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35
35화 반복작업 특화
순간 얼어붙었다가, 스킬창을 황급히 다음 장으로 넘겼다.
[(대기)(대기)(대기)(대기)(대기)(대기)(대기)(대기)(대기)(대기)(대기)(대기)(대기)(대기)(대기)(대기)(대기)(대기)(대기)(대기)(유명우-F)(김성한-A)(피스-C)
스킬 성장 대상자 – 박예림, 유명우]
…피스? 잠깐만, 진짜 우리 피스? 감화되었다는 창 뜬 적도 없는데?
‘설명 좀. 제발 설명 좀. 설명을 해 줘. 자세한 사용 설명서만 주면 진짜 내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S급 원하는 대로 다 채울 테니까 부디 제발 설명 좀.’
하지만 두터운 사용 설명서가 나팔소리 배경음으로 깔고 빛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오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엿 같은 시스템.
진정하고 차분하게 머리나 굴려 보자.
‘일단 피스가 키워드에 감화된 건 확실해.’
시스템 오류가 아니라면.
칭호는 완벽한 양육자, 스킬 이름은 내 새끼가 최고다, 감화되어야 하는 키워드는 사랑한다.
나는 여태까지 키워드가 입 발린 말 잔뜩 늘어놓아 마지막 한 방으로 적용시키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진짜 제대로 된 양육자라면, 제 새끼에 대한 사랑을 꾸준히 표현하는 것이 옳은 행동일 터였다.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설마 피스에게 계속해서 사랑한다고 말해 준 것이 제대로 된 사용법이었다거나, 그런 건가?’
어느 쪽이 맞는 방법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양육자 호칭을 생각해 본다면 꾸준히 애정을 쌓아서 감화시키는 쪽이 정답인 듯했다.
어차피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그만이지만.
또한 이 경우엔 스킬 적용 성공 알림이 따로 뜨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걸로 몬스터를 키워내는 건 확실하게 가능해졌군.’
혹 피스에게 키워드 적용이 안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한시름 놓았다. 시스템의 미친 요구도 몬스터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고.
물론 S급 몬스터를 50마리 채워 넣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단 있어야 키우지. S급 던전의 중간 보스나 보스 몬스터가 새끼까지 달고 나타나는 경우는 극히 희박했다. 게다가 그걸 사로잡기까지 해야 하니 입수 난이도가 그야말로 극악이었다.
‘운 좋게 잡는다 해도 성장 불가능한 것을 확인하면 죽여 버리겠지. 5년 후까지도 새끼 몬스터를 성체로 성장시킨 경우는 거의 없었으니까.’
아주 없지는 않았다. 아마 그 경우엔 우연히 조건이 맞았던 것이었겠지. 심지어 전부 하급 몬스터였으니 성장 조건이 쉬웠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디서 뜬금없이 몬스터 사육 특수 스킬 가진 놈이 튀어나오지 않는 한, 상급 기승수는 나만 키워낼 수 있다 이거지.’
이걸로 거대 길드들과 협상해 봐야겠다. 제 안전을 보장해 주시면 공평하게 한 마리씩 키워드립니다. 물론 대가는 따로 받고요.
한 곳이 독차지하는 것보다야 그편이 나을 테니 조율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유현이 녀석 걱정도 확실하게 덜 수 있을 거고.
물론 와~ 저기 돈 되는 스킬 가진 스탯 F급짜리가 굴러다니네, 하고 침 흘려 댈 새끼들 많겠지만, 잔챙이야 신경 쓸 필요 없었다. 그냥 내 전용 마수 생길 때까지 살짝 몸조심만 하면 되니까.
설마 해연 길드 건물까지 들어와서 납치 시도하겠어.
* * *
피스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 채로 길드에 도착했다.
총 마흔여덟 개의 대기 칸은 일단 잊자. 제아무리 미친 시스템 만든 놈이라 해도 단시일에 채울 거라곤 기대하지 않을 테니까. 애초에 내가 왜 해야 해. 이유 알려 주기 전까지는 거부다, 파업이다.
“저기, 유진아.”
얼른 올라가 피스에게 뽀뽀라도 해 주려는데 죽을상을 한 유명우가 죽어 가는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이놈은 또 왜 이래.
