주도 있었다.
“뭐 마실래?”
오렌지 주스 병을 꺼내며 물었다. 주방 입구에서 얼쩡거리고 있던 유명우가 고개를 젓는다.
“아니, 난 그냥 물이면 돼.”
“어차피 공짜야. 마셔. 오렌지 주스 괜찮지?”
컵을 두 개 꺼내 주스를 따랐다. 그러고 보니 설거지는 내가 해야 하는 건가. 식기세척기가 있을 거 같은데, 뭐가 뭔지 모르겠네.
유명우에게 주스 컵을 건네주고 거실로 갔다.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고 기대자 노곤함이 밀려들었다.
월급도 안 받는 백수고 오늘은 주말인데 뭐가 이리 바빴담. 그래도 대충 정리됐으니 월요일까진 아무 일도 안 하고 쉬어야지.
‘예림이야 계약도 했겠다 길드에서 알아서 잘 챙겨 줄 거고, 저 녀석만 스킬 가지게 해주면 진짜 끝이네.’
힐러 필요 없어. 안 해. 나는 놀고먹을 거다. 배부른 나무늘보가 되어 주지.
아, 피스 밥 줘야 하는데. 좀 있다 올라갔다 와야겠다.
멍하게 주스를 홀짝이며 TV를 켰다. 유명우는 컵을 든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서성거리고 있었다. 적당히 앉아서 마시면 되지 그런 것까지 알려 줘야 하냐.
“이리 와서 앉아.”
“어, 어.”
쪼르르 와선 남는 자리에 앉는다. 말은 잘 듣네.
“며칠 지내려면 짐 좀 챙겨 와야 할 텐데, 혹시 문 부서져라 두드려 댈 떡대들 또 있냐?”
“응? 아, 아니. 내가 각성해서 훈련도 받을 거니 던전 돌아서 갚는다고 했는데… 아까 그놈들에게 빚 넘겨 버리더라고. F급에 보조 스킬로는 돈 못 번다고…….”
그런 거였군. 어쩐지 갑자기 헌터가 등장한다 싶었다.
“그럼 오늘은 쉬고 내일 가서 필요한 거 챙겨 와. 불안하면 장갑 끼고 가고.”
내가 따라가 주기엔 너무 귀찮았다. 어차피 장비 없이는 물몸이고.
반쯤 마신 주스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철물점에서 사온 걸고리와 관리실에서 빌려온 공구를 들고 거실 한쪽의 A-16호와 연결된 문으로 다가갔다.
문을 달아도 하필 여기 다냐. 밤중에 공포영화 보며 맥주 마시다가 문 벌컥 열리면 심장마비 걸리겠다. 예림이 성격에 얌전히 노크할 거 같지도 않은데.
“도와줄까?”
“아니, 괜찮아.”
드릴로 못 박아 걸고리 달아 잠그곤 다시 소파로 돌아와 늘어졌다. 이따가 피스 밥 주고 나서 맥주나 마셔야지. 여기 음식 배달도 되나. 오랜만에 치맥 하고 싶은데 받으러 내려가면 되겠지?
“…교육 끝나고 나면, 나는 여기 올 일 없겠지?”
유명우가 빈 컵을 만지작거리며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원래라면 그럴 것이다. 버프 스킬 하나 있는 F급을 해연 길드에서 받아 줄 리 없으니까.
하지만 붙잡아 둬야 하는데. 무슨 핑계를 대지.
“친구 만나러 오는 거야 언제든지 가능하지. 헌터로서 여기 들어오는 건, 좀 힘들긴 하겠지만. 나도 계약은 길드 헌터가 아니라 일반 직원이야.”
“아니, 왜?”
유명우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긴 왜야, F급이니까지. 물론 석시명은 날 길드원으로 들일 생각이었지만 정식 절차 거치면 등급에서 탈락이었다.
“해연 길드는 C급도 몇 없어. A급과 B급 위주지. 그래도 일반 직원은 헌터 자격증 있으면 추가점 붙는다니까, 혹 모르지. 교육 성적 좋으면 입사 권유받을지도.”
물론 현실은 그딴 거 없었다. 진짜 어떻게 유명우를 잡아 둔다지. …석시명이랑 딜해 볼까. 주 5시간… 아니 3시간……. 젠장.
“너, 집안일 잘하냐.”
“뭐? 어, 라면은 잘 끓이는데.”
라면은 나도 잘 끓인다. 하긴 요리도 해 봐야 늘지, 재료 살 돈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잘하겠어.
“그게, 기숙사에 사비로 가정부를 고용할 수 있다더라고. 물론 진짜 가정부 하라는 건 아니고, 교육 끝마쳐도 F급이 자리 잡으려면 시간 꽤 걸리거든? 그러니 입주 가정부인 척하고 몇 달 여기 있는 게 어떨까 해서. 어차피 방도 남아돌고 혼자 살기 심심하기도 하고.”
내 말에 유명우가 충격이라도 받은 듯 딱딱하게 굳었다. 역시 가정부 하라는 말은 별로였나. 하지만 직원 기숙사에 밀어 넣을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가 않는…….
“유진아!”
“어? 왜—”
“넌 진짜 너무 착하고 좋은 친구야!”
명우 놈이 또 나를 끌어안았다. 망할, 이 자식 힘이 왜 이렇게… 아, 내가 장갑 줬지. 그냥 돌려받을까.
“좀 떨어져! 착하긴 뭐가 착해. 돈 없어서 월급도 못 줘!”
“그런 말 마. 이 동네 월세가 얼만데! 진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긴 이 정도로 넓은 집에 위치까지 따지면 월급 다 털어 넣어야 하겠구나. 그보다 놔라. 이것 좀 놓—
쾅!
“아저씨!”
힘찬 외침과 함께 곱게 달아 뒀던 걸고리가 무참히 떨어져 나가 바닥을 굴렀다.
…괜찮아. 예상했어. 저 꼴 날 줄 알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