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269
267화 다섯 번째
넓게 펼쳐진 날개에 구름이 휘감겼다 길게 갈라진다. 이름 모를 SSS급 몬스터는 함선을 보호하듯 앞장서 날아갔다. 그 머리 위에 유체화한 피스가 떡하니 앉아 있었다. 처음 잠깐은 경계하더니 우리 편이라는 확신이 들었는지 이내 아무렇지 않게 대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새로 들어온 신입이구나, 라는 느낌이었다. 내가 곧잘 새로운 마수들을 데리고 온 탓인 듯했다.
저 몬스터를 성현제가 보냈다곤 해도 정말로 괜찮을지는 아직 약간 걱정이 들었다. 등급 차이가 있다 해도 한 방에 나가떨어질 피스는 아니지만.
“스킬 사기에는 포인트가 조금 모자라네.”
문현아가 허공을, 그녀의 눈에만 비칠 상점창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 전면 창이 넓게 달린 라운지에는 시그마를 포함해 우리 일행만이 모여 있었다.
메드상 시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미리 연락을 해 피난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을 터였다. 노아가 이동 포탈을 만들어 주면 금방 피난이 끝나고,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 원반을 설치하게 된다.
라운지의 공기는 약간 무거웠다. 다들 복잡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순 없을 터였다.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불안감도 있겠지만, 한 번 나가게 되면 이 세계와는 영영 작별이다.
“유현이 넌 뭐 살지 골라 놨어?”
“포인트가 한정적이니까 아직 고민 중이야. 나도 장비보다는 역시 스킬이 더 좋을 거 같아.”
유현이도 스킬 쪽에 더 관심이 많구나. 예림이와 노아도 마찬가지였다. 예림이는 포인트가 워낙 많아서 원하는 스킬에 더해 장비도 한둘쯤 구입 가능했지만 정령의 알을 위해 쓰진 않고 있었다.
나는 어쩌지. 포인트 꽤 모이긴 했는데. 쿠키 사고 남은 포인트로 애들 장비나 살까 했더니 현아 씨가 형님부터 챙기라며 등을 후려쳤다.
‘…내 스킬을 사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마나 각인 적응만 마치면 마력 다루는 능력이 올라갈 테니까. 다만 내 적성에 맞는, 살 수 있을 만한 가격의 스킬이 좀 애매했다. 공격계는 하급이 아닌 이상 엄두도 못 낼 포인트였고 방어 계통도 마찬가지였다. 댁 적성은 전투와 백만 광년쯤 떨어져 있답니다, 라고 말해 주는 것만 같았다.
‘보조계 쪽은 저렴한 게 꽤 있긴 한데.’
특히 버프류는 대부분 등급 대비 낮은 포인트로 살 수 있었지만 문제는 비슷한 스킬과 중복이 불가능했다. 보통은 이렇긴 하지. 내새끼와 베테랑이 특이한 거지. 중복이 불가능하면 예림이와 노아의 스킬이 더 낫고.
차라리 몬스터 키우는 데 도움 되는 스킬을 살까. 이쪽도 저렴했다. 흥분한 상대를 진정시키는 스킬이나 회복과 성장을 도와주는 숙면 스킬, 음, 이거 괜찮은 거 같은데. 야행성 새끼 몬스터를 낮에 재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도 부작용 없나?
밥투정을 안 하게 해주는 스킬도 있었다. 주는 걸 잘 받아먹는… 잠깐만, 이거 악용하면 위험한 거 아니냐. 신뢰가 어느 정도 쌓여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긴 했지만. 목욕을 쉽게 시키는 것도 있네. 정말 별게 다 있구만. 다들 한정적인 조건과 상황에 신뢰도 바탕이라서인지 상대 등급 한계도 거의 없었다.
이런 보조류나 몇 개 사 갈까. 등급도 낮은 편에 할인 많이 들어갔는지 싼데.
“나가기 전에 말이야.”
문현아가 등받이 깊게 몸을 기대며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도 형 소리 한 번쯤 해봐야 하지 않겠어?”
“…네?”
“예림이한테도 그렇고. 예림아, 누나 소리 듣고 싶지 않냐.”
아니 갑자기 무슨 소리야. 정령의 알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예림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짓궂게 웃었다.
“맞아요! 아저씨 저한테 아직 누나라고 한 번도 안 불렀잖아요! 제가 한 살 더 많은데!”