“첫 던전이 좀 살벌하긴 했지? 이번이 특이 케이스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얼른 장비 반납하고 올라가서 쉬자.”
오늘은 푹 쉬고 내일부터 노가다 시작해야지. 마석 팔아서 날붙이도 사 오고. 새 거보단 낡은 게 나으려나. 고물상 뒤져 볼까.
“아니, 나는… 역시 안 되는 놈 같아.”
잠깐만 고생하면 SS급 스킬 가질 놈이 말했다. 전국 수백만 명의 FF급들이 돌 던질 소릴세.
“결국 10레벨 스킬도… 못 얻었잖아…….”
“걱정할 거 없다니까. 뒤늦게 생기는 경우도 흔하다고 했잖아. 야, 나도 10레벨 스킬 없어.”
“어? 너도?”
“그래. 유현이가 새새끼 잡았을 때 레벨 올랐거든. 근데 안 주더라.”
너나 나나 마찬가지야, 라는 위로에도 명우는 평소와 달리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그래도 넌 나 같은 놈과는 완전히 다르잖아. 네 동생, 엄청 기뻐하더라. 그런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면 등급 같은 건 아무래도 좋을걸? 넌 진짜 특별해.”
그렇게 말하는 몰골이 금방이라도 땅 파고 들어갈 듯 음울했다. 평소보다 상태가 좀 많이 심각하군. 어쩌지. 술이라도 먹일까.
“일단 올라가서 얘기해, 올라가서.”
“아니야, 이제 슬슬 나가는 게 맞는 거 같아. 신인 교육도 이제 이론만 남았다고 했고. 그건 협회에서 이어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아니, 들을 필요도 없을 거 같지만. 역시 던전 공략 같은 거 못 하겠어. 나 같은 거한테 시간 낭비하게 해서 정말 미안해. 그래도 진짜로 고마웠어. 평생 잊지 못할 거야.”
유명우가 무슨 유언 내뱉듯 중얼거렸다. 좀이 아니라 진짜 많이 심각했다. 이대로 내보냈다간 또 자살 시도해 버릴 얼굴이었다.
S급들과 부대낀 게 원인인가. 나도 원인 중 하나인 것 같기도 하고.
이제라도 사실 넌 SS급 제작 스킬을 가질 수 있는 소질이 있어! 라고 말해 봐야 씨알도 안 먹히겠지. 평소에도 못 믿을 소린데 지금 했다간 되레 장난하냐며 역효과가 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스킬을 밝히기에는, 명우가 좋은 녀석이긴 하지만 그 정도의 신뢰까진 쌓이지 않았다. 친동생한테도 아직 자세히는 말 안 했는걸.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도 어쩔 수 없지.”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억지로 잡아 둘 생각은 없어. 그냥… 좋은 정보를 하나 얻었는데 쓸 수 없게 되어 아쉬울 뿐이야.”
진짜 좋은 정보가 하나 있는데. 대박 정보인데.
“…정보?”
“어. 너한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정보거든. 그런데 네가 힘들어하는 거 보니까… 더 고생시키기도 미안하고. 아쉽긴 한데, 그래도 싫다면 억지로 들이밀지는 않을게.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잖아.”
한숨 푹푹 뱉으며 유명우의 눈치를 살폈다.
“가기 전에 한번 들어나 볼래? 이거 진짜 귀한 정보거든. 그러니까…….”
목소리를 팍 낮추어 속삭이듯 말했다.
“석하얀 씨 알지? 며칠 전 이론 교육 맡아준 아가씨. 그 젊은 나이에 교수 자격증까지 딴 천재인데, 각성자 연구에 푹 빠져 있거든. 거기다 집안도 빵빵해서 온갖 중요한 정보를 잔뜩 가지고 있더라고.”
“그, 그래? 그분이?”
“응. 원래 남에게 말하면 안 되는 건데, 특별히 얻어낸 거야. 너도 절대 누구한테서 들었다는 소리 하면 안 된다? 너만 알고 있어야 해.”
명우가 얼른 고개를 끄덕거렸다. 너한테만 특별히, 너만 알고 있어. 사람 낚는 마법의 문구다.
“무기 관련 보조 스킬 있잖아. 네 숫돌 같은 거.”
“어… 그게 왜?”
“그런 스킬을 가지고 있는 각성자가 무척이나 좋은, 특별한 스킬을 얻게 될 수 있는 훈련이 있어.”
“특별한 스킬을 얻는… 훈련?”
“그래. 물론 쉽지는 않아. 그래도 그 훈련을 열심히, 빠르게 끝낸다면, 운에 따라선 엄청난 스킬을 가지게 된다더라고.”
“난 운이 별로 없는데…….”
“없기는. 야, 이거 알게 된 것만으로도 엄청난 운이야. 게다가 최소 C급 보장이래. C급 보조 스킬이면 먹고사는 데 전~ 혀 지장 없어진다니까?”
SS급은 너무 사기 치는 냄새가 나니까 C급 정도가 적당했다.
“…진짜?”
죽은 동태 같던 명우의 눈에 다시금 빛이 들어왔다. 그럼, 그럼. 진짜지. 나만 믿어라.
“다만 힘들긴 힘들어서…….”
“얼마나 힘든데?”
“날붙이 알지? 칼이나 가위 같은 거. 그걸 갈아야 해. 딱 만 개만.”
유명우의 입이 헤 벌어졌다.
“마, 만 개……?”
“어. 역시 힘들겠지. 나도 너 고생하는 거 보고 싶지 않…….”
“고작 만 개면 돼? 진짜?!”
명우가 환호하듯 소리쳤다. 눈빛이 완전히 되살아나다 못해 이글이글 불타오른다. 뭐지, 혹시 노가다 좋아하니?
“…그래. 고작이라기엔 좀 많긴 하지만.”
“아냐, 별로 안 많아. 하루에 백 개씩 갈면 딱 백 일 만에 끝나잖아!”
“백 개씩……?”
백 일 만에? 그렇게 빨리 끝내려면 하나에 십 분 걸린다고 쳐도 한 시간에 6개씩 하루 열일곱 시간 일하고 남는 일곱 시간 동안 먹고자고 다 해야 하는데…….
“…천천히 해, 천천히.”
열정적인 것도 좋지만 일단 사람이 살아 있어야 SS급 스킬도 쓰지.
“천천히? 한 오십 개씩 하면 될까? 하지만 그럼 반년 넘게 걸리는데… 그렇게 오래 유진이 너한테 신세 지는 건 좀…….”
“괜찮아. 네 밥 맛있어.”
진짜다. 심지어 갈수록 실력이 늘고 있어서 앞날이 기대될 정도였다. 요리 관련 스킬은 없나.
“그러니 신경 쓰지 마. 나보단 네가 더 힘들걸? 종일 처박혀서 칼만 가는 게 어디 쉽겠냐.”
“걱정 마. 어릴 때 방학 내내 매달려서 한산대첩 모형 만든 적도 있어. 그걸로 상도 받았는데. 집구석에서 종일 반복 작업 하는 건 자신 있다고!”
그랬군. 이런 성격도 스킬 소질과 관련이 있는 걸까? 대장간 얻고 나면 장비를 아주 공장처럼 찍어내는 거 아닐까 몰라.
“아, 장비는 내가 가져다 놓을게. 유진이 넌 먼저 올라가서 쉬어.”
괜찮다고 말하려다가 그냥 장비를 맡겼다. 이런 소소한 일이라도 도움이 되면 조금이나마 부담이 덜하겠지.
사람이 너무 착해도 문제라니까.
하긴 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먹고 고마워할 줄 모르는 인간이었다면 내가 먼저 팽해 버렸을 것이다. SS급 스킬 가지고 배신이라도 해 버리면 없느니만 못하니까. 키워드 감화 효과도 양육자 모델이 없으면 무용지물이고.
유명우란 인간이 믿을 만한 성품이니까 나도 이렇게까지 붙잡는 거다.
“유진아, 진짜로 고마워. 열심히 해서 다 갚아 줄게, 꼭.”
돌아서기 전, 명우가 말했다. 그렇게 고마우면 나중에 괜찮은 장비나 하나 만들어 주든지.