그때 적당히 넘어가나 했더니 왜 인제 와서……. 문현아가 유현이와 노아까지 부추기기 시작했다.
“도련님도 듣고 싶지 않아? 노아 헌터는 무려 열 살이나 더 많잖아. 나가기 전에 기분 한번 내보라고.”
“현아 씨! 아니, 실제로는 다른 사람이잖습니까. 맡은 배역이 원래 나이보다 많다고 해서 동생보고 형이라 그럽니까?”
“같은 극에서 연기할 땐 당연히 형이라고 해야지. 안 그러냐.”
“현아 언니 말이 맞네요! 자, 아저씨.”
어서 불러 보세요, 하며 예림이가 거만하게 팔짱을 꼈다. 뭐, 못 할 거 없긴 한데 이렇게 판 깔아 주니 더 쪽팔리잖아. 괜히 옆에 선 동생을 힐끗 돌아보았다.
“…너도 듣고 싶냐?”
“아니. 형은 형이잖아. 난 알파가 아니야.”
유현이의 거절에 예림이가 치사하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노아 오빠는요? 괜찮잖아요, 또 듣기 힘들 텐데!”
“저는…….”
노아가 내 눈치를 슬쩍 살피다가 배시시 웃었다.
“듣고 싶기도 하고요.”
“그쵸! 한유현 넌 싫으면 빠져.”
“내가 왜.”
“싫다면서?”
“싫다고는 안 했다. 형에게 그런 거 강요하지 마, 둘 다.”
“강요라니! 아, 한유현 저거 또 혼자 딱딱하게 굴지. 사실은 불덩어리가 아니라 얼음덩어린 거 아냐?”
확인해 보자며 예림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유현이도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노아가 싸울 거면 밖으로 나가 달라고 말했다.
“현아 씨도 정말.”
피하듯 다가온 내 팔을 문현아가 가볍게 잡아끌며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형님, 달이 쟨 어떻게 할 거야?”
문현아의 말에 유현이와 예림이의 기싸움을 구경 중인 시그마를 바라보았다. 눈길을 느꼈는지 이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저도, 뭐라고 장담할 수가 없어요.”
정말로 진짜가 되었다면 간단한 일이다. 그냥 데리고 가면 된다. 하지만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같이 나갈 수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요.”
SS급 헌터야 어디서든 환영받을 테고. 신분이 불확실한 것쯤이야 문제 될 거 없다. 등급만 확인하면 바로 두 팔 벌려 받아 줄 것이다. 성현제와 똑같이 생겨서 말이 나오긴 하겠지만 대충 친척이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럼 성 씨가 되려나. …성월이? 내가 생각해도 좀 아닌 거 같다. 아님 소월이라거나.
“만약 나가게 되면 이름도 바꿔야 할 텐데요.”
“형님은 입 댈 생각도 하지 마.”
“…왜 다들.”
“안 돼.”
아니 왜. 역시 삐약이가 문제인가. 삐약이 귀여운 거 같은데. 아니면 하양이… 는 있고, 동글이나 삐삐, 솜뭉치…….
펑! 냉기와 열기가 맞부딪치며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소리는 요란했지만 비각성자로 치자면 가벼운 눈싸움 수준이었다. 그래도 집 안에서는 저러면 안 되지만. 벽지 운다.
희뿌옇게 퍼져 나가는 수증기 사이로 다시금 시그마를 바라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많이 달라진 듯한 느낌이었다. 그때는 이상하게도 흐릿하게 비춰졌었는데, 지금은 수증기에 가려진 채로도 훨씬 뚜렷하게 다가온다.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지.”
“너 책임질 생각하느라고.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 동네 가면 달이 너 진짜 집도 절도 신분도 아무것도 없잖냐. 일단 우리 집에 데려다가─”
“형! 왜 또!”
“아저씨! 사람을 강아지 줍듯 하면 안 되죠!”
“저, 저도 아직인데요, 유진 씨!”
“…아니, 빌딩에 남는 방 많으니까 거기서 지내도 되고.”
“저런, 누나한테 올래, 달아?”
누나 돈 많단다, 라는 너스레에 시그마가 코웃음을 쳤다.
“그곳도 상급 각성자에 대한 수요는 많지 않나. 어차피 C급이 책임지겠지만.”
“그래, 책임지고 좋은 길드 소개시켜 줄게! 해연이라고 있거든요, 여기가 참 뭐라 말할 수 없이 좋은 곳인데.”
“아, 형님. 이런 건 공평하게 해야지!”
그런 게 어딨습니까, 먼저 낚으면 임자지!
* * *
“대피 준비는 모두 끝났나?”
함선이 메드상에 도착했다. 비행장에 내려서며 노아가 마중 나온 메드상 방위청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들 중 한 명이 대표로 나서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뮤 님. 중앙 광장을 비롯한 세 개의 광장에 시민들이 대기 중입니다. 제2메드상으로의 공간이동 포털만 열어 주시면 됩니다.”
“알겠다. 그럼 여러분, 먼저 목적지에 가 있으세요.”
노아가 방위청 가드들과 함께 떠나고 우리는 마지막 원반 설치 지역으로 향했다. 커다란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의 한쪽 끝. 그곳이 바로 다섯 번째 원반의 설치 장소였다.
“이곳에 설치된 대포들은 모두 SS급 몬스터에게까지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무기입니다.”
메드상 가드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무기에 보조 스킬을 더한 결과지요. 다만 이곳에 보조계 가드들이 대기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 일회용입니다.”
마나만 충분히 넣을 수 있다면 누가 쓰든 같은 효력을 발휘한다 하였다. 이 동네는 그런 점은 참 좋단 말이야. 괜히 하얀 살쾡이 총을 꺼내어 매만졌다. 이거 이대로 못 가지고 나가나. 신발도 재킷도 아쉽다. 시리즈 더 있을 거 같은데 다 모으지도 못하고.
메드상의 가드들이 무기들만 놓아둔 채 철수했다. 예림이는 혹시 여기도 정령이 있을지 모른다며 강 쪽으로 내려갔다. 유현이는 피스와 함께 하늘 위에서 주변을 살폈다. 문현아도 자신의 바이크를 점검하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혹시 모르니까 이거 받으세요.”
나는 시그마에게 미니미니 쿠키 하나를 내밀었다.
“만약에 집중적으로 노려지거나 하면 작아지는 편이 보호받기 좋을 겁니다.”
쿠키를 받고 별말 없이 돌아서려는 그를 다시금 붙잡았다.
“제대로 물어본 적이 없는 거 같아서. 시그마 씨, 당신은 여길 떠나도 괜찮은 겁니까?”
오랜 시간 살아온 곳이다. 그런 곳을 자의도 아니고 갑작스럽게 배척당해 떠나게 되었다. 단순히 멀어지는 것조차 아닌, 완전히 다른 세계로 가게 되는 것이었다.
금빛 눈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와서 새삼스러운 소리를 하는군.”
“그렇긴 한데.”
“C급 너는 나를 잘 아는 것처럼 행동하더니.”
…그야, 반쯤은 누구 씨 때문이었다. 외모는 물론이요 행동 패턴도 꽤 비슷했으니까. 물론 시그마가 더 거칠고 덜 다듬어졌고, 어린 티가 났지만. 그래도 비슷한 점이 많아서.
“어, 음. 그러네. 싫으면 여기 있지도 않았겠다.”
성현제와 비교하면 한참 어리게 느껴져서 잠깐 잊고 있었다. 이 녀석도 얌전한 성격은 절대 아니지. 남을 위해 참아 주는 일 따윈 없을 거고. 그렇게 생각하자 무심코 웃음이 새어 나왔다.
“같이 다닌 거, 나쁘진 않았나 봐요. 현아 씨가 애 취급하는 것도 은근 즐긴 거 아닙니까? 반항을 별로 안 하던데?”
“…너도 람다 손에 붙잡혀 봐.”
“람다가 아니라 문현아다.”
문현아가 불쑥 다가와 시그마의 어깨에 턱하니 팔을 얹었다.
“잡히기 전에 도망 안 친 건 사실이지, 우리 달이.”
“내가 왜 도망쳐야 하지.”
“나가면 문현아야. 지금이랑 모습도 좀 달라질 거고. 아깝다, 이 몸뚱이!”
무기도! 바이크도! 술도! 문현아가 장난스럽게 울상을 지었다. 진심도 꽤 있는 듯했지만.
“나가게 되면 계약도 끝이다.”