명우 일도 해결했겠다, 정말로 가벼운 발걸음으로 기숙사 층으로 향했다. 이젠 진짜 기다렸다가 수확만 하면 되는구나. 대충 다 끝났어, 만세.
놀아야지~ 잔뜩 게으름 피워야지~ 집 넓겠다 날 더워지겠다 에어컨 풀로 틀어 놓고 피스랑 종일 뒹굴거릴 테다. 이상하게 변해 버린 상태창 따위 신경 끌 거다.
나를 일하게 만들고 싶거든 직접 강림하세요, 시스템 만드신 분. 설명서 꼭 챙겨서.
룰루랄라 문을 열었다. 철컥 소리 정겹구나. 남은 이론 수업 대충 때우고 소파와 한 몸이 되어야지. 친애하는 동생님 덕분에 마석도 잔뜩 챙겨서 돈 걱정할 일도 없고. 주식 좀 더 살까. 아님 차 한 대 뽑을까. 참, 면허부터 따야 하지.
안으로 들어서자 현관에 불이 반짝 들어온다. 신발장 맞은편 전신거울에 웃는 낯의 남자가 비친다.
누군지 몰라도 인상 참 좋으셔라. 앞으로 놀고먹고 잘사실 관상이시네요.
그런데 뒤에 소복 차림의 한 분이 더 계신…….
축축한 것이 발목을 덥석 잡았다. 이어 강하게 당겼다. 악, 잠깐, 이건 반칙—!
콰당!
강철로 된 중문 틀에 머리 박을 뻔한 것을 진짜 아슬아슬하게 옆으로 피해 넘어졌다.
시발 도깨비 이 새끼야, 놀래키랬지 암살 시도하랬냐. 나는 약하다. 진짜로 약하다. F급의 약함을 얕보지 마라.
“으으윽, 내 허리… 무릎… 팔…….”
머리만 사수하고 온몸이 다 부딪혔다. 소파가 아니라 침대랑 한 몸 되게 생겼네.
“그렇게 쉽게 넘어질 줄은 몰랐어!”
“…사과부터 해라.”
“미안해!”
말 잘 듣는 착한 어린이니 1점 추가. 비틀거리며 일어나려 하자 뒤에서 뻗어 온 손이 부축해 주었다. 으어억, 전신이 뻐근해. 던전 무사히 잘 돌아 놓고 집 현관에서 부상당하다니. 재수가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집에 파스 있으려나.
뒤돌아서자 엉엉 울고 있는 탈을 쓴 도깨비가 보였다. 처음부터 저거 쓰고 왔을 린 없고, 그새 바꿔 썼나.
그 웃기지도 않는 꼴을 쳐다보고 있자니 화낼 마음도 사라졌다.
“생각보다 늦게 왔다?”
내 말에 도깨비의 두 어깨가 아래로 축 처졌다.
“…혼났어.”
“혼났다고?”
“엄청 혼났어! 멋대로 계약서에 서명했다고 이틀 동안 계속 잔소리 들었어!”
저런. 아무래도 부하 1, 2는 보호자에 가까운 위치인 듯했다. 얘, 대체 몇 살이지. 계약 무효란 소리 안 나오는 거 보니 최소 만 14세는 넘었을 거고. 키만 보면 성인인데 정신이 미성숙한 건가.
“그래도 이길 수 있으니 괜찮다고 큰소리쳤는데! 안 무서웠어?”
“무섭기 이전에 황천길 따라갈 뻔했다.”
“원래 집에 막 들어왔을 때가 제일 방심하는 순간인데…….”
도깨비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확실히 방심하긴 했다. 그래도 저항 스킬 빼고 객관적으로 생각해 봐도 교육실 때가 더 무서웠던 거 같은데. 석하얀 때문인가? 비명 소리 임팩트가 크긴 했지. 역시 사운드가 중요해.
“아직 기회가 남았으니 힘내라.”
물론 져 줄 생각은 없지만.
“응! 열심히 할게!”
“그리고 약국 가서 파스 사 와.”
“파, 파스?”
“얼른. 당장. 효과 좋은 걸로.”
알았어, 하고 도깨비가 훌쩍 사라졌다. 편하긴 편하다니까. 들리시나요, 시스템 만드신 분. 나도 공간이동 좀, 플리즈.