어느새 내 뒤쪽으로 내려선 유현이가 시그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형은 C급도 아니야.”
응, 스탯 F급이지. …나도 아쉬워지네. 아깝다, 이 몸뚱이! 물론 은혜가 더 좋긴 하지만, 그래도 아쉬웠다. 목숨도 세 개 남았는데 이건 못 들고 나가나.
“그러니 이건 돌려주지. 가지고 떠나.”
돌려주다니, 무슨 소린가 했는데 유현이가 도플갱어 인형을 꺼냈다. 저, 저게 아직 있었나.
“어? 뭐예요 그게?”
예림이가 놀라며 소리치고 문현아도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게 뭐… 아, 도플갱어 인형인가? 들어 본 적은 있어.”
“우와, 진짜 똑같다! 인형이라고요? 줘 봐, 한유현. 나도 볼래!”
예림이가 팔랑팔랑 두 손을 흔들고 문현아도 관심을 보였다. 아니, 그만둬 줘라. 그냥 단순한 더미 인형이긴 한데 뭔가 쪽팔려…….
“별거 아니야, 예림아. 그냥 가끔 나오는 아이템이야.”
“아저씨 손이랑 똑같아요! 약간 더 서늘하긴 한데, 지문도 있네요?”
“심장 박동도 없고 기운 자체가 달라서 가짜 티는 확 나는데 겉모습은 완전 같네. 어디까지 똑같지?”
“현아 씨! 옷 들추지 마세요!”
뭐 하냐, 진짜! 궁금하면 직접 만들어서 확인해 보라면서 인형을 빼앗… 으려고 했지만 힘이 달렸다.
“…유진 씨?”
노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간이동으로 나타난 그가 예림이와 문현아에게 붙잡힌 인형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 효도중독자가 유진 씨를 노린다고 했으니 가짜를 만든 거로군요. 그런데 가짜 티가 많이 나는 거 같아요. 모습은 똑같지만요.”
“저, 전투 중에는 잠깐 속일 수 있을걸요. 예림아, 현아 씨, 돌려주세요!”
“누구한테?”
문현아가 인형을 들고 가볍게 흔들었다. 내가 어지러운 거 같으니 그만둬 줘. 예림이가 저 달라면서 손을 들었지만 인형은 원래 주인인 시그마에게로 돌아갔다. 정확히는 내 거긴 한데.
“자자, 준비나 하죠. 집에 돌아갈 준비.”
밖은 시간이 얼마 안 흘렀을지 몰라도 체감은 한참 되었다. 명우가 걱정하고 있진 않을까. 삐약이와 벨라레는 사이좋게 잘 있으려나. 송태원 실장님, 우리 없어서 좀 편하실까. 그러기엔 리에트가 남아 있지만. 리에트 사고 안 쳤겠지.
“성현제 씨, 보고 계시면 늦지 말고 나오세요.”
공중을 향해 손 한번 흔들어 주곤 원반을 꺼내들었다. 피스가 내 옆을 지키듯 붙어 섰다. SSS급 몬스터도 앞으로 나섰다. 노아도 준비를 마치고 나도 선생님 스킬을 썼다.
신입과 바로 연락 닿고 무사히 나간다면 더 바랄 게 없겠건만. 그렇게 쉽게 되진 않겠지.
숨을 삼키고, 원반의 버튼을 눌렀다. 직후 메시지창이 떴다.
[허니, 그쪽과 연결이 잘 되지 않아요!]응? 아직도? 그리고 이어서.
[두 번째 원반을 설치했군요! 아직 메시지를 볼 수 없나요?]연이어 다른 메시지가 떴다. 두 번째 원반이라니, 잠깐만. 이거 언제 보낸 메시지들이야?
[채터박스예요!] [효도중독자 중에서도 시스템에 손댈 수 있는 사람이 있어요!] [해파리와 채터박스가!] [허니, 무해의 왕이 그곳에 접촉했어요!] [원반을 조금 더 천천히 설치하는 게─] [무해의 왕이, 그곳의 초월자의 정보와!]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 [다섯 번째 원반은!] [좀 더 늦게!]원반은 이미 설치되었다. 잠깐의 시간을 두고,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우리 작은 달.]하늘이, 마치 깨어지듯 어두워졌다. 분명 낮의 하늘이었건만 어둠이 내린 너머로 달빛이 새어 들어왔다.
성현제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